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후회는 싫어(4)
택시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내 손의 떨림은 계속 되었다.
그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는데도. 애써 머리에서 지우려 했다.
“......”
잔뜩 머리를헝클어트리는 나를 택시기사가 이상한 듯 쳐다보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속이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왜, 그녀를.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지?
그녀를, 프레이를 행복하게 해주려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허나 행복은 깨져버렸다. 내가 하던 모든 것들이,
결국엔 의미 없는 행위였다는 것을 깨닫는 건 차라리 비수로 심장을 후벼 파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이나 가슴 아픈 것이었다.
제발, 내가 늦지 않기를.
빌었다, 믿는 종교가 없었음에도.
부디 하늘에 있는 어떤 이가 이 소원을 들어주기를.
사람들이 하늘에 두 손 모아 비는 것은, 결국 이것을 들어줄 어떤 이가 있다는 것일 테니까.
어렸을 때 꾸던 미래를 하늘에 빌었듯이, 네온사인에 가려진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는 그 하늘에 빌었다.
모나는 내 전부였다. 요리와 모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김없이 모나를 선택할 터였다.
그래, 내 욕심이었다. 요리로 성공해서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것은 내 욕심에 불과했다.
이걸 이제야 깨달은 자신에게 한심해하면서도, 부디 그녀가 멀쩡히 있기를 바랐다.
제발, 내가 찾아갔을 때. 언제나 그렇듯 옅은 녹빛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빛내주기를 바랐다.
가슴 한 켠에 쌓인 불안감은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져갔다.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이었다.
위급함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고 있음에도, 마음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해하는 순간, 내가 어떻게 망가질지 차마 예상할 수 없었다.
택시에 지갑을 던지고, 계단을 뛰어가면서도 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언제 아팠냐는 듯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일 것이라, 그렇게 믿었다.
“50줄!”
“차지!”
그리고 그 믿음은, 그녀가 있을 병실 앞에서 무너져 내려갔다.
삐이이-
귓가에 어지러이 들려오는 이 소리가, 안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그녀의 상태를, 너무도 쉽게 짐작하게 만들었기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의사의 등이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채 들썩이는, 모나의 모습까지.
천천히,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차라리 이것이 환상이기를, 요즘 들어 통 잠을 자지 못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나.”
삐이이-
“여보, 나 왔어. 이제 장난은 그만해...”
“...사망시간 오후 11시 17분 32초.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 마비.”
“나, 왔는데...”
조심스레, 모나의 손을 어루만졌다.
차가운 한기가 온 몸에 퍼져 등골이 오싹했다.
차가움, 그 감각을 느낀 순간. 이 것이 환상도, 꿈도 아닌 현실임을 깨달았다.
“모나.”
이제는 불러도 대답해주지 않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모나.”
뜨지 않는 눈이, 열리지 않는 입이, 창백해진 피부가, 그녀가 더 이상 내 곁에 있을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나.”
제발, 대답해줘.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며 발버둥친 세월들이, 사실 아무 의미 없던 것이라 말하지 말아줘.
차가웠다, 얼음장처럼. 나와 입맞추던 그 붉은 입술이, 이제는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내게 안기면 느껴지던 온기가, 이제는 다시는 떠올릴 수 없을 만큼이나 차가웠다.
“...모나.”
하염없이 불러도, 이제 그녀는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눈에서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눈을 감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원망했을까.
그녀 성격에 그렇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라는 존재가, 너무도 증오스러웠다.
“...미안, 해.”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어보아도, 그녀는 사과를 받아주지않았다.
그렇게 차가운 손을 움켜쥔 채, 나는 내 인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찬란한 미래가 깨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고독함과 후회, 그리고 회한뿐이었다.
세상의 색이 바래지고, 그날부터 온 세상의 색은 흑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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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가 싫어할 만 하네요.”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던 제논이 내뱉은 말에, 나는 녀석을 흘겨보며 손등을 때렸다.
“제논!”
“아니, 부정할 생각은 없단다. 프레이가 보냈던 37통의 전화는 전부, 모나의 상태를알려주려 했던 거니까.”
시우 자일은 손에 쥔 사진을 놓지 않은 채 자조 섞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잔뜩 찡그려진 얼굴, 굳게 닫힌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괴로워 보이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는 말을 이어갔다.
“프레이와 사이가 틀어진 건 그 이후의 일이란다. 자기 엄마가 죽을 때까지도 일만 하던 아빠를 좋아해주는 딸이, 있을 수야 없으니. 나는 이해한단다.”
“...그런데도 계속 요리를 하시는 건 어째서죠?”
내가 입을 열자,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요리에 집중하여 가족을 잃었음에도, 그리고 프레이와의 사이가 그토록 틀어졌음에도, 어째서 그는 계속 요리에 인생을 불태우고 있는 것일까.
“속죄지.”
“...속죄?”
“이렇게 말하는 것이 구차해보일 수도 있지만, 요리를 계속하는 건 내 나름의 속죄란다. 모나는, 내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프레이도 좋아하나요?”
“...그렇진 않지, 어렸을 때부터. 프레이는 내가 요리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
어째서, 프레이는 신경 쓰지 않는 걸까.
그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프레이를 언급할 때마다 찡그려지는 눈이, 비틀어지는 입가가. 계속해서 마음에걸렸다.
프레이를 신경쓰지 않는 게 아니라면, 어쩌면 이 시우 자일이라는 사람은 프레이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게 아닐까.
“왜...피하는 거에요? 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하아.”
잠시 나를 쳐다보던 그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래, 사실 나는 프레이를 마주하기가 두렵단다. 내가 집에 가지 않고, 계속 여기에 남아있는 것도 그런 이유지. 그 아이를 볼 때면, 항상 내가 지은 죄가 생각나. 미안하다고, 내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프레이가 받아줄지 조차...나는...모르겠단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하는 그는 더 이상 무언가 말할 상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과거를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운 것인지,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잔뜩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이 떠올랐다.
“저흰, 이만 가볼게요.”
“...그래, 그래주면 고맙겠구나.”
“프레이랑 직접...얘기해볼 생각은 없으세요?”
“...아직은.”
이 이상 더 부추겼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날터였다. 애초에 우리는 제 3자의 입장.
이렇게 이야기를 들은 것만 하더라도 사실 꽤나 성과를 거둔 것이었기에, 천천히 문을 닫으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문이 닫힐 때 틈새 사이로 고개 숙인 시우 자일의 모습이 보였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거야?”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때에, 제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지금 이렇게 들은 걸로는 둘이서 어떻게 극적인 화해를 하는 것말고는 답이 없어 보이는데.”
이렇게까지 꼬여버렸을 줄이야.
아마 프레이가 예전의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며 증오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까지 하기엔 프레이의 심성이 너무 착하니까.
예전의 기억을 서서히 지워가며, 오히려 아빠와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시우 자일의 태도였다.
요리 때문에 아내를 잃었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요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이 지은 잘못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그 스스로가 가장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허나 그는 프레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직접 그 입으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디까지나 요리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속죄라 여기며, 프레이를 마주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답답하네.”
이게 내 심경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화해를 바라겠는가.
내가 도와주려해도 생각보다 꽤나 민감한 일이었기에,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그랬다.
더 이상 이렇게 시우 자일을 찾아오는 것도 힘들 테고.
“뭐, 일단 프레이하고 얘기는 해봐야겠지.”
“...그래야지.”
가족이라는 것은, 서로가 힘들 때 지탱해주고 보듬어줘야 하는 존재였다.
이렇게 서로를 피하고, 사과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결코 바람직한 관계라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원작에서 보았던 전개대로 흘러가는 거라면.
어쩌면 프레이가 다시는 자신의 아빠와 친해질 기회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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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도 도우려고?”
나를 따라오는 제논에게 묻자, 제논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젠 따라오지도 못하냐며, 불만어린 시선을 보내는 녀석을 쏘아보자 제논이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열었다.
“...있을 때 잘해야 된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아...미안해.”
“괜찮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인 제논이 이제는 완전히 멀어진 자일 레스토랑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