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테러는 싫어(1)
-거래는 틀어졌습니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저희와의 거래를 포기하겠다 하더군요.
“그런가.”
-어떻게 할까요. '그' 쪽에서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 ‘보류’입니까?
“아니, 거래를 했더라도 나중에 처리할 곳이었다. 그냥, 먼저 터트린다. 우리에게 주어진 탄환은 차고 넘치니.
-알겠습니다. 근데 사장님, 카르멘가의 꼬리가 거길 건드린 것 같습니다. 자를까요?
“꼬리라면, 자른다.”
-알겠습니다.
툭-
전화 신호가 끊기고, 그림자에 얼굴이 가려진 한 남자가 조심스레 시가를 들어올렸다.
일반적인 담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이나 가득한 연기가 허공에 피어오르고, 남자는 황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며, 두 눈은 허공을 담은 채 반짝였다.
“...아름답구만.”
그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스스로를 예술가라 부르며, 언제나- 모든 상황에서 예술이 피어나기를 원했다.
이 시가조차도, 하얀 연기가 아닌 푸른 연기가 새어나오는 이 시가마저도 그의 ‘예술’중 하나였다.
모두가 황홀한 이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수단도, 방법도 중요치 않았다.
오직, 아름다움만이 그의 퇴화된 감정에 자극을 줄 수 있을 뿐이었다.
“...아름다워.”
지휘하듯, 허공을 휘젓는 그의 손이 한 건물에 향했을 때. 그의 입가는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자일 레스토랑]
곧, 무대의 막이 열릴 때가 다가왔다.
#
“프레이, 티켓 잘 썼어.”
아카데미에 도착하자마자 프레이를 찾아갔을 때, 프레이는 더듬이를 쫑긋거리며 내게 안겨왔다.
은은한 풀 향이 풍겨오는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저번에 선물 받은 티켓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했다.
“...응, 맛있게 먹고 왔어?”
“어, 괜히 유명한 게 아니더라.”
레스토랑을 얘기하자 축 늘어진 더듬이를 보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떨떠름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은 프레이의 몸에서는 점액이 평소보다 훨씬 적었다.
기분이 안 좋은 건가. 프레이의 점액은 기분이나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터라, 이렇게 점액이 적을 때는 무언가 생각할 것이 많을 때나 다름없었다.
“프레이, 너한테 말해줄 게 있어.”
“말해줄 거라니?”
“...사실, 너희 아버지를 만나고 왔거든.”
“......”
완전히 바싹 말라버린 점액,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프레이의 몸을 보자 프레이가 이 주제에 대해 꽤나 생각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레이가 이 대화를 피하지 않도록, 두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마주치려 하자 프레이가 입을 열었다.
“안 잡아도 돼, 도망갈 생각은 없으니까.”
“음...미안해, 사실 네가 저번에 아버지에 대해 얘기할 때 자꾸 피하려 하는 것 같아서.”
“...다 들었겠네.”
“응, 미안해. 프레이.”
설령 친구더라도, 남의 가정사를 알아낸 것이니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사과하자 프레이가 나지막히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축 늘어진 더듬이가 서서히 올라오며, 프레이의 몸이 다시 끈적 해질 때 쯤. 프레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할 것까지야. 이젠 다 지난 얘기니까. 그래도 아이샤, 다음엔 나한테 물어봐 줘. 알았지?”
“알았어.”
평소와는 다른 단호한 어투에 당황하기도 잠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이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너한테 어느 정도 얘기해주려고 했어.”
“진짜?”
“응, 그러니까 친구끼리 고민 상담...같은 거지.”
프레이가 친구라 하는 것에 기뻐하며 미소 지으며, 이내 고민상담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고민이라, 사실 프레이가 자기 고민을 얘기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 않은가.
자기와 아버지 간의 관계를 얘기하려 했다면, 최근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하지만 이렇게 혼자 생각해도 마땅한 답이 나올 리가 없는 터라, 나는 프레이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고민?”
“흠, 일단 아빠한테 얘기는 들었다고 했지?”
“...응, 어느정도.”
“아빠가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걸 딱히 아빠를 탓하고 싶진 않아. 예전에, 그러니까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이 없잖아 있긴 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응...”
그나마 다행이었다.
애초에 프레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했는데,
만약 그 일에 대해서 자기 아빠 탓을 하고 있었다면 사이를 돌이키기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두 사람의 사이가 아직까지 어색한 이유가 뭘까.
아마도 서로의입장의 차이가 아닐까.
어디까지나 자신의 잘못이라 자책하며, 그 탓에 사이가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시우 자일이나.
아빠의 탓이 아니라 생각하는 프레이나.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니, 결국 사이가 그대로 굳어지고 이렇게 어색해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이어진 프레이의 대답해서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 불만인 건, 아빠가 계속 자기 탓만 하고 있다는 거야. 뭐라 말하려고 하면 자꾸 피하고, 집에도 잘 안 들어오고. 어렸을 때부터 그게 싫다고 말했는데.”
“...확실히.”
“그냥 아빠랑 조금 얘기하고 싶을 뿐인데. 예전보다 더 요리에 집착하니까, 이젠 말을 걸 틈도 없어. 도대체 언제까지 자기 탓만 할 건지.”
그렇게 말하던 프레이는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이 무엇인지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빠가 오늘 얘기 좀 하자더라.”
“뭐, 진짜?”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럴 기색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프레이하고 대화를 하려 하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자신도 모른다는 듯 프레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몰라, 어제 갑자기 집에 와서는 ‘내일 얘기좀 하자’ 이러는데.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
...많이 서툰 방법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화를 하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점에서 꽤나 긍정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프레이의 생각도 궁금했다.
과연 시우 자일과 대화할 생각이 있을까? 그런 의문이 생겨나기 무섭게, 프레이의 입이 열렸다.
“...아이샤, 내가 아빠랑 얘기해보는 게 맞을까?”
“당연하지 프레이.”
“아니, 괜히 또 이상한 주제로 흘러서 사이가 더 틀어지는 게 아닐까...싶기도 하고.”
“그래도 안하는 거랑 하다가 틀어지는 거랑 느낌이 다르지. 네가 생각하는 건 순전히 가능성이잖아.”
프레이가 두려워하는 건 결국 가능성에 불과했다.
시작도 전에 겁먹다니, 가장 피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일단 부딪히고, 원하는 상황에 도달하도록 자신이 이끌어야지.
시도하기도 전에 겁먹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후회를 불러일으키라는 것을 잘 아니까.
처음에는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상대의마음을 모르고, 어찌 보면 자신의 마음조차 잘 모를 수도 있었다.
7년, 그 긴 세월동안 대화라는 간단한 소통조차 하지 않은 관계는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져 있을 터였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유대가 미약하게나마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주었고, 결국 이렇게 대화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잡아야했다. 후회하지 않도록, 나중에 그 기회가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프레이의 앞에서 처음으로,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 항상 미소를 띄던 입가는 더 이상 입꼬리를 올리지 않았고, 눈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았다.
처음 보여주는 얼굴에 흠칫, 하고 놀라는 프레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레이, 제3자가 이렇게 말하는 게 싫게 들릴 수도 있지만.난 네가 자일씨를 만났으면 좋겠어.”
“싫게 들리진 않아...그냥. 조금 어색할 뿐이야. 사실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몇 년 만이니까.”
“당연히 어색하지,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오늘 바로 찾아가는 건 어때?”
“오, 오늘?”
“이렇게 또 망설이다 보면 안 갈거잖아. 그렇지?”
망설이는 듯 더듬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프레이의 눈을 마주치고 눈매를 좁히자, 프레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아마 자신도 알고 있을 터였다. 이대로 망설이면 또 지나간 7년과 같은 것이 반복될 것이라는 걸.
고개를 끄덕이는 프레이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 주자, 손에 끈적이는 점액이 묻어나왔다.
이제 복잡했던 생각이 조금 해결된 걸까.
싱긋, 얼굴을 바라보고 미소지어주자 프레이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 아이샤.”
“어?”
“좀 이따 수업 끝나고, 레스토랑까지만...같이 가줄래? 조금 떨려서.”
그 정도야.
나는 프레이를 꼬옥 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빨갛게 달아오른 귀가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껴안은 팔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물론이지, 프레이.”
#
수업이 끝난 뒤에 볼 수 있는 하늘은 언제나 어둑어둑하기 마련이었다.
일반적인 고등학교와는 달리, 어지간해선 동아리 수업까지 들어있었으니. 꼭 예전에 야자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이능 훈련이 주 목적이었지만.
그렇게 어두워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저 멀리서 누군가 다다다, 하고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퍽철퍽,
이제는 완전히 기분이 좋아졌는지, 끈적이는 점액으로 바닥을 적시며 달려오는 프레이에게 손을 흔들자 휙, 하고 다가와 내게 안겼다.
“아이샤! 기다렸어?”
“별로, 이제 막 왔어.”
“미안해, 동아리가 늦게 끝나서.”
미안할 것까지야, 괜찮다며 살짝 미소짓자 프레이는 베시시 웃으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레스토랑까지 같이 가주는 거지?”
“그럼.”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제논도 없네?”
확실히, 제논 없이 프레이와 이렇게 단둘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인가.
걘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털어냈다. 신경 써서 뭐해.
그렇게 프레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저번에 봤던 것보다도 더욱 사람이많은 거리를 함께 걸었다.
무슨 얘기를 할 건지, 어떻게 말을 시작할 건지. 만약 사이가 좋아지면 어떤 걸 바라는지.
그런 소박한 소원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내 시선은 사람들에게 향했다.
...이상했다.
사람이 많은 거야,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니 이해하겠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는 건 아무래도 위화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이 이내 확신으로 바뀐 것은,
콰아앙-!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 때문이었다.
“...아?”
이 도시에서 가장 거대한 성,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식당. 성곽이 무너지고, 성이 불타오른다.
하늘에 치솟는 것은 깃발이 아닌 불꽃.
이미 재가 되어 서서히 무너지는 성에선, 도저히 생명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다리가 휘청였다.어째서? 왜 지금, 지금이 아니었잖아. 자일 레스토랑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건. 시우 자일이 죽는 건, 지금이 아니었잖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새파랗게 질릴 만큼이나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며,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때.
타앗,
누군가 앞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야가 가려질 만큼이나 눈이 부시는 하얀 섬광. 그 사이에서 얼핏 보였던 건, 초록색의 머리카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