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습격은 싫어(6)
제논에게 향하고 있긴 했지만, 사실 제논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다만 짐작할 뿐, 아마도 학교 밖에 있지 않을까.
내 친선전을 보지 않은 것은 뭐 그럴 수 있다 쳐도, 경기를 보지 않는 이상 굳이 학교 안에 있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지금 내가 움직이는 것은 순전히 감이었다.
내 발걸음이 이끄는 곳이, 제논이 있는 곳이기를 마음 속으로 빌며 움직이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이런 방법이 가끔 통하곤 했으니까, 이번에도 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일 뿐이었다.
“...프레이는, 괜찮겠지.”
제논 말고도 여럿 얼굴이 떠올랐다.
프레이가 데려온 시온이라는 친구도 그렇고, 프레이도 그렇고.
마루더즈의 간부진들이 작정하고 덤비면 아마 제대로 버티기도 힘들었을테니.
하지만 교장이 나타난 이상, 분명히 곧 모든 이들이 제압될 것이었다.
교장은,레이 마이어 이전 시대를 군림하던 탑히어로 였으니까.
한 학교에 탑 히어로만 둘이 있는데 그런 곳을 습격하다니, 어찌보면 헤라 카르멘의 운이 그리 좋은 것 같지도 않았다.
뭐, 사실 교장은 학교가 아닌 꽤나 먼 곳에 기거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평시에 습격하는 것보다 이런 큰 행사가 열릴 때 습격하는 것이 오히려 허점을 찌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설마 습격하겠어? 라는 빈틈을 찌르는.
교장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정말 교수진들을 싸그리 정리되지 않았을까.
아마 헤라 카르멘을 제압한 뒤에는 내 몸에도 반동이 찾아왔을테니.
그 뒤로는 마루더즈가 어떻게든 교수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아무튼 교장이 빠르게 와준 건 정말 예상 외였기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적은 희생을 치뤘다.
마루더즈가 순간 침입했을 때는,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라 예상했으니까.
원작에서 없던 전개, 만약 서포트 아이템이 없었더라면 그대로 당할 뻔했다.
제전에서부터 굴러간 눈덩이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건가.
효과도 상상 이상이었고, 내가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서포트 아이템이라 들었는데.
아련의 성능은 그야말로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그런 것이었다.
3번 검과 4번 검 사이의 경지 차이가 조금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설마 태동보다 위력이 강할 줄이야.
홀로 다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런 전투에서 압도적인 효과를 지니지 않았는가.
게다가 영구적인 강화 효과도 지니고 있었으니, 어째서 얼음을 사용하는 이능력자들이 여신의 눈물을 그리 찾는 지 알 것만 같았다.
솔직히 서포트 아이템의 효능에 대해선 반신반의 하고 있었는데, 이런 성능이라면 앞으로도 서포트 아이템을 조금 욕심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쿠우웅-
그 때, 귀를 타고 아주 약한 소음이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그런 폭발음.
가까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그 방향으로 달려가자, 과연 폭발음이 점점 커져갔다.
철과 철이 부딪히고,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또 이렇게.”
항상, 신기하게도.
제논이 어디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닿았다. 여기 있는지 확신조차 하지 못하면서.
발걸음이 이끄는 곳은, 언제나 그 곳에 제논이 있음을 의미했다.
마치 운명처럼.
그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점차 소리에 가까워질수록 이 소리가 전투를 의미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들리는 인기척은 아마도 둘, 헤라 카르멘은 여러 명을 언급한 것 같다만. 아마도 제논이 몇 명은 처리한 거겠지.
카아앙-
철과 철이 맞닿아 거친 소리를내뿜는다.
아직, 제논은 싸우고 있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아까보다 조금 더 속도를 높인다.
타다닥, 계단을 밟고, 복도를 뛰어간다.
이제는 완전히 코앞, 시큰한 쇠 냄새가 맡아짐과 동시에 어째서인지 검을 쥔 채 눈을 질끈 감은 제논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건.
남자의 가슴팍에서 M모양의 엠블럼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제논의 앞에서 느껴지는, 꽤나 둔중해보이는 무언가.
보이지는 않지만 저 무언가가 위험한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손을 뻗으며, 다시금 그 초라한 검을 불러낸다.
얇고, 가벼우며, 검 같지 않은 검. 오히려 꼬챙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련.
그 검을 쥔 채로, 제논의 앞에 느껴지는 무언가를 베어낸다.
단순한 휘두름, 초라한 참격. 허나 그 위력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기에.
서걱-
수십 번의 파열음과 함께 허공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앞에 서있던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난입한 내가 못마땅한 듯, 비틀어지는 입꼬리를 무시한 채 눈을 질끈 감은 제논을 바라보았다.
나도 전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브루노의 불길에 휩싸이며, 마지막을 기다리던 내 모습이 꼭 이랬던 것만 같았다.
그냥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그 때의 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앞에 올 충격에 대비하려고 한 건지, 몸은 긴장으로 딱딱히 굳어 있었다.
검을 쥔 두 손은 이미 피로에 절어 덜덜 떨리고있었고, 몸 상태는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여 화상 자국이 또 몸에 가득했다.
아팠겠지.
까득,
내가 그렇게 몸 상태를 신경 쓰라고 말했는데도.
하지만 제논을 탓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가슴 한 구석이 아파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나 보다.
심장을 후벼파는 그 시큰한 감각에 이를 악물기도 잠시, 눈을 서서히 뜨는 제논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논.”
분명, 만나고 나면 사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 푸른 눈동자에, 그저 미소지을 따름이었다.
왜, 웃음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그 눈에서 비치는 것이 원망이 아니어서일까. 모르겠다.
그냥, 좋았다.
포옥,
“어.”
갑작스레 나를 끌어안는 제논에게 당황하기도 잠시, 등에 둘러진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을 눈치 챘다.
놓지 않겠다는 듯 꼬옥 힘을 준 팔, 나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데 말이다.
“제논.”
“...미안해.”
또 먼저 사과한다. 제논의 가슴팍에서 고개를 살짝 들어 흘겨보자, 제논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아플 텐데도, 그 입꼬리는 또다시 호선을 그린다. 남들에게는 지어주지 않는 표정, 오직 나에게만.
그 생각에 괜스레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제 놔.”
제논의 가슴팍을 밀치자, 의외로 팔을 쉽게 허물어진다.
지금은 싸우는 도중이었으니까, 나중에...해도 되지 않을까.
“다행이야, 다치지 않아서.”
“...별로.”
힐끔, 제논의 몸에 번진 화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제논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하나도 안 아파. 이 정도는, 정말이야.”
“저번에도 그랬으면서.”
“...이번에는 진짜야.”
정말 안 아프다며 일부러 화상을 매만지려 하는 제논을 째려보며, 다시 시선을 앞에 있는 마루더즈의 간부에게 옮겼다.
저 사람의 이능이 뭘까, 천천히 훑으며 가늠하려는 그때에 제논이 입을 열었다.
“이능은 사슬을 만드는 거야. 한 100개쯤 동시에 다룰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300개는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안 보이는 사슬이라 까다로워.”
“사슬?”
아마 아까 보이지 않았던 그 묵직한 무언가가 사슬을 말하는 걸까.
파스스-
아련이 흩날려 사라진다.
몸에 감돌던 고양감이 서서히 사라지며, 두근거리던 심장이 조금씩 멎기 시작했다.
반동, 아마 그 전조인걸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반동으로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싸우기 힘든 몸 상태가 될 것이란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빨리 끝내자.”
“...그래.”
제논이 땅에 떨어져 있는 대검을 주우며 말했다.
앞으로 한 3분 정도는 움직일 수 있으려나, 월야를 만들어내며 다시 몸 상태를 확인한다.
비록 아련을 만들어낼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소보다 훨씬 활성화된 상태였다.
충분하다. 간부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처음이네.”
“이렇게 같이 싸우는 거?”
“응.”
항상 누군가 싸우고, 그 결과가 보일 때쯤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았던가.
이렇게 함께 싸우는 건, 아마 처음인 것 같았다. 뭐, 그렇다고 합을 맞출 만큼 길게 싸울 시간은 없겠지만.
“잘해.”
“...등이 조금 따끔한 것 같은데.”
능글맞게 웃는 제논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어 피식 웃는다. 핑계는.
촤아악-
주변에서 바람을 타고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게 제논이 말한 그사슬이라는 걸까. 고개를 비틀어 그 사슬을 피하면서, 천천히 그 앞을 바라본다.
아마 검으로 직접 베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사슬이 안 보이는 것도 있지만, 휘두르기에 이 공간은 너무 좁았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복도, 그 것이 사슬이란 장애물로 가려져 있었으니.
아마 제논이 쉽사리 상대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겠지.
월야를 쥔 채, 제논을 바라보았다. 파훼는 쉬웠다, 다만 이걸 쓰면 진짜 못 움직이긴 하겠지만.
“제논, 내가 던지면 터트려.”
“어?”
“보면 알 거야.”
점차 무거워지는 몸, 애써 그것을 내색하지 않은 채 서서히 사슬을 넘어 다가간다.
몸을 비틀며 마치 춤을 추듯, 내 몸을 저지하려는 사슬을 넘어선다.
힘을 아껴야 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쥐어짜내 공격해야 했으니까.
두근-
이제는 심장에서 통증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오는 반동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잠시, 이제는 간부와 완전히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월야를 던진다.
“지금!”
콰아앙-
월야를 던지고, 그와 동시에 제논이 월야가 있던 자리를 터트렸다.
흩날리는 얼음 조각, 간부에게 닿지 않은 얼음조각을 바라보던 제논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 나는 그 물음에 답하듯, 허공에 퍼진 얼음 조각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
쩌저적-
얼음이 피어난다. 작은 조각들이 마치 씨앗처럼, 천천히 펼쳐져 허공을 장식한다.
수십, 수백 개의 꽃. 허공에 흩날리는 조각들이 다시금 피어나고, 그렇게 적막한 복도를 단숨에 채워나간다.
“...아.”
한계까지 써버린 힘. 휘청거리는 몸을 벽에 기대 지탱한 채로 아까 그 간부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월야를 피했다고 생각했는지, 미소 짓는 그 얼굴 그대로 굳어버린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