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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습격은 싫어(2) (62/115)



〈 62화 〉습격은 싫어(2)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카데미, 거기에 트라이앵글 행사가 열린 아카데미였다.
경비는 그 만큼 삼엄하고,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여기가 안전하지 않으면  어떤 곳이 안전할까.

게다가 레이 마이어가 있는 곳이기에 솔직히 마음을 놓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
교장도, 그리고 일반적인 교수들도 다들 실력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빌런의 침입따위야 단숨에 찾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일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태동을 쥔 손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번 한계에 닿을 만큼이나 부은 힘.
 이능이 모두 담긴 태동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당황과 분노가 치솟아 이미 진탕이 되어버린 뇌 사이에서, 시냅스와 시냅스 사이를 타고 전해지는 사고들이 미친 듯이 충돌하고 있었다.

판단해라, 아이샤.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3학년 탑이 둘, 그리고 당장 보이는 마루더즈의 간부들만 수 십명.
물론 다른 학생들이 어느 정도 간부들을 상대로 맞서고는 있었지만, 그마저도 서서히 무너질 것이 뻔했다.

“푸흐, 아이샤. 오랜만이야?”

그렇게 내 몸을뒤덮은 상념 위로, 헤라 카르멘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늘 그렇듯 여유로운 태도, 상대를 사람으로조차 보지 않는 듯한 특유의 눈빛.
허나 잔뜩 충혈된  눈은, 그녀가 이미 약에 취해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선배라고는 끝까지 안 불러주네. 그래도 뭐, 이젠 별로 신경쓰진 않아.”

푸흐, 라며 특유의 웃음을 흘리던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주위를 물로 덮기 시작했다.
대화가 끝나면, 곧바로 나를 공격하기라도 할 것처럼.

내가 그녀를 쏘아보자, 그녀는 입꼬리를 더욱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이샤, 화났어? 예상은 했을  같은데. 설마 내가 아카데미를 습격할 줄은 몰랐나.”
“당신 아버지 이름이 워낙 유명해서요. 설마 하긴 했는데.”
“괜찮아, 에드윈 카르멘도 죽일 거니까. 이제 내가 빌런이란 게 밝혀져 봤자, 에드윈 카르멘이 기자회견열고 머리 한  박으면 끝나는 일이야. 그 사람 평판이 조금 깎이긴 하겠지만, 뭐...내가 신경 쓸 일인가.”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도 않나 보네요.”

그리고 그 말에 헤라 카르멘은, 아주 밝게,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잖아.”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단 하나의 미련조차 없어보여서.
순간 등골을 타고 오싹함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아닌, 이제는 완벽히 적으로 여기는 기색이 아니던가.
도대체 얼마나 열등감을 지녔으면, 사람이 저런 생각을 할 때까지 변하는 걸까.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저 여자와 대화할수록, 점점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타개할 수를 떠올리는 것에 집중했다.

투랄리온과 헤라 카르멘, 양쪽다 트라이앵글과 아카데미의 3학년 탑의 실력을 지니고있었다.
물론 거기에 이능 증폭제를 들이 마신 것까지 생각해 본다면, 아마 그 실력보다도 훨씬 더 상승되어 있는 상태겠지.

마루더즈의 브루노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내가 한계 이상으로 뽑아냈던 이능보다도 강력했던 불꽃을 상상해보면...

역시, 지금 상태로는 무리였다.

하지만 지금 서포트 아이템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지금   사람 이후의 일을 생각해야 했다.

“...교수들도.”
“마루더즈 전원이 이능 증폭제를 마셨으니까. 친선전을 참관하는 교수들이 모여봤자, 당장 시간을 끄는 것 외에는 무리겠지. 푸흐.”

당장 친선전을 진행하기 위해 있던 교수들도, 마루더즈 간부진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레이 마이어도, 교장도 여기의 소식을 전해들으려면 꽤 걸리겠지.
아니, 당장  소식을 알아챘다 하더라도, 항상 최악을 염두해야했다.

교장이나 레이 마이어가 당장 올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잡고 있던 태동에 다시금 이능을 쏟아부었다.
코에서 피가 흐르고, 이내 귀에서 피가 흐를 만큼이나.

내 최대한, 내 한계까지 이능을 쏟아 붓는다. 여신의 눈물을 사용하는 것은 일단 나중의 일이었다.
이 일격으로 얼마나 피해를 입힐 수 있을지 상정한 뒤의 일이어야 했다.

만약 여신의 눈물을 사용하고, 4번 검을 뽑아낼 수 있다면.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해낼 수 있을지가 거기에 달렸으니까.

우우웅-

더 이상 얼음이 피어나지도, 그렇다고 푸른색으로 빛나지도 않는 적막한 태동이 작게 떨었다.
이제는 태동이라는 이름이 우습게도, 완벽히 죽어버린 검.
허나 그렇기에, 태동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지도 몰랐다.

죽음이라는 이름 위에서 피어나는 생명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것일 테니.

까맣게 변한 검에서 다시 얼음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죽어버린 얼음 위로, 다시금 새로운 얼음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내 사방을 덮어, 상대를 구속하고, 자신의 참격을 받아내기 위한 가장 완벽한 형태로 만들어낸다.
이 반경을 모조리 구속하는 얼음. 사슬과 송곳으로 이어진  얼음의 결계 속에서, 태동이 천천히 부유했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푸른 색채를 머금어 휘둘러지는 하나의 선.

친선전의 무대를 가르듯, 천천히 공기를 휘저어 그 선을 공간에 새겨 넣는다.

여름이라는 계절,  계절마저 압도하는 한기.
초록빛의 물결이 얼음에 뒤덮여 어느덧 새하얗게 변하고, 그렇게 다시금 겨울이 찾아온다.

두 번째 춤사위, 사계(四季).

헤라 카르멘을 덮고 있던 물을, 투랄리온의 몸을 가린 금강석을 깨부수고, 참격은 나아간다.

투콰가강-!

전력이 그 둘을 강타하고, 굉음과 함께 뿌연 운무가 사방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가려진 시야, 태동이 공중으로 흩어지며, 나는 부들거리는 팔을 붙잡은   연무를 바라보았다.

공격이 먹히는 느낌은 들었는데...

과연 타격이 있었을까.

허나 그 생각은, 연무가 순식간에 흩어짐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 사이에 보이는 둘의 모습이 너무나도 멀쩡해서. 나는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하아.”

예상은 했지만, 아예 피해를 입히지 못할 가능성도 상정하긴 했지만.
막상 그 모습이 눈 앞에 펼쳐져 있으니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 나를 보던 투랄리온이 내게 손을 뻗었다.

“아이샤 이리안, 그냥 항복하지? 항복하고 차라리 마루더즈에 합류해라. 그렇다면...”
“...닥쳐.”

부들거리는 손으로,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투랄리온을 쏘아보았다.
그럴 바엔 혀깨물고 죽지, 마루더즈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 알고 있었는데.
거기에 합류하라니, 게다가 제논을 노리는 조직이었다.

주인공과 적대하는 조직이라니, 그런 미래 없는 조직에 합류할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을까.
나중에 조직의 간부진이 거의 괴멸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좋은 조직이라 한들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여유롭던 투랄리온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헤라 카르멘의 물줄기가 점차 날카로워지는 것을 바라보며 곧이어 다가올 공격을 생각했다.

아마나를 죽이려 하는 공격이겠지.

내가 저들이었어도, 이미 힘이 빠진 나를 죽이는 것에 초점을 둘 터였다.
회유도 통하지 않고, 자신들에 대한 완벽한 적의를 드러냈으니.
거기에 헤라 카르멘이 맘에 들지 않아 하는, 자신 보다 뛰어난 사람이 바로 나였기에.

곧이어 내게 쏘아질 공격들은 이제 내 생사를 가를 공격이었다.

품속에 있는 여신의 눈물, 어지간해서는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는 정말 사용해야겠지. 그 푸른색의 돌을 꺼내어 손에 부드럽게 쥐었다.

서포트 아이템을 사용하는 방법 따위는 잘 몰랐다.

다만, 하나 아는 것이 있다면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호응한다는 것.
그것이 서포트 아이템이 지닌 한계가 허용한다면, 사용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있었다.

쩌적-

푸른 돌이 갈라지며, 거기서 새어나오는 기운이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피부에 스며들어 혈관에, 혈관으로 타고들어간 기운은 박동하는 심장에 자리잡는다.

두근-

심장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기운, 몸을 감싸던 피로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감히 무어라 할  없을 만큼이나 강렬한 충족감이 자리 잡는다.

사용할  없으리라 생각했던 기술들이, 당장 구현조차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신화들이 이제는 할 수 있다며 온 몸에서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하.”

그 고양감에 몸을 맡기기도 잠시,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며.

여지껏 꺼내 보이지 못했던 검을 꺼낸다. 월야, 태동, 수라를 넘어서는 그 검을, 이제는 꺼낼 수 있을테니까.

쉬이익-

몸에서 흘러나온 얼음이 작디작은 검을 만들어낸다.
얼핏 보면 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만큼이나 초라한 검. 검을 쥐기 조차 힘든 손잡이에, 누군가를   있을지 의심이 가는 얇은 검신.

투랄리온이 그 검을 보며 광소했다

“하하하하! 도대체 그런 검으로 뭘 하겠다는거야. 아이샤, 이젠 정말 포기해라. 네가 우리 둘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대기를 찢고 가르는 소리와 함께 투랄리온의 몸에 붉은 선이 생긴다.
하나가 아닌, 무수히 많은 수의 실선들.
그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바라보던 투랄리온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지?”

보지 못한 게 당연했다. 어쩌면 너무도 사소하고, 극히 미약한 공격이니까.
설령 육감이 발달한 투랄리온 일지라도 반응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보기에 부드럽고, 가냘고, 얄팍하기에.

보는 이의 방심을 부른다. 하지만 그 검이 부르는 공격은 결코 미약하지 않았다.
마치 뇌 한켠에 남아 평생을 괴롭히는 기억처럼. 우리가 아련하다 부르는 그 감정처럼.

아무리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 실상은 결코 사소하지 않기 때문에.

원작에서 아이샤는 이 네 번째 검을,

아련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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