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전학생은 싫어(3) (75/115)



〈 75화 〉전학생은 싫어(3)

성국, 이능 사회가 시작된 이후 종교계 인사들이 대거 갈라져 나와 생겨난 국가.
다른 모든 국가에서 희귀하다 못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인 치유계 이능을 보유한 이들이 가장 많았으며, 전쟁을 싫어하는 성향 탓에 모든 국가에서 환영하는 국가.

그런 성국에서 나고 자랐기에, 자신은 늘 남들에게 축복받으며 또한 환영받았다.

자신이 가진 이능인 ‘가호’. 그 것이 지닌 힘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기에 모두가 환영받는 성국에서마저 자신은 특히나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

어떤 이는 성녀라고 부르곤 했다.
부끄러운 말이었지만, 십여 년 동안 그런 소리를 들으며 어쩐지 그게 자신에게 걸맞는 호칭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치유하고, 악에겐 벌을 내리며,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모든 이를 품어줄  있는 가호.
이것이 성녀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성녀란 말인가. 아마 우쭐해진 것은 그 때부터 였던 것 같았다.

모두가 자신을 칭송하고, 심지어 날고 긴다하는 히어로들마저 자신을 쉽사리 건들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쉽게 가질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사치는, 결국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어떤 물건도, 심지어 사람도.

내가 원한다면  손에 들어왔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언정 결국 내 것이 되는,  때부터 세상은 내 손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성녀란 칭호마저 자신에게 부족한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내색하진 않았다. 사치를 부린다며 손에 넣은 것은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었고,
내가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쌍한 이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성녀님 같은 사람이세상에 어디 있을까.”
“성국은 정말 신의 가호를 얻었어!”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데.

그저 원하는 것을 얻었고, 그것에 싫증이 나 버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착각해준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아무튼 그렇게 알아서 속아주니 나야 편했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살면 되니까.
내가 가진 욕망은 오직 생각으로만, 겉으로는 자애로운 미소를. 속으로는 추악한 욕망을 숨기며.

그런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위에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남들에게는 교황이라 불리던 이가 나를 부른 것은.

“성녀님, 오셨습니까?”
“높여 부르지 마세요, 저는 어디까지나 일개 학생일 뿐인데요.”
“허허, 지나친 겸손입니다.  국민적인 영웅이 아닙니까?”

언제쯤 죽을지 궁금했지만, 그런 것을 물어보면  이미지가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자신을 낮춘다.
나는 너보다 아랫사람이다, 쓸데없는 견제를할 생각이라면 할 필요 없다.

권력은 없지만, 명예는 드높은. 그렇기에 하고 싶은 것이라면 원 없이 즐길 수 있는 자리.
그것이 지금의 자리였고, 또한 그 자리를 나는 마음에 들어 했다. 이 늙은이가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

조직 개편이 진행된다고는 들었지만, 그런 일로 나를 부른 적은 없었는데.
교황의 눈동자를 쳐다봤지만, 그 선한 황금빛의 눈동자는  그렇듯 빛을 발할 뿐. 쉽사리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않았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거죠?”

그렇게 묻자, 교황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탁자 위로 내밀어진 종이, [아카데미]라는 글씨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종이였다.

“아카데미...?”

아마도 동방에 있는 학교가 아니던가.
여기서 한참 떨어진 곳, 그러니까...현대 탑 히어로가 있는 곳인가.
생각해보면 탑 히어로가 참 많이도 배출 되는 곳이었다. 전대 탑히어로부터, 현대 탑히어로까지 나온 곳이니.

하지만 궁금한 건 그런게 아니었다.
이런 종이를 내민 이유, 교황을 바라보자 교황은 기다렸다는 듯 선뜻 답했다.

“아카데미에 가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조금 바쁜데 말이죠.”
“압니다. 성녀님이 바쁘신  저희가 늘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래서 이런 기회, 아니 부탁이라 하는 게 낫겠군요. 약간의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떠십니까?”

휴식, 휴식이라. 듣기 좋은 말이었지만,  속에는 질척이고도 어두운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까 떠올렸던, 그러니까 조직 개편과 관련된일이겠지.

후루룩-

차에서 느껴지는 것은, 은은한 홍차의 향이 아닌,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혈향이었다.
그래, 숙청의 시간이었다. 종교계를 어지럽히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지우는.
내게 필요한  방주였고, 교황이라는 신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바람이 불겁니다. 어쩌면 노도와도 같아서, 보이는 건 전부 삼켜버릴지도 모르겠군요.”

능구렁이같은 노인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종이를 받아들였다.
아직 죽기엔 조금 어린 나이였으니까.

#

이능이 발현된 이후, 국가란테두리는 의미가 사라졌다.
사람 혼자서 전차 몇 개를 부수는 시대였다.

통상적인 군사력 따위는 필요도 없었고, 기껏 만든 전략무기도 이능에 의해 쉽사리 무력화 되었다.
국가 간의 연합, 총 5개로 나뉜 세상  ‘동방’이라 불리는 곳은 조금 특이한 곳이었다.

아마 이능력자의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을 따지면 이곳이 아닐까.
동, 서, 남, 북. 그리고 중앙의 성국까지 따졌을 때  인구수는 가장 적은 곳이었지만,
탑히어로는 꾸준히 배출되는 그런 곳이었기에 유학생도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시설 좋네요.”
“...뭐, 그렇긴 하지. 교장이 돈을 쏟아 부었으니까. 저번 습격이후로 더 쓴 것도 있고. 그나저나 날 어떻게 알아본 거야?”
“잘요.”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눈앞에 있는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쉬러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전대 탑히어로를 만날 줄이야.
그냥 보는 순간 알아챘다, 설마 안 들킬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한테 말할 생각은 없어요.  숨기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살려고 하는 거지. 에드윈한테 넘겨주고 나서는 딱히 일을 벌이고 다닐 생각은 없었거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앞에 놓인 문을 가리켰다.

“성녀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나. 아무튼 성국에서 왔다고만 알려줄 테니까.  뒤로는 알아서 해.”
“네, 감사해요.”

꾸벅, 고개를 숙이자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문을 열고 나를 소개했다.
학교에 입학한 적은 이번이 두 번째였던가.
항상 1년을 넘기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다닐 수 있을지궁금했다.

반에 있는 사람들이라곤 죄 평범한 사람뿐이었다.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하나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그런 쭉정이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교황이 숙청을 끝내는 대로 돌아가야겠네.
이런 곳에 있다간 그야말로욕구를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한 쪽에 있는 아이들을 전부 살피고, 그렇게 시선을 돌렸을 때. 내 시선은 한 사람에 멈춰 그대로 굳어졌다.

하얀색의 머리카락, 거기에 반짝이는 푸른 눈빛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내 속을 전부 꿰뚫어보는 듯한 소름끼치는 감각에 흠칫하기도 잠시,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예술품 같지 않은가,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순간 느껴진 것은 강렬한 욕망이었다.
누군가를 지켜하고 싶어하며, 또한 그 대상을 연모하는 욕망.
그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짜릿했다.

그런 대상을 빼앗을 때의 쾌감이야말로, 그 어떤 보석보다도 찬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허나, 질척한 욕망은 속으로 품었다.
내가 겉으로 보여야 할 것은 어디까지나 사랑에 빠진 소녀.
우스웠지만, 또한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씰룩이는 입꼬리를 겨우 붙잡으며, 자리에 앉는 내내 한 사람만을 쳐다보았다.

가지고 싶었다.

#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한 수많은 작품들을 읽었다.
사람의 욕망이란 의외로 쉽게 드러나는 것이라, 아무리 가면을 수십 겹을 두르고 있는 사람이라 한들 쉽사리 숨길 수 없는 것이 욕망이었다.


처음에는 원작이 가물가물해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수 있었다.
지금 리디아가 보여주는 모습이, 결국 솔직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리디아.”

지금은 염색한데다, 렌즈까지 낀 탓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녀가 성국의 ‘성녀’라 불리는 이라는 것은 아주 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기껏해야 마이어씨나 교장, 몇몇 교수 정도겠지.
물론 그 사실이 알려진다 하더라도 그녀가 추앙받는 정도겠지만.

그러나 그녀가 품고 있는 추악한 욕망은, 소설을 보았던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사랑을 깨달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던 것도,
계속 부끄러운  볼을 매만지는 행동도. 결국 가면을쓴 채 행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맘에  들어.”

다른 사람에게그런 욕망이 향했다면, 그냥 놔둘 수도 있었다.
내 일도 아닌데 구태여 신경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제논에게 그 질척한 욕망이 향하는 것은 결코 두고 볼 수 없었다.

...음, 그러니까.

질투는 아닌데. 그냥  말고 다른 사람이 제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제논을 믿으려고 계속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성녀라는 여자가 그냥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내가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먼저 내가 제논의 여자 친구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선을 넘지 말라며 경고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결심을 하며 고개를 돌리자, 리디아의 모습이 보였다.
제논의 뒷자리였던 리디아는 교과서를 보고 있었지만, 그 시선은 불순하게도 제논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까 일부러 서로 좋아한다고 말까지 했는데, 그럼에도 생각을 접지 않는 저 뻔뻔한 행태가 심히 거슬렸다.
게다가  짜증나는 건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그 시선에 섞인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제논이 아닐까.

그래서,

포옥-

그냥 껴안았다.

"아이샤...?"
"그냥 가만히 있어."

단순히 손으로만 전해지던 체온은, 이내 온 몸으로 전해져왔다. 단단한 제논의 몸이 부드러운 살결에 눌리며,
순식간에 붉어진 제논의 얼굴이 보여 살풋이 미소지었다.

쉿, 검지를 입술에 대곤 속삭이자 제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이제 연인 사이가 아니던가.
놀라 눈을 크게  채 나를 바라보는 제논의 시선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리자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뜬 리디아가 보였다.

그 얼굴이 꽤나 우스워서, 나는 싱긋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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