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단 둘이는 싫어(5)
생각으로 가득찬 머릿속은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당장 우울해진 프레이를 달래주는 것도 그렇고, 특히나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 시우 자일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었다.
도서관을 뒤져가며, 인터넷을 뒤져가며찾아봤지만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시우 자일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명성에 불과했다.
‘시우비드’ 라는 꽤 특수한 조리법을 만든 데 이어 양식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최고라 감히 칭해지는, 요리계의 1인자.
‘보관’이라는 특이한 이능으로 요리계의 스페셜리스트가 된 그는 요리사들에게 있어 거의 신으로 추앙받을 정도였다.
이런 사람의 딸이 프레이라니, 어쩌면 프레이가 여지껏 자신의 성을 얘기하기 꺼려했던 것도 그런 탓인 걸까.
생각해보면 프레이는 음식에 관한 조예가 깊은 편이었다.
가령 떡볶이를 먹을 때만해도 단지 맛으로만 그 재료들을 파악할 정도였으니.
“...하아.”
이렇게 고민해도,결국 그 레스토랑에 가야 뭐라도 알 수 있겠지.
가슴 한 구석이 답답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단순히 프레이와 이 시우 자일이라는 사람 간의 불화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레이 마이어, 그러니까 레이샤 교수님이 그 말로 수업을 끝낸 뒤 내게 눈짓을 보냈다.
따라오라는 듯,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 그녀는 교실 문을 툭툭, 두드리곤 문 밖으로 나섰다.
“교수님?”
“오랜만이네, 아이샤.”
담당실 안 쪽으로 들어가자 레이 마이어는 싱긋 웃으며 내 앞에 커피잔 하나를 놓았다.
뜨거운 잔을 조심스레 들며, 시선을 마주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제전에서 다친 건 좀 어때.”
“제논이 그때 잡아줘서 괜찮아요.”
“네가 기절했을 때 제논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아쉬워.”
진심으로 재밌다는 듯, 그녀는 큭큭 거리며 가슴팍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항상 궁금한 거지만 어떻게 담뱃갑이 저기서 나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쪽을 슬쩍 살피자, 레이 마이어에 비해 성장이 한참 부족한 가슴을 보곤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건 어른만이 할 수 있는 거지.”
“저도 이제 곧 성인인데요.”
“2년 남았으니까 아직 애잖아. 혹시 몰라? 더 커질지.”
“...관심 없어요, 그런 거.”
내가 가슴 크기를 뭐 하러 키워.
여전히 게슴츠레한 눈으로 레이 마이어가 날 바라보긴 했지만, 어깨를 으쓱이자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래,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줄래?”
“무슨 소문이요?”
“너랑 제논이 사귄다며.”
“...네?”
맹세코, 처음 듣는 소문이었다.
도대체 그딴 소문을 누가? 내가 경악어린 표정으로 되묻자, 그녀는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봤다.
“아니었어? 나도 내심 너희 사귀는 줄 알았는데.”
“도대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이미 학교에 좍- 퍼졌어.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네 잘못도 있고.”
“제 잘못이라뇨, 아니 애초에 제가 제논이랑 왜?”
“애들 앞에서 대놓고, 티켓을 주면서 아주 살갑게 웃어줬다는데. 그 티켓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착각하기엔 충분하지.”
아-
순간 부끄러움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마음 같아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레이 마이어 앞에서 그럴 수도 없는 터.
내가 한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 단 하나도 생각지 못했다.
그 때는 그냥 프레이한테 온 신경이 다 쏠려있던 터라-주변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흐으...”
이마를 짚고 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자, 레이 마이어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근데 내가 봐도, 너희는 엮일만 하거든.”
“도대체- 어디가요?”
“맨날 둘이 있는 것도 그렇고, 솔직히 말해 너희 굉장히 자주 붙어 있는 건 알지? 프레이라는 여자애랑도 같이 있긴 하지만.”
“그건 제논이 절 따라오는 거라고요.”
“너는?”
그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나는 그저 눈매를 좁힌 채 그녀를 쳐다봤다.
솔직히 말해 억울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내가 같이 다니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프레이랑 있을 때는 괜찮지만 나 혼자 다니려 하면 여지없이 따라오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한두 번이지 그게 계속 반복되는 터라 그냥 포기한 참이었다.
걱정된다며 따라오는 걸 화내면서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별 감정 없어요.”
“...제논이 알면 울겠네.”
후우-
새하얀 연기가 내뿜어지며, 레이 마이어는 허공을 잠시 바라보았다.
하얀 연기가 흩어져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헤라 카르멘을 이기는 건 봤어. 1학년이 3학년 톱을 이겼다라, 솔직히 말해 여지껏 이 정도의 유망주는 나타난 적이 없었지. 심지어 ‘그’ 에드윈 카르멘마저도, 1학년 때는 평범했으니.”
“그렇죠...”
그녀가 그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나를 향한 러브콜이 부쩍 늘었으니, 내가 한 행동이 일으키는 파장 정도야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맛보기 수준이라 생각하면 돼. 앞으로는 더욱 거세게, 지금보다도 더욱 많은 이들이 널 가지려 할 거야. 미래의 ‘탑히어로’, 이번에 네가 보여준 행적은 너를 그렇게 칭하게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지금보다 많다고요?”
지금만 해도 스마트 워치에 보지 않은 연락이 수두룩했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읽어봤지만, 몇 백 개에 달하는 것을 읽으면 또다시 그 만큼의 연락이 쌓여 그냥 놔두는 중이었다.
근데 나중엔 지금보다 많아진다니, 창백하게 질린 내 얼굴을 보며 레이 마이어가 말을 이어갔다.
“네가 지금 이능을 활용하는 수준은, 어지간한 프로 히어로를 뛰어넘는 수준이야. 당장 데뷔한다고 발표해도 이견이 달리지 않을 만큼이나. 이능의 활용면에서나, 화력면에서나, 그리고 가성비면에서나, 어디하나 빠지는 점이 없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 칭찬에 나는 뺨을 긁적였다.
이렇게 내 칭찬을 늘어놓는 이유가 뭘까.
기분이 좋긴 했지만,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찜찜함에 약간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헤라 카르멘도 그걸 알고.”
“그 사람은 왜요?”
내가 묻자, 레이 마이어는 꽁초를 한 구석으로 던지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걔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해? 나는 졌구나, 앞으로는 개기지 말아야겠다. 이러면서 말이야.”
“그건 아니죠.”
원작에서의 헤라 카르멘도, 제논에게 한 번 패한 것으로 잠적하진 않았다.
계속해서 힘을 키워나갔고, 종래엔 중간 보스로 나타나 도시 하나를 분쇄했다.
그런 그녀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였기에, 나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니까 다행이긴 한데, 이젠 단순히 아는 걸로 끝나면 안 될 것 같아.”
“네?”
“헤라 카르멘이 마루더즈와 접촉했어.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는 알겠지?”
마루더즈,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이 딱딱히 굳어갔다.
음지에서 가장 큰 조직을 자랑하는 마약상.
단순한 마약상이 아닌, 이능과 관련된 마약을 파는 조직이라 원작에서도 종종 이름이 나온 적이 있었다.
나중에 제논이 직접 소탕을 했기에 기억하는 것이긴 했지만.
헤라 카르멘과 그 이름이 엮인 적은 없었는데.
...하기야, 나 때문에 전개가 꼬였으니 이제 와서 누굴 탓하랴.
지끈 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다시 레이 마이어를 바라보았다.
“그걸 누구한테...”
“제논이 오늘 얘기하더라, 오딘이 직접 경고했다고 했으니. 아마 거의 사실이겠지.”
오딘이 말했다면, 확실히 믿을만한 정보였다.
최소한 내가 본 200화까지 그는 카르멘가에서 유일하게 제논에게 호의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오딘이 그렇게 말했더라면, 그것도 경고했다면, 아마 진실이겠지.
헤라 카르멘과 마루더즈, 그 두 개가 맞물려 만들어내는 위험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게 분명했다.
아주 잠깐 생각하더라도, 순식간에 나뭇가지가 뻗어가듯 떠오르는 위험에 머리가 아파왔다.
지금 당장 프레이만 신경 써도 모자랄 판에 헤라 카르멘까지 추가되다니.
“흐으...”
“아무튼, 최근에 마루더즈 관련해서 말이 나오는 곳이 하나 있긴 해.”
“...그게 어딘데요?”
“자일 레스토랑.”
그 말에, 내 표정은 다시 한 번 딱딱히 굳어갔다.
#
바람이 살랑여 뺨을 간질인다.
온갖 색채로 가득했던, 그런 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상엔 초록빛의 물결이 가득했다.
덥고 습한 공기가 허공을 메우는 계절.
바닥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개미는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누군가 밟지 않는다면, 이 아스팔트 위의 개미는 제 할 일을 다하고 언젠가 스러지겠지.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내 표정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슴은 답답하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단순히 프레이와 아버지 사이가 왜 틀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일은 어느덧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마루더즈랑 시우 자일의 연관성, 단순한 식사자리에서 그 것을 파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찾아봐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평소와 다른 제논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옷 입는 데에 굉장히 힘을 준 듯, 척봐도 꽤 비싸보이는 옷들을 걸친 것을 멍하니 바라보자 제논이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그...음, 일찍 왔네.”
“...방금 왔으니까 괜찮아. 근데 왜 이렇게 옷에 힘을 줬어?”
“자일 레스토랑이잖아그리고...”
너랑 가는 거니까, 이렇게 덧붙인 제논은 시선을 살짝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제서야 떠오른 생각은, 내가 단순히 레스토랑에 같이 가자고만 했지 그 목적에 대해 얘기하지 않은 것. 그러니까 이렇게 입는 데에 힘을 줬지.
“하아...”
한숨을 내쉬며, 나는 제논에게 레스토랑에 같이 가자고 한 목적을 일러 주었다. 마루더즈와, 프레이의 이야기.
처음엔 약간 의아한 듯 얘기를 듣던 제논의 눈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해, 결국 완전히 무너져 축 늘어지기까지 했다.
레스토랑에 가는 것을 꽤나 기대한 걸까.
하기야, 그 자일 레스토랑이었으니. 순수하게 밥만 먹으러 갔다면 일생일대의 행복이나 다름없을 것이었다.
단숨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며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