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경쟁자는 싫어(5)
“도대체 얼마나 험하게 싸웠길래.”
“...그냥 얕게 벤다고 한 건데.”
양호실, 침대 한 쪽에 누워있는 리디아의 몰골을 보며 제논이 옅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도 저렇게 다친 건지는 몰랐지. 나름 힘조절 한다고 한 건데, 리디아의 몸에 난 상처들은 하나같이 치명상에 가까웠다.
꼴 좋다- 라고 넘어가려 해도, 이렇게 심하게 다쳐버리면 나도 면목이 없다 해야 할까.
그냥 경고 정도만 하고 싶었는데, 어쩐지 나를 보는 그 대련 교수 표정이 영 심상치 않더니만. 꽤 심하게 다쳤던 모양이었다.
“대련이었으니 징계는 아니겠지만...근데 이렇게까지 한 거 보면, 네가 말한 그 아련을 뽑은 거야?”
제논의 질문에 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뽑긴 했지만,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발현이었다. 조금 더 깔끔하게, 조금 더 완벽하게 발현할 수 있었을 텐데.
불완전한 발현의 감각은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있었다.
“...뽑긴 했는데, 100%는 아니었어.”
한 7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 3할만 어찌한다면, 이 불쾌한 감각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문득 떠오른 사람은 대련을 담당하던 교수가 얘기했던 이.
아마 내게 도움이 될 거라며,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가봐야 하나.
사실 조금 조급한 것도 사실이라서, 이왕이면 빠르게 끝내고 싶었다.
그 꿈에 대한 조건도 그렇고, 내가 꿈속에서 만들었던 풍경과 똑닮은 바다가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도 알고 싶었고.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움직이고 싶지만, 누워있는 리디아를 그냥 놔두기엔 마음이 불편해서 일단 일어날 때까지는 지켜보기로 했다.
“근데 너는여기 있어도 돼?”
“나도 수업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서.”
맞는 말이긴 하지. 제논도 이미 1학년 수준을 아득히 벗어났으니, 나처럼 수업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미 신체의 내부에서 이능을 일으키는 수준, 그에 비하면 1학년이 배우는 것들은 그저 어린애 장난 수준이었으니까.
그렇게 제논과 얘기하기도 잠시, 내 시선은 어느새 죽은 듯이 누워있는 리디아에게 향했다.
아까 싸우면서 나도 모르게 흥분이라도 한 건지, 조절이 실패해 그대로 몸에 덩그러니 남겨진 참격의 흔적은 괜스레 리디아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심어주었다.
“맘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잘못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리디아는 성국의성녀.
그런 만큼 어느 정도의 상처는 알아서 저절로 수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리디아가 저렇게 쓰러져 있다는 건, 처음에는 더욱 심한 상처였다는 거겠지.
“어휴.”
하여간 도움이 되질 않아. 누워있는 리디아를 바라보며, 나는 불만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
멍하니 리디아를 바라보던 아이샤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소파 한 구석에 쪼그려 잠을 청했다.
어차피 수업 들을 것도 아니라면서, 아까 무리한 탓에 힘을 써 졸리다며 누운 아이샤는 눈을 감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샤, 자?”
혹시나 하고 이름을 불렀지만, 눈을 감은 아이샤는 새근거리며 숨을 내쉴 뿐 내 부름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피곤 했던 건가.
“...흠.”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주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건지.
무릎을 껴안은 채 웅크려 있는 아이샤의 모습은 퍽 불안해보였다.
저렇게 자면 일어났을 때 온 몸이 뻐근하겠지. 마음 같아선 번쩍 들어다가 침대에 눕혀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아이샤가 깰테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내가 한 것은, 그냥 옆에 다가가 앉는 것이었다.
서로의 엉덩이가 닿을 만큼이나 가까운 거리.
예전에는 벤치에 앉을 때 얼마정도 떨어져 앉았는데. 이제는 이런 거리도 허락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기꺼울 따름이었다.
“기대도 되는데.”
누구도 듣지 못하는, 내 바램이 담긴 말이 허공에 흩어진다.
그러려고 있는 어깨가 아니던가. 야속하게도 한 쪽 소파에 머리를 기대어 자는 아이샤를 바라보며 그저 입맛을 다시는 게 전부였다.
자신에게 시간이 이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사람을 꽤나 조급하게 만들었다.
주술식을 이식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마 더 이상은 예전과 같은 몸과 마음으로 아이샤를 대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줄어든 수명, 매일 같이 몸을 갉아 먹는 고통에 아이샤에게 화를 내진 않을까
.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으며, 상처를 주진 않을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가장 큰 걱정은, 내가 주술식을 새기려 하는 것을 네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아이샤가 아파할지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다치는 게 싫다며, 자신을 지키려 내 몸을 희생하는 그런 행동이 싫다며 울던 것이 아직도 이리 생생했다.
나는 또 그 몸을 갉아먹는 행위를 하려 했으니.
“미안해.”
지금은 이런 말 밖에 할 수 없다는 게, 그리고 일어나 있는 너에게 사과하기엔 내가 겁이 많다는 게.
아마 아이샤가 알게 된다면, 용서 받지 못할 터였다.
아마 두 번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않으리라 말할 수도 있겠지.
차라리 그렇게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카르멘가는 위험했다. 아이샤가 싸우다가 다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 될지도 몰랐다.
아니, 죽을 수도 있었다.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 인류를 위해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빌런과 손을 맞잡은 그라면, 학생 한두명 쯤은 눈 감고도 죽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위험한 싸움에 아이샤를 끌어들인다니. 설령 그것을 아이샤가 원한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허락할 수 없었다.
내게 주어진 수명이 얼마나 될까. 70년? 그렇다면 35살까지 살겠네.
굳게 닫힌 입꼬리는 어느새 실소를 흘리고 있었다.
35살이라. 앞으로 20년도 채 살지 못하는 미래라니.
잠시나마 평생을 그렸던 예전을 떠올렸다.
아이샤랑, 웃으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미래는, 이제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미래가 되리라.
주술식을 새긴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미래를 저버린다. 오직 현재만을 위한 선택.
하지만 그럼에도 붙잡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하나 있다면 마이어씨가 말했던 그 ‘더 좋은 방식.’이 아닐까.
짐작도 안가는 그 말에 약간이나마 희망을 가지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주술식의 패널티를 아예 지우는 방식이 아닌 이상, 아이샤와 함께한다는 미래는 없을 테니까.
투욱,
갑작스레 어깨에 느껴지는 감각에 흠칫하기도 잠시, 그 것이 아이샤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혹시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일부러 몸을 낮추자 아이샤는 편한 듯 나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깨에 닿은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오는 향은, 늘 그렇듯 달콤했다.
은은하면서도 항상 기억에 남는 이 과일향을 잊을 수 있을까.
미련이 남았다.
포기한다고 말하고, 마음까지 먹었음에도 아이샤를 볼 때면 다시 미련이 미친 듯이 솟아났다.
조금이나마 함께 있고 싶었다.
앞으로 이렇게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에,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어떨까, 하고 매 순간 생각했다.
“...나 되게무책임한 사람이구나.”
고백한 건 나였는데, 그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게 해주겠다고 한 게 나였는데.
결국은 이렇게 헤어질 선택을 하려 하지 않는가.
“나보더 더 좋은 사람...만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차라리 내가 없을 때는 혼자 살았으면, 다시는 남자 같은 거 만나지 말고.
프레이랑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사랑같은 것도 그냥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그저 한 때의 추억이라며, 차라리 나를 계기로 남자 혐오증 같은 게 생겨버렸으면 좋겠다.
손을 잡은 것도, 입을 맞춘 것도, 이렇게 앉는 것도, 끌어안는 것도.
너의 처음과 마지막에 모두 내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여자를 좋아하라는 소리는 아니고, 다 잊고, 사랑 같은 감정 따위 다 잊어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잊어달라고는 차마 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이기적이야.”
남자를 싫어하게 되어도,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않겠다 다짐하더라도.
나는 잊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 그건 너에게 너무 힘든 부탁일까.
“,,,으음.”
뒤척이는 아이샤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들은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에 입을 닫은 채 얼마간 지켜봤지만, 정말 그냥 뒤척였는지 눈을 뜨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네.”
하긴, 아이샤가 들었으면 당장 일어나서 화를 냈겠지.
당장 그런 생각을 접으라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며 소리쳤을 게 분명했다.
“솔직하게 말할까.”
소파에 머리를 기대어, 타일이 가득한 천장을 바라본 채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나도 오래 살고 싶어.”
마음 같아서는, 복수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너랑 함께 하고 싶었다.
빌런이니, 아카데미니 다 때려치고, 한적한 섬으로 가서 함께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너에게 청혼을 하고, 그렇게 살다가 같은 날 죽는 게.
그런 게 내 꿈이었다.
“근데 그게 안 되네.”
헤라 카르멘을 경찰에게 넘긴 그 순간부터, 내 복수는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설령 내가 멈춘다 한들 에드윈 카르멘이 멈추지 않을 테니까.
그런 상황에서 내가 선택하는 것은, 이런 선택지 밖에 없었다.
“만약에 내가 주술진을 새기게 된다면.”
주술진의 패널티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 알려졌다.
새기는 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수명의 절반을 앗아가는 것.
하지만, 그럼에도 그 것을 거부할 수 있다면.
“수명이 깎이지 않는다면.”
잠시나마 이런 마음을 품은 나를 용서해달라고, 너에게 빌게.
여전히 잠든 아이샤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약속했다.
오직 나만이 아는 약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