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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화 〉네가 좋아(1) (67/115)



〈 67화 〉네가 좋아(1)

“괜찮아?”
“...응, 그냥 조금 어지러운  뿐이야.”

지금 당장은, 그 말을 구태여 꺼내지 않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 말할 힘조차 부족했다.
이렇게 서있는 것만으로도 피로할 정도였으니, 아마 반동이 제대로 찾아오면 며칠 누워있어야겠지.

위급할 때 사용하라는 레이 마이어의 말이 없었더라면, 아마 아까 쓰러지지 않았을까.
적절한 때에 사용한 것 같았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이야 중간에 쓰러져도 괜찮겠지.

물론 제논은 안 괜찮겠지만.

내 몸을 조심스레 부축하는 제논에게 몸을 아예 기댄 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또 한 건을 마무리 지었구나. 이제는 헤라 카르멘도 완전히 끝내지 않았던가.
 쪽 세계로 들어와서 드디어 챕터 하나를 마무리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참 남긴 했지만.”

마루더즈의 간부진을 처리했어도, 아직 꽤 많은 잔당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카르멘가도 건재했으니.


이번 헤라 카르멘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미지가 깎이기야 하겠지만,
전에 그녀가 말했던것처럼 솔직히 에드윈 카르멘이 쉽게 무너지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 제논의 목표를 이루려면 아직 한참, 그것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까지 가야 겨우 끝날 이야기겠지.
물론 지금도 베베 꼬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일단 다시 올라갈까. 교장 선생님이 나타났다면 아마 다 정리돼있을테니까.”
“그래, 그건 좋은데......”

꿈뻑, 꿈뻑.

졸음이 몰려오듯, 눈꺼풀이 엄청나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반동인가, 아프지는 않아서 좋았지만. 그래도 이대로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그...업어...줘.”
“어?”
“못 걸을  같아서 그래...업어줘.”

친선전 시작부터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나른해진 몸을 휘청이기도 잠시, 딱딱한 등에  몸이 뉘여 졌다.
익숙한 감각, A지구에서 한 번 업히고 처음이었나. 딱딱했다. 그리고, 따듯했다.

그런 감촉을 느끼며, 시야가 암전되었다.

#

“...아이샤?”
“......”

잠들었나. 내가 알던 것보다 이능이 훨씬 강력해줘서 짐작은 했지만, 아무래도 무언가 수를   같았다.
나처럼 몸에 무리가 가는 게 아니어야 할 텐데.
걱정에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곧이어 등에서 느껴지는 체온에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웃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입꼬리는 차마 주체하지 못하고 곱게 휘었다.
그래, 차라리 인정하는  낫겠지. 누군가 내 모습을 본다면 무어라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이 꽤나 반가웠다.

아이샤가 이렇게  등에 업혀 있는 게 얼마만인가.
고개를 살짝 돌리자 내 등에 얼굴을 파묻은, 그로 인해 볼이 살짝 눌린 아이샤의 얼굴이 보였다.
무리한 거겠지. 그래도 이렇게 부탁하는 것을 보면, 아예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나를 쭉 싫어했더라면 아마 꽤 크게 좌절했으리라.

네가 미워, 라는. 살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그 말이 그토록 아플 줄이야.

다시 상상해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그런 기억이었다.
하기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말이 그토록 아픈 거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인정한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이제는, 슬슬 마음을 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대로 2학기가 찾아와버리면,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접점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이제 곧이었다.

 마음이 아이샤에게 제대로 전해져 이어질지, 아니면 이대로 나 혼자만의 추억이 될지.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그 끝에는 내가 웃고 있기를.
그렇게 소망하며 천천히, 아이샤가 불편하지 않도록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네는?”
“...아, 교장 선생님.”

그렇게 위를 향해 올라가던 중, 뒷짐을 진  걸어오는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과 자세, 하지만 그럼에도 느껴지는 단단한 위압감과 기세에서 그가 교장이라는 사실을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군, 제논.”
“예, 오랜만입니다. 근데 지금은, 일단 병원으로 데려갈 사람이 있어서요.”

등에 업힌 아이샤를 힐끔 살피며 말하자,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작 치료 받아야 할 사람은 너 같은데, 왜 다른 사람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대충 알 것 같긴 하지만.”
“...그, 아이샤를 구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아니었어도, 그 학생은 충분히 해낼 수 있었겠지. 내게 감사할 필요는 없네, 내가  거라곤 그냥 뒤처리를  정도야.”

그렇게 말하며 교장은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지나가라는 듯, 몸마저 살짝 비키는 모습을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헤라 카르멘은 확실하게 제압했네. 일단 치료부터 받고 오게.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려주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일세.”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가 없었으면, 아마 아이샤가 다쳤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있지도 않았겠지. 진심을 담은 감사를 전한 뒤,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


“어머, 선생님! 여기 환자 둘이요!”

병원에 들어서자,  모습을 본 간호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이샤부터먼저 치료를.”
“아니, 당신 상처가 더 심한데 무슨 소리에요! 당장 회복실로 가세요. 다른 환자분은 그냥 지쳐 잠든 것 같으니까.”

나를 노려보며, 엄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간호사의 말에 할 수 없이 아이샤를 다른 병실에  채 회복실로 향했다.
이렇게 혼자 두어도 될까 싶지만, 날 노려보는 간호사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수 없이.

회복실에서 치료를 받자, 계속해서 쓰라렸던 온 몸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샤에겐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 안 아픈 건 아니라서.

앞으로 두어 번  치료 받아야 한다고 했었나.
아무래도 저번처럼 아이샤보다 조금 늦게 퇴원할 것 같았다.
이게 다 내가 약한 탓이지, 아이샤는 그렇게 싸우고도 그저 지친 게 전부 아니던가.

“...하아.”

그래도 뭐, 이젠 상관 없나.
헤라 카르멘도, 그리고 마루더즈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을 터였다.
전전대 탑히어로, 거기에 아카데미의 교장이 지니는 힘이란 히어로 사회에서 단순한 것이 아니었으니.


아마 한동안은 잠잠하겠지.

벌컥,

아이샤가 누워있는 병실의 문을 열자, 한 쪽 침대에 홀로 누워있는 아이샤가 보였다.
피곤했는지, 꽤 빠른 속도로 달려왔는데도 깨지 않고 쭈욱 자는 게 뭐라 해야 할까. 마음에 걸렸다.

네 마음이 조금 풀렸을까.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치는 것이 싫다고 했는데.

나는 또 이렇게 다쳐 버렸다.

솔직히 아이샤가 하는 말이 잘 이해가 되는  아니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는 내 몸뚱아리 쯤이야 얼마든지 던질  있었으니까.
다만, 이제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 아이샤 하나라는 점이었고. 내 그런 행동을 아이샤가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이샤가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도 아이샤가 다치는 것이 더 싫었다.

네가 조금 다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몇 번이고 불타는 것이 나았다.
네가 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몇 번이고 칼에 찔리는 것이 나았다.
언제나 네가 웃는 것을 바라는 것이,  욕심인걸까.

“...하하.”

잠든 아이샤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내리며, 살짝 미소짓는다.
이렇게 잠들어 있어도, 가끔 악몽을 꾸는 건지 표정을 찌푸려도.
 행동 하나하나가 좋았다. 나도 참 중증이구나.

이런 걸 볼 때면, 가끔 두려워지곤 했다.

아이샤가 내 고백을 받아주지 않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다른 남자와 함께 미소짓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면 눈살이 찌푸려졌다.

너의 마음은 순전히 너의 것일 텐데도, 그 것을 내가 독차지하려는 것을 보면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내게만 웃어줬으면, 내게만 따듯하게 대해줬으면, 그리고.

나를 좋아해줬으면.

잠든 아이샤의 손과 내 손이 맞닿는다.
저번에 입원했을 때, 아이샤가 내 손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었던 그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미소 지었다.

손을 스치는  부드러운 감각이 어찌나 잊히지 않던지.

“네 잘못이야.”

나를 이렇게 만든 것도, 내가 너를 이토록 좋아하게 만든 것도.
전부 네가 은연중에 한 행동 탓이라는 것을 네가 알고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내가 너를 어째서 좋아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첫눈에 반했던가, 아니면 나를 신경써주는 그런 마음에 끌렸던가.

그러다가 피식, 하고 실소를 내뱉었다.

사실 이유는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날이 좋을 때면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비가 오는 날이 우산을 쓰는 것처럼.
살기 위해 숨을 쉬는 것처럼, 밥을 먹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마음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해, 아이샤.”

아직은 네게 닿지 않는 그 말을내뱉으며, 가슴 속에 진 응어리를 그렇게 조금이나마 풀어 본다.




#


"...좋아해, 아이샤."


이게 고백을 듣는다는 것일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말에 순간 감정이 일렁였다.
잔잔했던 호수에 파문이 이는 것처럼, 중앙에 떨어진 고백이란 돌맹이가 만든 진동이 그렇게  몸으로 퍼져 나간다.


내가 일어나 있던 사실이 들키지 않도록,
두근 거리는 심장이, 뜨거워진 얼굴이 들키지 않도록.


그렇게 이불을 조용히 꼬옥, 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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