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05. 소환사 (5/69)



〈 5화 〉05. 소환사

꾹 감겨 있던 눈이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빛에 천천히 떠졌다.

"으음...."

옅은 신음소리와 함께 눈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빛.
오직 흰색만 보이는  상황이 거슬려 눈을 다 떠보았지만, 여전히 내 눈 안에 들어오는건 흰색 뿐.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흰색 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

이해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 잠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눈을 천천히 깜박거리며 시야를 가득 채운 흰색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너무나 귀찮아질 정도로 몸이 점점 나른해져 갔다.


’그냥 자야지...‘

그렇게 서서히 다시 수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때.

누나가 나를 향해 소리치는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온 몸에 들이닥치는 불쾌한 기분.


“허억!”


기억에 너무나 강렬하게 남은 누나가 격정적으로 나를 향해 소리치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고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눈을 다시 떴다.


"후우-하아. 후우-하아."


숨을 천천히 고르며 몸에 엄슴했던 불쾌한 기억을 최대한 몰아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어느정도 차려보니 깊은 수면의 늪에 빠졌던 감각들이 다시 천천히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먼저 땀에 흠뻑 젖은 몸.
잠시 불쾌감이 느껴졌지만 다른 감각에 집중하면서 그 감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시각이 완전히 돌아온 후에 주변을 둘러보니 매우 이상한 공간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기에.


모든 곳이 내가 가진 색을 제외하면 흰색으로 채워진 이곳.
깜짝 놀라 몸음 움직이자  공간은 상하좌우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을 정확히 자각 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이 무(無)인 공간.

오직 흰색만이 내 주변을 둘러싸는 상상조차  수 없던 이런 공간에 있단  깨달은 순간.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던  주변의 흰색들이 엄청난 존재감으로 내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멀쩡하게 숨이 쉬어졌던 공간이 한순간에 돌변한 것이다.

“으,  으아악!”


미친 듯이 이곳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열심히 몸을 움직여봐도 제자리에서 팔다리를 휘젓는 느낌만 받을 뿐, 내 몸이 어딘가로 이동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광활한 우주의 한복판에서 헤엄을 친다면 이런 느낌일까?


쿵! 쿵!

빨라진 심장박동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고  안 깊은 곳의 무언가가 자극 받는게 느껴졌다.
이 기괴한 현상에서 벌어진 생명의 공포가 흔들리던  안의  무언가를 다시 요동치게 만든 것이다.

음습하고 끈적끈적한.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쾌락이 다시 느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쾌락이 공포와 고통에 잠식하던 뇌를 구해주었고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침착함하게 행동하라는 충고를 떠올려주었다.


나는 그 쾌락을 더 느끼고 싶었지만 필사적으로 욕구를 억누르며 할아버지의 충고대로 행동했다.

‘후. 벌써부터 이러면 안 돼.'

천천히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곳에 오기 전 상황을 다시 하나씩 떠올렸다.

분명 그 목소리가 했던 말 중에서 자격을 증명하라는 말이 있었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곧  공간에서 무언가 변화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천천히 이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있었다.


‘근데 누나가 자격이 있는 건 그렇다 쳐도 나는 대체 왜?'

현실에서  능력은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누나와 비교조차  수 없었다.
그런데 나까지 이곳에 오게 되다니......


분명히 나는 뛰어난 이들만 이곳에 올 거라 생각했기에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아니면 뭐 인성 이런 거로 자격을 판단하는 건가?’


자격을 갖춘 이들에 대한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를 때쯤 기다리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앞에 새로운 글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상을 분석합니다.]
[분석 완료. 알맞은 능력을 부여합니다.]
[알맞은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 부여 실패. 재 분석합니다.]
[분석 중.......]

차례차례 글자들이 눈 앞에 떠오르는 비현실적인 광경은 다시 한번 봐도 너무나 신기했다.

심지어 떠오른 글자들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자 처음 숫자가 나타났을 때와는 다르게 글자들이 일부 사라졌다.

[분석 중.......]

저 ‘분석 중’이라는 글자만이 사라지지 않고 시야의 한 구석에 남았던 것이다.


‘분석 중’이라는 글자는 시간의 흐름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혼자 느끼기에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도록 변화가 일어나지 않자 나는 날카로웠던 정신이 조금씩 무뎌지며 지루함을 느끼시 시작했다.


‘뭐야? 설마 누나랑 같이 있어서 누나만 데려왔어야 했던 건데 오류가 있어서 나까지 데려오게 된 건가? 그래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고?'

그렇게 잡 생각도 하나둘  떠오르자 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흰색의 존재감이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 커어억!"

내가 그 변화에 당황하자마자 순식간에 다시 숨통을 조여오는  색.


고통의 시작과 함께 아까 전 가라앉혔던 무언가가 다시 흔들리려는 순간.

드디어 알림의 내용이 변하기 시작했다.

[분석 결과 현재 대상에 알맞은 능력 탐색 실패.]
[대상에게 현재 오류가 확인됩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높은 능력치 탐색.]
[탐색 완료. 능력 ’소환사‘를 부여합니다.]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미친? 뭐? 소환사?”

떠오른 글자의 내용은 이해할  없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소환사라니? 소환사라는 능력이 대체 뭔데? 아니, 그것보다 오류라고? 나한테서 무슨 오류가 있는건데?'


능력을 부여한다는 저 단어들마저도 혼란스러운데 무엇보다 가장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건 '오류'라는 단어였다.


 처음 능력을 찾지 못하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오류와 함께 능력을 주다니.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아까 전을 기억하며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했다.

조금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글자들이 떠오른 알림창에서 ’정보‘라는 단어를 확인하려고 생각하자.

「정다운/소환사 1」

“........ 이게 끝이야?”


내 눈 앞에 떠오른 내용은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하게 부실했다.


“아니, 적어도 힘, 민첩, 지력, 마력. 뭐 이런 것들은 상태창, 시스템 같은 거 있을  기본적으로 나오는 게 상식 아닌가?”


나는 믿을  없을 정도로 부실한 상태창에 수차례나 정보를 마음속으로 여닫아 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이름 옆에 소환사라고 붙이면 끝이야? 능력을 부여한다고 했으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어야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것도 없는 흰 공간에서 악에 받혀 소리쳤고 그런 나의 고함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스킬이 해방됩니다.]

“어?”


새로운 알림이 떠올라 확인해보니.

「정다운/소환사 1
보유 스킬: 소환(아이템 소환)」

정보에 한 줄이 새로 생겨 있었다.
새롭게 생겨난 스킬은 '소환'이라고 적혀져 있었고  옆에 아이템 소환이 적혀져 있었다.

"..... 아이템이라고? 무슨 게임이라도 되는 거냐?"


실제로 아이템이라는 단어를 게임에서만 사용했던 나는 당당히 게임처럼 '아이템 소환'이 적혀져 있는게 어이가 없었다.

멸망을 시킨다면서 게임 같은 이상한  주다니.

물론 이게 게임과 똑같은 아이템 소환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미친듯이 긴장하던 나에게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저 단어가 묘하게 열 받게 했다.


[스킬창을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런 나에게 또다시 들려오는 알림.

일단 많이 알수록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에 나는 '확인'을 마음속으로 선택했다.



[아이템 소환: 아이템을 소환합니다.] - 무료 소환 1회

“방식이 완전 게임 속 가챠랑 똑같은데?”


떠오른 설명은 마치 흔히 게임에서 소환을  때와 비슷했다.
심지어 처음 무료로 소환하게 해주는 것까지 비슷한 걸 보니 점점  소환이 게임에서 소환하는 것과 똑같은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 씨발, 모르겠다. 일단 가챠는 지르고 봐야지! 지금 당장 소ㅎ.... 어?"

[대상 확인 과정 완료.]
[대상의 능력: 소환사.]
[능력:소환사  맞게 소형 마석 1개를 지급합니다.]
[’자격의 증명‘이 시작됩니다.]


소환을 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 알림들이 무수히 생겨났고 공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데 시작하면 어떻게 하라는 건데!"

하려던 소환을 더 이상 하지도 못한 채, 나는 깨져가는 공간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 정신을 잃었다.





*



이번에 눈을 떴을 때  수 있었던  아까의 흰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새파란 하늘이었다.

맑은 하늘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좋게 내리쬐고 있었다.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은 아름다운 하늘.

흰 공간에 있을 때처럼 몸이 나른하거나 기억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일도 없었기에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확인했고 넓은 들판의 한복판에 내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맑은 하늘과 넓은 들판.

다시 한번 눈 앞에 떠올라 있는 정보와 스킬창이 제대로 열리는 것을 확인했고 어떤 내용도 바뀌지 않은 상태였다.

’마석도 준다고 했는데 어디 있는거지?‘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게 느껴졌지만 아까전의 공간처럼 무언가 공격적인 변화가 전혀 없었다.

나는 조금은 안심한  주변을 훑어보니  옆에서 푸른색으로 밝게 빛나는 돌을 볼  있었다.

“와! 완전 게임 같은데? 진짜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석이랑 똑같이 생겼네.”

아름답게 빛나는 돌을 얼른 주워든 순간.


돌이 곧바로 내 손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


녹아서 완전히 없어져버린 마석.


어이가 없던 나는 마석이 있던 자리를 황망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바꿨다.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니고 녹아 버리면서 무언가가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 있었기에 몸에 흡수되었을거라 애써 생각하며 아까 사용하지 못한 스킬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이템 소환: 아이템을 소환합니다.] - 무료 소환 1회


스킬창은 어서 빨리 자신을 사용하라는 듯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스킬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진짜 아이템 맞겠지? 멸망을 말했으면서 이딴  주니까 대체 뭐가 뭔지를 모르겠네. 어차피 주어진 이상 써야 하는건데...... 만약 정말 게임처럼 소환하는 거면 제발 좋은 거 좀 떠라!! ‘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치며 아이템 소환을 시작하자 내 눈앞에 수많은 물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염이 작열하는 검, 악마의 날개가 달린 방패, 너무나 아름다운 보석들로 이루어진 왕관,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책, 보기만 해도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 단검....


“와……!”

살면서 한 번도   없었던 신비로운 물건들이 눈앞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넓은 하늘마저도 전부 채우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 저절로 감탄성을 흘리며 몇몇 아이템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향연을 바라봤다.


그 때.


촤라라라락!


끝없이 펼쳐지던 아이템들이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모여들었고 앞에서 점점 작아지던 아이템들은 어느새 빽빽하게 아이템들이 놓여 있는 거대한 룰렛으로 변했다.

“설마 저 하늘을 가득 메우던 아이템 중에서 하나가 나온다는건가?”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우던 아이템들이었기에 수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고 그 모든 아이템들이 들어간 룰렛을 바라보며 나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거 확률이 대체 얼마나 악랄한거지?‘


[아이템 소환이 시작됩니다.]

그런 나의 맘을 뒤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한 룰렛을 바라보며 나는 결국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룰렛을 바라보고 있을  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게임하면서 그래도 집판검을 두 번이나 뽑아봤는데 그 운이 어디 가겠어?'

애써 나를 진정시키며 앞을 바라봤다.

빠르게 돌아가던 룰렛이 천천히 회전을 멈추었고  칸씩 움직이던 화살표가 완전히 멈춘 순간 찬란한 광채가 눈앞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내가 지금까지 한 어떤 게임들보다 더욱 화려한 빛이 룰렛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 화려한 빛에 진심으로 행복한 기분이 되어 앞을 바라봤다.
이윽고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내 앞에는 한 손에 들어오는 마치 주판을 닮은 화려한 아이템이 놓여져 있었다.
지구상에 그 어떤 보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 3개가 나란히 가운데에 걸려 있었고 보석이 걸려 있는 몸체 또한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급 ’굴레의 계산기‘가 소환되었습니다.]

“대…. 박…….”


나는  찬란한 자태를 뽐내는 아이템을 보며 입을 다물지  했고 눈에 보이는 모습과 알림창으로만 보아도 엄청나게 특별할 것 같은 이 아이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 아이템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아이템과 소환사의 ’격‘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템 정보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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