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친구 이상은...싫어(1)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이런 큰 일이 벌어질 때마다 히어로들을 본 적이 없던 것 같았다.
저번에 B지구에서도 그렇고, A지구에서 사무소가 붕괴되었을 때도 히어로의 출동은 터무니 없이 늦었으니까.
하여 이번에 자일 레스토랑이 무너졌을 때는 어느정도지원을 기대 했는데, 상황이 완전히 끝나서야 도착하는 그들을 보았을 때 얼굴이 제멋대로 일그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왜 항상 늦는 건지 모르겠네요.”
“...하아, 할 말이 없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출동한 히어로들 전원이 다 길을 잃고 헤메는 중이었으니. 자기들 말로는 맞는 길로 가고 있었다고 하는데...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단체로 환각에 빠지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투덜대며 한 현장에 도달했을 때, 나는 그 광경에 투덜거리는 것을 멈춘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무려 7명에 달하는 히어로들이, 까맣게 재가 되어버린 모습.
브루노에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쯤 되자 어느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나는 조용히 히어로들에게 인사한 뒤 제논과 프레이가 있을 병원으로 향했다.
나야 뭐, 이능을 한계치까지 사용한 정도였으니 입원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제논은 크게 다쳤고,
프레이랑 자일씨는 혹시 속을 다쳤을지도 모르니 일단 입원 수속을 밟았다. 지금쯤이면 깨어나 있지 않을까.
똑똑-
제논이 입원해있을 병실의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일어나 있었네?”
“누우면 등이 아파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는 제논이었지만, 등이 아프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등에 화상을 입은 건 순전히 내 탓이 아니던가.
“...미안.”
침울해진 내 얼굴을 본 제논이 황급히 손을 휘저었지만, 그럼에도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나 때문에, 또. 나 때문에 누군가가 다쳤다.
그런 건, 싫은데.
“아이샤.”
그렇게 축 늘어진 어깨에 손 하나가 올라왔다.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제논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네 탓이 아니야.”
“...날 구하려다 그렇게 된 거잖아.”
그 때 제논이 없었다면, 난 불길에 그대로 스러졌을 터였다.
나를 껴안아 대신 불을 맞아주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무슨 특별한 존재도 아니고, 그 작열통을 참아가며 구해줄 의미가 있었을까.
“몇 번이나 말했는데,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니까.”
“그래도...”
“어휴...”
점점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에 제논이한숨을 내쉬었다.
안되겠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어난 제논은 이내 자신의 침대를 두드렸다.
“이리와 봐.”
“내가 거길 왜.”
힘없이 중얼거리자, 제논이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갑자기 왜? 혹시 다른 어딘가를 다친가 싶어 다급히 다가가자, 제논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붙잡아 침대에 앉혔다.
“자, 여기서 기다려.”
“아니, 너 아프잖아. 또 어디가는데?”
“편의점.”
“같이 가. 그 몸으로 어떻게 혼자 가려고?”
그렇게 나를 침대에 앉힌 뒤 혼자 편의점을 가겠다는 제논을 불만어린 표정으로 쏘아보자, 녀석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어허, 하고 입을 열었다.
“안 돼, 그냥 여기 있어.”
"...그래, 알아서 해라.”
몇 번을 말해도 들어먹지 않을 것 같아서, 다시 침대 털썩 앉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고집만 더럽게 쌔가지고, 말을 안 듣는다.
아무리 이능으로 한 번 치유 받았어도 아직 아플 텐데. 당장 아까만 해도 침대에 못 누울 정도로 아팠다고 했으면서...
“흐으...”
곤란했다. 당장 신경 써야 할 게 누군데.
지금 편의점에 간다고 한 것도 또 편의점을 핑계로 이상한 걸 사오려는 거겠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벽에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면 입원해 있는 제논을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인가.
항상 내가 쓰러져 있었고, 제논이 그 걸 지켜봐줬으니까. 심지어 내가 깨어날 때까지 계속.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이 병실에서 할 것이라곤 쓰러져 있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 뿐일 텐데도.
제논은 몇 번이고 그 일을 해왔다. 이쯤 되면 살짝 존경스럽다고 해야 하나.
도대체 녀석은 무슨 이유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녀석이 내게 품은 감정이라는 게,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 그토록 피하려했던 감정이라는 것임을.
그게 호감이라는 것을 모를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 그저 제논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성품 중 하나가 드러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허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있다면, 제논이 언젠가부터 나를 특별히 대하고 있단 사실이었다.
프레이를 대할 때랑, 나를 대할 때가 달랐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랑, 나를 대할 때가 터무니 없이 차이났다.
그리고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원작에서 몇 번이고 나온 것이 아니던가.
제논이 생각하는 인연 속에, 그러니까 녀석이 생각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범주 속에서. 어느덧 내가 포함된 것이었다.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라도 지킬 사람들, 그 사람들이 다친다면 자신을 자책하며 한계까지 몰아붙일 사람들.
제논이 지금 보이는 반응들은, 전부 그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할까.”
솔직히 말해서, 고마운 마음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를 그토록 소중히 여겨준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보다는 고마웠다.
그렇다면...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옳은 걸까.
여지껏 고맙다는 말은 몇 번 해왔다.
하지만 고작 말뿐이었다.
내게 도시락을 해주고, 신경써주고, 심지어 목숨도 몇 번 구해준 녀석에게 나는 고작해야 말로만 고마움을 표현했다.
부끄럽다는 것을 핑계로, 내가 해야 할 행동을 회피한 것이다.
“...하아.”
지끈 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허공을 바라보기를 한참,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병실의 문이 열렸다.
“...갔다 왔어?”
“어, 근데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축 늘어져 있는 나를 보며 제논이 물었지만, 나는 그저 미소 지은 채 고개만 저어보였다.
그나저나 정말 편의점에 다녀온 걸까. 그런 거면 그냥 나한테 시키지.
눈매를 좁히며 제논을 쳐다보자, 제논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 곁에 털썩 앉더니 비닐 하나를 건넸다.
“자.”
“이게 뭔데?”
“네가 좋아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걸 네가 어떻게 알고, 딱히 말한 적도 없는데.
의아해하며 비닐을 열어젖히자, 그 안에는 초콜릿 하나가 들어있었다. 순도 99퍼, 다크 초콜렛.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초콜렛이었다.
“이걸 어떻게?”
나는 네 앞에서 초콜릿 좋아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이걸 사온 걸 보면 그저 우연이 아닌, 정말 내가 이걸 좋아하는 것을 알고 사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의문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자, 제논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네가 저번에 한 번 말했잖아. 기억하고 있었지.”
“내가 말한 적이 있었다고?”
“어, 기억 안나?”
조금 더 기억을 되새겨 보자, 아주 예전에 잠깐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사소한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던 건가.
...나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초콜릿을 멍하니 바라보자, 제논이 입을 열었다.
“초콜릿 싫어해?”
“...아니, 좋아해.”
“다행이네, 잘못 사온 줄 알고 놀랐잖아.”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 제논을, 빤히 바라봤다.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붕대에선 피가 묻어있고,아직 몸 곳곳에 화상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내 기분을 신경쓰는 걸까.
어쩌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호의로 다가온 사람을 일부러 피하려 하고, 이렇게나 신경써주는 사람에게 부끄럽다는 것을 핑계로 제대로 고맙다는 표현조차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이 가장 비겁한 변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가만히, 내 옆에서 내 반응을 신경 쓰는 제논을 바라보며 그 손을 잡아당겼다.
“...어?”
놀란 듯 커진 눈을 보며 피식 웃기도 잠시.
이내 끌어당긴 손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가만히 있어.”
거칠고, 투박한 손이 만져졌다.
저번에 보지 못했던 화상자국을 보자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려왔다.
고마워, 그 말을 중얼거리며. 그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에 다시 미안해한다.
가끔은, 이렇게 표현 해봐도 괜찮겠지.
“아, 아이샤?”
“왜.”
“그, 손은 갑자기 왜.”
“...그냥.”
별 이유는 없었다. 이렇게 하면 보이는 제논의 반응이 재밌기도 하고, 그냥 옆에 손이 있길래잡아당겼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은 이런 것 말고 딱히 해줄 것도 없었으니까.
다만 바라는 것이 하나있다면,나 말고 자신에 대해서도 신경써줬음 하는 것이었다.
이 손에 상처가 더 늘어난다면, 이제는 나도 마음이 아플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