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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화 〉단 둘이가 좋아(6) (102/115)



〈 102화 〉단 둘이가 좋아(6)

“그래서,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한참동안 나를 껴안고 있는 제논에게 묻자, 그제서야 제논은 주춤거리며 내게 떨어졌다.

“싫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제논이 코를 파묻었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대답하자, 제논은 뺨을 긁적이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숨을 쉬는 바람에 좀 간지러웠거든, 내 대답에 제논은 큭큭거리며 웃더니 이불을 깐 곳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내 옆에서 잘래?”
“뭐래.”
“농담이야.”

장난이었다는  손을 휘휘 저으며 웃는 제논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눈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깊게 잠겨 있었다.

“...졸려.”
“자 그럼, 불 꺼줄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제논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선 내 발목을 붙잡았다.
왜 그러냐며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이라곤 그저 묵묵히 고개를 젓는 것 뿐.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다시 앉자, 그제서야 제논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며 발목을 붙잡았던 손을 떼었다.

“왜 그래?”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반응이 아닌데, 내가 걱정스런 맘에 묻자 제논은 그런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냥, 불 켜고 잘게. 너 안 잘 거라며.  괜찮으니까, 그냥  켜둬.”
“그게 다야?”
“뭐가?”
“불 끄지 말라는 이유.”

그 말에 제논이 나를 빤히 쳐다봤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말고 없어. 왜, 내가 무서워서 불 끄지 말라는 같잖아.”
“무서워 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귀신을 무서워하진 않아.”

어린애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며 툴툴 대는 제논이었지만 어딘가 꺼림칙하다는 기분을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다고 해야 할까.

모른  할 수도 있었다.


무슨 사정인지 정확히 모르는 데다, 또 저 표정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인지 조차 정확히 몰랐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이대로 넘어가면, 꼭 나중에   큰 일로 다시 찾아올 것만 같아서.
나는 제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

사람에게 무언가 고민이 있다면 짓는 표정이 있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듯,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짓더라도, 그 눈동자만큼은 언제나 흔들려서.
그 것을 놓치면 언젠가 걷잡을  없을 만큼 큰 상처로 다가오곤 했다.

입은 꾹 닫혀있고, 때때로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가 어쩌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눈에는 형용할  없을 만큼이나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는 그 모습이, 지금의제논에게서 보여지고 있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않았는데.

어째선지 내가 불을 끄려할 때면  눈동자가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휘청거렸다.

“괜찮아?”

다시 한  묻자,제논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안 괜찮은 것 같아.”

미소 짓고 있던 입꼬리가 내려가며, 제논의 눈살이 천천히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여지껏 담고 있던 감정을 한 번에 내뱉듯, 깊은 한숨을 다시 내쉰 제논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무서워.”

아마 처음이 아닐까, 제논이 내게 자기가 힘들다고 털어놓는 것은.
아플 때도 내게는 괜찮다며 웃던 제논의 표정이 처음으로 내 앞에서 무너졌다.

하지만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아직 제논이 말하지 않았기에,
떨고 있는 제논의 손을 쥐며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스스로 그 부분을 말하도록, 내가 억지로 추궁하는 게 아닌,
스스로가 마음의 문을 먼저 열도록 기다리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

그렇게 손을 잡으며 몇 분을 기다렸을까, 나를 힐끔 바라  제논이 마침내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안 그랬거든. 그냥 2주 쯤 버티고, 그렇게 금방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까 아니더라.”
“힘들지.”

나도 엄청 힘들었으니까. 평소 같았으면  깜짝할 새에 지나갔을 2주가 이토록 긴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루, 일주일. 심지어 눈을 깜빡이면 지나갔던 몇 시간이 분단위로 체감되는 몸 상태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그저 아련만을 목표로 달렸던 나마저 이런데, 주술식을 새긴 제논이라면  심했겠지.
일주일, 짧다면 짧고 길다하면 긴 시간이지만 나와 제논에겐 충분히, 그리고 아득히 긴 시간이었기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논은 너도 그랬냐며 웃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주술식을 새기는 방법은 들었다고 그랬나? 아무튼 안다고 하니까 말하는 건데. 진짜 피가 엄청 나오더라. 아픈 것도 아픈 건데, 피가 너무 나와서  어지러운 날이 없었어.”

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논은 입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 내가 혀깨물어서 나왔다고 했던  말이야. 그거 그냥 입에서 나온 피거든.”
“...진짜?”
“사람에게 존재하는 탁한 기를 빼낸다곤 하는데...뭐, 사실 그냥 말이 그런 거지 나오는 건 다 피야. 여기 바닥에 피가 고이더라고.”
“그래서 너 목소리가...”

그렇게 힘이 없었던 거구나. 제논은 하얀 타일이 가득 깔린 바닥을 가리키며 벽 끝에서 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 모든 바닥이 피로 뒤덮였다니,  얼굴이 심각해지자 제논이 괜찮다며 미소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쪽팔리긴 한데, 진짜 아프더라.”

자기 심장을 가리킨 제논은, 손가락으로 가슴을 쿡쿡 찌르며 나를 바라봤다.
그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진절머리가 난다며, 머리를 살살 젓은 제논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팠어.”

잔잔하게, 그리고 툭 하고 내뱉은 말이었지만. 제논이 하고 싶었던 말들이 그  마디에 함축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아팠어.

어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들었지만, 결국 그것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전부.

전부 아팠겠지. 심장이, 내장이, 머리가, 마음이. 어디 하나 빠질  없이 모두 아팠으니까.
그러니까 제논이 자기 입으로 ‘아팠다’라며 말을 꺼낸 거겠지.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늘 묵묵히 홀로 아파했던 이가 자기 입으로 그 고통을 실토하는 모습이란,
 속내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썬 도저히 그냥 넘길  없었기에.

“...그리고 무서웠어.”

제논은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나랑 마주잡고 있는 손은 어느덧 힘이 들어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내가 겪은 모든 게  꿈일까봐. 너를 만난 것도, 이렇게 마이어씨와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생각해보면, 제논이 잠을 영 못자게 된 건 단순히 주술식을 새긴 뒤의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한참 전부터, 제논의 안색이 피로하다 느끼고 있었으니까.
학교에서 잠을 자는 시간도 길어졌고, 가끔은 아예 피곤에 절여진 모습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증세가 더 심해진 건.

아마도 이 일주일 동안 겪은 스트레스 탓이겠지.
제논이 주술식을 새기게된 이유가 나 때문이란 것을 떠올리며, 나는 입술을짓씹었다.
어떻게 위로해 줘야할지,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안심시켜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흔들리는 눈동자뿐만 아니라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주고 싶었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서. 그저 제논의 손을 더욱 부드럽게 움켜쥘 뿐이었다.

“나는 여기에 있잖아. 무서워하지 마.”
“지금은 괜찮아.”

제논은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답했다.
아까와는 달리 창백한 안색에 눈살을 찌푸리자, 제논은 옅게 미소지으며 잡은 손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이제는 괜찮아.”

네가 여기 있잖아. 그렇게 덧붙인 제논은 펼쳐진 이불에 드러눕더니, 이내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베개가 커. 이불도.”

확실히, 제논의 말대로 베개와 이불은 쓸데없이 크긴 했다.
제논이 눕고도 베개는 절반 이상이 훤히 남아있었고, 이불 또한 혼자 덮기엔 굉장히 큰 사이즈였으니.

하지만 큰 것과, 내가 같이 눕는 것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내가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제논은 아까 지었던 그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한 번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시는 부탁  할 테니까, 이번 한 번만.”

같이 있어줘.

어쩐지 간절해 보이는 그 부탁을, 나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비어있는 자리를 보며 머뭇거리기도 잠시, 나는 눈을 꼭 감은  제논의 옆에 조심스레 누웠다.

“...좁은데?”
“그러게.”

좁다고 불평하는 나를 바라보는 제논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렇게도 불안해 보였던 얼굴은 어느새 평온을 되찾아 깔끔한 미소만이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래, 네가 좋으면 된 거겠지.

사실 이렇게 있으면서도 아까 제논이 지었던 표정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그 얇디얇은 물방울과도 같은 얼굴을.

등이 맞닿은 상태, 이불  장만으로 가려진 자그마한 공간속에 같이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이거 잠은 잘  있을까.

“잘 자.”

불도 꺼진 깜깜한 적막, 그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두 눈이 졸음에 감기지 않도록 눈을 치켜떴다.
아련을 완성한 이후로 만나게 될 그 꿈도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내 등 뒤에 있는 제논이 편히 잠드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

“...음.”

불안했다. 나름 일찍 오려고는 했지만 그마저도 8시를 훌쩍 넘겨버리고말았다.
방학 첫날이라 나도 붕 떠버린 건가. 담당실에 남겨둔 둘을 생각하면 6시 쯤엔 왔어야 했는데.

거칠게 머리를 쓸어내리며, 품속에 있던 열쇠를 꺼내들었다.

“좀 무서운데.”

문을 열었을 때, 혹시 내가 상상한  이상의 광경이 펼쳐져 있지는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어제의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어졌다.
도대체 열쇠는 왜 안 주고 문을 잠궜던 걸까.
그냥 둘이서 조용히 있으란 생각에 잠궜던 건데, 열쇠를 안 주는 바람에 이렇게까지 커져버렸다.

“제발 피임은 했기를...”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곧이어 펼쳐질 광경을 상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야 너네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코에는, 예상했던 냄새와는 달리 그저 향긋한 샴푸향이 느껴질 뿐이었다.
아이샤가 늘 사용하던 그 달콤한 향.

밤꽃 냄새가 아니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뜨자, 생각했던 것과는 꽤 다른 모습이 보였다.

아이샤를 끌어 안고 자는 제논과, 차마 그 팔에 벗어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한 채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샤.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아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풋.”
“우, 웃지 말고 좀 도와주세요!”

잠을 자지 못한 건지 퀭한 얼굴의 아이샤와는 달리,
제논은 요 일주일 간 전혀 보지 못했던 편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잘한 건가?

“후후.”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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