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단 둘이가 좋아(1)
“여깁니다.”
[이능 범죄자 수용소 LV-5]
“...면회 시간은 얼마나 되지?”
“10분입니다. 더 드릴 수 없습니다.”
생쥐처럼 생긴 남자가 조잘거리자, 옆에 서있던 남자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하게 뒤로 넘겨져 있던 회색빛의 머리를 매만지던 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내 꼴이 말이 아니군.”
“...하하, 원래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가끔씩 이렇게 사도를 걸을 때가 있는 법이죠.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어련히 깨달을 겁니다.”
“그래야지. 내 자식이 빌런이라니, 그렇게 우스운 소리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하긴 그렇죠. 탑히어로의 자식이 빌런이...아고, 죄송합니다.”
탑히어로, 그 말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탑히어로라, 이제 그런 자리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어두운 감옥에서 노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그, 아니. 에드윈 카르멘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이는 간수를 잠시 바라보았다.
죽일까?
순간 손에서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전류가 일자 간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에...?”
놀람과 당황으로 얼룩진얼굴, 왜 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는지,
에드윈 카르멘이 왜 손에 전류를 일으키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표정이 점차 일그러졌다.
“에, 에드윈님?”
“...무얼 그리 놀라고 그러나, 잠시 기분 안 좋은 일이 생각나서 그런 거다. 놀랐다면 미안하군.”
스윽, 그의 어깨를 툭툭 친 에드윈 카르멘의 입꼬리가 올라가자 간수는 그제서야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그럼 그렇지. 자신이 느낀 감각은 그저 착각에 불과할 터였다.
세계를 지키는 고고한 히어로, 그것도 탑히어로인 그가 아니던가!
크으-,
자신이 존경하는 탑히어로 앞에서 추태를 부렸다는 생각에 간수는손을 부르르 떨었다.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니, 품속에 언젠가 에드윈 카르멘에게 싸인 받으려 숨겨두었던 종이를 꺼내려 손을 들었던 그는 이내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응?”
휙휙,
분명 팔을 휘둘렀는데, 왜 안 움직이지?
“이사앙하닥...?”
툭-
갑자기 시야가 뒤집혀 땅이 너무 가까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까지, 간수는 꿈을 꾸었다.
에드윈 카르멘과만나, 싸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그런 행복한 꿈을.
“이런, 아무래도 여기 간수는 바꿔야겠군.”
목이 잘린 간수의 몸뚱이는 무엇을 꺼내려는 듯 품속에 팔을 집어넣은 채였다.
피식, 그 광경에 미소 지은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딸을 만날 시간이었으니.
#
헤라 카르멘이 마루더즈와 함께 아카데미를 습격했다가 붙잡혔을 때, 언론과 세간은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그야말로 격동, 범람되는 불안감이 시민들을 휩쓸었고, 모든 프로 히어로들은 자신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
원래라면 무시했을 소규모 빌런 조직을 격파, 어떻게든 실적을 올리고자 몸부린 치는 히어로들 덕에 세상의 치안은 극적으로 좋아졌고,
그나마 안심하게 된 시민들 앞에 두 무릎을 꿇은 탑히어로의 사과를 끝으로 세상을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온 듯 했다.
히어로가세상을 지키는, 시민들의 믿음을 온전히 얻은 그 예전으로.
“덕분에 가문과 협력하던 소규모 조직들이 궤멸했다. 그로 인한 피해를 네가 알고는 있나?”
노란 눈빛이 어둠속에서 사납게 일렁였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신의 딸이었으나, 그 눈에는 애정이라곤 담겨져 있지 않았다.
오직 자신과 가문이 본 피해에 대한 분노와 책망뿐, 그를 바라보던 헤라 카르멘은 그 시선이 퍽 익숙한 지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보며 조소를 흘렸다.
“말은 똑바로 하시죠. 궤멸한 게 아니라, 궤멸 시킨 거겠죠. 혹시나 꼬리가 잡힐까봐.”
“...그래, 아주 재밌게 놀았더군. 마루더즈 뿐만이 아니라 저번에 일어났던 A-B지구 사태까지 네가 한 일이라.”
“죽이고 싶은 애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잠깐 힘을 빌리려 했던 건데-”
“죽이고 싶은 건 그 둘이 아니라 나겠지. 아닌가?”
그가 입꼬리를 비틀며 입을 열자, 헤라는 푸흐, 하고 웃었다.
알면서 여태까지 모른 척하고 있었나. 은밀하게 진행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역시 눈치 채고 있었구나.
“맞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신 이유는 저한테 죽어주시려고?”
“설령 네가 구속구를 벗은 상태여도, 나는 너한테 죽을 만큼 약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럼 뭐죠?”
생글생글 웃던 헤라의 표정이 무감하게 변하자, 에드윈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네가 그런 짓을 하는 덕분에, 자금이 꽤나 많이 들어갔다. 올해에 미리 책정했던 예산의 절반을 훌쩍 넘게 추가로 사용했지.”
“그래서요.”
“네가 그 돈을 메꿔 줘야겠다.”
“...나 지금 이런 상태인데, 뭐 어쩌려구요? 돈 내고 보석이라도 시켜주게? 그러면 당신 이미지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 텐데.”
“난 돈 내고 너를 내보낸다 한 적 없다. 가뜩이나 돈도 모자란데, 너 하나 빼자고 아까운 자금을 끌어 쓸 수는 없지.”
철컥-
헤라는 자신의 손을 구속하고 있는 구속구를 흔들어보였다.
이게 있는 한 자신은 이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런 자신에게 무얼 기대한단 말인가.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자, 에드윈이 한 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지하, 아직까지 채 식지 못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놓인 한 구의 시체를.
“너는 나오고, 또 다른 네가 들어갈 거다. 인형술의 이능을 지닌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그렇게까지 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뭔데요?”
“하부조직이 소탕된 지금, 나머지 조직을 최대한 규합해야 한다.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 상태의 빌런들을 계획까지 이끌려면 와해된 상태로는 쓸모가 없어.”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계획, 그 계획의 결행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줄어든 세력은 꽤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원래라면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나머지 3가문에게 협력을 구하는 것도, 그가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쯧,
한차례 혀를 찬 에드윈은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나약하고, 미숙한 아이. 자신의 자식이라 생각하기에 너무도 미욱한 아이였기에, 이런 일을 맡기면서도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자리를 수없이 노리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맡길 수밖에 없는 없다는 현재의 상황이 불만스러울 따름이었다.
“가주회의를 곧 열거다. 아마 거기서 다른 쪽에서 품고 있는 조직들을 몇 얻어낼 수 있겠지.”
“...이능 증폭제는 다른 쪽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네가 해야 할 첫 번째 목표는 그 조직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거고, 두 번째는.”
후우, 잠시 한숨을 내쉰 에드윈은 헤라 카르멘이 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를 떠올렸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두 명의 학생들.
처음에는 우연이라 여겼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그 관계가 깊어졌다.
한 명은 언젠가부터 잊고 있었던 사생아, 또 다른 한명은...
자신이 예전에 남 몰래 죽였던, 그 둘과 비슷한 학생.
여명 전투에서 죽었던 둘을 떠올린 그는 입안에서 도는 씁쓸함에 다시 한 번 혀를 찼다.
운명이란 것을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둘과 워낙 닮은 그 아이를 떠올릴 때면 어째선지 두 명의 이리안이 겹쳐보였다.
샤론과 아이크, 한 때 자신을 꽤나 곤란하게 만들었던 두 골칫덩어리들.
그 때의 자신은 아직 미숙하여 일을 하마터면 그르칠 뻔 했으나,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만약 자신의 계획에 방해되는 새싹이 있다면 미리 처리해두는 게 맞을 터.
“제논 카르멘과 아이샤 이리안을 제거한다.”
“...그 연놈들을 내가 또요?”
“물론, 투랄리온과 네가 한 명에게 처참히 무너졌던 전적이 있으니 지금 당장 그 둘을 상대하라는 것은 아니지.”
“그럼.”
헤라의 눈매가 가늘어지자, 에드윈은 그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조소를 흘렸다.
“조직 중 하나를 빌려주지. 마루더즈 같은 잔챙이를 들고 아카데미를 습격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 될 거다.”
“기한은요?”
“2달이면 충분하겠지.”
“당연하죠. 저번에는 조금 감정이 격해진 탓에 실수한 거니까.”
헤라는 자신이 있었다.
저번 습격은 자신이 아이샤 이리안의 성장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 컸으니.
전 같았으면 직접 나서 상대했겠지만, 아마도 이제는 직접 상대하기엔 이길 확률이 적을 터.
감옥에 들어와서 계속해서 생각했던 계획을 드디어 실행할 때가 왔다는 사실에 그녀는 오스스, 하고 소름 돋는 팔을 매만졌다.
자신을 깔보던 그 푸른 색의 눈동자, 투랄리온과 자신을 무참히 베던 그 얼음을 생각할 때면, 짙은 공포에 몸이 잠식되는 것만 같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은 그녀의 정신을 뒤흔들었고,
잠시나마 냉철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카데미 습격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라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다를 거라고, 그 둘이 자신 앞에 쓰러져 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헤라 카르멘은 그렇게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