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후회는 싫어(2)
아까와는 달리 완전히 밝아진 제논의 모습을 보자 약간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역시 사람은 웃어야지.
아까부터 실실 거리며 저 혼자 웃는 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기분이 풀려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식사를 깔끔히 마쳤다.
과연 이게 세계 최고, 라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완벽한 요리들이었다.
특히나 와규라는 것을 먹었을 때는, 여지껏 먹었던 고기들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특히나 겉이 아닌 속에 양념이 완벽히 배어져 있었기에 일반적인 스테이크와도 궤를 달리 했다.
“시우 자일이 가진 이능 때문이야.”
“이능?”
“보관이라는 이능 자체는 단순했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가진 이능을 엄청나게 발전 시켰거든.”
디저트로 나온 포크를 집으며 제논은 입을 열었다.
이능을 발전 시킨다라, 경험해보긴 했지만 그저 ‘보관’이라는 이름만 아는 이능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상상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게임 속에 나오는 인벤토리 같은 걸까? 그런 의문을 알아챘는지, 제논이 말했다.
“보관이라는 이능은 그냥 단순해,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듯 가상의 공간에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는 이능이지. 처음엔 야구공 정도 크기의 물건을 넣으면 더 이상 넣을 수 없었다고 해.”
“요리랑 관련된 이능이 아니었네?”
난 또 누구처럼 신선도도 유지하는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고작 야구공 크기의 물건만 넣을 수 있는 거면 재료를 보관하는 데에도 신통치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발전을 시켰길래, 지금의 위치까지 갈 수 있었던 걸까.
“그만큼 요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는 거지. 지금은 이 자일 레스토랑 전체를 ‘보관’해도 괜찮을 정도라고 하니까.”
“근데 그렇게 큰 걸 넣는 거랑 요리랑 무슨 상관인데?”
“향이나 맛, 재료 본연이 가지는 성분 따위도 보관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제논은 아까 와규가 담겨있었던 접시를 포크로 가리켰다.
“속에 양념이 배어있었지? 겉에는 양념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는데 말이야.”
“어, 확실히.”
“양념이 가지는 향이나 맛을 고기 안에 보관한 거야. 이 세상에서 시우 자일만 할 수 있는 요리법이지.”
“오...”
그게 사실이라면, 시우 자일이 조금 달라보이는 것 같았다.
어찌보면 거의 쓸모없는 수준인 이능을 그렇게 갈고 닦았다니, 단순히 내가 3번 검을 뽑는 것과는 수준이 다른 게 아닌가.
발전이 아닌 혁신, 그가 해낸 것은 그렇게 칭하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다.
탁-
빈 접시에 포크를 내려놓자, 다시 묘한 긴장감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제 다 먹었으니 슬슬 시우 자일이 있는 윗 층으로 올라가야 할 터. 역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걱정돼?”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제논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논은 안심하라는 듯 내 어깨를 조심스레 토닥였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네가 있으니까 더 불안한 건데.”
“...하.”
한숨을 내쉬는 제논을 보며 쿡쿡 웃자 녀석이 나를 흘겨보았다.
“왜-?”
“아니, 됐다.”
하아, 제논은 한숨을 한 번 짙게 뱉더니 이내 원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하얀 머리카락을 다듬으며 정리하던 녀석은 나를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제 슬슬 가야지?”
“...그래, 안 가는 것보다는 가서 뭐라도 보는 게 낫겠지.”
그 때, 문득 레스토랑에 오기 전 제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루더즈랑 자일 레스토랑의 관련점에 대해 묻자 했던 말.
-음식을 먹어보면, 알아.
“잠깐만 제논.”
“왜.”
“음식을 먹어보면 안다며, 그게 무슨 말이었던 거야.”
“아.”
작게 침음성을 삼킨 제논의 눈썹이 이리저리 휘었다.
여기서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올린 제논의 어깨가 한 차례 들썩였다.
“좀이따 나가서 말해줄게, 확실한 건. 음식에 문제는 없었어.”
“...알았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논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성이라는 중세풍의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엘리베이터였지만, 이런 높은 건물에 계단만 덩그러니 두는 것만큼 손님에게 무례한 일도 없으리라.
그나마 약간의 감성을 살리려 했던 걸까, 계단은 쇠사슬만으로 지탱되어 있어 올라가는 내내 흔들렸다.
[ 이능으로 처리되어 매우 안전! ]
이렇게 적혀있긴 했지만, 과연 누가 불안해하지 않을까?
고개를 돌려 제논을 바라보자, 제논의 안색이 창백한 걸 볼 수 있었다. 설마, 겁먹은 건가.
“제논?”
“어, 응?”
“무서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 안색이 창백해서.”
“난 높은 곳을, 딱히 무서워하진 않아.”
라고, 제논은 온 몸을 파르르 떨며 대답했다.
아하, 속으로 탄성을 터트리며- 제논이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마음속에 기록했다.
계속 놀려먹어야지.
띠링-
엘리베이터가 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리고, 제논은 다급히 그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던 제논은 영 탐탁치않다는 듯 엘리베이터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맘에 안들어 저거.”
“높은 곳이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을 했어야지.”
“...안 무서워.”
“퍽이나.”
이마의 식은땀을 가리키자 녀석은 황급히 땀을 닦으며 얼굴을 붉혔다.
안 무서운 척은, 그나저나 고소공포증이라는 애가 저번에 날 어떻게 구한 거지.
땅에 떨어질 때쯤이긴 해도 꽤 높은 높이였는데.
허나 그런 고민은 금새 흩어졌다. 제논이 저 멀리 있는 한 문을 가리켰기 때문이었다.
{ 시우 자일 }
꽤나 고풍스러운 글씨로 적힌 그 명패를 보자 다시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을 차분히 한 뒤 그 커다란 문을 두드렸다.
똑똑-
잠시간의 정적, 곧이어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건, 사방을 가득 매운 책장이었다.
바닥에는 책들이 쌓여있었고, 이곳저곳 놓여진 책장에는 요리와 관련된 서적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천장에 매달려 있는 책들마저도.
서적들이 시우 자일이 요리에 가지는 열정이라 한다면, 그는 열정 만으로도 세계 최고라 할법했다.
그리고 그 무수한 책들의 숲 가운데, 시우 자일은 소파에 앉은 채 우리를 바라보았다.
처음 문에서 보았던 미소와 기쁨은 온데간데 없이, 슬픔과 후회로 점철된 얼굴은 억지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프레이 아버님?”
“자일씨라고 불러도 된단다. 편하게 부르렴.”
“자일씨- 그러니까, 저희는 프레이랑 왜 사이가 틀어졌는지 알고 싶어요. 저랑 제논은 프레이의, 친구거든요.”
오지랖일 수 있지만, 프레이가 그렇게 침울해하는 것은 정말 처음 봤기에 돕고 싶었다.
부모님과의 사이가 안좋은 것이 얼마나 후회되는 일이고, 가슴 아픈일이 알고 있었기에 프레이를 돕고 싶었다.
그녀가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프레이가 친구 하나는 잘 둔 것 같군.”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한여자의 사진이었다. 검은색의, 그러니까 칠흑빛에 가까운 머리색을 가진 그녀는 어딘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째선지, 프레이의 얼굴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제논이 입을 열었다.
“...프레이의 어머니인가요?”
“그래, 아주 미인이었지.”
미인이었지, 과거형으로 끝나는 그 말에 프레이의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프레이는, 자기 어머니 얘기를 꺼낸 적이 없지 않던가.
“여행이라도 가신 건가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를, 틀리기를 간절히 빌며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안타깝지만 내 생각대로였다.
찹작한 시선으로 그 사진을 어루만지던 시우 자일이 입을 열었다.
“모나는 죽었지, 프레이가 10살 정도 되었을 때에. 만약 프레이가 조금 어렸다면 모를까, 10살이면 모든 걸 알기에 충분한 나이였지. 그래, 날 미워하는 게 당연해.”
그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며,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속에 찬 슬픔을 삼키듯 한차례 차를 홀짝인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나는, 나 때문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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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정적, 그리고 정적.
숨소리마저 멎어버린 그 공간 속에서 겨우 입을 열은 것은, 제논이었다.
“...도대체 왜?”
제논의 눈에는 약간이나마 분노가 서려있었다.
이미 자신의 아버지 탓에 어머니를 잃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시우 자일에게 질문하는 목소리는 날카롭고, 사나웠다.
“나는 요리에 미쳐있었지. 내 보잘것없는 이능을 새로이 재창조해냈을 때, 나는 세상을 전부 얻은 것만 같았어. 요리는 내게 매우 중요했고, 내 인생의 목표였지.”
“...그렇다고 아내를-”
쾅-! 그가 탁자를 내리치며, 잔뜩 붉어진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나도 안단 말이다! 내가 잘못했고, 내가 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내 스스로도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잃었음을! 나도, 안단 말이다...!”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친시우 자일의 눈에서 읽혀지는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후회, 회한, 자신에 대한 증오. 이미 뿌리 깊게 스며든 그 감정 사이에서, 그는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는 일부러 빠져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 후회가 흘러내렸다. 허나 그 것은, 그가 가진 슬픔을 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더욱 깊은 절망의 늪으로, 그렇게 빠트리고 있을 뿐이었다.
파르르- 탁자를 내려친 그의 손이 떨렸다.
하얗게 질릴 만큼이나 꽉 진 두 손 안 쪽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내 전부였단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의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