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후회는 싫어(3)
요리란, 내게 인생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거리를 정처없이 떠돌던 내가 처음으로 ‘요리’라는 것을 접했을 때, 내 꿈은 요리사가 되었으니.
보잘 것 없는 이능이었지만, 하물며 요리와는 더욱 거리가 먼 이능이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다. 고작 이능 때문에 포기할 것이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터였다.
...차라리 시도조차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탁자 위의 놓인 사진을 조심스레 집어 들자, 아직까지 웃고 있는 모나의 모습이 보였다.
기억 속의 남은 모습과도 너무나도 다른 그 미소에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은 그 것마저도 지켜내지 못했다.
심지어 딸과의 관계마저도.
요리에 열정을 쏟아 붓던 자신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저 남은 것이라도 어떻게든 붙잡으려 발버둥 치는 초라한 남자가 남았을 뿐.
천천히 열린 입에서는, 자신의 옛날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자일 레스토랑의 시작은 초라했다.
지금처럼 매우 비싼 지대의 노른자땅 위에 건물이 있지도 않았고, 명성도 없었다.
그저 시우 자일이라는 이름에서 글자를 따 지은 식당.
매일 손님 한명이 올까 말까 내기를 할 만큼이나 한가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열정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발전시킨 이능이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었고, 인터넷에서 자일 레스토랑의 이름이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손님은 여전히 적었지만, 얼굴을 모르는 손님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시우씨, 끝났아요?”
“모나.”
그래, 이런 아내도 있으니까.
암청색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그녀가 어느새 다가와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하루의 노곤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식당을 차리기 전부터 내 꿈을 응원해주던 사람. 연고라고는 한 명도 없던 내 든든한 동앗줄이 되어준 그녀가 내 아내라는 사실은, 늘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폭-
봄날의 햇살보다도 더욱 따스한 체온이 등에 닿자, 아직까지도연애 하던 그 시절의 설렘이 느껴졌다.
결혼한 지 어언 10년, 아이까지 생겼음에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아주 중요한 얘기를 꺼냈다.
“모나, 아주 좋은 일이 생겼어.”
“무슨 일이요?”
“아까 전화가 왔는데, 그 ‘태화루’의 요리사가 여기 직접 온다고 하더라고. 우리 식당을 촬영할 거래.”
“태, 태화루요?”
“응, 당신이 아는 태화루가 맞아.”
옅은 초록빛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지고, 그녀의 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벌어지기 시작했다.
태화루라면, 요리사로써 누구나 들어가기를 꿈꾸는 곳이 아니던가.
당장 나조차도 전화를 받았을 때 펄쩍 뛰며 놀랐을 정도니, 모나가 이렇게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부 당신 덕분이야.”
그녀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아니, 나는 뭔가 해준 게 없는 걸요.”
“날 믿어줬잖아. 아무런 자본도, 그렇다고 인맥도, 땅조차 없어 식당도 겨우 차린 사람을 믿고 사랑해준 건 당신이었잖아.”
그런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서, 항상 미안했다.
이제야 그 결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미안했고, 그럼에도 여지껏 믿어와 줘서 고마웠다.
어느덧 촉촉이 젖은 그녀의 눈을 손수건을 닦으며,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았다.
남들은 결혼할 때 평생 물을 묻히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던데, 나는 그런 말조차 하지 못하고 고생만 시켰다.
내가 얻는 수익으로는 3명이 먹고 살 수 없었으니, 그녀는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일을 도맡았다.
그러면서도 요리에 미쳐 사는 남편을 묵묵히 지켜봐주고, 믿어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걸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렇게나마 그녀를 안아주는 것 뿐이었다.
“미안해. 그리고 이제는,”
손에 물 안 묻히게 해줄게. 그렇게 덧붙이자 그녀는 울음기 섞인 눈과는 다르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 하나 없이, 앞으로의 찬란한 미래를 그리는 그 환한 미소는- 그녀가 여지껏 지었던 미소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찰칵-
“어? 뭐, 뭐에요?”
“사진 찍었어.”
“저 방금 울었는데 그걸 찍으면 어떡해요! 정말, 또 그런다!”
“안 닿잖아, 잡으면 지워줄게.”
높게 들어 올린 핸드폰을 잡으려고 폴짝, 뛰는 그녀의 이마를 쿡 누르며 나또한 활짝 웃었다.
앞으로 이 행복이 영원할 거라 굳게 믿으며.
“그나저나 프레이는?”
“윗층에서 자고 있어요. 아빠 언제 오냐며 칭얼대더니, 공부 시키니까 자더라구요.”
“공부...는 뭐,알아서 하지 않을까?”
“아빠가 돼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요!”
“아니, 나도 공부 딱히 하진 않았는데 이렇게 ‘태화루’에서 찾아온다잖아.”
찰싹,
등짝을 맞으면서도, 나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가 때리는 것도 평소와는 달리 아프지 않기도 했을뿐더러, 오늘은 아프다고 소리치기엔 너무도 기분 좋은 하루가 아니던가.
하루 빨리 딸의 얼굴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프레이-!”
“잔다니까요.”
“아니, 아마 올 거야. 프레이, 아빠 사탕 사왔는데!”
“아-빠!”
봐봐, 내가 온다고 했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어보이자, 모나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프레이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 딸인데, 이 정도 쯤이야.
저 멀리서 점액으로 흔적을 남기며 뛰어오는 프레이에게 양 손을 활짝 벌린 채 다가갔다.
“프레이!”
“아빠!”
타다닥, 그 앙증맞은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마침내향한 곳은 내 손이었다.
활짝 벌려진내 팔만 무안하게, 프레이는 내 손을 이리저리 살피며 사탕을 찾고 있던 것이다.
“아빠, 사탕 사왔다며.”
“...아니, 일단 아빠 한 번 안아주면 안 돼?”
“거짓말쟁이.”
프레이는 나를 한 번 쏘아보더니, 이내 모나에게 다가가 품에 꼬옥, 안겼다.
“나는 왜!”
“당신이 맨날 그러니까 이제 프레이도 안 속잖아요. 프레이, 오늘 아빠 좋은 일 있었대. 한 번 들어볼래?”
“아빠 얘기 안 궁금해.”
“도대체 프레이한테어떻게 했길래 애가 그래요?”
아니, 나는 그냥 프레이가 날 안아주었음 하는 건데.
입꼬리가 추욱 늘어지자, 어느새 프레이가 다가와 내 팔을 꼬옥 껴안았다.
“에휴, 알았어. 아빠 얘기 들어줄게.”
팔에 얼굴을 부비는 초록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빠 식당을 내일 방송 촬영하러 온대, 태화루의 요리사도 같이!”
“...그럼 아빠 유명해지겠네?”
“그럼, 우리 돈 엄청 많이 벌고 여기보다 더 큰 곳으로 이사가겠지.”
“그런가.”
그렇게 대답하는 프레이의 얼굴은, 어딘가 침울해보였다.
내가 성공하는 것이 그리 탐탁치않은 듯 한숨만 푹푹 내쉬며, 소매를 잡아당길 뿐이었다.
“나는 아빠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집에?”
“돈 없어도 좋아, 그냥 우리 셋이 있으면 좋겠어. 큰 인형도, 큰 집도 필요 없단 말이야.”
“...그런가?”
나는 흐뭇한 얼굴로 프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늘거리는 더듬이를 쿡쿡 찌르며, 프레이를 끌어 안아주었다.
프레이의 말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나는 내 가족들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내 노력의 결실을 가족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저 어린 아이가 칭얼거리는 거라고 생각하며,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모나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그 때의 나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
태화루에서 요리사가 찾아온 이후, 내 식당은 그야말로 성공가도를 밟아 나갔다.
내 이능으로만 실현 가능한 요리법 덕에 전세계그 어느 식당에서도 먹을 수 없는 요리를 내 식당에서만 찾을 수 있었고, 그 희소성과 가치는 하루에 한두 명씩 있던 손님을 어느새 식당 한 층으로는 도저히 수용이 불가능할 만큼이나 늘려주었다.
“모나, 오늘도 손님만 수백 명이 왔어. 이제 곧 있으면 태화루를 뛰어 넘을 거라고!”
“잘됐네요, 당신이 항상 *콜록* 바라왔던 거잖아요.”
“감기라도 걸렸어? 기침을 하네.”
“신경쓰지마요. 당신 하는 일에 집중해요. 내가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겠어요?”
“그래, 당신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래도 몸 조심해.”
"알았어요, 걱정말고 당신 일이나 잘 해요."
그녀의 안색이 점차 파리해짐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 신경은 오직 커져가는 식당에만 쏠려 있었다.
식당의 층수가 높아지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지고, 내가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늘어나는 것에 집중하며.
어느샌가 나는 집보다도 식당에서 잠드는 날이 잦아졌다.
“...피곤해.”
그림자가 짙게 내려진 눈두덩이를 주무르던 그때, 스마트 워치에 쌓인 연락이 생각났다.
3일이나 확인하지않았기에산더미처럼 쌓인 연락들, 그 중에 프레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을 본 눈이 살짝 커졌다.
[내 딸] x37
“무슨 전화를 이렇게 많이 한 거야.”
37번이라니, 연락이 안 돼서 걱정하기라도 한 걸까. 일이 바쁘니까 연락 안 될 수도 있다고 미리 말했는데.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한껏 잠긴 목소리였다.
-...왜요.
“어, 프레이. 무슨 일 있었니?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무슨 일?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왜, 무슨 일인데?”
-주소 보내줄 테니까 와요. 빨리.
평소와는 달리, 나를 향한 원망이 짙게 섞인 프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소?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곧이어 도착한 문자를 확인 했을 때, 내 몸은 이미 그 주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성제일병원 중환자실 402호]
나는, 멍청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