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습격은 싫어(3)
“...부끄럽군.”
“제 실책입니다. 학교의 경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아닐세, 설마 카르멘가의 아이가 이런 짓을 벌이리라고는...상상치도 못했으니.”
“아마도 학교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학생 전원과, 교수 일부를 노리는 행위 같습니다.”
“...마루더즈라고 했나. 꽤 재밌는 조직이던데. 교수들이 감당할 깜냥은 되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노인은, 매우 불쾌한 듯 눈썹을 일그려트렸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일이라니, 아카데미의 주인으로써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 아니던가.
실책이고, 어쩌면 큰 사건으로 번져나갈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교수들의 수준이 괜찮다 하더라도,
특히 레이샤라며 자신의 정체를 속인 채 학교에 근무하는 레이 마이어가 빠진 지금의 아카데미라면,
마루더즈같은 대규모 빌런 조직을 퇴치하는 것에 애로사항이 꽃필 게 분명했다.
두두두-
단순한 분노, 한 대상을 향한 지엄한 분노였음에도 진동하는 공간.
같은 곳에 서있는 남자의 몸이 그 진동에 떨려 감히 서있을 수 조차 없게 되었을 때.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진동이 멎었다.
“아무래도 내가 가서 정리해야 겠군. 최대한 빠르게, 신속히 이동한다.”
“...5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럼 학생들이 죽겠지. 3분으로 줄이게.”
“알겠습니다.”
노인이 입을 열자,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어디론가로 다급히 숙였다.
“카르멘...그 애송이가 꽤 많이 나태해졌구만. 이젠 자기 자식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다니.”
혀를 차던 노인은 이내 방문을 빠져 나갔다.
아카데미의 로고, 시민을 수호하는 히어로의 상징인 S가 그의 가슴팍에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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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랄리온은 보지 못했다. 아이샤가 내지른 그 검의 편린을, 감히 포착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그저 자신의 몸에 새겨진 붉은 실선과 흐르는 피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을 뿐.
‘도대체 어떻게?’
그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금강석을 뚫은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아티팩트를 사용했으리라, 헤라 카르멘에게 이미 들었던 내용이기에 충분히 숙지하고 있던 내용이었고.
그녀에게 쥐어진 여신의 눈물이 제 성능의 1할조차 발휘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오로지 사용자의 잠재력만을 끌어낼 수 있는 아티팩트.
일시적으로 미래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아티팩트. 심지어 그 마저도 약화시켜 가져다 준 아티팩트 였을 텐데.
어째서 자신은, 그 공격을 감지조차 할 수 없는 것인가.
헤라 카르멘에게 무어라 물으려 했지만,
그녀의 얼굴 또한 딱딱히 굳어있음을 확인했을 때 이미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감을 깨달았다.
아마 그녀가 상정했던 아이샤 이리안의 전력은 이보다도 훨씬낮은 거겠지.
애초에 이런 힘과 속도를 낼 수 없을 만큼이나.
“젠장.”
그로써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능 증폭제를 마시기 전 상태라면, 그녀의 일격에 단숨에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의 연속된 타격은 투랄리온의 몸에 착실히 충격을 쌓아나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당했던 그 일격, 비록 금강석은 버텨냈지만 내부에 터져나간 충격으로 내장이 뒤집힌 지 오래였기에.
이 이상 장기전은 무리였다.
그렇기에 일부러 헤라 카르멘의 등장조차 앞당기며 아이샤 이리안을 제압하려 하지 않았던가.
허나 이제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장기전이 불가능한 현재 상황에서, 이리 압도적인 힘을 가진 그녀를 속전속결로 끝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까드득-
투랄리온은 이를 악물었다. 알레리아의 장남으로써, 누군가에게 패한다는 치욕을 용납할 수 없었다.
빌런과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가문에서 치욕스러워 할 것이 분명했건만, 그렇게 힘을 빌렸음에도 패한다니.
자신이 여지껏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던가.
분노로, 수치심으로 물든 감정은 이내 이능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몸을 꿰뚫고 솟아나온 금강석이 얼굴을, 이내 몸을 빈틈없이 덮기 시작했다.
광물로 뒤덮인 신체, 허나 그럼에도 유연한 관절이었기에.
그는 일시적이나마 자신의 옛 경지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거라면 가능하다. 그는 몸에서 넘치는 힘을 느꼈다.
마치 산을 잡아먹는 화마처럼, 모든 것을 일시에 불태우는 강력한 불길처럼.
몸을 휩싸는 에너지가 심상치 않음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헤라 카르멘또한 자신의 이능을 최대한으로 전개했다.
‘여신의 눈물’이 가지는 능력의 특성 상, 곧 아이샤 이리안에게 반동이 찾아올 것이었다.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힘을 견뎌 내고, 반동이 찾아올 때 쯤 공격한다면 손쉽게 제압할 수 있을 터.
그녀의 눈썹이 작게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일의 진행이 시원치 않았다.
마루더즈의 간부진들을 상대로 교수들이 잘 버티는 것도 그랬고, 당장 이 아이샤 이리안을 곧바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부터.
원활하게 처리될 거라 생각되었던 작전이 이리 차질이 생기다니.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게다가 아이샤 이리안 말고도 처리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지 않던가.
제논 카르멘, 그에게 마루더즈의 간부진을 몇몇 보내긴 했지만. 아마 제대로 처리 됐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혼자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그런 상황을 전부 극복하던 녀석이 아니던가.
‘일단, 아이샤 이리안부터 처리하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여자부터 처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헤라 카르멘은 아이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능이 감정 상태에 기인하는 만큼, 그녀의 감정을 흔들면 그 반동이 조금이나마 빨리 찾아올 거란 판단이었다.
“제논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 거란 생각 해봤어?”
“...제논?”
순간, 아이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본 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역시나. 아이샤 이리안이 제논에게 품는 감정이 단순하지않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투랄리온의 친선전 신청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혹시나 하고 던져본 말이었는데.
잠시나마 멈칫거린 아이샤를 향해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가 하는 친선전인데, 제논은 지금 이 자리에 없지. 아마 지금쯤 마루더즈의 간부들과 싸우고 있지 않을까.”
“......”
이어지는 침묵, 헤라 카르멘은 아이샤가 매우 혼란스러워할 거라 생각했다.
아마도 이 싸움을 빨리 끝내려, 그 행동에서 조급함이 묻어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토옥-
아주 작은 물줄기, 그 것이 투랄리온과 닿았음을 확인한 동시에 그녀는 몸을 움직였다.
물을 회전시켜 만들어낸 창. 그 창을 수십 개, 수백 개를 만들어 내어 아이샤를 향해 던졌다.
그녀가 보낸 물줄기는 일종의 신호, 수백 개의 창으로 아이샤의 시야를 가리면 투랄리온이 이어 공격해낼 것이라 생각했다.
촤아아악-
수백 개의 물이 아이샤에게 닿아 터져나가고, 그녀의 시야가 가려졌음을 확인한 헤라 카르멘은고개를 돌려 투랄리온을 바라보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아이샤에게 닿아 공격 했으리라.
허나,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인 것은.
이미 무참히 베여져 의식을 잃은 투랄리온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녀의 머릿속은 이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까 베이는 것을 보이긴 했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능을 한층 강화한 것이 투랄리온이었다.
이제는 그 공격을 견뎌낼 수 있는 게 분명했을 텐데.
녹색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을 때, 그녀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그러더라.”
아까와는 달리 떨리지도, 그렇다고 약간이나마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는 아이샤 이리안.
그녀를 바라보는 헤라 카르멘의 몸이 흠칫, 하고 떨렸다.
“내가 믿지 못하면, 누가 제논을 믿겠냐고.”
“...하.”
“이상한 말해서 사람 흔들어 놓으려 하는 수가 빤히 보여, 설령 네가 하는 말이 진짜여도. 내가 가서 구하면 돼. 이제는 내가 구해줄 거니까.”
그리고 아직 사과를 못했거든, 그렇게 말하는 아이샤를 바라보며 헤라 카르멘은 다시금 물줄기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가진 이능을 전부 쏟아내서라도 아이샤를 잡아내야 했다.
제논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샤 이리안 만은 잡아내야 했다.
그렇게 뿜어내는 물은, 이내 거대한 용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지난 제전에서 만들었던 것보다도 더욱 거대하고, 강력한 용.
사방으로 흩날리는 물이 기류를 만들어내 주변을 휩쓸고, 이내 그 포악한 눈동자를 반짝였다.
이능 증폭제를 수없이 들이 마셨다.
이제는 자신이 아이샤보다 강한 것이 분명할 터. 지금 그 싹을 잘라야 했다.
‘죽여야 해. 반드시.’
용의 살점을 뜯어내는 보이지 않는 참격을 느끼며, 그녀는 아이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일말의 자비조차 담기지 못한 그 광오한 공격을 쏟아내었다.
제전에서 쏟아내었던 물줄기와는 달리 그 굵기도, 위력도 천지차이였다.
분명히 맞는 순간 절명할 게 분명했다.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물줄기를 바라보는 아이샤를 향해, 헤라 카르멘은 기괴하게 웃어보였다.
‘내가 이겼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군. 학생들은 말이야.”
허나 물줄기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작은 물기조차 남기지 않은, 허무하리만치 끝나버린 공격.
한때 뿜어졌던 물이 공중으로 흩어져 이내 작은 물방울만 남았을 때, 그녀는 방금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흰색의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채, 자신을 향해 타오르는 눈빛을 보내는 노인.
그 눈빛에 담겨있는 분노에 헤라 카르멘은 순간 뒷걸음질쳤다. 분명히, 아카데미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다 들었는데.
어떻게, 저 사람이.
그 말만을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그녀에게,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선언한다. 오늘부로 3학년부 헤라 카르멘의 제적을, 내 권한으로 인정하지. 반론은 받지 않겠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는 건 오히려 내가하고 싶은 말이군. 도대체 무슨 수로 아카데미의 경비를 뚫은 거지? 네 아버지는 알고 있나?”
그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강렬한 투기에, 헤라 카르멘은 전의를 상실했다.
그저 이 상황에서 벗어나 살고 싶다는 생각만이, 새하얗게 질린 그녀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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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카르멘을 제압한 노인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볼 때와는 달리 아무런 적의도 없는 따스한 시선.
오히려 호의와 미안함을담고 있는 그 시선을 멍하니 마주치자,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게 됐구나. 내 실책이야, 내가 조금이나마 빨리 알아챘더라면 네가 이리 무리하지 않았을 텐데.”
“...어, 혹시 교장 선생님?”
“다행히 알아봐 주는 구나. 입학식 때 한 번 보고 나올 일이 없어 잊을 줄 알았는데.”
푸근한 미소를 지은 교장은, 이내 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신경 쓰이는 구석이 있나 보구나. 여긴 내가 처리 할 테니까, 네가 떠올린 그 사람한테 가보렴.”
“네, 네?”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퍽 소중한 거 같아 보여서 말이다.”
...확실히, 아까 헤라 카르멘의 말을 듣고 머릿속이 살짝 혼란스러워 진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제논을 믿고 있다 하더라도, 아예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만약 위험한 상황이라면, 이번에는 내가 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사과하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네가 미운 게 아니라고.
날 바라보는 교장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나는 곧바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