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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화 〉친구 이상은...싫어(3) (51/115)



〈 51화 〉친구 이상은...싫어(3)

“자, 여기.”
“집 가서  좀 꺼내 달라니까.”
“내가  집을 도대체 왜 가?”
“갈 수도 있지.”

옷을 건네줬음에도 투덜대는 제논을 흘겨보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내가 왜 네 집에 가서 옷을 꺼내줘야 하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런 소리를 태연자약하게 내뱉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아무튼, 퇴원 축하해.”

나 때문에 다친 거니까. 축하 정도는 해줄  있지.
고작해야 이틀 입원하긴 했지만, 맨날 누울 때마다 끙끙대던 걸 보면 솔직히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았다.
이제는 완전 깔끔히 상처가 나았다니까. 앞으로도 흉터로 고생할 일은 없겠지.

처음 입고 있던 옷은 완전히 불에 타버린 터라 그냥 적당히   벌 사서 가져다 줬는데.

...잘 맞네.

“내 옷 사이즈는 어떻게 안 거야?”
“맨날 보잖아.”
“그걸 본다고 맞출 수 있나...?”

소설에서 나왔다고 하면 네가 믿을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적당히 둘러댔다. 그냥 눈대중으로, 어차피 자주 보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못 믿겠다는  불신어린 눈빛으로 제논이 잠시 쳐다보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이게 거짓말이라는  무슨 수로 밝히겠어.
결국 어느 정도 납득했는지 마저 옷을 갈아입은 제논이 환자복을 들곤 내게 다가왔다.

“이제 가자.”
“몸은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답답해서 그냥 빨리 나오려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물었지만 제논은 괜찮다며 씨익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긴, 뭐...굳이 그런 것까지 거짓말 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병실에 나와 퇴원 수속을 밟으려 창구로 가자,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간호사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여자 친구에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멍하니 간호사를 바라보자, 여자는 내가 멍하니 있는 걸 긍정의 표현으로 알아들었는지  혼자 이것저것 떠들기 시작했다.
뭐 남자친구는 좋겠느니, 맨날 이렇게 와서 간호해주는 걸 보면 옛날 생각이 나느니.

듣다 못해 제논의 옆구리를 툭툭 쳤지만, 제논은 그 얘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만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여자 친구 아니에요.”
“어머, 정말요?”
“...아니에요.”
“아직 아니구나?”

도대체  그리 여지를 남기려 드는 건지.
눈매를 한껏 좁혀 간호사를 쏘아보자, 그녀는 그제서야 입을 다물곤 퇴원 수속을 진행했다.
종이에 이름 몇 번, 치료 받은 횟수와 사고 경위까지 적자 퇴원 수속은 끝.

그렇게 퇴원 수속을 마치자 곧바로 병원을 나가려는 제논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제논.”
“왜?”
“프레이는 그냥 두고 가는 거야?”

프레이도 오늘 퇴원인데, 설마 까먹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제논은 내가 프레이를 언급하자 이제야 떠올랐는지 아, 하고 탄성을 내뱉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네, 프레이도 오늘 퇴원이었지? 자일씨는 먼저 가신 건가?”
“그래서 오늘 아침에 같이 가야한다고 말했는데. 그새 까먹었구나.”
“...미안.”

어휴, 그냥 퇴원하든 말든 놔두고 프레이만 챙길 걸.
그나저나 프레이도  내려온다고 했는데, 언제쯤 오려나.

그렇게 병원 의자에 앉아 기다리자, 옆에 앉아있던 제논이 말을 걸어왔다.

“아이샤.”
“왜?”
“그, 저번에 같이 식당 가기로 했던 거 말야.”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논의 표정이 갑자기 음울해지기 시작했다.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순식간에 추욱 내려가고, 푸른 눈동자가  순간 새하얗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빛을 잃어갔다.
그런 표정 변화에 놀라며 손을 휘젓자, 제논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기억 안나?”
“아, 아니. 언제 그랬지?”

최근에 워낙 일이 많아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가 있어야지.
점점 추욱 내려가는 제논의 어깨를 보며 기억을 떠올리기도 잠시,
저번에 자일 레스토랑에 갔을 때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걸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

“어, 그때 레스토랑에서?”
“...어, 그거.”
“그게 왜?”
“언제 갈 거냐고.”

언제 간다, 라. 사실 시간 자체는 꽤나 많은 편이었다.
당장 퇴원 수속을 마친 오늘이 금요일이라 내일부터 이틀 쉬니까.
그럼 그냥 내일 가는 게 낫겠지, 월요일부터는 레이 마이어한테  생각이었으니까.

“내일 갈래?”
“내일?”
“싫으면 나중에 가도 되고.”
“아니, 뭐. 내일 괜찮지.”

생각해보니까 입을 옷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옷장에 교복 말고 딱히 사복이랄 게 없긴 했다.
좀 이따 프레이 데리고 백화점이나 갈까.
저번에 B지구에서 빌런들을 퇴치하고 받은 돈이 아직 꽤 남아서, 그 돈을 어디다 쓸까 고민이었는데 옷이나 몇벌 사두는  나을 것 같았다.

방학 때  일을 생각해보면, 언제까지고 교복을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좀 이따 갈라져야겠다.”
“갑자기?”
“옷  사야할  같아. 프레이랑 갈 거니까, 중간에 버스에서  먼저 내리면 되겠네.”
“...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제논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혼자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에휴, 옅게 한숨을 내쉬며 프레이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기도 잠시.
 멀리서 초록머리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샤, 기다렸어?”
“좀 걸렸네. 어지럽진 않고?”
“그건 처음부터 안 그랬다니까, 아무튼 학교 빠져서 좋다.”
“아, 프레이. 나 조금 이따가 옷 사러 건데 같이 가주라.  옷은  몰라서.”

그러자 프레이의 표정이 딱딱히 굳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도 잘못했나?

“옷...?”
“어, 나 옷은 잘 몰라서...싫어?”
“아니, 싫은  아니라. 당연히  사러갈 때는 내가 따라가야지.”

고개를 주억거리던 프레이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여, 이내 한 사람 앞에서 뚝, 하고 멈춰섰다.
눈이 마주친 제논이 움찔거리자, 프레이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아하, 대충 뭔지 알겠다.”
“...뭘?”
“알았어, 그럼 저쪽 백화점 가는 거지? 근데 돈은 있어?”
“돈이야 가져왔지.”

툭툭, 스마트 워치를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프레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무슨 옷을 사야할까. 그냥 편하게 입을 옷 벌 사면 되겠지.
프레이의 눈이 묘하게 반짝이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나는 끈적거리며 달라붙는 프레이를 겨우 떼어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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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샤, 옷은 뭐사려고?”

제논을 먼저 보내고, 버스에 단 둘이 남게 되자 프레이가 입을 열었다.
 사냐니, 그냥 평소에 입던 스타일로 몇 번 사면 되지 않을까.

“그냥 후드티랑 청바지 좀 사게.”
“...후드티?”

그러자 내 대답을 들은 프레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주먹을  쥔 채 나를 빤히 쳐다보는 프레이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편하잖아. 그리고 치마는 조금 그런데.”

교복 치마 때문에  익숙해지긴 했지만,그래도 아직 사복까지 치마로 입긴 조금 그랬다.
청바지나 슬랙스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프레이는 내 대답을 듣고도 조용히, 그저 앞만 바라본 채 침묵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버스에 내려서도, 심지어 백화점에 도착해서도.

프레이는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조용히 걷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시선은 주위로 향했다.
저번에 자일 레스토랑으로 가면서 사람이 많은 거리를 가보긴 했지만, 이능이있는 세상의 백화점은  굉장히 다른 느낌이라.
당장 1층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이능과 관련된 코너가 있는 것만 보더라도 꽤 신기했다.

[ 탑히어로 ]

세상에,

입구 옆에 떡하니 놓인 등신대를 보곤 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에드윈 카르멘이 아주 환하게, 그 이빨을 번쩍이며 서있는 모습이라니.
하기야, 이 세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을 하나 꼽자면 에드윈 카르멘이 무조건 나올테니.

그가 제논에게 한 짓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도 그를 꽤나 좋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세상의 범죄율을 그 하나로 억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이나 그는 정의로운 히어로였으니까.
다만  정의로움이, 자신의 자식인 제논에게까지 향하지 않았을 뿐.

그 외에도 여러 히어로들이 놓여진 피규어를 잠시 구경하고 있을 때,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프레이가 갑작스레 내 팔을 당기기 시작했다.

“프, 프레이?”
“조용히 따라와.”

 팔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는 프레이를 따라가자, 프레이는 이내 한 매장 앞에서 멈춰섰다.

“...아무리 봐도 캐쥬얼 의류는 아닌  같은데. 잘못 온 거겠지. 다른 데로 가자, 응?”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인, 청바지와 후드티 따위는 전연 보이지 않는 매장 앞.
내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프레이가 점액을 뿌려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아니, 제대로 왔어.”

씨익, 내 앞에서 사악하게 웃는 프레이를 보며, 나는 순간 온 몸에 오한이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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