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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몽환은 싫어(4) (106/115)



〈 106화 〉몽환은 싫어(4)

샤론과 아이크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단어 그대로의 의미가 걸맞을 만큼이나, 정말 ‘좋은’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존재는 꽤나어색했다.


샤론과 거의 똑같이 생긴 얼굴을 지닌 주제에 사람들은 내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명찰조차 표기되지 않은 군복을 입은 나를 이렇게 대해도 좋은 걸까.

문득 나를 속이다가 덮치는  아닐까 싶었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아까 레이 마이어가 직접 처리했겠지.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처럼, 내 존재가 너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녹아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제야 겨우 세 명을 만났다지만. 그렇다한들 내 정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특히 샤론과 아이크, 이  사람이 가장 특이했다.
마치 내가  것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내가 등장한 것에 대해 그리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앤?”
“......”
“앤,  갑자기 멍을 때리고 그러니.”
“아, 죄송합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움찔거리자, 샤론은 괜찮다며 내게 쿠키를 내밀었다.
아까부터 자꾸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데. 이렇게 계속 먹어도 되나 싶었다. 이 쿠키에 뭐가 들어있는 건 아니겠지.

“배불러?”
“...아니요.”

그렇게 대답하며 흘깃, 하고 그녀의 눈을 쳐다봤지만. 나와 같은 붉은 빛의 눈동자에서 비치는 것은 만연한 호의뿐이었다.
분명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어쩐지 부담스럽다고 느껴지는 그 호의에 나는 무심코 차를 들이켰다.

조금 식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홍차가속을 데우자, 천천히 가슴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원래 저렇게 성격이 좋은 사람이었을까.

저런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기도 잠시, 찻잔을 내려놓는 내게 아이크가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이제 막 입대한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거야?”

어쩌다가, 라. 그 말에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까라고 해서 깠죠. 예전에 겪었던 기억을 잠시 떠올린 내가 답하자, 아이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까라면 까야지.”

고개를 주억거린 그는 쿠키를 한 조각 입에 베어 물더니, 이내 샤론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맛있지는 않았는데, 그에게는 그보다  맛있는 것이 없었는지 온갖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나 제논이 다른 사람한테 저렇게 보이는 건 아니겠지.

잠시 제논을 떠올린 나는 이내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잘 있으려나.
아마도 이 곳은 꿈속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일어나 봤자 기껏해야몇 시간 지나있는  전부겠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도 3일이 남았다니.


문득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내가 놓인 상황을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흠흠.”

서로에게 빠져있는 두 사람을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다, 이내 헛기침을  시선을 겨우 돌렸다.
오붓한 두 사람을 방해하기도 그렇고, 이제 슬슬 빠져주는 게 맞겠지.

“전 할 일이 있어서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우리가 붙잡아놔서 미안하게 됐어.”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두 사람을 확인하게 될 기회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마이어씨에게 말로 전해 듣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까 알  있는 사실이  있었다.
샤론 이리안이 확실히 임신하고 있던 것과, 두 사람의 사이가 엄청나게 좋다는 것.

좋다 못해 꿀이 떨어진다는 것.

제논과 나를 보면 저 사람들이 떠오른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사이가 좋아보이는 것은 확실했다.
아카데미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여명 전투가 벌어지는 지금 시점에서는 알고 지낸 시간도 꽤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저렇게 오붓한  보면, 아마 서로를 꽤나 사랑하는  같았다.

“귀감...엇.”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흠칫하기도 잠시, 완전히 닫혀진 문을 잠시 응시하던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한, 생각하기에 좋은 곳이 필요했다.

#

후루룩-

아까도 차를 마셨건만, 또 다시 앞에 놓인 차를 바라보며 나는 한껏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혼자서, 조용히, 그렇게 있을 곳이 필요했는데.

“왜 그러지? 아, 내가 불편한 건가.”

먹으로 가린 듯 새까만 눈동자가 곱게 휘었다.
장난스런 미소를 짓는 그녀를 바라보기도 잠시,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찻잔을 손에 쥐었다.
아마 내가 정말 군인이었다면 혀라도 깨물고 싶지 않았을까.
까마득한 상관을 이렇게 앞에 여러번 두게 되는 것은, 정신 건강에 그리 이롭지 못했다.

물론 나야 그저 꿈속에 들어온 사람이었으니 그리 심한 압박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지만, 혹여나 내 정체가 문제가 될까봐 최대한 조심스레 행동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신기하군. 샤론과 닮은 얼굴이 내게 존대를 하다니. 오래 살고  일이야.”
“저도 신기합니다. 저와 닮은 사람이 있어서.”
“도플갱어...뭐 그런 게 아닐까 싶군.”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린 그녀는, 이내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샤론의 반응은 어떻지? 크게 놀라던가.”

꽤나 친한 듯, 부사령관을 그저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친근하게 대해주셨다는 말도 첨부해서.
그러자 레이 마이어는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차를 홀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친근하게 대했다, 라. 그래, 그런가.”

그 말에 대해 생각하는 레이 마이어에 일순간 불안감이 치솟았다.
 정체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던 걸까.


혹여 이능을 사용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찰나, 그녀가 피식 웃어보였다.

“뭐, 그래. 그럼 그런 거겠지. 그래서, 아까 내가  질문을 다시 한 번 꺼내보지. 내가 불편한가?”

왜 그런 말을 계속 물어보는가 했더니, 내 손이 미세하게나마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사실 차가 아니라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도. 내가 아는 그녀와 너무도 다른 나머지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건가.
머쓱한 나머지 조심스레 고개를 저어 보이자, 그녀가 선선히 웃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가. 가끔 내가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그렇다. 탑히어로라 해봤자, 그저 허울뿐인 자리인데.”
“허울뿐이라뇨?”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차를 응시했다.
탑히어로라는 자리는, 히어로들에게는 선망과 경의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그런 자리였다.
모든 명예를 거머쥐고, 히어로의 정점에 올라섰다는 의미만으로도 최고인, 그런 자리가 아니었나.

하지만 그런 자리에 있는 레이 마이어의 표정은, 기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잠시 차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됐다,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해서 무얼 얻겠다고. 내일이 전투다, 철저히 준비하도록.”
“...아.”

무어라 더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녀는 마지막 남은 차를 홀짝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빠르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내가 그녀에게  말은 없었기에.
그녀는 그렇게 뚜벅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흠.”

그녀가 지었던 표정을 떠올리던 나는 침음을 삼켰다.
탑히어로라, 내가 보았던 탑히어로라 해봤자 에드윈 카르멘 한 사람이라 그 자리에 대한 생각은그리 많이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가장 강한 사람, 엄청난 자리, 높은 위치.  정도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쓸쓸해보였던 걸까.

내가 아는 마이어씨를 떠올릴수록 그 속내를 알기가 힘들어져서, 나는 턱을 괸 채 그녀가 따라줬던 푸른색의 차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있는 마이어씨는 담배를 피지 않았던가.
늘 버릇처럼 품속에 손을 집어넣던 것이 마이어씨였는데, 방금 본 레이 마이어는 그저 묵묵히 차를 마실 뿐, 담배를 피는  같지는 않았다.

담배향도 딱히 나진 않았고.

“전투라.”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자, 이제 밖은 완전히 어둠에 집어 삼켜져있었다.
기지에 있는 불 몇 개가 밝혀져 있을 뿐, 내가 살던 현대에 비해 훨씬 캄캄한 밤하늘은 별무리가 잔뜩 흩뿌려져  아름다워 보였다.

내일이면 저 하늘아래 붉게 물들 텐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한 땅에는 바람에 날리는 모래만이 다분할 따름이라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여명 전투, 꽤나 격렬한 전투였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양 쪽 모두 꽤 많은 수의 사상자가 나왔고, 그 중 유명한 이들의 사망도 잇따랐으니.
마이어씨의 말로는, 그것이 자신이 탑히어로로써 행했던 마지막 행보라고 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역시나 샤론과 아이크. 두 사람의 죽음이 가장  이유겠지.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떠올린 나는 이내 이 곳이  속이라는 것을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그들의 죽음을 막는다 한들, 바뀌는 게 있을 리가 없지.
아무리 생생해도,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보여주는  곳이라 해도 결국엔 몽환이었으니.

바람을 타고 짙은 혈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 아무도 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예전의 기억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향이겠지.
사람이 죽고, 인형처럼 널부러져 곳곳이 뜯어지는.
피로 흥건해진 흙이 붉게 물들고, 짙은 노을마저 피로 보이던 예전의 기억에서.

흐읍.

한차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가, 이내 내쉬었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었지만, 그 것이 주는 반향이 그리 작지 않았기에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괜찮아. 죽는 건 많이 봤잖아.”

질릴 만큼이나, 많이 봐왔지 않은가.
그래서 조금이나마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비루한 정신은 도무지 익숙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내 신분은 아마도 갓 입대한 신병이나 다름 없을 터, 참전한다 하더라도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후방에 빠져있자.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리자, 흥분으로 뛰던 심장이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하아...”

눈을 뜨자 다시 창문으로 보이는 밤하늘이 보였다.

아까와는 달리 달이 붉어 보여서,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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