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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화 〉경쟁자는 싫어(6) (89/115)



〈 89화 〉경쟁자는 싫어(6)

“으음...”

이번에도 아이샤가 깨는 가하고 살폈지만, 소리는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침대쪽, 아마 성국에서 온 그 사람이 누워있던 자리인 듯 했다.
상처가 그리 깊었는데도 이리 일어난 것을 보면 아마 꾀병이 아닐까.

어쩌면 그 상처도 스스로 낸 걸지도 몰랐다.
아이샤는 의외로 마음이 약한 편이라, 사람에게 쉽게 손을 대지 못했으니까.

“...그나저나.”

어떻게해야 하지. 신음을 내뱉는 걸 보면 일어나긴  것 같은데,
아이샤가 어깨에 기대 자고 있는 터라 일어나기도 쉽지 않았다. 일어나면, 아이샤가 깨지 않을까.

“근데내가 왜 확인해야 하지?”

생각해보면, 되려 나는 화를 내야 하는 입장이 아닌가.
아이샤한테 시비를 건 것도 싸움을 걸어 자기가 다쳐 아이샤가 곤란하게 만든 것도 저 여자였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냥 양호 선생님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지.
아이샤 말로는 자기가 알아서 치유도  수 있다고 했으니, 구태여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터였다.

“...잠이나 잘까.”

그런 생각에 눈을 감은 찰나, 침대 쪽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꽤 자주 들어본 소리였기에, 나는 별 수 없이 눈을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으...”

아픈 걸 참을 때 나는 소리, 아마도 성국에서 온 여자가 내는 소리리라.
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다면, 자기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하지 않았던가.

정신을 차렸으면 스스로 치유할 법도 한데. 의아한 눈으로  쪽을 쳐다보자, 여자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깨를 가린 붕대는 피로 흠뻑 젖어있었다. 많이 다쳐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런 상처에 아파할 법도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더니,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린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는  없이 공허했다. 저 사람이 무언가를 표현할 때, 그 감정이 진실된 감정인지 의심될 만큼이나.
아이샤의 눈과는 달랐다. 늘 감정을 품고 있는, 그 반짝거리던 붉은 눈동자와는 감히 비견될  없는 눈이었다.

-아이샤한테 네가 싫다고 말했다는데.

네가 싫다, 라. 내게 쫄래쫄래 다가와 알려주던 프레이를 떠올리며, 그녀에 대한 평가를 다시금 되새겼다.
아이샤를 싫어하는 사람, 그러니까. 나랑 친해질 일이 앞으로도 없을 사람.

아이샤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따듯해진 마음은 금세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녀 외의 다른 사람을 볼 때면 늘 그렇듯이, 내 감정은 숨긴 채 상대를 관찰할 뿐이었다
. 그러고보면, 저 여자한테 느껴지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게 과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저 이능이 과연 일개 성국의 학생이 지닐 법한 이능인가.
그랬다면 자신이 분명히 들어봤을 터였다. 에드윈 카르멘을 향한 복수는, 나 혼자서 벼릴 칼날이 아니었으니.
혹시 모를 약점을 찾기 위해 전세계의 정보를 수집했고,
혹여 나와 같은 입장을 지닌 이가 있다면 포섭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했다.

생각해보면, 저 여자의 이능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았다.

적을 공격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이능.
복합 이능이라 하면 설명될 수 있었지만, 성국에서 복합 이능을 지닌 이중 유명한 사람이 있지 않던가.

“...성녀.”

아주 잠깐, 그 흑색의 눈동자가 진동했다.

빙고.

“성국의 성녀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유희 생활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녀의 성격은 뒷세계에서는 이미 널리 퍼져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자애롭고, 친절한 이미지를 지닌 그녀였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탐욕으로 가득찬 그녀의 속내는, 결국 현대 사회에서는 아주 생소한 단어인 ‘노예’까지 이르렀다.

노예.

언론에서는 그녀가 불쌍한 사람을 거두어 자식처럼 돌본다고 나왔지만,사실과는 완전히 달랐다.
죽이지만 않을 뿐, 평생을 자신에게 속박시켜 살게 한다니.
인간을 상징하는 자유의지를 잃은 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어느새 표정을 다듬은 그녀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성녀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픈 듯, 상처 부위를 붙잡은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 영락없는 환자였다.
당장 안정을 취하라고, 이렇게 말을 오래했다간 상처가 벌어진다며 요란을 떨었겠지.

물론, 남들이 보기에 말이다.

그녀에게 그 상처가 아프지 않다는 것쯤은 성녀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 그 가호라 불리는 이능으로 고통을 막고 있겠지.
상처를 섣불리 지웠다가는 의심 받을 수 있었으니, 아마 천천히 치료하겠다 생각하는 거겠고.

“머리카락이랑  색깔이 바뀌었다고 모를 거라 생각해? 이미  번  사이잖아.”
“...모르겠어, 네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말할 생각이 없나.

그렇다면야,  이상 자극할 생각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추궁하기엔 아이샤가 자고 있었고, 지금 성녀인 것에 대해 물고 늘어져 봤자 얻을 것도 없었으니.

내가 흥미를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여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제, 제논. 혹시 아이샤랑 사귀고 있어?”

그게 지금 상황에 왜 궁금한 걸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침울해진 표정으로 “그렇구나...”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샤와 사귀고있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
반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등교할 때도 손을 마주 잡고 있었는데.

그런  보면서도 다가온 건, 불순한 의도가 꽤 다분해보이지 않는가.

꽤 우스운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욕망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 칠흑빛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볼 때면 본래의 푸른 빛을 되찾는 것부터, 그리 맘에 들지 않다고 생각했으니.

“...내가 더 잘해줄  있는데.”
“뭐를.”
“아이샤는 그러니까, 그런 쪽에서 조금 약하잖아. 나를 이겼으니까 이능은  다룰지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너  좋아해?”

대놓고 묻자, 여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물어볼 거라고 생각하진 않은 걸까. 잠시 고민하던 녀석은 이내 수줍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응.”
“안됐네, 난 너 싫어하는데.”

자고있는 아이샤를 조심스레 안아들며, 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피식,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이. 그녀가 쓰고 있는 가면 속의 얼굴인 것만 같아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럼 난 갈게.”

벌컥, 아이샤가 깨지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말했지만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들으려 한 말은 아니었지만.

#

“...아이샤를 왜 그렇게 들고 오는 거야?”

반으로 가자 다행히 학생들은 거의  집에 간 상태였다.
뭐, 이제 수업이 다 끝났으니 다들 집에 갔겠지.유일하게 반에 남아있던 프레이는 아마 아이샤를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내가 아이샤를 안아 들고 오자 이상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알겠다는 듯 아이샤를 책상에 눕혔다.

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눕히자, 그제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들고 와도 깨지 않다니, 꽤나 무리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련을 뽑아냈다고 했었으니까.

“...아무튼, 아이샤가 일어날 때까지 조금 부탁할게.”
“어디 가?”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좋은  해주지.
-...더 좋은 거라뇨?
-그건 다시 오면 알려줄 테니까. 생각이 정해지면 찾아와.

이제는 마이어씨가 말한 주술식보다 좋은 것,  대해 알아볼 차례였다.
주술식과 큰 차이가 있어야 할 텐데.

“알았어. 그럼 내가 아이샤깨워서 같이 가도 되지?”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해주면 나야 고맙지.”

후우,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억누르며 등을 돌렸다.
잘되겠지, 마이어씨가 한 말이었으니. 어쩌면 내가 예상한 것보다도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똑똑-

담당실의 문을 두드리자, 너머에서 늘 그렇듯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또 여기네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아까도 보았던 하얀 타일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수련실이라 했던가. 이런 공간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은, 역시 내 수련이 목적인  같았다.

“생각은 좀 해봤어?”
“주술식보다 더 좋은 거라니, 저는 그런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그야, 내가 만들어낸 거니까.”

후후,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웃은 마이어씨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주술식의 단점은 새긴 사람이 짊어져야하는 그 말도 안되는 패널티.

힘의 증강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떤 서포트 아이템보다 좋았지만,
패널티를 생각해보면 사실상 가성비라는 말을 쓸  없는 방식이라고.

“내가 지닌 이능은, 내가 상상하는 모든 기적을 현현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주술식은  오래 전부터 연구해왔고,  패널티를 최대한 억제 시키는 단계까지 왔다 이거야.”
“...억제?”
“수명의 패널티를 완전히 걷어냈지. 물론 반동이 오는 거야 어쩔  없지만. 그 정도는 수련으로 충분히 견딜  있잖아?”

수명이 깎이는  사라졌다고? 믿을 수 없는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자, 마이어씨가 씨익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여자 친구 두고 일찍 죽으려했어? 일반적인 주술식이라면 내가 절대 새겨주지 않았겠지만.내가 개량한 주술식이라면 해줄  있지.”
“진짜 마법사 같네요. 평소에는 그냥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뭐라는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말해줄 게 있는데.”

말해줄 거라니, 마이어씨를 바라보자 그녀는 턱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개량된 주술식은 일반적인 주술식과는 달리 새겨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해. 내가 계속 힘을 주입해서 몸에 영향을 끼치는 성질을 억제해야 하니까.”
“그게 얼마나 걸리는데요?”
“2주.”

그렇게 말한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희 둘은 2주 동안 만나면 안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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