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너의 그 행동이 싫어(1) (56/115)



〈 56화 〉너의 그 행동이 싫어(1)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처음 집에서 나왔을 때처럼 산뜻한 기분은 온데 간데 없이, 머릿속  구석을 사로잡은 고민에 하루 종일,
해가 저물어  모습을 숨기고, 다시금 달이  세상에 별과 함께 반짝이는 그 때까지도.

온종일 인상을 찌푸린 채, 그렇게 한참을 고민에 빠져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제논이 내게 보이는 행동이, 일반적인 사람에게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저 모르는 척, 뭐 딱히 상관은 없겠지. 그렇게 애써 무마하며 지내왔지 않던가.

순간적인 감정일거라 생각했다. 애초에 연심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한 순간 불타올라, 이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타오르는 것이 연심이었지만,
 위용과는 달리 허무하리만치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감정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제논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기는 애착이란 것은 그보다도 훨씬 길고, 오래 가는 것이었음을.
그 것을 방치한 대가가, 또 다시 이렇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고민은 한 질문으로 회귀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세상이 소설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어쩌면 내 위치는 히로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그토록 피하려 했던 그 위치. 그리고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소설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지켜야 할 사람들도, 나중에 히어로가 된다면 지켜야 할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각자 자신의 생각이 있고, 그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자기 주체적인 사람들이 이루는, 정말로 하나의 세상이었다.

원작과 다르게 행동하더라도, 결국 제논이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제논이 스스로 품은 마음이란 것이었다.
소설의 설정, 정해진 운명 따위가 아니라.

그렇다면, 나는 제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거울에 비치는, 그저 멍하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소녀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저 어색하게 입꼬리만 끌어올릴 뿐.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제게 오는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내가 제논에게 가지는 감정을 다시금 되짚어 보더라도.
이게 단순한 고마움인건지, 아니면  또한 제논을 좋아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내가 고민할 시간 따위를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듯, 한참을 벽에 기대 생각하던 나는 어느덧 밝아진 거실에 몽롱한 정신을 일깨웠다.

밤을 새운 건가.


후우,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반쯤 잠긴 눈을 비비며, 어지러운 정신을 이끈 채 그대로 비척거리며 이불로 향한다.

조금, 자고 싶었다.


#


“...아.”

눈을 떴을 때, 다시 보이는 햇빛에 순간 탄식이 흘러나왔다.
조금도 자지 못한 건가. 하지만 그 생각과는 달리 몸은 찌뿌둥했다.
마치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몽롱한 정신, 나른한 몸. 조금이라도 잠을 더 청하려 하는 무거운 눈꺼풀.

영락없이 자다 깬 것만 같은 몸 상태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에 자리에 튕겨나듯 일어난다.

[7:01]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 아래로 뜨는 날짜.

[6월 7일, 월요일]

그제서야 하루를 통째로 자느라 날려 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그저 허탈히 웃었다.
밥을 먹고 갈까 하다가, 그냥 대충 냉장고에 있던 과일을 한 조각 베어 물고는 교복을 입는다.
몸에  달라붙는 스타킹이, 허리에 둘러진 교복 치마가, 가슴에 둘러진 브레지어가.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그닥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빗으로 머리를 손질하고, 살짝 누운 속눈썹을 반듯하게 올리고, 조금 갈라진  같은 입술에립밤을 바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현관을 열고 나가자 평소와 다르지 않은 따사로운 햇살이 반겼다.

햇살에 눈을 감기도 잠시, 이제는 초록색으로 완전히 물들어 버린 주변을 살피며 발걸음을 옮겼다.
토요일날 품었던 고민은 아직까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밤새 고민했음에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고민이 해결되려면 조금 요원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리는 게 낫겠지.

생각해보면 헤라 카르멘이 여지껏 잠잠하다는 것부터가 조금 불안하긴 했다.
마루더즈와 접촉했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었다면, 슬슬 움직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장 마루더즈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능 증폭제에 대한 사실 뿐이었다. ‘예술가’ 브루노가 만들어 냈던 이능 증폭제.

그는 직접 시가의 형태로 만들어 썼지만, 그가 죽은 지금 그게 생산되고는 있을까.
비축량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용량이 한도가 있다는 점에서 헤라 카르멘이 서서히 움직일 때가 됐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헤라 카르멘과 더불어 마루더즈의 간부들까지 움직일 가능성이었다.
브루노와 크루거를 상대해보긴 했지만, 심지어 제논이 그 둘을 잡긴 했지만.
그럼에도 간부들은 무시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현재의 이능을 감정을 증폭 시킨 상태에서, 그야말로 한계치까지 쏟아 부어야 한 명을 이길  있을 테니까.

저번에 레이 마이어에게 찾아가 이능을 효율성 있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봤을 때는,
돌아오는 답변이 너무도 단순해 아직까지 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많이 사용할수록 나아질 거라니,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찾는  단기간에 그 효율을 높이는 것.

하기야, 그런 편법이 있었더라면 당장 원작에서부터 언급이 됐겠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많이 사용할수록 좋아진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는 그저 불안해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레이 마이어가 처음에 알려준 훈련법대로 하고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로는 성장세가 뚝, 하고 멈췄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아카데미를 향해 한참을 걷자, 저 멀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분명 아카데미가 있는 곳인데, 무슨 연유인지 찾기 위해 다가가자 보인 것은 다채로운 색깔의 깃발.

각자 거문고, 독수리, 백조 모양의 상징을 올린 깃발을 보자마자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아카데미와 같이 3대 학원이라 불리는 히어로 육성학교, 각자 베가, 데네브, 알타이르라 불리는 학교들이 아카데미로 와서 각자의 성취를 자랑하고, 친선전을 진행하는 연례행사.

이른바 ‘트라이앵글’이라 하는 행사가 있지 않던가.

그러고보면 제전 이후에 큰 행사가 하나 있는 걸 자각하고는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다가오니 조금 얼떨떨했다.
수천 명이 모여 있는 모습이라니.
걷기조차 힘들 만큼 사람들이 모인 그 틈새를 낑겨 움직이자,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하필이면.”

두리번거리며, 사람들 사이에서 곤란한 듯 볼을 긁적이는 녀석.
더운지 이마를 훤히 드러내  색의 머리카락이 뒤로 넘겨져 있는 그 모습을 발견하자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안 그래도 어지럽 건만, 그 어지럼증을 제공하는 사람이 저기 있는 걸 보자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제논 몰래 피하려는 찰나,  뒤로 제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샤!”
“...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더라. 오늘  이렇게 사람이 많지?”
“트라이앵글이 오늘부터 인가 봐.”
“트라이...아, 트라이앵글.”

 말을 들은 제논의 표정이 잠깐이지만 딱딱히 굳었다.
하기야, 트라이앵글에 속한 학원에는 카르멘과 연관 깊은 이들이 많았으니. 당연히 관계도 그리 좋지 않을 터.
그런 기색을 얼굴에서 지우며, 애써 웃어 보인 제논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제 빨리 교실에 가자. 가면 선생님이 뭐 할지 얘기해주시겠지.”
“우린 1학년이잖아. 어차피 그리  것도 없을 걸, 보통 3학년들끼리 많이 하는 데다 친선전이라 해봤자 직접 신청하는 게 아니면 열리지도 않고.”
“구경이라도 하면 도움이 되겠지. 헤라가 아무래도 한번은 싸우지 않을까?”
“3학년 탑이니까.”

헤라가 싸우는 걸 보면, 그래도 앞으로 헤라 카르멘과 맞닥트릴 때 꽤나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교실에 들어가자, 어째서 인지 담임 선생님이 아닌 레이 마이어가 교단에 서있었다.
눈을 마주치자 어깨를  번 으쓱이는 데, 어째 자기도 왜 거기 있는지 모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큼큼,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레이 마이어가 입을 열자,
엎드려 있던 학생들이 슬슬 일어나 그녀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트라이앵글 행사가 시작됩니다. 그...전년도까지는 1학년 학생들의 친선전에 제한이 있기도 했고, 단순 참관 외에는 그리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니었지만. 올해부터는 전체적인 히어로 지망생들의 질을 올리겠다는 중앙의 지침에 의거, 1학년도 의무적으로 친선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뭔소리야.

원작에 이런 전개는 없었는데, 그런 생각에눈살을 찌푸리는 찰나.

칠판에 적힌 친선전 대상자의 이름을 보고 내 얼굴을 완벽히 구겨졌다.

[아이샤 이리안]

“아이샤, 올해 친선전 참가자는 너 하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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