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습격은 싫어(4) (64/115)



〈 64화 〉습격은 싫어(4)

경기장을 빠져나오며, 가볍게 내 몸상태를 확인했다.
여신의 눈물을 사용하면 반동이 찾아온다고 했었나, 아직까지 몸에 반응이 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동이 오기까지의 시간이 그리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생각보다 아련의 위력이 더 뛰어나 투랄리온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제압당했으니, 헤라 카르멘도 정신을 조금만 늦게 차렸더라면 금방 제압할 수 있었겠지.
뭐, 아련을 꺼낸이상 헤라 카르멘이  이상 무슨 수를 쓴다하더라도 잡을 수야 있었겠지만...

아카데미의 교장이 나타나는 바람에 훨씬 힘을 비축할 수 있었다.
감이지만, 앞으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한 10분 정도가 아닐까.
제논을 빠르게 찾는다면, 마루더즈의 간부진들을 쉽사리 제압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능이 증폭된 지금 내가 가진 힘이란, 니플헤임을 발현시켰을 때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이었으니.

타다닥-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믿어도, 내가 제논을 믿겠다고 마음 먹어도 걱정이 되는  사실이었으니까.
헤라 카르멘이  얘기를 꺼냈던 순간에  눈동자가 흔들렸던 것 만큼은 정말이었다.

당장이라도 튀어가려던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 교장이 와서 사태가 정리되긴 했지만.
상대는 이능 증폭제를 흡입한 마루더즈의 간부였다.
브루노와 크루거보다 뛰어날 수도 있었고, 그보다도 수가 많을 수도 있었다.

위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논이 내 생각보다 더 뛰어난 이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싸움이 오래 이어진다면 결국 제논이 다칠 터였다.
제논이 저번에 입원했을 때, 얼마나 신경쓰였던가. 화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침대에 제대로 눕지도 못하던 그 모습이.
그럼에도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짓던 그 모습이.

얼마나 마음에 걸렸는데.

그 바보가  그렇게 행동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야 말로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이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항상 누군가가 쓰러지고, 그 쓰러지는 누군가를 구하는, 그런 것은 더 이상 싫었다.

제발, 내가 늦지 않기를.

 소망을 담아,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었다.


#


예상은 하고 있었다. 헤라 카르멘이 무언가 수작을 부리리란 것을, 다만 그것이 단지 친선전에 아이샤가 참가하는 것에서 끝났을 거라 생각한  문제였다.
설마 트라이앵글이 열리고 있는 아카데미를 습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마이어씨가 없는 사이에 이렇게 하다니.”

이미 아카데미의 외부는 짙은 운무로 가득 덮여 있었다.
푸른색과 회색이 섞인, 꽤나 기괴한 색.

아카데미에서 무슨 난리가 났다는 것쯤은 이미 곳곳으로 퍼져나간 상태였고, 이제 문제는 헤라 카르멘이 이 일을 성사시키느냐 였다.

트라이앵글, 대삼각형을 이루는 세 학교와 중심의 아카데미가 함께 치루는 행사.

평소보다도 경비가 더 삼엄하고,  경비를 책임지는 교수진들의 수준도 평소를 웃도는 지금 이 테러를 성사시킨다면 마루더즈의 이름이 순식간에 퍼지는 일쯤은 너무도 쉽지 않을까.

그도 그렇지만, 지금 가장 놀라운 것은 헤라 카르멘이 지닌 열등감이었다.
단순히 자신의아버지를 향한 열등감에서, 자기보다 뛰어난 모든 이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이어지고.
심지어는 이제 그 싹들을 자르려 빌런이라는 길마저 택한다니.

열등감을 심하게 느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까지 번지게 될 줄은 몰랐다.

“...형은 뭐, 괜찮을 거고.”

오딘 카르멘까지 노리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그녀 맛이 반쯤 간 상태였더라도, 형을 건드리기엔 리스크가 컸으니까.
카르멘가나 투랄리온 같이 유명 히어로의 가문은 최대한 피하면서, 어떻게든 나나 아이샤같은 싹을 자르려 들 것이었다.

...아이샤.

그 이름을 떠올리자, 또다시 눈살이 찌푸려졌다.
결국 만나지 못했다. 아니, 만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겠지.

만나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그 앞에 다다라서는 말을 걸지 못했다.
대기실의 문을 열지 못했고, 경기를 직접 보려 했던 것마저 끝내 가지 못했다.

겁쟁이.

스스로를 질타하며, 아카데미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만약 내가 경기장에 같이 있었더라면, 아이샤를 노리는 이들을 더욱 빠르게 처리할  있을 터였다.

망설이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다가갈 때마다, 아이샤가 울던  얼굴이 생각나서.
또 다시 걸음이 멈춰졌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 한 마디가 뭐가 그리 어렵다고.
그  마디를 하지 못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무거웠다.

아이샤가 잘 버텨줄 수 있을까.
내가  때까지, 자신을 노리는 이들을 제압하고, 결국엔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았다.
자욱한 운무를 뚫고 나타난 3명의 인영. 가슴팍에 달려있는 M모양의 엠블럼을 바라보며,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늘 그랬다. 내가 누군가를 구하려 하면, 이렇게 장애물이 나타났다.
내 다리를 붙잡고,  소매를 잡고 늘어져 종래엔 그 무엇도 이룰  없게 하는.

“...제논 카르멘. 마루더즈의 무니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묻지만, 저희와 함께할 생각이 없습니까?”
“우리는 셋이다. 잘 생각하고 결정해라. 만약 거절한다면 너는 이 자리에서 죽는다. 그 아이샤라는 여자처럼.”
“...좆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가운데에 있는 녀석에게 조소를 보냈다.
아이샤가 죽는다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을까.
아이샤는 언제나 빛을 내뿜는 사람이었다. 한없이 어두운 장막 안에서도, 홀로 빛을 내며 일어서는. 그런 기적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없었다 한들, 언제나  위기를 타개하고 결국 이겨낼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아이샤가 죽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절망하지 않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훨씬 강하고, 또한 돌파할  없는 난관이라한들 아이샤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극복하려 했고, 늘 최선의 수를 두었다.
마루더즈를 상대할 때도, B지구와 A지구에서도. 내가 지켜봤던 아이샤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맙다.”

아이샤를 들먹인 그 순간부터, 녀석들을 향한 망설임이 사라졌다.
사람을 향해 이능을 진심으로 사용해야한다는 망설임이 사라지고, 곧이어  자리엔 마루더즈를 향한 살의만이 남아있었다.

두근-

다시금  내부에 폭발을 일으킨다.
그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혈류가 움직이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그로 인한 에너지는 근육을 배가 시킨다.
일종의 도핑이라 할 수 있었다. 내 신체가 가진 단계를 일시적으로 몇 단계 끌어올리는 행위.

물론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명을 담보로, 내 신체가 미래에 가질 활력을 끌어다 쓰는 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퍼어엉-

폭발을 다시금 검에 응축시킨다.
구태여 요란하게 폭발시킬 필요가 없었기에, 오로지 그 폭발의 힘만을 담아 휘두른다.
진각을 밟으며, 가장  기세가 약한 이에게 돌진한다.

땅을 긁으며  속에 폭발을 일으키고, 그렇게 응축된 힘을 앞으로 흩뿌린다.

“무니!”

그래, 이 사람의 이름이 무니였던가.
촤아악- 거친 소리와 함께, 내 얼굴에 붉은 선혈이 가득 튀었다.
당황과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그 표정을 바라보기도 잠시, 곧바로 목표를 바꾸며 검을 휘두른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벅찬 상태였다.
아이샤와 데이트 했을 때, 약간 사용하긴 했지만 그 때는 미세한 사용이었고 지금은 완전히  힘을 끌어다 썼기에.
아마 3분 이상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투콰앙-

단순한 진각을 밟는 동작에도, 땅이 파이고 먼지가 휘날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의 강도가 강해지고,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남은 2명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능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마도이렇게 전투에 적합한 이능은 아니리라.

“젠장, 바스타드. 이능을 사용해야  것 같다!”
“저는 피해있으면 되는 건가요.”
“최대로 늘린다. 분간  될 테니까 잠시 빠져있어!”

최대로 늘린다, 분간이 안 된다, 라.

순간 저들끼리 말이었지만, 말을 내뱉은 이의 이능이 무엇인지 금세 판단할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불리는 이능. 그러니까 분신술과 비슷한 이능이겠지.

그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분신이라면 차라리 내가 바라는 바였다.

지이잉-

내 앞에 있던 마루더즈 간부의 몸이 순간 흐릿해지더니, 그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검을 휘둘러 보았지만, 의외로   막아내는 분신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분신을 쪼갠다고 한들, 위력이 줄어들지는 않는 건가.
어찌 보면 꽤 굉장한 이능이라 할 수 있었다.
저런 인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노린다면, 아마 순식간에 당할 것이 뻔했으니까.

내 생각대로 분신술을 사용한 간부는 나를 동시에 덮치기 시작했다
. 하나같이 길쭉한 나이프를 든채로, 수 백명의 인원이 동시에 다가오는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다.
마치 거대한 벌레떼가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내 이능이 무엇인지 조금만 빨리 생각했더라면, 아마 이런 식의 공격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맞을텐데.

몸에서 일어나던 폭발의 잔재를 끌어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검에 응축하던 폭발의 에너지마저.
아무런 소리 없이 모여갔던 폭발들이, 이내 한 점에 모여 다시금 터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불꽃, 그리고 나중에는-

이 모든 분신들을 집어삼킬 만큼이나, 강렬한 화마가 되어.

콰아아앙-

브루노와 싸울  일으켰던 폭발처럼 강렬한 구름이 분신들을 덮치고, 이내 비명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내 이능이 폭발인데도 이렇게 달려들다니. 어쩌면 자신의 이능을 너무도 과신한 것이 아닐까.

이제는 새까맣게 타버린 그 간부를 바라보며 조소를 짓기도 잠시.

 멀리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 간부를 향해 검을 겨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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