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습격은 싫어(1)
“준비는.”
“완벽해요, 당장 쳐들어가도 교수들은 전부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적막한 공간, 4개의깃발이 휘날리는 아카데미 아래에 있는 숨겨진 방 아래에 수십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각자의 목적을, 원하는 것을 떠올리며. 그 눈빛을 반짝인 채 때를 기다린다.
‘M’이라는 엠블럼을 가슴에 찬 인원만 수십 명
, 전부 마루더즈의 간부진인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푸른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리며, 이내 그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모두 모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카르멘가의 이름으로, 저는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드릴 것은 약속했습니다."
그녀의 팔이 허공을 휘저으며, 사람들의 몸동작이 정연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악단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그녀는 마루더즈의 간부진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바로 오늘. 트라이앵글 친선전이 열리는 그 사이에 우리는 아카데미를 습격합니다.”
헤라 카르멘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염원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 아니던가.
에드윈 카르멘, 그는 자신의 아버지였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애초에 자신보다 우월한 이들을 싫어하는 그녀였기에,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조차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아이샤 이리안도, 제논 카르멘도 전부 같은 이유로 싫어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 설령 지금의 자신보다는 못할 지라도 결국 언젠가는 자신 위에 설 이들 이었다.
그렇다면 그 싹을 잘라내는 것이 옳을 터.
언제나, 자신의 위에 서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했기에.
헤라 카르멘은 히어로가 아닌 길을 선택했다. 보다 쉽게, 그리고 빠르게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선택.
빌런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자신보다 더 나은 이들을 없애리라.
마루더즈와 손을 잡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나타난 조직, 그리고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힘이 필요했던 자신.
트라이앵글이 열리는 아카데미를 습격한다면, 그 이름을 알림과 동시에 경쟁자들을 제거 하는데 최적의 무대가 아니던가.
푸른 연기가 새어나오는 시가를 입에 문 그녀의 입꼬리는, 기괴하리만치 올라가 있었다.
#
돌로 만들어진 그 길을 걸을수록,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친선전의 시작, 1학년 탑인 나와 트라이앵글 3학년 탑인 투랄리온의 친선전.
설령 목숨을 걸고 싸우는 무대가 아닐지라도,
전력을 다해 싸우는 무대가 친선전인 만큼 사람들의 기대치는 프로 히어로들에게 가지는 그 것 이상이었다.
게다가 이 친선전에는 부가적인 요소가 하나 더 있으니,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 내기의 내용을 알고 있을 터였다.
쩌저적-
월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부터 힘을 전부 끌어내 사용하는 식의, 그런 소모전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게 낫겠지.
최대한 효율적인 방식으로, 설령 상처입힐 수 없다해도 약점을 찾아내는 그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게는 비장의 수까지 있었으니까.
여신의 눈물을 사용하고 반동이 언제쯤 올지는 몰라도, 반동이 오기 전엔 확실히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4번 검을 꺼낸다면, 아마 투랄리온이 가진 증강계가 더욱 강화된다 한들 깨부술 수 있을테니까.
“후우...”
어느덧 다다른 경기장의 문 앞, 두근거리는 심장을 차츰 가라앉히며, 천천히 문을 잡아당겼다.
와아아-!
귀를, 피부를, 더 나아가 온 몸을 감싸는 함성 소리에 움찔하기도 잠시.
고개를 들어 관중석을 살펴보았다. 제논이 혹여나 있을까, 나를 지켜보고 있을까.
하지만 없었기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 앞에서 나를 오만한 얼굴로 바라보는 투랄리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도망치지는 않았네. 나는 기권할 줄 알았는데.”
“......”
구태여 말 섞지 않는다. 괜히 저 사람과 말을 섞었다가는, 오히려 감정이 격해질 따름이었다.
격해진 감정은 이능의 증폭을 불러온다.
그리고 이능의 증폭은, 내가 애초에 세운 계획을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문답무용.
오로지 그 단어를 떠올리며, 월야의 형태를 다듬었다.
공격력은 낮추되, 그 속도를 강화하는 쾌검. 밤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처럼, 내가 휘두르는 검을 감히 포착할 수조차 없도록.
검신은 얇아지고, 이내 찌르는 것에 초점을 둔 검으로 화한다. 사브르, 오로지 민첩함과 반사신경으로 이뤄지는 종목.
이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안해낸 일종의 편법이었다.
이능으로 소모되는 정신력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아이샤가 지닌 검술의 재능을 최대한 이용하는 방식이었기에.
어쩌면 이능으로 한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과연, 그렇게 싸우는 건가.”
고개를 끄덕인 투랄리온의 몸이 백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얗게, 발 끝에서부터 천천히 변하는 그 몸은 이내 반짝이기 시작했고, 이내 반투명한 보석이 몸에서 솟아나와 전신을 뒤덮었다.
금강석, 최대의 경도를 가진 광물.
증강계라 했기에 단순히 신체를 강화하는 건 줄 알았더니, 설마 자신의 몸을 광물로 덮는 거였나.
이러면 증강계가 아니라 이형계잖아.
고민은 짧았다. 지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필요치 않았다.
아무리 경도가 높다한 들, 금강석은 그만큼 충격에 약했다.
일단 조금 공격을 파악한 뒤, 힘을 최대한 사용해 몸 전체를 깨부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화르륵-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에 하나둘 불이 붙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리고 마지막 성화에 불이 붙었을 때,
쿠웅-
대지를 울리는 진동과 함께,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온 투랄리온.
아직까지도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그 오만함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 돌진의 기세를 꺾기 위해, 월야를 수없이 휘두른다. 발을 타고 차오르는 기세를 팔에, 거기서 이어 검에 담아.
사람이 돌진할 때 힘을 싣는 부위는 역시나 발이었다.
땅을 박차고 흘러나오는 기세를 그대로 몸에 옮기는 것이기에, 내가 집중적으로 노리는 부분은 하체였다.
틱- 틱-
물리적인 공격쯤은 우습다는 듯, 공격을 무시한 채로 그대로 돌격하는 투랄리온.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천천히 하체를 공격한다.
지금의 내 공격 하나하나가 그리 큰 타격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위력보다는 속도에 집중한다.
가랑비가 옷을 적시듯, 수백 년에 걸쳐 흐르는 물이 결국 태산을 깎아내듯.
하나의 찌르기가 일점을 공략할 때, 종래엔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주춤,
“...음!”
그육중한 몸으로 나를 덮치려 끊임없이 돌격하던 투랄리온이 멈칫한 것은 정말 찰나였다.
눈조차 깜빡이지 못할, 아주 찰나의 순간.
허나 그 속도에 반응한다.
그 찰나를 노리기 위한 공격이었기에, 이능이 아닌, 내 신체가 지닌 잠재력을 쥐어 짜낸다.
찰나를 넘어서, 어떠한 신경도 감히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최선의 공격을 만들어낸다.
아이샤가 다루는 검술은, 마치 하나의 춤과 같다.
첫 동작이 끝 동작과 이어지며, 그 동작을 계속하여 반복해낼 수 있는 하나의 검무.
하늘에서 눈이 휘날리는 것처럼 부드럽게, 거친 눈보라가 세상을 휘몰아치는 것처럼 날카롭게. 거대한 얼음처럼 무겁게, 가벼운 눈덩이처럼 가볍게.
쾌와 둔, 유와 강의 묘리가 모두 담긴 고유의 검술.
그리고 그 중 가장 처음 펼쳐지는 동작.
곧게 뻗은 검으로 상대를 찌르는 것이 끝이지만, 그 찌르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담아낸다.
보이는 형태는 일부분, 허나 숨겨진 것은 그 이상. 마치 빙산의 일각을 보는 것처럼, 공기를 찢으며 월야는 나아간다.
첫 번째 춤사위, 일각(一角).
쐐애액-
“...!”
금강석, 월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것이 맞겠지만.
이 하나의 찌르기의 충격량은 여지껏 해왔던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투랄리온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그 예상치 못한 충격에 뒤로 물러났다.
“이건 뭐지? 반응도 못할 뻔 했잖아...”
하지만 얕았다.
그 찰나를 노렸음에도, 금강석이 지닌 경도가, 투랄리온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반사신경이 공격을 어느 정도받아낸 탓에 흠집만 냈을 뿐 금강석을 부수지는 못했다.
씨익, 다시금 올라가는 투랄리온의 입꼬리를 보며 월야를 거두었다.
이대로는 내 힘만 빠질 터, 처음에 세웠던 계획은 아무래도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춤사위마저 사용했건만, 고작해야 흠집을 낸 것이 전부가 아닌가.
3번 검은 배제한다.
사복검의 특성상 리치를 벌리며 공격하기엔 괜찮겠지만, 그래도 유효타를 먹이기엔 힘들겠지.
지금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파괴력은 역시 태동이었다.
쩌저적-
월야를 사용하며 곳곳에 흩뿌려진 한기를 다시금 빨아들이며, 내 몸 만큼이나 거대한 대검을 만들어낸다.
마루더즈와 싸운 뒤로 한 층 더 매끄러워지고, 단단해진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자 투랄리온의 얼굴에서 일순간 긴장이 역력한 기색이 엿보였다.
단 번에 끝낸다.
여신의 눈물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온 몸의 이능을 전부 끌어낸다.
투랄리온의 속도는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다.
방어력과 힘이 상당한 탓에 그 기세에 압도당하는 것 뿐. 전력으로 휘두르는 태동을 피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피어나는 얼음들을 다시금 태동으로 집어넣고, 그 얼음을 다시금 압축시킨다.
우웅-
한계까지 압축된 얼음이 작게 떨리고, 이제는 들기 조차 힘든 대검을 양손으로 꽉 쥔 채, 그대로 투랄리온을 향해 달려갔다.
“...아무래도, 친선전은 끝이군.”
허나 투랄리온은 그 공격에 대응하지 않았다.
마치 그 공격을 그대로 받으려는 것처럼. 방어 자세조차 취하지 않은 채 진각을 밟으며 달려오는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아까의 그 기세도, 적의도 없는 그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투랄리온의 손에서 나온 물체에 내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검은색의 시가, 이윽고 불이 붙여진 그 시가에서 푸른 연기가 내뿜어져 나왔을 때.
내 입에서는 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마루더즈.”
“빙고.”
익살스럽게,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는 투랄리온을 바라보자.
그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소리쳤다.
“이제, 트라이앵글 행사는 끝이야!”
콰아앙-
그와 동시에 터져나가는 경기장의 창문들. 그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수십 명의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색의 머리카락까지.
“...헤라 카르멘.”
그 이름을 중얼거리며, 나는 지끈 거려오는 관자놀이를 눌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