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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너의 그 행동이 싫어(3) (58/115)



〈 58화 〉너의 그 행동이 싫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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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 얼굴 한 쪽에 생겨난 시퍼런 멍자국은 그 크키가 점점 번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때렸으면, 맞자마자 멍이 생겨. 그 멍자국을 쳐다보기도 잠시, 끓어오르는 감정이 몸 밖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감정에 이끌려 이능 또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속에서 끓는 것은 뜨거웠지만,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은 차가웠다.
주변 사람들이 서서히, 한기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허나 지금 그런 것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일이, 어째서, 왜, 무슨 이유로 벌어졌는지.

이 눈앞의 남자에게 묻고 싶은 것일 뿐이었다.

한기 때문인지, 아니면 갑작스레 난입한  존재 탓인지 나를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 남자를 바라보며. 나는 터벅터벅 그를 향해 걸어갔다.

“...너는 누구야?”
“저야말로 묻고 싶네요. 당신은 누구죠?”
“투랄리온이야, 알레리아의 아들이지.”

알레리아,  이름을 듣자 대충 무슨 일인지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알레리아라면, 탑히어로는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서 꽤나 유명한 히어로중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카르멘가와도 무척 연관이 깊은 곳 중 하나였다.
에드윈 카르멘이 탑히어로로 막 부상했을 때, 그의 동기로 이름을 날렸던 게 알레리아 였으니까.

꽤나 친한 친구였고, 현재까지 교류를 주고받을 만큼이나 두 명의 사이가 돈독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카르멘가가 지니는 그 특유의 오만함을 알레리아 쪽은 훨씬 더 크게 지니고 있다는 것.
아마 제논을 가장 좋지 않게 보는 집안이 있다면, 그건 알레리아 쪽이 아닐까.

과연, 지금 이렇게 나를 보고 있는 투랄리온의 눈에서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있는  오만함. 허나 겉으로는 예의 있는 척, 남에게 잘해주는 척 하며 그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이리라.

“다시 물을게, 너는 누구지?”
“아이샤 이리안.”
“...말이 짧네, 내가 알레리아의 아들임을 들었을 텐데도.”

하, 기가 막혔다. 단지 알레리아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유로 상대에게 존대를 요구하는 건가.
점차 눈빛이 싸늘해지는 찰나, 제논이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이샤, 괜찮으니까 일단은...”
“조용히 해.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
“그래도...”
“제논.”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 한껏 차오른 감정을 담아 쏘아보자, 제논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에 올렸던 손을 떼었다.

“여자 친구라도 되는 건가? 신경써주는 모습이 퍽 애잔하네.”
“설명해주세요.”
“뭐를?”
“왜 제논 얼굴이 이렇게 됐는지, 왜 싸우고 있었는지. 전부요.”
“...흐음.”

내가 쳐다보고 있음에도, 투랄리온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턱을 툭툭, 건드렸다.
마치 고심하는 듯 보였지만 그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지금도,  입꼬리가 장난스레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내가 싸운 건가?”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자, 투랄리온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제논이 있었고, 눈에 보였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길래 ‘교정’시켜줬을 뿐이야. 이게 싸운 거라면, 조금 억울하지.”
“...교정?”
“제논은 카르멘가도, 그렇다고 뭣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녀석이야. 그런 애가 알레리아의성을 지닌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으려 한다니. 카르멘가는 성격도 좋지 어떻게 저런 걸 살려...”
“당신.”

나는 어느새 눈매를 사납게 일그러 트린 채, 그의 눈앞에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사람을 그런 취급 하는 거야.
그 알레리아라는 이름 때문에? 당신은 알레리아가 아니잖아, 단지 투랄리온일 뿐이지.
고작 제논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 이유 하나로 뭐라고 하는 거야?”

어째서 이렇게 화가 나는 건지, 제논이 싸우는 것을 걱정했던 내가 왜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싸움이 난다면 나서서 말린다고 했던  난데, 지금 이렇게 싸움을 거는 것처럼 험하게 말하는 걸 보면 레이 마이어가 뭐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제논의 얼굴에 있는 멍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렇게 맞았음에도 묵묵히 서있는 제논을 봤을 때, 도저히 참을  없었다는 사실 하나 만큼은 분명했다.

“...내가 한 일이 잘못된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당연하잖아요. 그깟 가문이 뭔데, 그런 가문 같은 거 없어도 당신보다 제논이 훨씬 더 나은 사람이에요. 최소한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누구를 욕하고, 때리는 사람은 아니라구요."
"하아, 그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쉰 투랄리온은 이내 형형한 눈빛을 띄며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과 함께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기세, 그 기세에 맞서 이능을 끌어올리려 할 때, 그의 입이 열렸다.

“아이샤 이리안, 데네브의 3학년 대표 투랄리온 알레리아가 너에게 친선전을 요청한다. 만약 내가 지면, 제논한테 사과하지. 만약에 네가 진다면...”

무언가를 고심하듯, 반쯤 내려진 눈으로 내 몸을 훑던 투랄리온은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까딱였다.

“내 이거라도 하던가.”
“투랄리온, 당신 지금 뭐라고 하는...!”
“할게요. 내가 이기면 사과하는 거죠?”

제논이 옆에서 무어라 소리쳤지만, 나는 그 싸움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할 친선전, 차라리 이런 사람과 싸우는 게 속이 편하리라. 헤라 카르멘이 내 실력을 그리 보고 싶어 한다면.

그래, 차라리 보여주는 게 낫겠지.

자신의 노림수가 먹힌 것마냥 기분 좋게 웃는 투랄리온을 뒤로하고, 그대로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더 이상 저 얼굴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혹시 내가 얼음을 저 얼굴에 쑤셔박을 것만 같아서.

“아이샤, 잠깐만!”

나를 부르는 제논도 무시한 채, 그대로 그 현장을 빠져나갔다.


#

쿵-

아무도 없는 교실. 불조차 켜지지 않아 햇빛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그 교실에서, 나는 벽에 머리를 박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판단을 실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차분한 상태였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친선전을 신청하는 사람이었을테니까.

내가 신청했겠지. 그 사람을 직접 밟아주고, 제논에게 사과하라 시키기 위해서.

다만 궁금한 것은 왜 그렇게까지 내가 흥분했냐는 것이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닌데도, 내가 맞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맞은 당사자인 제논조차 가만히 있었는데, 왜  자리에서 그렇게 화가 났는지가 궁금했다.

“...하아.”

짐작가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맞고도,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모습이 맘에 들지 않은  분명했으니.

왜 그랬을까, 예전 같았으면 먼저 나서서 싸웠을 텐데. 도대체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건지, 왜 가만히 있었는지 모르겠다.

드르륵-

그렇게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집에 갔을 시간, 누가 들어왔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문 앞에는 제논이 서있었다.

“...아이샤.”

화가 나기라도  듯,평소와는 달리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을 거는 제논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왜.”

퉁명스레 내뱉자, 제논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내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냥 가만히 있었어도 됐잖아.  굳이 친선전을, 하아.”
“네가 욕먹고 멍청하게 서있는 게 짜증나서. 도대체 왜 가만히 있던 거야?”
“굳이 싸울 필요 없잖아.”
“맞았는데도?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맞았는데도?”

팔을 펼치며 물었지만, 제논은 나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 눈빛에는 어째선지 원망이 조금 담겨 있어서, 가슴 한 구석이 괜스레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괜찮았어. 그런 욕 한두 번 먹은  아니니까. 근데 너는 왜 거기서 나선거야? 알레리아는 카르멘보다도 훨씬 꼬인 곳이야. 괜히 이상하게 엮였다간 또 네가 다칠 수도 있어.”
“네가 욕먹고 그렇게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그냥, 내가 욕먹는 거에 신경 쓰지 마. 너만 괜히 스트레스 받잖아.”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속에서 감정이 울컥, 하고 솟는 것만 같았다. 맨날 나 구하려다 다치고,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을  때문에 싸우고, 그럼에도 아무말 안하는  너였는데.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후우, 제논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달래듯 말을 이어갔다.

“...아이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내가 카르멘가에서 받는 취급은 네가 아는 것보다 더 심할 수도 있어. 이런 건 내가 감내해야 되는 거니까, 그냥 모르는  해줬으면 좋...”
“내가 어떻게 몰라...?”

주륵, 눈에서 무언가가 흘렀다. 가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던 무언가가 머리끝에 닿아, 마치 비가 내리듯 그렇게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네가 어떤 취급을 받는 지 어떻게 몰라.  이야기를, 몇 년동안 보던 사람이 나였는데.
다른 사람이 네 이야기를 재미없다며 그만 봤을 때, 묵묵히  년을 따라가며 함께 슬퍼하고 화냈던 사람이 나였는데.

“제논, 네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내가 너를 훨씬 오랫동안 봐왔어. 내가 어떻게 그걸 몰라. 내가! 어떻게, 네가 얼마나 아파하는지 몰라!”
“그게 무슨...”
“네가 욕먹으면, 나도 아파. 네가 맞으면, 나도 아파. 맨날 다른 사람만 신경 쓰고, 왜 정작 너는 신경을 안 쓰는 거야? 네가 이능 쓸 때마다 몸에 무리 가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맨날 웃고 있고!”

마루더즈와 싸울 때도, 제논은 온 몸에 화상을 입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지었다.
정작 내가 없을 때면 몸을 비틀며 잠도 제대로 못 잤으면서.
항상 아침에 찾아가면 그 퀭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때마다 얼마나 신경 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논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제논이 저렇게  건 내 탓이었으니까. 그 죄책감이 나를 짓눌러 아프게 만들었다.

어쩌면 내가 더 강해지려 하는 것은, 더 이상 제논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인 한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강해져서, 누군가에게 상처입지 않을 만큼 강해진다면. 더 이상 제논이  구하겠답시고 다치는 일이 없어질 테니까.

제논의 이능은 아직 미숙했다. 폭발을 내부에 일으켜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분명 효과가 없진 않아도 리스크가 확실했다.
그런 걸 계속 써가면서도,  항상 나만 신경 쓰는 건지.

...나는, 그런 점이 싫었다.

그 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줬으면, 그걸 보는 내 입장도 생각해줬으면.

하지만 제논은 늘, 자기보다 나를 먼저 생각했다.

“나는, 네가 그러는 게 정말...싫어. 미워, 제논.”

꽉진 주먹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울음으로 잔뜩 망가진 얼굴, 잇 틈새로 겨우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나는 제논에게 말했다.

그 뒤로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울었지만.

제논은 그저 멍한 얼굴로.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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