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네가 없는 시간이 싫어(3)
딩- 딩-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종이 울리자마자 향한 곳은 이제는 쓰지 않는 교실이었다.
아침에 연락하기로 했으면서 안한 제논에게 한바탕 화를내기 위해서였다.
아침 먹고 전화하라니까, 도대체 점심이 될 때까지 왜 전화를 안 하는 건지.
뚜르르-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너머에서 들린 것은 잔뜩 지쳐 보이는 제논의 목소리였다.
-...어.
이걸 화를 내야 하나. 아무리 봐도 너무 힘들어 보이는 목소리라, 나는 쏟아내려 준비했던 말을 속으로 삼켰다.
주술식을 새기는 게 그렇게 힘든 걸까. 주술식으로 인한 리스크만 알고 있지,
새기는 과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에 머릿속에서는 그저 추상적인 과정만 맴돌 뿐이었다.
“밥은 먹었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그래도 마이어씨가 밥은 먹였겠지 하는 생각에 물었지만, 들려온 답변은 내 눈살이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아니...저녁까진 못 먹을 것 같은데.
“왜? 너 아침도 못 먹은 거 아니야?”
-맞아. 그러보니까 전화를 못했다. 미안해.
“...그런 거 미안해하지 말고. 밥이나 챙겨 먹어. 배고플 거 아냐.
그렇게 많이 먹으면서, 아침부터 점심까지 굶으면 어쩌자는 거야.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는 내 표정은 어두웠다. 도대체 주술식을 어떻게 새기 길래.
제논은 2주가 지나면 자기가 다 알려주겠다며 안심하라고는 했지만,
아무리 봐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제논의 목소리에 걱정이 한층 깊어졌다.
-나 이제 끊어야겠다. 주술식 다시 새겨야 되거든.
“그거 하루 종일 새기고 있어야 하는 거야?”
-응, 잘 때 빼고 전부?
“...에휴.”
아무래도 주술식을 어떻게 새기는 건지 조금 찾아볼 필요가 있어보였다.
마이어씨가 어련히 잘하겠다마는, 과정 정도는 알고 있어야 걱정을 덜 수 있겠지.
직접 개량했다했으니 방법 자체는 조금 틀리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틀은 같지 않겠는가.
“힘내.”
-...고마워.
13일 뒤에 보자,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그렇게 스마트 워치를 두드려 전화를 끊었다. 13일이라.
“더럽게 오래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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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죽겠네.”
아직까지도 쓰라린 팔을 부여잡으며,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 봤다.
주변에 고여있는 핏덩이들을 볼 때마다 이 짓거리를 13일이나 더 해야 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원래의 주술식을 새겼다면 느낄 고통을 미리 당겨서 느끼는 거라는데.
이러다 죽어버리는 게 아닐지의심이 들었다.
“죽진 않아. 죽지는.”
담배를 머금은 채, 담담한 얼굴로 그런 말을 내뱉는 마이어씨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적어도 수명이 깎이는 것보다는훨씬 낫지 않은가.
“하...쿨럭.”
입가에서 튀어나오는 무언가는 어김없이 까만 핏덩어리였다.
죽은 피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감각은, 몇 시간을 느껴도 차마 익숙해지질 않았다.
팔에 새기는 주술식이었는데, 왜 통증은 온 몸에서 느껴지는 지 물을 수조차 없었다.
말할 때마다 심장을 칼로 후벼 파는 것만 같은 통증에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 엄청 아플 거란 말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다만,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뚜르르-
“전화 왔는데.”
전화를 어떻게 받아요, 아파 죽겠는데.
원망을 담은 눈초리로 마이어씨를 쏟아보자 그녀는 하하,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팔에 있는 주술식을 매만지던 그녀는 이내 다시 담배를 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안 아플 거야. 전화는 제대로 해야지.”
“...아침에도 못했는데, 욕이나 먹지 않을까 싶네요.”
“걔가 네 욕을? 설마.”
마이어씨는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나는 어제 보았던 아이샤의 얼굴을 떠올리며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술식을 새겼다는 말을 하자마자 차갑게 굳은 그 얼굴을,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던 그 붉은 눈동자를 떠올릴 때면, 내가 한 행동이 과연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로 수명이 깎이는 주술식을 새겼더라면 아마 완전히 무너졌겠지.
마이어씨에게 부탁한 것은, 정말로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한참을 울리던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다가, 이내 버튼을 누르곤 입을 열었다.
“...어.”
원래 같았으면 조금 밝게 말하고 싶었는데,
목소리를 높이려 하면 피가 왈칵거리며 쏟아지려 해 조금 작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속으로 침음을 삼키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걱정할 텐데. 예상대로, 저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미약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밥은 먹었어?
원래 할 말은 이게 아니었을 게 분명했다. 아침에 왜 전화를 하지 않았냐, 무슨 생각이냐.
그렇게 말했겠지. 차라리 그런 말을 듣는 게 조금 편했다.
평소처럼, 늘 듣는 말투. 이렇게 날 걱정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면, 괜스레 조금해지는 것 같아서.
“아니...저녁까진 못 먹을 것 같은데.”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입을 열었다. 내용은 그리 밝진 않았지만, 이 정도 쯤이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13일이나 남았는데, 그렇게 걱정하면 자기가 해야 할 것도 못할테니.
-왜? 너 아침도 못 먹은 거 아니야?
“맞아. 그러보니까 전화를 못했다. 미안해.”
-...그런 거 미안해하지 말고. 밥이나 챙겨 먹어. 배고플 거 아냐.
배는 별로 고프지도 않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창자가 꼬이는 것 같은 고통에 배고픔이라는 감각은 잊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다시 아이샤의 안부를 물으려던 와중, 마이어씨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목에 손으로 선을 긋는 모습, 전화를 슬슬 끊으라는 그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다시 아플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아쉬었지만, 계속 이 전화를 붙들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나 이제 끊어야 겠다. 주술식 다시 새겨야 하거든.”
-그거 하루 종일 새겨야 하는 거야?
“응, 잘 때 빼고 전부?”
-에휴.
불만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는 아이샤의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자기 전에는 전화 해야겠네. 무슨 걱정을 할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유독 다른 여자에 신경 쓰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 마이어씨랑 같이 있다는 점이 걱정되는 거겠지.
근데 마이어씨 나이가 50이 넘어가는데, 나랑엮일 걸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 믿음직스럽지 못한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행동을 돌아봤지만, 딱히 문제가 될 점은 없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한테 그리 친절한 편도 아니었고,
그 리디아라는 여자애를 유독 신경 쓰는 것 같아 일부러 매정하게 대했는데.
오히려 불만은 내가 조금 더 컸다.
주변에 달라붙는 시선을 떼어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같이 있는 남자는 없어 다행이었지만, 아이샤를 보는 시선 중에 순수한 호의만이 담긴 시선이 아닌 것들도 많았다.
질척질척하고, 음울하며, 탁한시선들.
그런 사람들을 몰래 손보는 건 꽤 힘든 일인지라, 이런 아이샤의 태도에 살짝 불만이 일었다.
그래서 내 입 밖으로 퉁명스런 말이 내뱉어지려는 찰나.
-힘내.
언제나 그렇듯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나를 향한 걱정이 가득담긴 그 목소리에,
방금까지 품고 있었던 불만이 물에 씻긴 듯 스륵, 하고 사라졌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너를 원망할 수가 없단 말이야.
이마를 짚으며, 조금 씩 커져가는 심장의 고통을 느꼈다.
이젠 진짜 끊어야 겠네. 더 하고 싶은 말이많았고, 뭐라도 네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지만.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마워.”
점점 올라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최대한 고통을 억누른 채 내뱉을 수 있는 말이라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뿐이었다.
뚝-
그렇게 끊어진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잠시,
차오르는 고통에 이를 악물자이의 틈으로 거무죽죽한 피가 흘러내려왔다.
이거 진짜 괜찮은 게 맞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했지만, 나는 그럼에도 참아내야 했다.
내가 선택했고, 아이샤도 아는 일이었고, 참지 못한다면, 나는 아이샤를 따라잡지 못할 테니까.
“...아프면 조금 이따가 해도 되는데.”
“아뇨. 지금 바로 하죠.”
2주란 시간은 너무 길었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나는 마이어씨에게 다시 팔을 내밀었다.
“...13일.”
마음 속에 있는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장을 파고드는 칼날이, 내장을 뒤집는 고통이, 온 몸을 비명지르게 하는 그 통증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나는 시간을 샜다.
앞으로 13일, 11시간, 46분.
그리고 53초, 아니. 이제는 52초겠지.
그 시간이 0에 닿을 때가 어서 오기를 바라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