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0화 〉엄마가 싫어(3) (110/115)



〈 110화 〉엄마가 싫어(3)

“우리의 목표가 뭐라고?”
“간부의 제압이요.”
“그래, 전쟁이지만. 구태여 피를 볼 필요가 없지. 우리가 할 일은 간부의 제압이야. 잠입하기에 우리는  괜찮은 조합이거든.”

아이크가 말했지만,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입이라, 그렇다기엔 은신과 관련된 이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잠입이라니?
그 부분에는 샤론도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아이크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잠입?”
“어, 너 애기한테 나쁜  보여주고 그러면  되잖아.”
“맞긴 한데...”

이 둘을 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어째서일까.
뱃속의 아기한테 좋은 것만 보여주려한다는 생각이 있었으면 애초에 전장에 나오질 말았어야지.
차게 식은 눈으로 둘을 쳐다보자, 둘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없으면 레이가 혼자 힘들 테니까. 이래뵈도 우리 꽤 엄청난 전력이거든, 부사령관이라는 타이틀을 그냥 낙하산으로 달은 게 아니라고.”
“...그럼 어떻게 잠입하는데요?”

확실히, 부사령관이라는 계급이 단순히 이능이 희귀하다며 던져줄 자리는 아니었으니까.
둘다 실력이 있고, 또한 인망이 있으니 그 자리까지 가지 않았을까.
겨우 납득하며 다시 묻자, 아이크는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원래 같았으면 샤론이 가진 이능으로 하나씩 제압해서 몰래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요.”
“너 아까 그 큰 얼음을 네가 만든 거라고 했지? 그 정도 이능이면 뭐,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가도 문제없잖아.”

아니, 잠입이라면서요. 진지하게 잠입의 사전적의미를 다시 떠올리고 있을 때, 샤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간부를 제압하는 건 상대의 전력을 약화하는 목적도 있지만, 상대를 교란시키고자 하는 것도 있어. 게릴라전을 치루듯 상대 기지를 타격하면 상대로써는 레이한테 가는 부대의 수를 줄일 수밖에 없지.”
“...그거 총사령관님이 시킨 거에요?”

레이 마이어의 계급이 총사령관임을 떠올린 내가 묻자, 아이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니, 그럴 리가. 그냥 샤론이 하자고 한 거야.  말렸다?”
“이런 미친.”

방금까지 군사들한테 쫓긴 주제에 어쩜 이렇게 해맑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두 사람의 담력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이마를 짚었다.

도대체 이 꿈에서 언제쯤 깰 수 있으련지.

#

 이능은  대 다수에 특화된 이능이었다.

얼음을 조종하는 능력.


일 대 일에서 꿀리지는 않지만, 아련을 뽑아낸 만큼 상상으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현현할  있었기에.
기지 하나쯤을 공략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쩌저적-

기지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거대한 얼음의 창을 만들어내었다.
이걸 정문에 박으라는 샤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이크가 움직이는 방향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니까 이걸 박아놓고, 혼란을 틈타 잠입한다. 아마도 그런 작전이었나.

10분도 안 돼서 뚝딱하고 나온 작전이었기에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압도적인 힘은 말도 안되는 것들을 실현시키곤 했다.

콰가가강-

푸른 창이 기지에 떨어지자, 기지의 정문에 떨어진 얼음은 이내 기지 전체를 얼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그 곳에 향해 이능을 사용하고, 폭탄을 던져도 쉽사리 깨지지 않자 이내 기지 전체의 경비가 허술해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오우, 좋은데?”
“이 정도야 뭐.”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는 샤론에게 대답하자, 샤론은 내 손을 붙잡고 아이크가 뛰어간 방향을 향해 달려나갔다.
임신한 상태라 몸이 둔할 법도 한데, 아무리 그래도 군인이라는 건지 샤론의 몸놀림은 꽤나 날렵했다.

“좋아, 앤. 기대 이상이야!”

순간 앤이라는 이름에 흠칫했지만, 이내 내 가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다음은 간부가 있는 곳으로 잠입하는  아니었나.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 타박하자, 아이크는 능청스레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잠입에는 도가 텄는지, 아무 흔적도 없는 벽을 밀자 깔끔히 잘린 벽이 스륵, 하고 밀려났다.
도구도 없이 이렇게 자르다니, 아까 보았던 이능으로 잘라낸 건가.
대단하다는 생각에 아이크를 바라보자, 아이크는 가슴을 툭툭 두드리더니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불 하나 깔리지 않은 어두운 복도,  봐도 수상한  곳을 가리킨 아이크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 둘러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기서 쭉 가면 간부실이야. 근데 간부실에 우리 목표가 있을지, 아니면  반대방향에 있는 회의실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인원수를 나누면...안되겠네요.”

이 중에서 전투 관련하여 쓸만한 이능을 지닌 사람이라 해봤자  하나였으니.
조금 불편하더라도 셋이서 함께 움직이는 게 맞으리라.

“침입자다!”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있을 때, 반대쪽에서 한 무리의 군인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들도 바보는 아닐테니, 이렇게 잠입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상정한 거겠지.
애초에 이런 것을 잠입이라   있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조용히, 그리고 소란 없이 저들을 처리하려면 역시 검을 꺼내는  좋겠지.

쩌저적-

월야를 꺼내든 내 몸은 마치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땅을 박차며 얻은 속력과, 내가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더해져  한 번의 휘두름에도 군인 서너명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지자 그 격차에 나를 상대하던 군인들이 순간 주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제압. 어차피 시선을 돌리기 위한 작전이었고, 아까 추격해오던 군사들처럼 나중에 여지가 될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검면으로 뒤통수를  하나둘 기절시키자,
몇 분이 지난 뒤에는  들 모두 땅에 엎어져 복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오우.”

아이크가 그 모습에 감탄하듯 탄성을 내뱉었지만, 나는 쓰러진 군사들을 힐끔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원 요청을 했을지도 몰라요. 빨리 목적만 달성하고 빠져나가죠.”

사실 이 기지에 있는 전원이 달려들어도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우리의 목표가 적의 교란임을 떠올리면 우리의 전력을 파악하기도 전에 빠르게 끝나는  맞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적의 심장부를 타격하고, 그러나 적은 우리가 어느 정도의 전력을 지녔는지 가늠할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니.

“맞아, 아이크. 빨리 움직이자.”
“좋아, 샤론 너도 쉬어야 하니까.”

굳은 표정으로 아이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리는 곧바로 어둑한 복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혹여나 발소리가 퍼질까 조심스레 움직이는 한편,
간부실에 불이 켜져있는 것을 확인한 아이크가 몸을 확 낮추며 입을 열었다.

“좋아, 간부가 여기 있는 것 같구만. 그럼 샤론, 내가 아까 말했던  기억하지?”
“응, 어차피 이능만 잠깐 쓰면 되는 거니까.”
“그래,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혹시 잘못될  같으면 그냥 도망쳐. 여차하면 여기 앤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아이크.”

샤론이 그러지 말라는 듯 아이크를 째려보자, 아이크는 나를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자기 아내라지만, 나를 버림패처럼 쓰는 게 영 맘에 안 드는데.
그런 내 불만을 알았는지, 샤론은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눈썹을 곱게 휘어보였다.

“미안해, 앤. 아이크가 가끔 이렇게 바보처럼 굴 때가 있어서. 네가 이해 좀 해주렴.”
“...알았어요.”

아이크한테는 무어라 더 따지고 싶긴 했지만, 샤론이 부드럽게 달래는 터에 그러기도 뭐하고.
샤론이 이렇게 웃을 때면, 괜스레 마음이 약해지는 것만 같아 어쩔 수 없이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혹시나 모를 위협에 샤론의 옆에 붙자, 샤론이 싱긋 웃으며 간부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분명 걷고 있는데도 판자가 끼익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걸 보면, 그녀또한 이런 일을 심심치 않게 해왔으리라.

끼이익-

간부실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 안에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역시나 총. 총구가 샤론의 머리를 향한 것을 보았을 때,
아무래도 그는 우리의 잠입을 진작부터 눈치챈  같았다.

어떻게 할까,

총구가 샤론의 머리에 향한 순간, 내 머리는 사고를 거듭하기 시작했다.
이 상태에서 이능을 사용한다하면, 아무래도 얼음이 얼려지는 순간 샤론의 머리에 저 총알이 파고들겠지.

그의 행색을 살펴보자, 딱 봐도 ‘나 간부요.’라는 행색과는 거리가 먼 수수한 복장이었다.
다만 그가 간부라는 확신이 드는 것은 가슴 한켠에 달린 특이한 표식.
쪼개진 방패를 가르는 번개 모양의  표식은 아까 내가 처리했던 군인에게서도 볼 수 있었으니.

군인들이 달고 있던 수수한 표식과는 달리 번쩍이는 금색의 표식은, 그가 간부라는 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문득, 우리가 밟고 있는 이 판자가 나무 판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밟을 때마다 큰 소리로 끼익거리는 나무 판자. 그렇다면, 이 나무는 수분을 머금고 있지 않은가.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내 손바닥은 아래를 향해 기울었다.

끼기긱-

나무 판자의 수분이 얼어붙으며, 그가 서있는 바닥에서 천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는 우리가 밟고 있기에 소리가 나는 것이라 착각했는지.
여전히 샤론에게 총구를 겨눈 채 덤덤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부사령관 나으리가 여기엔 무슨 일로 왔을까?”

조금만 더,

솟아오른 얼음이 송곳의 형태를 갖추고, 이내 그 형태가 완성되자 곧바로 간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푸슉-

“크윽...!”

총을  팔을 꿰뚫고 나아가는 얼음,
고통으로 인해 간부가 총을 놓치자 샤론은 곧바로 그에게 손을 내밀더니 이내 보라색의 가루를 흩뿌렸다.

가루? 순간 그게 뭔가 했지만, 이내 땅바닥에 쓰러지는 간부를 보며 깨달았다. 저것이 샤론의 이능이라는 것을.

“좋아, 아주 잘했어!”

샤론은 잘했다는 듯 내 몸을 꼬옥 껴안았지만, 내 시선은 그 보라색의 가루만을 향했다.

...저 가루를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내 착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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