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테러는 싫어(2)
새하얗게 새어버린 사고 속에서 떠오른 것은, 잊고 있었던기억들이었다.
-안돼.
무너지는 건물, 타오르는 불길, 그 사이에 홀로 남은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만이 남은 세상, 홀로.
쏟아지는 파편, 오직 까맣게 잿더미만 남은, 그을린 세계.
-가지마.
그 말을 뱉지 못해서 잃은 수많은 것들, 붙잡지 못해서, 내가 더 잘하지 못해서, 그렇게 놓친 인연들. 후회하고, 후회했다.
그렇게 후회했는데.
툭, 투두둑.
깨문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흘렀다.
그럼에도,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먼 옛날의 기억들, 마치 사슬처럼 나를 속박하는 기억들이 내 발을 묶고 있었다.
손을 뻗어 봐도, 저 등에 닿지 않는다.
또, 나는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비가 내렸다.
구름 한 점 없는, 오로지 백색의 섬광과 까만 잿더미, 그리고 붉은 화염만이 치솟는 거리에서.
오로지 나에게만 비가 내렸다.
“프레이.”
잃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내게 주어진 것을 잃고 싶지 않노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나아가야 했다.
쩌저적-
솟아오른 얼음이 나를 찌른다.
흘러나온 피가 얼음을 적시고, 그 고통을 원동력 삼아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옥죄는, 점점 옥죄어 목을 죄이는 사슬을 끊어내고. 무너지는 성으로 다가간다.
고통에 저려오는 팔을 부여잡고, 그렇게 한 걸음. 또 다시 한 걸음.
점차 빨라지는 발걸음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갔다. 겁에 질린, 믿지 못할 광경에 몸서리치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들.
나또한 그랬다. 그랬기에, 이제는 그래선 안됐다.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은, 한 번으로 족했다.
“프레이.”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러 나선 것일 터였다.
하지만 프레이 혼자로는 막을 수 없었다.
기억을 되새긴다. 이제는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진,
탁해진 기억을 끄집어내어 다시금 떠올린다.
시우 자일은, 지금 어딨지? 이 테러를 일으킨 건, 누구지?
“살아 있을 거야."
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그가 죽는 건, 테러가 일어난 뒤 조금 나중의 일이었으니까.
그는 제논의 앞에서 죽었다. 제논의 정신을 뒤흔들기 위한 수단.
하지만 지금은 원작과 완전히 틀어진 전개였다. 자일 레스토랑이 터지는 건 지금에서 몇 달 뒤의 일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시우 자일을 죽일 이유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폭발을 일으킨 이는 누구지?
마루더즈인 것은 알고 있었다. 애초에 원작에서도 폭발을 일으킨 것은 그들이었으니까. 누구인지가 중요했다.
파악해.
이미 터질 듯이 생각을 반복하는 뇌를 혹사시킨다.
조금 더, 무언가를 떠올려야 했다. 내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마루더즈가 자일 레스토랑과 손을 잡아야 했던 이유를.
“...없어.”
허나 아무리 떠올려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뒷세계와는 관련이 없던 곳,
그저 요리에 대한 열정과 실력으로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요리계가 아닌 이상 정계 같은 곳과 관련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용가치가 없는, 그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인 이 곳과 마루더즈가 관련될 이유?
그리고 그런 곳을 무너트린 이유?
사람들의 이목이 끌리고, 되려 ‘마루더즈’라는 단체의 이름만 확실히 드러낼 계기가 될 터였다.
그래, 마치 무대의 막이 열리듯.
“무대.”
그 단어를중얼거린 순간, 뇌리를 스쳐지나가는사람이 한 명 있었다.
원작에서 자일 레스토랑을 무너트렸던 마루더즈의 간부. 오로지 예술을 추구하며, 마루더즈라는 조직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아름다움만을 중요시 하는 특이한 빌런.
‘예술가’ 브루노.
“...하.”
위험했다. 만약 프레이가 그 사람을 마주친다면, 매우 위험했다.
헤라 카르멘보다도 더욱.
헤라 카르멘은 일단 학생이었다.
비록 그 실력이 일개 3학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하더라도, 결국 학생이라는 신분과 카르멘이라는 성에 얽매이는 존재였다.
허나 브루노는 빌런이었다. 법조차,심지어 다른 히어로들조차 그를 쉽게 구속할 수 없었다.
어떤 방향으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그 행동은 언제나 위험요소였다.
만약 마주친다면, 헤라 카르멘을 A지구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건물만 무너지고 끝날 확률은 매우 적었다.
“프레이-!”
저 멀리, 아주 살짝 보이는 초록색의 머리카락을 애타게 불렀다.
그러자 프레이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흔들리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이 멀리서도 한 눈에 보였다.
“프레이.”
“아이샤, 난 가야 해.”
“알아.”
프레이는 그 자리에 멈춰 섰을 뿐,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그 시선은 무너지는 성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 안에 있을 자신의 아버지를 향했다.
이해한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프레이와 함께 가기를 원했다.
프레이를 바라보던 시선은 이내 저 멀리, 불타 무너져 내린 해자를 바라보았다.
성에 접근하려면 날아가거나, 아니면 밑으로 내려가 기어가는 것 밖에 없었다.
물론 프레이의 이능이라면 쉽게 올라갈 수 있겠지만.
쩌저적-
얼음이 솟구치며, 해자가 있던 자리를 대신했다.
얼어붙은 다리를 바라보던 프레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자.”
그렇게 우리는 뛰어갔다.
아마도 시우 자일이 붙잡혀 있을 성을 향해,부디 그가 아직 살아있기를 바라며.
#
성 내부에 들어선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코를 찔러오는 매캐한 타는 향이 예전 기억을 일깨운 탓이었다.
얼음으로 주변을 둘러 열기를 막아내고, 우리는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섰다.
아직까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성은 탁자나 식기들이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이상했다.
어째서, 식기나 탁자만 보이는 걸까.
“...사람은 없었나?”
자일 레스토랑은 언제나 사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총 15층으로 이루어진 레스토랑, 가장 꼭대기층을 제외한 모든 층이 꽉 찰 만큼이나 붐볐던 이곳은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치 사람이 아예 없던 것처럼.
프레이도 그 점을 느꼈는지, 더듬이를 좌우로 흔들며 주변을 수색했다.
이상하리만치 인기척이 없는 폐허. 가슴 속에서 불길함이 피어올랐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상해.”
폭발에서 겨우 살아남아 건물을 아직까지도 지탱하고 있는 철골을 매만지며, 프레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봐봐, 아이샤.”
“뭔데?”
프레이는 철골에서 손을 떼며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옷조각, 마치 찢어진 셔츠 조각처럼 보이는 그 것은 피에 절여져 원래 색을 잃은 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누가 다쳤어. 근데 왜 바닥에는 피가 하나도 없지?”
“...그러게.”
이 곳에는 혈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이 셔츠 조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누군가가 다쳤다는 것도 몰랐겠지.
어떻게 이렇게 현장이 깨끗한 거지? 폭발이 일어나고 프레이와 나는 곧바로 뛰어왔다.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거리, 여기까지 오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을 텐데.
그 사이에 피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전부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예술가’가 한 일은 아니었다. 그의 이능은 ‘소각’. 차라리 폭발을 일으킨 게 그라면 모를까, 이 모든 현장을 치운 것은 분명 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슴 속에서 미약하게 피어오르던 불길함이, 이내 타오르기 시작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한 명이 아냐.”
“뭐라고?”
“프레이, 지금 여기서 나와야 해.”
최대한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가능성이 진짜였다면, 단순히 위험한 정도가 아니었다.
우리가 본 건 무너지는 성이 아니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자일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
“프레이?”
“눈치가 빨라, 나쁘진 않네요.”
아-
상황을 알아채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프레이의 입가가 기괴하게 비틀어졌다. 아니, 프레이가 아니었다.
‘그’가 웃었다. 하늘이 찢어질 듯, 광오한 웃음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아직까지 주변에 타오르던 불길이 몸에 닿았다.
...뜨겁지 않았다.
폐허가 다시금 무너지기 시작했다. 파편을 맞은 몸은 멀쩡했다.
그야, 이 모든 것은 환각이었으니까. 건물이 땅 아래에 스며들고, 비로소 보이는 것은 처음 서있던 거리였다.
그리고 그 앞에 보이는 건,
쓰러져 있는 프레이와, 시우 자일.
무언가에 구속되어 한 쪽에 쓰러져 있는 그 들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시선은 앞을 향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을 활짝 펴보이며 웃는 이와, 작은 나이프를 던지며 내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
그들의 가슴팍에 반짝이는 것은 ‘M’이라 적혀있는 엠블럼이었다.
마루더즈,
언제부터 환각 속에 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래, 환각에 언제 빠졌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 마루더즈의 간부급 둘을 상대해야 했다.
...아마 한명 한명이 헤라 카르멘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전처럼 적당히 싸우는 것으로는 이기기 힘들 터였다.
동아리 제전 때처럼,한계까지 아슬아슬하게 힘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하아.”
이능은 감정에 기인한다.
물론 가성비를 따져가며 효율성 있게 사용한다면 감정을 조절하며 항상 차분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단 한번, 폭발적인 힘을 끌어내는 데 가장 좋은 감정은 자극적인 감정이었다.
내게 가장 자극적인 감정.
그것은 후회가 아닐까. 눈을 감은 채, 차가운 숨결을 내뿜으며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이샤가 아닌, ‘나’의 기억.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함께 스러져 가던 부모님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아이를, 그 것을 보며 홀로 후회하던 아이를.
다시는 잃지 않겠노라, 하늘에 부르짖던 그 아이를.
후회는 차갑고 싸늘했다.
후회는 얼음이었다. 후회가 녹아내려 가슴속에 스며든다 한들, 결국 얼어붙어 언젠가는 가슴을 찌르는 것이 후회였다.
그 감정을 되새기자, 뻗어 나가던 얼음의 기세가 점차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거리를, 도시를. 더 나아가 하늘마저 얼리는 한기. 한기는 안개가 되었고, 짙푸른 안개는 이윽고 주변을 뒤덮어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훈련하면서 읽었던 책 중에서는 이런 신화가 있었다.
죽은 자들이 모여 망자를 맞이하는 곳, 영혼마저 사무치는 한기가 나부끼는 곳.
태초에서부터 존재한, 얼음과 냉기, 그리고 안개의 세계.
니플헤임.
일순간, 세상에 신화가 재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