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단 둘이는 싫어(3) (37/115)



〈 37화 〉단 둘이는 싫어(3)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어느 순간, 현관문 안쪽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았을  그제서야 집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컥-

다급히 현관문을 열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제논은 이미 흔적조차 보이지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스마트워치를 켜 시간을 보자 어느덧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신발을 벗어던지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솜의 감촉이 몸을 덮으며, 어느덧 나를 감쌌던 한기가 사라졌음을 느꼈다.

따듯하다-

씻어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이미 한계까지 다다른 체력에 몸이 노곤해진지 오래였다.
그러던 때에 생각난 건, 내가 걸치고 있는 가디건이었다.
내가 입는 사이즈보다 더 몇 치수는 더 큰, 헐렁이다 못해 손 아래로 흔들거리는 그 옷을 보며,

나도 모르게 소매에 코를 묻었다.
숨을 들이마심과 함께 코를 찌르는 라벤더 향에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 제논 가디건이었구나. 아까는 하복 입고 있었으면서, 이런 걸 언제 챙겼는지 모르겠다.


...머리 아파.

계속해서 아까 제논의 모습이 떠올랐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어느새의식 속에 자리 잡아 툭, 하고 떠오르는  얼굴에 이불을 팡, 하고 걷어찼다.

“흐으...”

도대체 내가 뭐 얼마나 특별한 존재라고.
고작해야 사람 한  구했을 뿐인데 왜 그리 기뻐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특별히 무엇을 해준 것도 없는데, 그런 호의는 솔직히 말해 부담스러웠다.

고맙지만, 부담스럽다.

그 상반되는 감정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다시 몸을 침대에 늘어트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생각이 너무나도 많았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당장 떠오른 것은 내가 헤라 카르멘을 이겨냈다는 것이었다.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팔을 휘둘렀다.
해냈다,  생각만으로도 한껏 차오르는 고양감에 잠기운이 확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1부의 중간보스, 그녀와 엮였을 때만 해도 눈앞이 까마득했는데.
어느덧 그녀를 제전에서 꺾어냈다. 아직까지 완벽히 이겨냈다-라고 볼 순 없었지만.
제전에서 그녀는 탈락하고 나는 살아남았으니. 어찌 됐든 앞으로 그녀를 만나더라도 괜찮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

이제 이렇게만 간다면, 언젠가는 결말을  수 있지 않을까?

“헤헤.”

금세 기분이 좋아져선, 나는 어느새 스마트 워치를 보고 있었다.
아까 양호실에서 잠깐 봤을 때 쌓인 문자가 꽤 있었는데, 아마 프레이에게 오지 않았을까.

내 예상대로, 쌓여있던 문자들은 전부 프레이의 것이었다.
힘내라는 응원부터 다치진 않았냐는 문자, 제논하고 둘이서 밥먹으니 좋냐는 것도 있고, 끝에는 전부 같은 내용이었다.

내가 기절하고 쓰러진 것에 대해 나를 걱정하고, 어떻게 됐냐며 물어보는, 꽤나 다급해 보이는 문자.

순간 가슴이 뭉클해져서 그 문자들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글자,  글자. 그 것이 잊히지 않도록, 가슴 속에 새겨지도록.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토록 좋은 일이었다.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 것을 생각하며, 나는 스마트 워치가 있는 손목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고마워, 프레이.”

다음에 학교에서 볼 때는,    끌어안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이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에 내 얼굴 또한 활짝 펴졌다.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프레이를 꼬옥 안으며, 녀석의 머리카락에 코를 비볐다.
사람 머리에서 풀향이 나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좋았다.

“프레이!”
“몸은  괜찮아?”
“엄-청 괜찮아.”

걱정하는  눈에서 미끄러운 점액을 흘리는 프레이를 향해 나는 팔을 굽혀 보였다.

“자, 괜찮지?”
“진짜, 내가 방송 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제논 아니었으면 큰일 날  했어.”
“알아,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후우, 알았어.”

한숨을 쉬며 동시에 축 늘어졌던 더듬이는,
갑작스레 하늘에 꼿꼿이 몸을 세우더니 이내 느낌표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프레이가 폴짝, 하고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그나저나 아이샤, 엄청 놀랐어! 헤라 카르멘을 이기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단 말야!”
“운이 좋았어.”
“운이 좋은 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전교생이 그걸 봤으니까, 지금 아이샤는 정말...음, 그게 뭐였지?”
“스타?”
“그래, 스타야! 지금 주변을 봐봐,아이샤만 보고 있잖아!”

확실히, 교실로 들어오는 내내 나를 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예전엔 그냥 힐끔힐끔 보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냥 대놓고 선망의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 영 불편했다.
하기야, 1학년이 3학년 톱을 이겨냈으니 그만큼 화제가 되는 일이 없겠지.

“조금 불편하네.”
“제전도 우승했으니까, 서포트 아이템은 받았어?”

우승?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프레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승이라니.”
“응? 제논이 코어 부쉈잖아. 설마 몰랐어?”
“...어.”

세상에, 그럼 그 때 나를 구한 것도 오딘을 이기고 온 건가?
그 짧은 시간에? 저 멀리 엎드려 자고 있는 제논이 새삼 다시 보였다.
제논이 오딘을 이기게 되는 건 조금 나중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서포트 아이템이라.”
“아직  받았구나, 뭘까? 나중에 받으면 나 좀 보여줘.”
“응, 당연히 그래야지.”

프레이라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자 프레이의 더듬이가 꼬이며 얼굴이 확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 그렇게 웃으면  돼...”
“응?”
“아이샤는 자기가 얼마나 예쁜 지 자각할 필요가 있어...”


더듬이는 점점 꼬이더니, 이내 툭- 하고 끊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금세 다시 자라나긴 했지만,
내가 자신을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걸 깨달았는지 프레이는 헤헤, 하고 능글맞게 웃으며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게 뭐야?”
“선물, 우승했으니까.”

프레이가 내게  것은 작은 상자였다.
꼭 반지라도 들어갈 듯,  손으로 전부 포개어지는 상자를 조심스레 열자 보이는 것은 동그랗게 생긴 초콜릿이었다.

“...초콜릿?”
“직접 만들었지.”
“정말?”

세상에, 나는 감동한 표정으로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초록 머리가 기분 좋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프레이는 가슴을 쭈욱 내밀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들어준  거절할 만큼  성격이 나쁘진 않았으니.

“고마워 프레이.”
“그리고   쪽에 하나 더 있어.”

안 쪽?
그 말을 듣고 상자를 다시 살피자, 과연  쪽에 티켓으로 보이는 종이가 하나 있었다.

“이게 뭐야?”
“우리 아빠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티켓이야. 일주일 안에만 쓰면 돼.”
“프레이 아버지가 요리사였구나.”
“응, 조금 유명하신 분이야.”
“조금?”

그럴 리가, 티켓에 적힌 레스토랑은 나도 아는 이름이었다.
요리에 특화된 이능을 살려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셰프라 불리던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이 프레이의 아버지였다니, 나는 새삼 놀라워하며 프레이에게 티켓을 슬쩍 내밀었다.

“그래서, 같이 갈래?”
“...음,  같이 못 가.”
“왜?”

티켓은 분명 2인용이었다. 그런 걸 내게 줬다는 건, 같이 가자는 얘기가 아니었던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프레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냥, 네가 갈 때는 좀 바쁠 거 같아.”
“나랑 가기 싫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절대 그런 건 아니라는 듯, 프레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나랑 가기 싫은 건 아니라 다행이지만, 프레이는 같이 가지 못할 이유를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알  있는 것은,프레이가 아버지의 레스토랑을 얘기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 레스토랑과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프레이의 눈매가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유명한 셰프라면 자랑할 법도 한데, 여지껏 말하지 않은 걸 보면...

“무슨 문제가 있나.”

아무도 없는 허공에 중얼거렸지만, 그 것에 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프레이는 어느새 축 늘어져 잠들었고, 한동안 힘없이 늘어진 더듬이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역시 직접 가보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일 레스토랑]

이렇게 적힌 티켓 아래 적힌 것은, 시우 자일이라는 이름이었다.
도대체  사람이랑 프레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사람 좋은 프레이가 그렇게 꺼려하는 걸까.

참견이고, 괜한 오지랖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두고 보고 싶지는 않았다.

또르르, 시선이 움직여  곳으로 향했다.
그 끝에 있는  아직까지도 엎드려 있는 제논의 등.
레스토랑을 혼자 가는 취미는 없었다. 일반식당이면 모를까, 레스토랑에 혼자 가는 사람이라니.
그렇다면 누군가와 같이 가야했는데, 프레이가 안된다면 한 사람 밖에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제논에게 향했다.
성큼 성큼, 내가 다가갔음에도 아직까지 일어날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 녀석의 머리 앞에 티켓을 내려놓으며, 녀석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야, 제논.”
“...왜, 선생님 오셨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스윽-

티켓이 제논의 눈앞에 밀려가고,
잠시 멍한 얼굴로 티켓을 바라보던 제논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게 뭐냐며,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한 얼굴.

그런 얼굴을 보며, 나는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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