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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제전은 싫어(3) (32/115)



〈 32화 〉제전은 싫어(3)

“그렇게 반갑진 않은데, 형.”

제논의 입에서 흘러나온 호칭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굳을 수밖에 없었다.
오딘 카르멘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정말로 카르멘가의 사람을 친근하게 부른다는 그 사실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형, 이라 불렸다는 사실 때문일까.
오딘 카르멘은 기분 좋은 듯 씨익 웃으며 제논을의 등을 격하게 팡팡, 두드렸다.

“이 새끼! 그래도 나를 형이라 생각하고 있었구만!”
“실수야 실수. 그리고 아파.”
“아하하! 괜찮아, 네가 항상 틱틱대는 것쯤이야 잘 알고 있었으니까!”
“...틱틱대는 게 아니라 아프다니까?”

항상 저런 상태인 건지, 제논은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오딘을 밀어냈다.
카르멘의 사람하고 저렇게 사이가 좋다니.
직접 보고 있지만 어쩐지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당장 카이사 카르멘이나, 헤라 카르멘의 태도부터 봐서 그런 걸까.

제논을 친근히 대하는 오딘을 바라보며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  전부였다.

그런 내 심정을 알아챘는지, 제논이 오딘을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 내 형이라고 생각하면 돼.”
“카르멘?”
“응,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쁜 사람은 아니다, 라.
여전히 오딘과 제논의 관계에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기 입으로 괜찮다고 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로 했다.

#


오딘 카르멘, 카르멘이란 성을 가진 이들 중 유일하게 혈육이라 생각하는 사람.
도대체 이게 몇  만인지, 그와 마주치는 순간 내게 솟아오른 감정이란 반가움뿐이었다.
어머니를 잃었을  유일하게 나를 위로해주었던 이였으니.

특유의 비정상적인 쾌활함 탓에 같이  성격에 어울려주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딘을 꽤나 마음에 들어하고 있음은 변하지 않으리라.
하여 이렇게 마주한 것에 약간 불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평상시면 몰라도 동아리 제전이었고, 마주친다는 것은 곧 싸우게 될 것이란 얘기였으니까.

그런 걱정을 알아챈 듯, 오딘은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제대로 깎이지 않은 수염이 거무스레하게 보였다. 참, 자기 관리를 전혀 안하는 것은 여전하구나.

“너무 걱정마라, 싸우려고 온 건 아니니까.”
“그럼?”
“우리가 싸우는 건 아마 코어 앞에서의 이야기겠지. 대충 무대에 누가 올지는 너도 알겠지?”

알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카르멘가의 사람들이 모두 모이겠지. 그렇기에 걱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격전이 되리라, 학교의 행사인 만큼 누군가 죽어나가진 않겠지만.
크게 다치는 것까지 아카데미에서 제제할 수는 없을테니.

“헤라한테 찍혔다고 들었다. 꽤 머리가 아프겠어.”
“...그냥 아픈 수준이 아니지.”

나는 지켜야  게 있었다.혼자 하는 싸움이면 모를까.
누군가를 지키며 싸우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레이 마이어를 찾아간 것이기도 했다.

어렸을 적, 자기  하나는 지킬  알아야 한다며 시작되었던 훈련.
사람 하나가 죽기 직전까지 가는 그 것이 훈련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했다.

아이샤가 없을 때에도 레이 마이어를 찾아가 훈련을 부탁했다.
훈련을 하다 되려 그녀의 정신력이 마모될  까지, 간혹  다리가 부러져 그 유성우에 직격할 때까지.
어느 때보다 간절히 훈련에 임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기에, 훈련에 그토록 열심히 임할 수 있었다.

...아이샤.

그 이름을 곱씹으며, 나는 다시 오딘을 바라보았다.
오딘의 시선은 아까와는 달리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네가 아이샤를 쳐다봐.

허나, 화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내가 생각해도 비정상적으로 충동적인 감정이었기에. 그런 감정을 품었다는 것에 부끄러워했다.

“여자친구야?”
“아직.”
“...미친 새끼.”

오딘은 내 눈에 순간 어렸던 분노를 읽은  했다.
정말 순간 이었는데, 그의 순발력을 비난하며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을 내뱉었다.

“사귀지도 않으면서 무슨 질투야.”
“......음.”
“단단히 빠졌구나, 첫사랑 아닌가?”
“이뤄져야 첫사랑이지.”

확실히,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것은 태어나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향하는 누군가의 시선이. 설령 그것이 오딘의 것일지라도 이리 가슴이 답답한 것은.

오딘은 그런 나를 보며 킬킬대고 웃었다.
방금의 대화는 아주 작은 소리로 나눴기에 아이샤에게 닿지는 않았겠지만, 혹여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선을 돌리자 아이샤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궁금한 듯, 귀를 쫑긋이며살짝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퍽 귀여웠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지 얼굴을 찡그린 것 마저도, 눈이 마주치자  모양으로 ‘뭐라고?’ 라며 말하는 것마저도.

쯔쯧,

오딘이 혀를 차며 나를 흘겨봤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너도 참...중증이구나.”
“그러게.”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야?”
“...처음부터?”
“씨발.”

좋아하는 마음을 자각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를 눈에 담은 순간부터 호감을 품었음을 부정할 순 없으리라.
순간 아버지에게 향하는 증오가 옅어질 만큼이나, 그녀는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였다.

설령 그녀가 자신을 평생 친구 정도로 여기더라도.

언젠가는, 이 마음을 전해야  텐데.
그렇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섣부른 행동은 오히려 반감만 불러올 터,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다.

오딘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하늘을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어보였다.

“좋아 보이네.”
“...좋지, 어느 때보다도.”
“...다행이야.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형이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었어?”
“난 항상 친절했어. 마음도 여리지.”
“몸은 전혀 여리지 않은데.”

큭큭, 말하던 도중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3m가 넘어가는 키를 가진 이가 자신을 연민어린 얼굴로 쳐다본다면, 그  만큼 웃긴 것이 있을까.
오딘은 기분이 나빴는지 잠시 흘겨보더니, 이내 따라 웃었다.

“아무튼, 조심해. 헤라는...네 생각보다 훨씬 미친년이니까.”

그는 자신의 혈육을 욕하면서까지 내게 경고했다.
입장이 꽤나 난처하겠지. 자신의 누나와, 배다른 동생이 서로를 죽이려하며 싸우려 하니.
어느 쪽에 서서 개입할 수 없기에 그의 답답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고마웠다. 그에게 자신이 헤라와 대등한 입장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에드윈 카르멘이라는 사람 아래에서 자랐음에도, 오딘은 그의 악함을 물려받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완전히 좌절하지 않은 것은 그의 도움이 컸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기 조차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하는 그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마, 아무것도 잃지 않을 거야.”
“그래야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설령 스스로를 잃더라도.

그렇게 스스로 다짐하며, 토벽과 함께 사라지는 오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사라지자, 아이샤가 총총거리며 다가왔다.
언제 묶었는지, 뒤로 묶인 그녀의 머리카락이불만스러운 듯 거칠게 흔들렸다.

“아까 무슨 얘기한 거야?”
“그냥 옛날 얘기.”

네 얘기를 했어, 라고말할 수는 없으니.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집어삼키며 애써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수많은 얘기  오딘과 속삭였던 얘기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는지, 아이샤의 고운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래, 뭐. 옛날 얘기라면.”
“이해해줘서 고마워.”

아이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라와 만난 이후, 내 성이 카르멘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샤는 내 과거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혹여 내가 상처받을까 그런 거겠지. 겉으로는 당차보였지만, 그녀는 여린 속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가끔 나를 바라보며 눈동자가 흔들릴 때면, 여지없이 그런 점을 깨닫곤 했다.
친구라곤 하나도 없던 스마트 박스의 연락처를 떠올렸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과거를 지니고 있던 걸까?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언젠가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까 덮었던 도시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또 먹어?”
“다 먹어 치워야지.”

그녀에게 도시락을 만들어주겠다며 어제 꼬박 밤을 새웠다
. 라면 말고는 요리와 인연이 없었는데, 계란말이를 만들겠다고 계란 몇 판을 소비했던가.
그 생각을 떠올리면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그녀를 보며 그런 마음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이샤는 도시락 하나를 해치우는 나를 질렸다는 듯이 쳐다봤다.
오히려 신기한  내 쪽이었다. 고작 도시락 하나 가지고 배가 차는 걸까?
내 시선은 어느새 그녀의 손목으로 향했다.

툭치면 부러질 듯,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를 지닌 그녀의 손목을 너무나도 얇았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키만한 대검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탈락시키는 모습을 방금 봤음에도, 걱정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약함이 원망스러웠다.

재능의 차이겠지. 조금이나마 그녀에게 닿고자 그녀가 없을 때에도 훈련을 거듭했건만.
자신이 한 걸음을 걸으면 그녀는 저 멀리서 뛰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지키고 싶었다. 말로만 그것을 뱉고, 정작 실현시킬 힘이 없음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붉은 눈을 잠시 바라보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눈이 마주침에도 이런 반응이라니. 수저를 머금은 입에서 살짝 한숨이 새어나왔다.

“...언제 다 먹냐.”

무릎을 꼭 껴안은 채 그녀가 물었다.
얼마나 남았냐고? 내 시선이 가방에 향했다.
도시락 한  개로는 배가 차지 않아 여러 개를 준비했다.
특별히 계란말이에 양파를 더 넣은 그녀의 것을 제외하고, 남은 것은...

“3개 남았네.”
“...미친.”

완전히 질렸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시선을 피하는 그녀를 보며 내가 하는 것이라곤, 그저 웃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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