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제전은 싫어(2) (31/115)



〈 31화 〉제전은 싫어(2)

“...허어.”
“1학년이 저렇게 이능을 다루는 건 처음 보네요. 이능 자체도 엄청 매력적이구요.”
“이미 입학식 날부터 두각을 드러냈다고는 하지만, 단시간에 저런 발전이라니. 하기야, 이미 빌런을 제압한 경험이 있다고 했었죠?”
“B지구의 그 학생이었나요? 세상에, 왜 우리 동아리로  온거지?”

홀로그램을 통해 나오는 화면은, 한 여학생이 수많은 학생들을 그야말로 분쇄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단신, 2인 1조로 팀을 맺었음에도 홀로 활약하는 그녀의 모습에 교수들이 감탄하는 와중에도 태연히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잘 하고 있네.”

다른 교수와는 멀찍이 떨어져 한 구석에 앉아있는 교수.
사이가 원만하지 않은 건지, 아무도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 권하는 사람도 없이 레이 마이어는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기야, 자신이 훈련시켰는데 저 정도도 못하면 곤란하리라. 그
녀는 문득 입안이 텁텁한 것을 느꼈다. 담배, 피어야 하는데...
허나 교수들 앞에서 자신은 레이샤의 연기를 해야 했으니, 담배는커녕 박하맛 사탕을 하나 꺼내어 입 안에 굴리는 것이 전부였다.

목구멍을 감싸는 차가운 감각.

그 것을 느끼며 떠오른 것은, 아이샤 이리안이라는 학생이 지닌 잠재력이었다.

‘제논을 키우면서도 놀라긴 했지만, 아이샤는...’

상상 이상이다.
어쩌면 나중에는 자신조차 뛰어 넘을 만큼이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잘 정리된 파일 하나를 꺼냈다.

[아이샤 이리안] 이라 적혀진 파일첩,  첫장을 열자 그 안에는 아이샤 이리안의 신상정보가 들어있었다.
교수이기에 확인할  있는 정보, 허나 아이샤 이리안의 신상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부모님은 없고, 약간 가난한 소시민과 비슷한 생활 수준.
이능 발현은 남들처럼 5살. 무엇 하나 특별한 점이 없었다.
다만 걸리는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리안’이라는 성씨.

“내가 아는 그 성씨는 아니겠지, 설마.”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은퇴를 결심하게 된 그날에 잃었던 한 친구가.
걔가 임신을 했었던가? 잠시 기억을 떠올리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령 있다 해도, 살아있을 리가 없겠지.

씁쓸한 맛이 번지는 입 안에 박하맛 사탕을 다시금 집어넣는다. 착잡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녀는 다시 홀로그램에 시선을 돌렸다.

제전은, 이제야 시작이었으니.

#


쪼개지고, 부서진다.
허나 순식간에 복구되는 검을 보며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은 절망에 가까웠다.
베이지 않더라도 순식간에 사방을 찔러오는 얼음의 송곳을 피해야 했으며,  송곳을 피하더라도 거대한 위압감을 자랑하는 거병을 피해내야했다.

피하지 못하고 닿는다면,

콰아앙-

“크악...!”

입에서 검은 피를 내뿜으며 숲 어딘가에 박혀 탈락될 뿐.
그렇다 한들 감히 대적할 수조차 없었다.
도무지 1학년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압도적인 무력, 3학년이라 한들 단숨에 휩쓸리는 그 냉기의 파도에 누가 쉽사리 들어가겠는가.

그렇기에 C구역에서의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누군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당분간 조용할 것처럼 순식간에 숲은 고요에 물들었다.

“괜찮아?”
“뭐, 무리를 한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야 그냥  번쯤 해도 괜찮았다.
미로에서 몇 주 동안 행한 훈련덕에 이능의 출력 뿐만 아니라 그걸 감당해내는 정신력 자체도 크게 상승했으니.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우리를 노리는 다른 학생들의 태도였다.

지금이야 먼저 걸어오지 않고 주변을 서성이며 지켜보는 정도였지만.
초반에는 그 정도가 지나칠 만큼이나 우리를 노려왔다.
물론 가장 강한 상대를 뭉쳐서 기습하는 건 이해할만 했지만, 우리 이능이 그렇게  알려졌던가?

B지구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몇몇 교수만 알고 있을  학생들에게는 그저 히어로들이 처리했다고만 알려진 게 끝이었다.
대강당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그랬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하지만 그 이유로는 2학년과 3학년까지 우리를 노리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이유는 하나, 헤라 카르멘이 방해하는 거겠지.

“...아마 헤라 카르멘이 사주한 거 같아.”
“내 생각에도 그래. 너무 우리만 노려지는 것 같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제논은 이내 내 시선을 피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하다는 듯, 어딘가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미안하긴 해?”
“...조금.”
“조-금?”

내가 지금 몇 명이랑 싸웠는데, 장난삼아 살짝 흘겨보자 제논은 흠칫, 하고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정말 조금이라는 건 아니고. 많이...어, 많이 고마워.”
“됐어, 어차피 숲이라서 네가 못 싸우는 거니까. 좀 이따 공터 쪽 가서 코어를 노릴  쯤엔 네 역할이 중요해. 알지?”
“응.”

제논은 고개를  차례 끄덕이더니, 이내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계속 들고 있던 검은 가죽 가방.
뭐가 들어 있으려나- 하고 고개를 들어 그 속을 살펴보자, 그 속에서 나온 것은 도시락이었다.

“도시락?”
“응, 혹시 몰라서 가져왔어.”
“...네가 만든거야?”

도시락을 열자 보이는 건, 도저히 시중에서 파는 것이라  수 없을 만큼이나 호화로운 것이었다.
비록 재료의 값이 비싼 게 아니긴 했지만.
문어 모양으로 잘려있는 소시지부터 예쁘게 말려있는 계란말이, 완두콩으로 잘 꾸며진 흰쌀밥까지 언뜻 보아도 정성이 꽤나 들어있는 것이었다.

이런 걸 직접 만들었다고?
그렇게 되물으며 제논을 쳐다보자 녀석은 부끄러운지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제논이 요리도 잘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도시락을 빤히 쳐다보자, 제논이 내게 선뜻 도시락을 내밀었다.

“하나는 네 꺼야. 이런 상황이 생길까봐 만든 거니까.”
“진짜?”
“진짜로.”

도시락을 조심스레 받아들자, 제논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런 거 만들려면 꽤 걸렸을 텐데.
제전 동안 취식이 금지되는 게 아닌 터라 삼각김밥을 사오긴 했지만, 이런 도시락이라면 곱게 넣어두는 게 좋겠지.

어차피 지금은 일종의 소강상태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필연적으로 싸움이 걸려온다.
그럴 바엔 지금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해두고, 공터까지 가는   나은 방법.
어차피 공터에 도달한다 한들 코어가 나오는 건 일정 시각 이후였으니.

조심스럽게, 혹여 쌀 한톨이 떨어지지 않을까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자 순간 눈이 탁, 하고 뜨였다.

“맛있어...”
“다행이네.”
“너 요리 잘하는구나!”
“조금 하는 거지. 취미야, 취미.”

이런 수준이 취미로 올 수 있는 수준이었을까.
단순히 밥이었지만, 마치 갓 지은 것처럼 고슬고슬한 흰쌀밥이 목구멍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찰진 식감과 백미 특유의 단 향이 혀를 감싸며, 그 자리에 짭짤한 소시지가 들어와 어쩌면 밍밍할 수도 있는 한 입의 빈자리를 메꿨다.

부드럽게, 그리고 계란 비린내가 나지 않게 허브향 까지 은은히 퍼지는 계란말이는 이 도시락의 백미(白眉)였다.
고작 계란말이 따위가 메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둥글게 말려있으면서도 형태가 뭉개지지 않은, 거기에 중간중간 양파가 씹혀 심심하지 않은 식감에 입꼬리가 말려올라갔다.

“...맛있어?”
“응, 엄청.”
“하하.”

어느새 도시락을 다 먹어치운 제논은 새 도시락을 꺼내며 밝게 웃었다.
하기야, 워낙 많이 먹으니 도시락 하나로 부족하겠지.
그나저나 이걸 전부 준비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걸린 걸까?

“고마워.”

마지막 한 숟갈을 비우며, 나는 제논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만한 도시락 몇 개를 준비하는 데 꽤나 고생했을 테니까.
그러자 잠시 멈칫, 하고 수저를 들다 머뭇거리던 녀석은 귀를 빨갛게 물들이며 시선을돌렸다.

"그, 그래."
“아무튼, 그거 빨리 먹고 이제 슬슬 움...”

쿵-

 순간, 소음이 근처에서 일어났다.
소리가 일어나는 즉시 귀에 꽂힐 만큼이나 지근거리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제논이 도시락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처야.”
“알고 있어.”

쿵-

방금보다 더욱 가까워진 소리, 아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리듯 굉음은 점점 커져갔다.
이게 무슨 소리라고 봐야할까. 언뜻 들으면 땅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묘한 느낌이 들었다.

“땅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마치 파내는 것 같아.”

쿠구궁-

그 소리가 다가올수록, 제논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갔다.
아마 내 짐작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땅을 파내는 것, 그리고 제논의 반응까지.
그런 이능을 지닌 사람이라면 딱 한 사람밖에 없지.

“제논-!”

단순한 외침에 공기가 울린다. 그렇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웅장한 목소리.
이윽고 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장벽을 타고 한 남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무를 무너뜨리고, 주변 학생들을 휩쓸며 다가오는 하나의 재앙,

“오랜만이야 오딘.”

오딘 카르멘이, 교복을 펄럭이며 우리 앞에 떨어졌다.

쿠웅-

양 발로 착지하며 생겨난 자욱한 먼지 속에서 멀쩡히 걸어 나오는 한 거구.
키가 한 3M는 되보이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놀란 내 얼굴을 본 걸까, 눈이 마주친 오딘이 껄껄, 하고 웃더니 제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래, 존나게 오랜만이다 제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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