소설리스트

〈 30화 〉제전은 싫어(1) (30/115)



〈 30화 〉제전은 싫어(1)

넘실거리는 구름 아래, 하늘을 수놓으며 날아가는 새들 아래, 깃발이 휘날린다.
사람들을 수호하며, 빌런을 퇴치하는 히어로를 육성하겠다는, 미래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설립된 아카데미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하고, 협력과 협동심을 평가하는 무대.
더 나아가 동아리간의 경쟁이자, 나중에 히어로가 될 때 평가에 포함되는 경기.
그렇기에 학생들의 감정이 한껏 고조되고, 그 들뜬 감정에 아카데미의 열기가 뜨거워졌다.

마치 불이라도 타오르는 듯, 아직 초여름인 계절과는 달리 한껏 뜨거워진 날씨.
 시작되는 제전 탓에 전교생이 한 장소에 모인 터라 그 열기는 숨이 턱, 하고 막힐 정도였다.

“덥네...”
“...얼음 좀 만들어줘.”
“아까 만들어 줬잖아.”
“녹았어. 더워서 나도 모르게 터트려 버렸거든.”

어느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제논이 옷을 펄럭이며 부탁했다.
이능 탓인지, 어릴 때부터 더위를 잘 탔다는데.
얼음을 만들어줘도 금세 터트려버리고 다시 달라는 것도 몇 번째인지.
약하게 만들어줬다고 한들 곧바로 터트리는 게 곱게 보일  없었다.

살짝 흘겨보자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땀 엄청 흘리네. 유독 더위에 약한 건지 남들에 비해 훨씬 더워하는 녀석을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아, 이렇게 계속 해주면 안 되는데.
마지못해 얼음을 만들어주자, 제논은 고맙다며 씨익 웃어보였다.

“이제 부수지 마.”
“알았어. 이젠 신경써서 다룰게.”

전에는 아무 생각없이 다뤘다는 건가. 약간 괘씸하긴 했지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다들 모였습니까!”

입학식 날 들었던 그 목소리, 얼굴은 안 보이는데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보면 입학식 날의 그 사람인  같았다.
역시 이런 행사에서는 사회자로 나오는 구나.

퍼엉-

하늘에서 수많은 색들이 날아가 이내 터진다, 꽃이 피듯 하늘에 만개하는 폭죽들.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아카데미의 로고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을 수호하고, 빌런들을 퇴치하는 히어로의 상징인 알파벳 S가 하늘에 그려지며, 단상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파지직-

마치 자신의 존재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자랑하듯, 청아한 하늘이 갈라지며 난데없이 벼락이 내리 꽂힌다.
전기로 이루어진 뇌운이 일며, 어둑해진 일대의 어둠을 찢고 나타난 것은 한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전류를 몸에 두르고, 한 손에는 번개 모양의 창을 들고 나타난 남자.
짙은 회색의 머리에 전기가 흘러 솟구치고, 특유의 노란 눈동자가 주변을 훑는다.
위압감을 드러내는 것만 같은 근육질의 몸이, 특유의 험상궂은 인상이 좌중을 압도 할 때, 남자는 창을  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렸다.

이윽고 터져 나오는 함성, 남자가 아닌- 그를 알아본 학생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함성이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또한 교수들이 그를 보며 환호할 때.

조용한 것은 나와 제논뿐이었다.

“에드윈 카르멘.”

...그게 저 남자의 이름이었으니까.

#


“...괜찮아?”

제논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상했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녀석은 다시 그 시선을 한 남자에게 고정했다.
아마 TV가 아닌 실제로 그의 모습을 보는  이번이 처음이겠지.

입으로는 괜찮다면서, 녀석의 눈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뭇 평정을 유지하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서도, 그 입가에 피가 머금어져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있는 걸까.

“...하아.”

녀석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품는 증오는 누군가 감히 이해하지 못할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삶을 부정당했고, 어머니를, 친구를 부정당했다. 늘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으며 살아왔고, 그로 인한 감정을 언제까지고 억눌러왔다.
아무리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 한들, 쉽사리 참을  있는 그런 것이 아닐텐데.

여기서 위로 같은  했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나겠지.
주먹을 꽉  채 앞을 바라본 제논을 잠시 쳐다봤다가, 이내 에드윈 카르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기억하는 원작에서, 에드윈 카르멘은 제논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의를 보내는 것도 아닌, 일종의 무신경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자신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오히려 이런 것이 죄냐며 되려 물을 정도의 태도.

그는 분명 잘못했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자신이 제논에게 행한 행동이 결코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곁가지’, 그 것을 쳐냈다 한들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그에게 제논이란 ‘곁가지’나다름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원작에서 제논은  제전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제논이 B지구에서의 사건으로 그저 힘없이 있을 거란 헤라 카르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만들고, 카이사와 오딘을 제압하고 당당히 1위에 등극.
더 이상 제논이라는 존재가 곁가지가 아니게 되는 시점이 바로  때였다.

이번에도그렇게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베로니카 교수의 동아리가 아닌 레이 마이어의 동아리, 방심한 헤라 카르멘이 아닌,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실하게 준비했을 것이 분명한 헤라 카르멘.

나로 인해 틀어진 전개가 혹여 생각지도 못한 불상사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념을 지우고, 다시 에드윈 카르멘을 바라보았다.

바뀐 전개를 뒤바꿀 수는 없었다.
이미 각오하고 한 일이 아니던가.
뜨는 태양을 돌이킬 수 없듯이, 이미 저버린 별들을 다시 부를  없듯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이 세상의 결말을 보는 것.

설령 한 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 미래라 한들, 나는 나아가야 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두렵다고 주저하는 건 이미 예전에 극복하지 않았던가.
다시 한 번, 하늘에 뇌전이 솟구쳤다.
번개보다 한 박자 늦게 도달하는 천둥에 몸이 전율한다. 이게 탑히어로, 그 존재를 느끼며.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할 수 있을까? 마음 속에서 조금씩 새어나오는 두려움에 의문이 일었다.

그리고 답한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단상에서 사라진 에드윈 카르멘, 학생들은 단순히 그의 존재만으로 환호하며 열광했다. 흥분으로 가득 찬 좌중의 열기 속에서, 제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시작하려나 봐.”
“안 떨려?”

 조금 떨리는데, 그렇게 덧붙이자 제논이 나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혀.”
“...그럼 다행이고.”
“다치지 마.”
“안 다친다니까.”

도대체 이걸  번을 말하는 건지.
이젠 진절머리가 난 말에 고개를 휘휘 젓자, 녀석이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 거야, 살짝 흘겨봐도 계속 웃는 녀석을 보며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주변의 풍광이 변하기 시작했다.

모래로 이루어진 바닥이 무릎까지 오는 풀로 가득한 흙바닥으로, 사람들이 가득했던 운동장이 이제는 울창한 숲으로 변모한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잠시, 뺨을 간질이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이 상황을 파악했다.

“...우리 둘 밖에 안 남은 건가?”
“그런  같아.”

이능의 한 종류일까. 주변에 그리도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지금 남은 건 나와 제논 둘 뿐, 원작의 기억을 떠올려 상황과 껴맞춘다.
마치 퍼즐을 끼우듯, 딱 맞물려진 기억을 토대로 결론이 도출된다.

“...아마 제전이 시작된 것 같아.”
“뭐라고?”
“스마트 워치에 곧 알람이 올 거야.”

멍청히 되묻는 제논을 뒤로 하고, 곧이어 울릴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아무 신호도,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정보도, 심지어 이렇게 전이된다는 정보도 없이 시작된다.
아마 아무것도 모른다면 꽤나 당황했겠지만, 원작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왔다는 것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띠링-

타이밍 좋게 울리는 스마트 워치의 알람음, 버튼을 조작하자 나오는 것은  지도였다.

울창한 숲, 그리고 중앙에 있는 빈 공터.
그리고 빈 공터 중앙에 보이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부숴야하는 코어 일 터였다.

“확인했어?”
“어...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게 C구역이지?”

A, B, C, D 총 네 개의 구역과 공터로 나뉜 이 숲. 우리가 위치한 C구역은 가장 많은 학생들이 떨어진 구역이었다.
참가하는 동아리가 총 60개, 120명의 학생  70명이  구역에 있었으니.

“귀찮게 됐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의 감흥이었다.
제논도 마찬가지로 그저 살짝 한숨을 내쉬며 아마도 코어가 있을 중앙을 멍하니 바라볼 따름이었다.

사락-

“...들었어?”

울창한 나무들로 가득한  어딘가에서 들려온 소리에 귀가 쫑긋이며 반응했다.
제논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는잎사귀, 마치 누군가가 위에 있기라도 한 듯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나뭇가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게.”

얼추 7, 8명 쯤 될까. 하나가 아닌 여러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소리를 짐작한다.
아마 이 숲에서 무언가를 폭발시키는 건 힘들겠지.
폭발을 조금이라도 잘못 일으켰다간 나무가 전부 타버릴 거고, 위치만 알려주는 꼴이니까.

제논이 이능을 쓰는 것은 공터에 도달한 이후가 아닐까.

당장 이능을 사용하려는 제논의 어깨에 손을 짚으며, 아직까지 흔들거리는 나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직까지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꽤나 가까이 다갔음에도 녀석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 완전히 가까워졌을 때,

화르륵-

마치 나무는 함정이기라도 했다는 듯이,  머리 위에서 수많은 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덩이, 쇠로 만들어진 가시,  외에도 화살, 총알 등등.

순식간에 쏟아진 공격들이 몸을 감싸며, 이내 굉음을 내며 터져나간다.
자욱한 운무, 회색빛의 기류에 넘실거리는 고요 속에서, 푸른빛이 감돌았다.

쩌저적-

운무를 집어삼키며, 고요를 집어삼키며, 한기가 퍼져나간다.
솟아오르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가시, 티끌조차 닿치 않은 공격들을 손으로 부수며, 새로이 만들어낸 검을 뽑아낸다.
가시들이 합쳐지고, 한 점으로 모여 만들어내는 것은 길쭉한 검신, 검신이 늘어지고- 넓어진다.

하늘을 그대로 담아낸 듯 찬란히 빛나는 푸른빛의 대검.

단순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물리력을 넘어서 수많은 얼음이 휘날려 흩어진다.
얼음이  속에서 피어나는 듯이.

그래서 붙여진 이름, 마치 생명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하여,

2번 검, 태동(胎動).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작, 이정도로 기습이 통할 리가 있나. 여지껏 해온 훈련이 나름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쉬이익-

그리고 검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무거운 무게만큼이나, 육중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검. 그리고 그것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제전의 첫 탈락자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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