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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전학생은 싫어(1) (73/115)



〈 73화 〉전학생은 싫어(1)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청명한 하늘, 하얀 구름조각들이 푸른 비단에 걸쳐져 해를 얕게나마 가리는, 그런 하늘.
푸른 잎사귀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이 늘 그렇듯 눈부신, 여름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아침이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감정의 변화였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원래 22살이었으니까...뭐 연하남 그런 건가.”

말도  되는 농담을 내뱉기도 잠시,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얼굴을 붉혔다.
정말 생각지도 않은 상황이 아니던가.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나간 공원에서 고백을 받다니, 심지어 그걸 받아 준데다...

메마른 입술을 매만지며, 다시 무릎을 끌어안았다.
오늘은 아카데미에 가는 날, 아마 학교에 가면 달라진 관계에 대해 설명해야  테니까, 프레이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럴 줄 알았다며 비아냥거릴지, 아니면 놀라서 축하해줄지.

“마이어씨한테도 얘기해야 하나.”


나와 제논이 있는 동아리였으니, 아마 관계에 대해서 말해주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친구도 아닌 교수님이었으니 조금 껄끄럽긴 했다. 뭐, 제논은 꽤 친근하게 대하는  같았지만.

교복을 차려 입고, 밖으로 향하는 찰나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수 있었다.
 그렇듯, 하얀색의 교복과 회색의 치마를 입은 자신의 모습, 하지만 어째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입던대로, 늘 하던대로 준비한 게 끝인데.

“...뭔가 머리가 붕뜬 것 같기도 하고, 피부가 조금 푸석푸석한  같기도 하고?”

실상은 전혀 달라진 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전보다 나은 모습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라는 것이 생겼다.

화장대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던 화장품을 보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번도써보지 못했던 것들, 귀찮다면서, 뭣하러 그런  바르냐며 프레이가 화장품 얘기를 할 때마다 무시했던 예전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어떻게 시용하는 지는 기억이 난다는 것일까.

잘 보일 사람이 없어서 꾸미지 않았건만, 이제는 잘 보여야  사람이 생겼다.

등교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았다.


#


“...아이샤.”

학교에 도착하자, 프레이가 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굴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댄 프레이는 손에 묻은 미끈한무언가를 바라보며 부르르, 하고 몸을 떨었다.

“화, 화장했어?”
“아니...그냥 기초만.”

색조 화장까지 건드리기엔 조금 아닌 것 같아서, 기초 화장만 했다.
토너, 아이크림, 에센스, 수분, 영양크림. 프레이가 예전에 알려줬던 기억을 되새기며 헷갈리지 않도록 얼마나 중얼거렸던가.

앞으로  정도는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프레이는 그게 꽤나 충격인지  팔을 거칠게 붙잡으며 입을 달싹거렸다.

“도대체 왜? 화장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잖아!  보일 사람도 없다며, 그런데 무슨 변화가 생겨서?”
“...변화라면 생겼지.”

큼큼, 헛기침을 하며 입을 가리고 웃자 프레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쯤 되면 눈치 챌만 하지 않아?

“나, 남자친구 생겼어?”
“응.”
“...진짜?”
“응, 진짜라니까.”

이렇게 계속 물어보면 부끄러운데, 프레이가 너무 빤히 쳐다봐 부끄러운 나머지 시선을 피하자, 작은 손이  볼을 잡아 당겼다.

“제논이야?”
“...응, 어제부터 사귀기로 했어.”
“어제 언제, 어제 나랑 밥 먹었잖아.”
“밤에?”

프레이랑 밥 먹고, 한참 집에 틀어박혀서 고민하다가 나간 차에 고백을 받았으니까.
대충 시간대를 말해주자 프레이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뭐 자기가 제논을 좋아할 리가 없다느니, 그랬으면서 너무 마음의 변화가 빠른  아니야?”
“고백 받으니까 또 얘기가 달라지더라고.”

나도 설마 내가 제논을 좋아하는 건가 싶었는데, 막상 고백을 받으니 마음이 뚜렷해지던  아닌가.
흔들렸던 마음이 바로 세워지고, 어느덧 상대를 똑바로 바라볼  있는 용기를 얻었다.
아마 제논이 먼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 갈피도 못잡은 끙끙거리기만 했겠지.

“이젠 후련할 뿐이야. 뭐, 어차피 소문은 다 퍼져있었다며.”
“그렇긴 하지, 너네 엄청 유명하니까.”

입학식 때부터 얽히더니, 제전, 나중에는 마루더즈라는 조직하고 얽히기도 한데다 직접 제압까지 하고, 이번에도 둘이서 나란히 입원했으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단단히 인식이 굳어진 것 같았다.

“좋지 뭐, 이제는 오해라며 풀 필요도 없으니까.”
“...왠지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다 키운 자식이 떠나간다는 게 이런 기분 이었을까.”
“뭐라는 거야.”
“아무튼 축하해. 아이샤, 학기 초부터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내더니 결국 이어지네.”

내가, 학기 초부터 티냈다고?
그럴 리가. 학기 초에는 진짜 별 관심도 없었는데.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프레이가 뒤를 힐끔 쳐다봤다.

“제논 왔네.”
“제논?”

그 말에 뒤를 돌아보자,  너머로 하얀 머리카락이 힐끔 보였다.
그리고 보이는 얼굴, 평소와는 그리 다르지 않은 나른한 표정의 얼굴이었지만.


 얼굴이 내 눈에는 이상하리만치 빛나 보였다.
그러니까, 저번에 영화에서 봤던  배우는 비교도  될 만큼이나 잘생겨 보여서.
괜스레 얼굴이 달아올랐다.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당당히 바라봐도 되는 그런 사이였는데도.

“아이샤.”
“...어, 음...제논.”

입술이 달싹였다.
어제 보았던 그 광경이 자꾸만 떠올라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나를 바라보던 그 뇌세적인 눈빛이,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 탐닉하던 그 숨결이, 입술에 맞닿던 그 오묘한 감촉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어제 잘 잤어?”

평소와 다를  없는 인사였다.
나는 이렇게 심란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괜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잤어.”

또, 퉁명스런 대답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너도 좀 심란해져 봐라, 그런 마음으로 던진 말이었다.
고백 받은 탓에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는 말을 숨기며, 제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논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한숨도 못 잤거든, 어제 일 때문에.”
“...어?”
“앉아, 서 있지 말고.”

그렇게 자신의 옆자리를 자연스레 툭툭, 두드리는 제논에게 이끌려 앉자 프레이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벌써부터 주도권이 잡히면 어떡해, 네가 먼저 휘어 잡아야지.”
“뭐, 뭔소리야.”
“...아니다, 네가 뭘 알겠어. 나중에 내가 제대로 알려줄게.”

프레이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제논이 옆자리에 앉아있다는 게, 음, 앉아있다는 게 훨씬 신경 쓰였다.
아까  말도그렇고, 어제  때문에 잠을  잤다면 그러니까 고백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말이겠지?

나도 그랬는데, 음.

묘한 공통점을 찾은 것 같아 입꼬리가 씰룩였다.
나도 못 잤고, 제논도 못 잤다. 나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조금 다행이었다.
나는 또, 나만 고백을 엄청 심각하게 생각하고 잠도 못자는 줄 알았는데,

기분이 조금 풀렸다. 제논을 바라보며 싱긋 웃자, 제논 또한 따라 웃었다.

“프레이한테는 벌써 말한 거야?”
“말했지, 원래 제일 먼저 말할 사람이기도 했고.”
“나도 오딘 형한테 말할 생각이었는데.”

오딘 카르멘, 그러고 보면같이 몇 번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저번에 제전  만난 뒤로는 얼굴도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제논은 꽤 기대가 되는  허공을 쳐다보며 볼을 긁적였다.
으레 기대되는 무언가가 있으면 저러곤 했으니,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제논의 버릇 중 하나였다.

“근데 왜 내 옆자리에 온 거야?”

문득 그런 생각이들었다. 생각해보면 내 옆자리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왜 제논이 여기 앉아 있는 걸까.
그렇게 묻자 제논은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잖아.”
“...어,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게 되는 거야.”

턱을 괸 채 말하는 제논을 잠시 쳐다보다가, 손을 끌어 당겼다.
어제 손 잡았으니까, 이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져도 되겠지.

제논도 별 말없이 슬쩍 웃으며 내가 손을 만지는 걸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여전히 투박한 손, 다행히 예전처럼 흉터자국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드르륵-

그렇게 한참동안 제논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제 수업시간인가, 들킬세라 황급히 제논의 손을 놓자 레이 마이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을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는 학생들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왔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 전학생이 있어서 데려왔다. 이번에는 외국에서 온 아이라서, 조금 절차가 까다롭거든.”

외국에서  전학생? 그 말에 시선을 돌린 내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국에서  리디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어깨까지 오는 검은 색의 단발, 그리고 묘하게 빠져드는 것만 같은 검은 빛의 눈동자.
그럼에도 새하얀 피부에 가슴팍에 달려있는 성국의 십자가.

자신을 리디아라고 소개한 여자는, 제논과 눈을 마주치곤 얼굴을 살짝 붉혔다.
마치 첫눈에 반하기라도  것 같은 얼굴이 아니던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기분이 안좋아지는 이유가 있다면,

저 리디아라는 전학생이, 이 소설의  다른 히로인인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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