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테러는 싫어(4)
“도대체, 왜-”
“묻지마.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는 것부터.”
내 입을 손으로 가리며, 제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니플헤임이 전부 사라져 더 이상 브루노와 크루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기에, 이 불길이 사라지면 그들의 위치를 곧바로 파악해야 했다.
화르륵-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이능을 써가며, 천천히 불길을 사그라들게 만든다.
얼음은 나오지 않아도, 한기라면 어느정도 뿜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저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불꽃을 지워나갔다.
“...아이샤, 무리하지 않아도 돼. 괜찮으니...”
“그냥, 조용히 있어.”
화상이 얼마나 아픈 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아직까지도 나만 신경쓰는 저 태도가 싫었다.
고개를 들어 살짝 흘겨보자 제논은 그제서야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렸다.
“...안 뜨거워?”
“뜨거워.”
“근데 왜 안 아픈 척해.”
“네가 안 뜨거우면 됐지. 화상은...뭐, 이래저래 많이 겪어봐서. 이 정도는 약 바르면 나아.”
“...하아.”
한숨을 내쉬며, 녀석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퍽, 퍽. 불길에서 나를 감싸느라 사실상 껴안고 있어 아무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녀석의 가슴을, 그렇게 내리쳤다.
바보같이, 멍청이처럼.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아, 아픈데?”
“거짓말하지 마.”
힘조차 제대로 실리지 않은 주먹이었다.
이것보다 화상이 더 아프면서도 엄살을 떠는 녀석을 한껏 째려보았다.
“...미안해.”
“됐어.”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면 되니까.
불길은 이제 거의 사그라 들었다. 남은 것은 불꽃이 전부 사라지고 남은 희뿌연 운무.
이 것마저 사라진다면, 아마 다시 브루노와 크루거를 상대해야 할 터였다.
“제논, 아마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도 못할 거야. 그래도, 할 수 있겠어?”
“...환각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미 처리했으니까. 할만 해.”
그걸 어떻게? 의아한 얼굴로 묻자 제논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널 구하기 직전에 한 명은 제압했거든. 칼등으로 머리를 후렸으니...뭐, 아마 아직 쓰러져 있을 거야. 네가 싸우는 걸 보고 멍하니 있길래 바로 기습했지.”
“...다행이네.”
한 명을 처리했다니 그나마 나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1대2가 아닌, 1대1의 상황이더라도 상대는 마루더즈의 간부였다.
헤라 카르멘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무방할 터.
그런 사람이 마약까지 흡입하는 것을 확인 했으니...
“난 괜찮아.”
이제는 희미해진 연기, 제논은 허리춤에 달린 검을 붙잡으며 내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기다려줘."
내 허리를 두르던 손이 풀어지고, 그렇게 제논이 서서히 멀어져 간다.
이젠 서있기도 힘들었다. 휘청거리는 두 다리를 손으로 겨우 짚은 채, 제논의 등을 바라보았다.
까맣게 탄 등, 피부가 짓물려 그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저렇게 아파도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웃어준 거구나.
...도대체, 너에게나라는 사람이 무슨 의미길래.
콰아앙-
제논이 사라지고, 저 멀리서 폭발이 일어났다.
붉을 불꽃을 부수며 터지는 폭발. 제논과 브루노가 만났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꼬옥-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폭발 속에서 온전히 나오는 것이 제논이기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렇게 비는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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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좋지 않았다.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이 하루 종일 나를 괴롭혔다.
“...왜지?”
형하고 연락해봤지만, 아직 헤라가 무언가 움직일 낌새를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이 불안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집에 도착한 뒤로도 계속해서 느껴지는 불안감에 마음을 졸이기도 잠시, 뇌리에 스쳐가는 생각에 다급히 스마트워치를 켰다.
[아이샤]
전화버튼을 눌렀고, 한참 동안 신호음이 울렸다.
[전화를 받지 않아 삐-소리후 음성사서함에...]
“프레이랑 레스토랑에 간다고 했던가.”
그래, 아마 만나서 얘기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지금 느끼는 이 불안감은 그냥 기분 탓일 뿐이라고.
허나 그렇게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한 것은 어찌할 수 없어 창문을 열었다.
초여름, 아직까지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자일 레스토랑이 보였다.
아이샤와 함께 갔었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 홀로 설레발을 쳤던, 정작 아이샤는 별생각이 없어 나만 곤란하게 되지 않았던가.
“그래도, 뭐...”
다음에 ‘단둘이’ 식당에 가기로 했으니까.
그 때는 정말 데이트라 해도 좋을 터였다.
프레이도, 그렇다고 다른 이들도 끼지 않는 순수한 목적의 데이트.
비록, 아직까지 아이샤는 나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좋다는게, 참 신기했다.
언제쯤이면 고백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고 같이 다닐 수는 없을 터였다.
2학기가 되면 각자 이능에 따라 반이 한 번 더 갈라지고, 그러면 아이샤와 떨어지게 될 테니.
아마 같은 반에서, 같은 공간에서 그녀를 보게 될 기간은 앞으로 터무니없이 적었다.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그 말이 진실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커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며 입학한 아카데미였건만, 이제는 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을 쫓아다니는 꼴이라니.
“하아...”
이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히어로를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히어로란 남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런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이 히어로를 꿈꾸는 것이었지만. 자신은 그저 복수를 위해 꿈꾸는 것이 아닌가.
만약 복수를 이루고 난다면, 그저 공허한 삶을 살게 될 것이었다. 그게 과연 옳은 걸까?
...내가 되고자 하는 히어로란, 과연 무엇일까.
고민은 길었고, 그렇게 창문을 연 채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저 멀리서, 백색의 섬광이 뿜어져 나오기 전까지.
콰아앙-거대한 폭발, 그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집까지 다다랐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자일 레스토랑이 아니던가.
아이샤.
오직 그 이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약에 다쳤으면, 만약에 아이샤가 크게 다쳤으면. 나는 어떡하지?
비틀거리며 창문을 부여잡았다. 문틀에 삐져나온 나무가시가 손을 헤집어 놓는 것도 모른 채, 폭발이 일어나 무너지는 자일 레스토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렇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어느 순간사라지곤 했다.
친구도, 선생님도, 엄마도. 내가 마음을 주면 그렇게 스러진다. 전부 내가 약했고, 유약했기에 생긴 일이었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게 되는 날이 다시 찾아온다면, 그때는 내 모든 것을 걸어 지키고자 다짐했다.
퍼어엉-
온 몸을 폭발시킨다. 몸이 헤집어지고, 목구멍을 타고 피가 왈칵 쏟아졌지만. 그만큼 속력을 얻었다.
저 멀리 무너진 자일 레스토랑이 보였다. 그리고 그 것과 함께 보이는 것은, 완전히 얼어붙은 도시.
근처로 다가갈수록, 한기는 점점 짙어졌다. 아이샤의 이능인 것이 틀림없었다.
“살아있어.”
그 사실에 안도한다. 아직 살아있었다. 아직, 지킬 수 있었다.
폭탄의 심지가 불타오르듯, 내 몸을 심지 삼아 그대로 폭발시켰다.
검을 휘두르며, 내가 나아가는 앞길에 있는 것을 모두 분쇄했다.
제전,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이샤를 보며 떠올렸던 절망감을 되새기며, 이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다.
“당신은...!”
저 아래에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는 한 남자가 보였다.
가슴팍에 달린 ‘M’모양의 엠블럼. 한계까지 치솟은 분노가 작렬하고, 그대로 폭발에 휩쓸린 남자가 저 멀리 건물의 잔해 속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이샤는, 어딨지?
그렇게 저 멀리, 아이샤를 삼키려는 불꽃을 목도했을 때.
나는 이미 뛰어가고 있었다. 뜨거운 불길이 내 몸을 감싸고, 등이 불길에 삼켜져 타올랐다.
아프다,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참아내며- 아이샤의 몸을 끌어안았다.
나는 괜찮았다. 나 따위는 얼마든지 다쳐도 좋았다.
멍하니,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붉은 색의 눈과 마주했을 때.
나는 등을 괴롭히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창백해진 입술을 보며, 그리고 핼쑥해진 얼굴을 보며,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행이야, 늦지 않아서.”
신기했다. 그토록 아팠음에도, 얼굴을 마주하는 이 단순한 행위만으로 그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는게.
그토록 절박했음에도, 이렇게 눈을 마주치자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이.
그리고 다시 한 번떠올린다.
내가 되고자 하는 히어로란 무엇인지를. 복수가 아닌,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히어로가 될 이유를.
정말로, 단순했다. 그냥,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지키고 싶었다. 그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기를, 그 입에서 늘 가벼운 미소가 띄고 있기를.
이기적이라 해도 좋았다.
나는, 그런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