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테러는 싫어(5)
아이샤를 홀로 둔 채로, 연기에서 빠져나오자 한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불에 탄 것인지 흉측하게 변해버린 얼굴, 눈을 덮고 있던 눈꺼풀마저 사라진 남자의 얼굴에서읽힌 감정은, 분명히 당황이었다.
“...도대체?”
불에 그을린 흔적, 그리고 그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엠블럼을 보았을 때.
그또한 아이샤를 습격한 이라고 보아도 무방했기에, 나는 곧바로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검을 휘두르는 순간 일으킨 폭발로 속력이 더해지고, 다시 한 번 검 끝자락에서 일어난 폭발이 남자를 덮쳤다.
숨을 헐떡이던 것을 보아 아마도 피하지 못했을 터. 검을 갈무리 하며 폭발이 일어난 곳을 다시 살폈을 때.
화르륵-
폭발이 일으킨 연무 속에서 불꽃이 일었다.
아이샤를 덮쳤던 불꽃과 같은 색. 그를 깨달음과 동시에, 표정이 싸늘히 굳어갔다.
일순간 이글거리는 증오가 감동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허나, 머릿속은 되려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아이샤가 이능을 다루는 능력은 나보다도 월등했다.
그런 아이샤가 감당하지 못했다면, 설령 힘이 빠져있는 상태라 할지라도 상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았다.
허나 그렇다고 물러나기엔, 저 남자는 너무도 위험해보이지 않은가.
판단한다.
이길 가능성을, 이길 수를. 이대로 물러난다면, 아마도 다시 아이샤를 위협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 제압해야했다.
어느덧 남자가 일으킨 불꽃이 연무를 뚫고 나와사방으로 퍼졌다.
내가 일으키는 폭발이, 저 불꽃과 비견될 수 있을까.
아무리 검을 휘둘러 폭발을 연속적으로 일으킨다 한들, 그 위력은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불꽃에 휘말려 사라질 터.
그렇다면, 그 폭발을 응축시킨다.
검을 쥐었다. 그리고, 검을 쥔 손에서부터 폭발을 일으켰다.
저 남자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레이 마이어씨와 했던훈련을 떠올리며- 천천히, 몸에 폭발을 축적시켰다.
그녀가 내게 시켰던 훈련은,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유성우에서 버텨내는 것이었다.
거대한 운석부터, 때로는 아주 작은 운석까지.
폭발의 강도를 하나하나 조절해가며 터트리지 않으면 그 파편이 튀어 내게 영향을 주었기에 자연스레 폭발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신체의 속력을 향상시킬 만큼 미세한 폭발까지 세세한 컨트롤이 가능해졌기에 다다른 경지.
펑- 펑- 퍼엉-
끊임없이, 남자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동작 하나하나에 폭발을 담는다.
그 폭발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응축된 폭발은 이내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열 번의 휘두름, 백 번의 폭발. 그렇게 만들어진 폭발의 화력은, 내가 낼 수 있는 폭발의 위력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양손으로 검을 움켜쥐며, 최고의 순간을 노린다. 폭발이 모인 몸에서는 이제 찬란한 광휘가 내뿜어졌다.
“...카르멘가의 꼬리, 였던가.”
나를 향해 불꽃을 휘몰아치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꼬리라, 예전 같았으면 그 말에 욱하여 무언가를 했을지도 몰랐다.
허나, 지금은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잡종이라 해도, 꼬리라 해도, 천한 것이라 해도. 결국 그 것은 남이 하는 말이 아니던가.
나랑 아무 상관없는 남, 이제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소중하다 생각하는 이들이 나를 어떻게 불러주느냐였다.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남자의 얼굴에 당황이서렸다.
응축된 폭발이 서서히 몸의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휘두르는 검이 그의 불꽃을 가르기 시작했다.
아직, 조금 더.
그가 빈틈을 보일 때까지.
호흡이 가빠져왔다.
이미 이 곳으로 도달하기 위해 무리하게 폭발을 일으키고, 아이샤를 불꽃에 구해내느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당장 치유계 이능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치유를 받아도 후유증이 남을 몸인 만큼,
응축시킨 폭발을 그대로 담아내어 휘두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팔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화상으로 뒤덮인 등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고, 고통을 참기 위해 짓씹은 입술은이미 잔뜩 찢어져 피가 흥건했다.
화르륵-
넘실거리는 불길은 점점 검에 잡아먹혀 사라지고, 완전히 불에 잡아먹혀 이제는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곳곳이 갈라지고, 곧 재가 되어 무너질 것처럼 까맣게 변해버린 그의 팔에서 수많은 나이프가 솟아나왔다.
“최후의, 예술이다.”
그렇게 읊조리며, 그는 불꽃에 휩싸인 나이프를 내게 던졌다.
얼굴을 향해 쏟아지는 나이프를 튕겨내면서도, 시선은 남자에게 향했다.
까맣게 타버려 이제는 그 형상을 거의 잃어버린 그의눈동자가일순간 빛났다.
황홀한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위험하다, 허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
응축된 폭발을 일으키는 데엔 시전 시간이 필요했다.
대략 몇 초에 해당하는 시간. 아직 보완점이 많았기에, 되려 이런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남자의 팔에서불꽃이 일었다. 몸 전체에서 나타났던 불꽃을 하나로 모은 듯, 여지껏 보았던 그 어떤불꽃보다도 사납게타오르는 그 불꽃을 보며.
응축시켰던 점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열 번의 휘두름, 백 번의 폭발로 이루어진 그 점을, 다시 한 번의 휘두름에 담아낸다.
높게 치솟은 검이 아래로 향하며, 그 압력에 땅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튀어 오르는 아스팔트 조각이 응축된 열기에 바스라지고, 검이 땅과 가까워질수록 땅은 점점그 형체를 잃어갔다.
티익-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폭발이 시작된다.
다가오는 불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이나 작은 폭발.
허나 그 폭발이 수십 번, 이내 수백 번 연쇄되고, 마침내 응축되었던 점이 개화되자-
콰아앙-
마치 꽃이 피어나듯, 순식간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대기를 휘감으며, 이윽고 불길마저 휩쓸며, 폭발이 일어난 근처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남자가 만들어낸 불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폭발의 양분이 되어 그 크기를 더욱 키워줄 뿐.
치솟은 폭발은 구름에 닿아, 그 구름마저 주변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폭발의 한 가운데, 그 중심에 서있는 한 남자의 최후를 바라본다.
몸이 무너지고, 이내 폭발에 바스러져 사라지는. 겨우 남은 재만이 그저 허공에 흩날리는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퍽 어울리는 최후가 아니던가.
폭발이 멎고,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폭발이 있던 곳에는, 까맣게 타버린 한 형체가 있었다.
이제는 얼굴도, 팔도, 다리도 없이 그저 몸뚱아리만 겨우 남은 남자가 아직까지도 옅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그가 어떤 모습이던, 설령 이대로 비참히 죽던, 이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되려 통쾌했다. 만약 아이샤를 구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아이샤가 이렇게 됐을테니까.
후회도, 연민도, 동정도 가질 필요 없었다. 그에게 줄 것이란 그저 비웃음뿐.
그렇게 나는 아이샤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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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폭발, 하늘에 커다란 구멍을 뚫을 만큼이나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을 때.
깍지를 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하얗게 질릴 만큼이나 힘이 들어간 손,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제논을 믿는 것밖에 없었기에.
서서히 힘이 돌아오는 다리를 움직여 저 멀리 쓰러져 있는 프레이에게 다가갔다.
“프레이...”
밧줄로 묶인 채, 건물이 무너진 파편 옆에 널부러져 있는 시우 자일과 프레이를 보자 자연스레 표정이 일그러졌다.
늘 쫑긋 서있던 더듬이가 축 늘어진 프레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들어올려 편히 눕히고,
밧줄을 풀어 몸에 있는 상처를 확인했지만 다행히 별 상처는 없었다.
정말 기절만 시킨 건지, 뒤통수에 약간 혹이 있긴 했지만 상처는 없어 나중에 치료 받으면 금방 나을 터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조심스레 프레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뱉었다.
나비 효과, 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킨다는 그 말의 뜻처럼. 내가 한 사소한 행동이 이렇게까지 커졌다는 것이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마루더즈가 갑작스레 이렇게 돌발적으로 행동한 시점에서, 앞으로 사회의 반향은 더 커질 터였다.
원래라면 지금 시점보다 더 오랫동안 음지에서 세력을 키웠어야 할 조직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으니,
아마 내가 알고 잇던 원작의 전개보다 훨씬 더 난이도 높아질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후우.”
프레이의 머리에 두었던 손을 조심스레 떼어내며, 아직까지 얼음처럼 차가운 손을 어루만졌다.
아직, 한참 모자랐다. 1대2였지만 이능을 한계치 이상으로 뽑아냈다.
아마 며칠동안은이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만큼 뽑아냈음에도, 결국 한 명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
“미숙해.”
적절한 평가였다.
힘의 총량 자체는 높을지 몰라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아이샤가 입학하기 전에 사용했던 검술을 그대로 채용하는 것과, 책에서 보았던 것을 토대로 뽑아내는 게 전부가 아니던가.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이 힘을 다룰 방식을 찾아내야 했다.
특히나 헤라 카르멘이 마루더즈와 손을 잡은 지금은, 하루 빨리 이능에 능숙해져야 했다.
그렇게 되면 3번 검을 뽑을 때 소모되는 정신력도 꽤나 줄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힘이 축 빠진, 터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리자, 제논이 손을 흔들며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논!”
폭발에 휩쓸린 건지 위에 입고 있던 옷이 아예 전부 찢어진 제논은 다가오다가 이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곳으로 향했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자 제논은 손을 휘저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괜찮아. 그냥 힘이 쭉 빠져서.”
“...깜짝 놀랐잖아.”
왜 갑자기 주저앉고 난리야.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거리자 제논은 미안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온 걸 보면, 브루노는 제압한 거겠지. 아까 그 폭발의 위력을 생각해보면 몸 성히 기절했을 것 같진 않았다.
“...고생했어.”
정말로, 제논이 없었다면 상황이 극으로 치달았을 지도 몰랐다.
당장 나만해도 불길에 휩쓸려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거고, 프레이와 시우 자일도 죽었을 테니까.
마루더즈의 노림수가 멋지게 성공했을 게 분명했다.
내 감사를 들은 제논은 잠시 시선을 피하더니, 이내 볼을 긁적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얼굴에 잔뜩 묻은 검댕하며, 아까 그 불길에 옷이 전부 타버린 거 하며. 해봐야 교복이 약간 불탄 나와는 달리 완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부 나를 감싸려다가 이렇게 된 거였으니.
그렇게 빤히 제논을 쳐다보자, 머쓱했는지 제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왜 그렇게 쳐다 봐.”
“고마워서.”
“어?”
“고마워, 제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를 담아, 그렇게 제논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의 몸보다 나를 신경써주는 게, 그리고 이렇게 위험할 때 달려와 준 게, 그리고 다른 것들도. 여러모로 고마웠으니까.
잔뜩 얼굴이 붉어진 제논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저렇게 여자에 면역이 없어서 어떡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