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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네가 좋아(3) (69/115)



〈 69화 〉네가 좋아(3)

제논도 가고, 이제는 텅 비어버린 병실. 이제는 슬슬 집에 가야할 것 같았다.
애초에 다치지도 않았으니, 그렇게 퇴원 수속을 밟고 병원 밖으로 나오자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이샤!”

머리에 솟아올라 있는 더듬이를 보자마자 누군지 알아차렸다.
하기야, 더듬이를 보고도 못 알아 채는 게 이상하겠지만.
그렇게 품속으로 들어온 프레이를 꽉 껴안자 프레이가 가슴팍에 얼굴을 부벼댔다.

“많이 다쳤던 거야? 이틀이나 학교에 안와서 놀랐다고.”
“제논이 얘기 안했어? 나 그냥 이틀 동안 푹 자다 왔어.”

분명 제논은 쭉 아카데미에 갔을 텐데, 내가 묻자 프레이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 그냥  늘어져 있어서, 뭔가 말을  수가 있어야지. 그냥 앞만 보고 멍하니 있거나 자기만 해서 그냥 냅뒀어.”
“그래...?”

아까 봤을 때는 평소랑 다를 게 그리 없었는데,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일이 있었나.
혹시 헤라 카르멘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설마 하는 마음에 묻자, 프레이는 아차, 하며 이제야 그게 떠올랐다며 답했다.

“아 맞아, 이번에 행사 도중에 테러 일으킨  헤라 카르멘이라며? 학교에 소문 벌써 다 퍼졌어.”
“혹시  사람 도망치기라도  거야?”
“아니, 교장 선생님이 직접 잡았는데 어떻게 도망쳐. 지금 아마 경찰서에 있을 걸. 아마 다음달쯤에 재판 열린다고 들었어.”

그렇다면 다행이기야 한데. 아무튼 한시름 덜어도 될 것 같았다.
만약 교장이 조금 실수해서 헤라 카르멘이 빠져나갔더라면, 다시 머리가 아파졌을 테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아직 마루더즈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는데, 거기에 이제는 완전히 빌런이 된 헤라 카르멘까지 자유로워 진다면.

이미 원작과 많이 달라진 지금 시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감히 수습조차 하기 힘든 테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근데 뭐, 헤라 카르멘이 잡혔더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면, 제논이 그렇게 침울한 이유가 뭘까.

그걸 고민하고 있는 찰나, 프레이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입을 열었다.

“아이샤, 근데 진짜 괜찮은 거야?”
“뭐가?”
“헤라 카르멘이랑, 그 투랄리온인가 하는 사람이랑 싸웠다며. 정말 다친  없어?”

그것까지 퍼진 걸까.
걱정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는 프레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프레이는 한숨을 내쉬며 내 등을 때렸다.

“아, 아파. 프레이!”
“좀 도망쳐 아이샤, 어떻게 맨날 그렇게 싸우기만 해. 듣는 사람은 얼마나 걱정하는 지 알아?”
“...알았어. 근데 이번엔 어쩔  없었어. 거기서 어떻게 도망쳐, 대놓고 날 노리는데.”
“알고 있어. 그래도 괘씸한건 괘씸한 거야.”

그렇게 등짝을  번 더 내려친 프레이를 살짝 흘겨보면서도, 이내 한숨을 내쉬며 수긍했다.
그래도 걱정해주는 거니까, 그 마음이 전해져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저 고마울 뿐. 맞은 부분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말이다.

프레이는 퇴원했으니 축하해야한다, 라며 나를 식당으로 끌고 갔다.
어디로 가는가 싶었는데. 낯선 식당에 들어서자 의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일씨?”
“오, 오랜만이구나. 저번엔 고마웠단다. 그때는 고맙다는 말도 못했는데, 미안하게 됐어.”

반갑다며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남자,
시우 자일을 멍하니 바라보자 그는 씨익 웃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려 세웠다.

“식당이 조금 초라하지? 근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바빠서, 프레이를 볼 시간이 없어.”
“진작에 그렇게 하지 그랬어.”
“오, 프레이. 미안하단다.”

이제는 사이가 많이 좋아진 걸까.
자일씨와 편하게 대하는 프레이를 보자 조금 얼떨떨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서로 얼굴도  안 보던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전처럼 높은 성과 같던 식당은 온데간데없이사라지고, 이제는 동네에서 흔히 볼법한 작은 식당으로 변모한 자일 레스토랑을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두 부녀를 바라보았다. 진작에 저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래도 저번 마루더즈가 일으켰던 테러 이후로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  같았다.
서로 목숨의 위협을 이겨내고 다시 만나게 됐으니, 어떤 심정의 변화가 생긴 거겠지.
뭐라 해야 할까. 내가 한 일이 이런 좋을 결과를 빚어냈다는 게, 조금 많이 뿌듯했다.

사실 히어로라는 직업을 앞으로 하겠다고 맘먹긴 했어도, 내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했는데.
이런 결과를 빚어낼 수 있는 게 히어로라면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닐까.

“일단 앉자, 아빠가 알아서 음식 가져올 거야.”
“서빙도 직접 하셔?”
“응, 직원 없이 이제 혼자 하는 거니까. 문도 일찍 닫아.”

이제는 서슴없이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도, 프레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들이 이뤄진 것이 기쁜 걸까.
괜스레 내 마음도 따듯해지는 것만 같아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리에 앉자,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프레이는 내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물어왔다.
도대체 헤라 카르멘이 나를 왜 노리는지, 어떻게 상처 없이나온건지, 정말 몸은 괜찮은 건지.

이래서 프레이한테는 따로 얘기하지 않았던 건데,
이렇게 걱정해줘서 고맙긴 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한테 알리기엔 조금 그렇지 않은가.
괜히 프레이가 엮였다간 또 휘말려 다칠 수도 있는 거고.

A지구에서 헤라 카르멘과 싸우고, B지구에선 빌런들하고 투닥거렸다고 말했을  프레이의 표정이 험악해지긴 했지만.
결국 잘 해결됐다고 애써 설명하자 그제서야 안심한  프레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번 습격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프레이는 아예 욕까지 내뱉으며 헤라 카르멘을 욕하기 시작했다.
스프를 가져다 주던 자일씨가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내가 해줄 말이라고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는 것 뿐, 감정이 격해진 프레이는 도무지 말로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후우.”
“조금 진정했어?”

아까 받은 스프가 모조리 식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프레이는 겨우 진정했는지 숨을 몰아 쉬었다.
이렇게 화내는 모습이 조금 놀랍긴 했지만, 전부 나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니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까지 무리하지 않도록, 내 이능을 조금 더 잘 다루는 훈련을 해야겠지.

“어쨌든, 이제 다 해결됐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네가 조금만  다쳤으면  정식으로 항의했을 거야. 아무리 에드윈 카르멘이 모르는 일이었어도 이건 너무 했다고. 어떻게 자기 딸이 빌런이 됐는데 그걸 모를 수 있어?”
“...그러게 말이야.”

철퍽, 거칠게 스테이크를 자른 프레이는 이내 그 것을 입에 쑤셔 넣었다.
으적으적, 화풀이를 하듯 고기를 우악스럽게 씹던 프레이가 나를 힐끔 쳐다보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아이샤, 그래서 그게 다야?”
“...뭐가?”
“아니, 아까부터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아서.”

...귀신 같네. 나는 혀를 내두르며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직 말하지 않은  있긴 했다.
제논에 대한 일, 정확히 말하면 내가 제논을 어떻게 대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주변에 여자인 친구라 해봤자 프레이 하나였으니.
그나마 이런 고민을 들어줄 사람도 프레이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이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논 얘기인데.”
“응.”

제논 얘기라며 말을 꺼내자, 프레이의 눈이 반짝였다.
묘하게 이런 말이 나오길 기대한 눈치인데. 뭐, 상관 없겠지.

“제논이 나한테 고백했어. 아니, 이걸 고백이라 해야 하나? 내가 자는 줄 알고 말한 것 같은데...”
“고백했다고?”
“...응,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들렸어.”

어머 어머,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을 가린 프레이는 이내 아까보다 더욱 반짝 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걸 물어보려고 너한테 말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제논 좋아하잖아?”
“아니, 그러니까...”

내가 제논을 좋아하는 건지, 그게 아닌 다름 마음인건지.
그걸 모르겠다는 소리인데. 하지만 프레이는 이미 내가 제논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행동한 건가?

내가 한 행동들을 조심스레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러니까 입학식 날이었을 거다.
그때는 제논하고 아예 척을 질 거라 생각했으니, 일부러 차갑게 말했었다.
그러다가 퇴학 당할 위기에 놓였을 때만 조금 도와줬고, 나중에 친구가 되기 전까지는 그냥 몇 번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간격이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아마 마루더즈와 싸웠던  때였나.

브루노의 불길에 휩싸였을 때, 그 때 나를 감싸며 대신 화염에 휩싸이던 제논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너무도 강렬하게 남아버렸다.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다며 미소 짓고.

또 그런 몸을 이끌고 마루더즈와 맞서 싸우고.

내 앞에서는 천연덕스럽게 웃어 보이는 그 모습이, 어느덧 내 가슴 한구석에 깊게 자리 잡은 것 같았다.

“그냥, 제논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
“답답해?”
“어, 자꾸 다치는 게 싫어. 그렇다고 미워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제논이 다친 걸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와. 그렇다고 싫은 소리를 내기는 망설여지고.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들었을 때는?”
“그렇게...싫진 않더라.”

솔직한 감상이었다.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부끄러울 뿐, 그런 말을 듣는 게 워낙 생소해서 당장 어디에 숨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프레이는 간단히 답했다. 별 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뭐야, 좋아하는 거네.”

내가 제논을 좋아하는 거라고,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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