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테러는 싫어(3) (46/115)



〈 46화 〉테러는 싫어(3)

‘안개...’

전신을 감싸는 차가운 한기를 느끼며, 브루노는 손에 쥔 나이프를 단단히 쥐었다.
도시를 넘어 하늘까지 덮어버린 이능, 도대체 이것을 단지 학생 수준이라  수 있을까.

‘마루더즈’의 간부로써 활동한지 어언 20년이 넘어갔다.
수많은 히어로들을 상대했고, 심지어 오늘도 히어로  명을 처리했으나-그녀만큼, 이능을 다뤄내는 히어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규격외군.”
“...동감합니다.”
“이 주변 히어로들은 전부 처리했겠지?”
“아마, 이 쪽으로 오려던 녀석들은  죽었겠죠.”

그는 옆에 서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안개 탓에 그의 얼굴이 흐리게 보인다는 것을 알아챈 브루노는 작게 혀를 찼다.

헤라 카르멘과비슷한 수준이라더니, 설마 제전에서는 전력을 사용하지 않은 걸까.
분명 그들이 수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도시 전체를 덮는 얼음을 보면 전력에서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생각하긴 힘들어보였다.

“분명 검 위주의 공격을 사용한다고 들었는데...하기야, 저런 원소계의 이능이면 무얼 하던 이상하진 않지.”
“브루노, 제 환각이 그렇게 쉽게 통할  같진 않습니다.”
“...그건  소리냐.”

조용히, 아이샤를 지켜보던남자가 입을 열었다.
걱정스러운 기세가 역력한 그의 표정을 읽은 브루노가 타박하자,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환각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채고, 파훼할 정도의 정신력입니다.  이능의 특징을 생각하면...아무래도 방심하지 않는 이상  이상 환각을 걸긴 쉽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런가.”

남자의 말에도, 브루노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덤덤히 그 것을 받아들이며, 주머니에서 시가를 하나 꺼내들었다.

“...아름답군.”

그렇게 중얼거린 브루노는 시가를 입에 물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심지어 자신들이 수적으로 우위에 있음에도, 되려 자신들이위험에 처하게   상황이.
그는 진심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뮤지컬의 주인공 같지 않은가.

고난, 그리고 역경!

그가 참으로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자신은 무대의 주인공, 그리고  아이샤라는 여자아이는 주인공에게 주어진 시련.
시가의 푸른 연기가 안개 속으로 스며들고, 그는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안개 속에서 뻗어 나온 얼음의 가시가 그를 찔렀음에도,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얼마나, 예술적이란 말인가.

시가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이능 증폭제였다.
주인공들은 시련을 돌파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고, 희생시킨 무언가를 바탕으로 으레 성장하곤 했다.
이 시가 또한 그랬다. 사용할 때마다 수명을 깎아내고, 결국엔 세포가 녹아 무너져 내린다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자신은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었고, 언제나 시련들을 돌파해왔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야.”

빙그르르-

허공에 다시 한  나이프를 돌린 브루노는 자신의  상태가, 여지껏 싸워왔던 모든 무대를 통틀어 가장 좋다는것을 느꼈다.

그래, 이 정도라면-

할 만 하다.

판단은 극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고, 그는 곧바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무리 대단한 이능이더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나이프로 힘줄을 끊고, 심장을 쑤시면 결국 죽는 게 사람이었다.

이까짓 얼음 따위-!

쩌저적-

안개는 차가웠다. 폐로 들어올 때마다 폐가 얼어붙고 찢어진다는 생각이 들만큼이나.
사방의 시야가 가려졌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음이 쏟아져 내렸다.
그래, 마치 지옥이란 곳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건물의 위에서, 하늘에서, 땅에서 솟아난 얼음들을 피하며, 브루노는 생각했다.
확실히 나이프로는, 얼음들을 전부 돌파해낼 수 없으리란 것을.

화르륵-

그의 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이능은 소각, 모든 것을 불사르고- 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이능이었다.
설령,  불사르는 것이 그의 육신일지라도.

자신의 몸이 불타오르고, 이윽고 피부가 녹아내려 재가 되고 있음을 느끼는 그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

“크루거!”

아까 자신의 옆에 서있던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내가 틈을 만든다!”
“...알겠습니다.”

아주 단순한 명령이었지만, 크루거라 불린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틈이 만들어진다면, 자신의 환각이 곧이어 그녀를 덮칠 터였다.
그렇다면 손쉽게 끝낼 수 있겠지.

환각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도 으레 그렇게 이기지 않았던가.

한 번 어깨를 으쓱인 크루거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차갑게 얼어붙은 도시 속에 휘날리는 한 마리의 불나방, 꽤나 위태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니플헤임을 현현했을 때, 곧바로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만 같은 통증이 전해져왔다.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어 이능을 사용한 탓에 그런 걸까.
아마도 3분, 이 신화를 그 이상 유지했다간 머리가 정말 터질 것만 같았다.

“...생각해.”

3분 안에  둘을 제압할 수를.

그들에게는 안개 너머가 보이지 않겠지만, 내게는 훤히 보였다.
브루노라는 남자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는 것도, 환각을 사용하는 마루더즈의 간부인 크루거가 가만히 이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는 것도.

틈을 만들려는 건가.

확실히, 만약 내 정신에 빈틈이 생기고 환각을 겪게 된다면 아마  쪽이 제압당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처음에는 환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파훼했지만,  번째까지 그렇게 되도록 저쪽이 가만히 두진 않을 테니.

검을 꺼낼  없는 상황.

저 멀리 얼음을 녹이며 나를 찾는 브루노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휘저었다.
니플헤임은 내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공간에 가까웠다. 모든 상황과 기후가  의지를 따르며, 심지어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적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있었다.

이렇게 작게 손짓하는 것만으로도, 태동을 능가 하는 위력을 만들어낼  있다는 것.

쩌저적-

브루노의 이능은 내 이능의 대척점에 있었다.
불과 얼음, 어느 한 쪽이 약간이라도 힘이 모자라면 순식간에우위가 결정되는 극상성.
허나  공간 안에서 만큼은, 내가 그보다 강했다.

타오르는 불꽃은 얼음을 녹이지 못했다.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어, 결국엔 그의 내장을 분쇄하며 파고들어가는 얼음의 창.

“끄아악-!”

아무리 광적으로 예술을 추구하는 브루노였지만, 그가 느끼는 고통마저 예술로 승화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피로 인해 붉게 물든 얼음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나는 어디까지 히어로, 그것도 지망생에 불과한 신분이었으니까.
제압한다, 그런 생각으로 그의 팔과 다리에 얼음을 박아 넣었다.
고통스런 비명이 울려퍼지는 것을 들으며, 천천히- 안개를 움직여 그의 몸을 감쌌다.

니플헤임의 안개는 얼음보다도 차갑다.
죽은 자들의 한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 안개였으니.
그의 몸을 감싼 안개는 이윽고 그를 속박하고, 그 자리에 구속했다.


의외로 쉽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크루거 한 명 뿐.

“...한 명은 끝난 건가.”

이윽고 시선을 돌렸을 때, 문득 내가 서있던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기, 얼음이 녹아 생겨나는 흔적. 언제 녹아내린 걸까, 브루노는  근처에 오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설마-

손이 위로 향하며, 마치 날개가 펼쳐지듯 얼음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며 파괴한다.
그렇게 펼쳐진 얼음의 끝자락이 녹아내렸을 때, 다시금 이 상황이 환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르륵-

안개에 구속되어 있던 브루노의 몸이 서서히 녹아내려 땅에 스며들고, 열기가 한층 더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너무 쉽다고는 생각하긴 했는데.

“...차갑고, 차갑군.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거지만.”

뻗어 나간 얼음들은, 브루노의 손에 닿자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나를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쏘아보았지만, 그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 조금만 더 걸어오면, 내게 닿지 않을까.
크루거또한 근처에 있었다. 환각을 다시 한 번 깨트려서인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는, 아마 더 이상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할 터였다.

어떻게 할까.

처음과 달리, 상황은 결코 내게 미소를 지어주지 않고 있었다.

어느덧 니플헤임을 만들어 낸지 3분이  되어갔다.
안개는 흩어져 가고, 도시를얼렸던 얼음들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계치를 뛰어넘었기 때문일까,체온또한 아득히 낮아졌기에 몸의 반응이 둔해져가고 있었다.

한 번, 앞으로 힘을 쏟는 다면 딱 한 번뿐이었기에.

이글거리는 화염을 마주 보며, 나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익숙한 동작이 아니던가. 무엇을 끝낼 때면, 결국엔 검으로 끝내기 마련이었다.
헤라 카르멘도, B지구에서의 그 빌런들도.

니플헤임이 가진 모든 한기를 담아 벼려지는 대검.
그렇기에  검신은 더욱 넓었으며, 별빛을 그대로 담은 듯 푸르렀다.
태동, 전과는 비교할  없을만큼이나 거대해진 그 대검을 휘두른다.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한 번의 참격을 내지르기 위하여 힘을 짜낸다.

검을 타고 피어나는 얼음은 이내 파도를 이루고, 마침내 브루노를 향해 나아갔다.
콰과광- 주변을 분쇄하며 나아가는 파도, 푸른 일렁임을 바라보던 브루노의 손에서 불길이 솟구쳐 나왔다.
불과 얼음이 맞닿고,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그것들은 서로를 먹어치우며 영역을 차지했다.

모자르다.

힘이 모자르다.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보면서, 내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한계를 뛰어넘어 이능을 사용한 탓에, 태동을 휘두르는 과정에 힘이 전부 담기지 못했다.

얼음의 파도가 화마에 잡아먹히며, 이내  열기가 나를 덮치려 맹렬한 기세로 다가왔다.

 번만, 조금만 더 힘을 낼 수 있다면.

그런 생각으로 손을 뻗어봤지만, 오히려  몸이 휘청거릴 뿐이었다.

...끝이구나. 치솟는 불길이 코앞까지 다가와 교복을 서서히 불태울 때, 나는 체념했다.

힘이 모자랐다. 바꾸지 못했다.

지키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떠오르는 사람의 얼굴은 놀랍게도, 내가 한  가장 피하려 했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제논.”

아마 프레이와 나만 건드리진 않았을 텐데, 제논은 괜찮을까.
다치지 않았으면, 맨날  걱정만 하는 주제에. 자기 몸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늘 거슬렸다.

...누구보다 힘든 것은 자신일 텐데도.

조금 더 잘해줄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신경써주고, 걱정해주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녀석에 무신경했던 나를 반성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런다는 게 조금 그렇지만.

뜨거운 열기는 어느덧 내 몸을 감쌌다.
눈을 감은 채,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한다. 곧이어 끊어질 의식을 기다리며. 그렇게, 나는 스러질 터였다.

“...어?”

멍하니, 황망한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불길이 몸을 감싸고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열기가 내 몸을 감싸고 있었음에도, 몸이 타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째서? 그런 의문과 함께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누군가가 내 몸을 불길에서 지켜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능으로 만들어진 얼음이 전부 녹아내리는 화마 속에서도, 변함없이 내게 미소 짓는  얼굴과 마주했을 때.

나는 멍하니, 그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제논.”
“...다행이야. 늦지 않아서.”

무어라 말하고 싶었다. 왜 여기 있는 거냐고,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온 거냐고. 아픈데도, 그런데도 왜 웃는 거냐고.
하지만 차오르는 감정에 막혀 차마 뱉어지지 않는  말들을 삼킨 채, 나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바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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