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07. 소환수 (7/69)



〈 7화 〉07. 소환수

"허억,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아니, 더 이상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끄으으윽!"

내 몸이 이제 제발 멈추라고,  이상 달릴 수 없다고 나에게 애원해 왔다.
그러나 나는, 절대 그 애원을 들어줄 수 없다.

“끼에에에엑! 끼에엑!”

퍼억! 퍽!

뒤쪽에서 분노에 찬 고블린들의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둔탁한 것들이 연신맞부딪히며 들려오는 소름 돋는 소음 또한 나를 괴롭혔다.

“씨발! 씨발!”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너무 오만했나? 아무리 경계를 했다고 해도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공격했는데 막을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걸까.


끊임없는 후회와 분노와 절망이 나에게 들이닥쳤다.

저 괴물들에게 잡히는 순간 내가 어떻게 될까, 저 흉기들로 나를 공격하는 건가, 나를 잡으면 산채로 짐승처럼 뜯어 먹나?


미칠 것 같은 생각에 연이어 온갖 불길한 미래들이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 생각들 때문에 끊임없이 경종을 울려대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나는 힘이 빠져가는 다리를 욕설을 내뱉어가며 어떻게든 움직여야만 했다.

숨 가쁘게 달리며 미친 듯이 뛰어가던 그 순간.

“캬하아아악!”

“끼에에에엑!”

생명의 마지막 단말마가 들려온 순간.
동료 고블린의 죽음에 분노에 차 울부짖는 고블린들의 소리가 더욱 커졌고.

“캬하악!(신이시여!)”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역한 고블린이 끔찍한 고통에 찬 비명소리로 나를 부르며 울부짖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그 처절한 소리에 뒤를 보며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을 방해하듯 알림들이 눈 앞에 떠올랐다.

[고블린(사역마)가 고블린 1마리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1 올랐습니다.]
[추가 스킬이 해방됩니다.]
[고블린(사역마)가 공격당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알림을 본능적으로 읽어 내려 가던 중,  마지막 알림을 읽자 심장이 내려 앉는 느낌과 함께 한계까지 혹사시켰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크으으윽!”

 자리에서 한바탕 구르며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고통과 함께 내게 들이닥치는 억울함에 눈물이 맺히고 가슴에 분노가 차올랐다.

“끼엑! 끼에에엑!”

나의 상황을 비웃듯 뒤에서는 승리의 기쁨에 찬 울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저 소리들을 다 지르고 나면 생명의 단말마를 내뱉을 다음 대상은 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잠깐 차오르려던 분노는 순식간에 끔찍한 생각들에 밀려스러졌고.
절망적인 미래를 떠올리던 뇌는 내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아악!"

넘어질 때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지 힘을 주는 순간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고 결국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통에 차 내뱉는 비명 소리에 맞춰 툭. 그치는 고블린들의 울음소리.

남은여덟마리 고블린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이렇게 죽어야한다고?’

손에 들린 계산기에게 구원을 바라듯 쳐다봤지만 아름답게 반짝이는 보석은  두 개.

고블린  마리당 보석 한 개가 쓰여진다면 계산기에 남은 사용횟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소름끼치는 순간은 내게 죽음이 눈 앞에 다가왔다는걸 강렬하게 일깨워 주었다.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정신을 놓아버리라 자극 했지만.
내 앞에 자신을 잊지 말라는  알림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추가 스킬이 해방됩니다.]

“추가 스킬....?”

환하게 빛나는 알림을 보며 되뇌자 눈앞에 떠오르는 창.

[아이템 소환: 아이템을 소환합니다.] - 소환 불가
[랜덤 소환: 랜덤으로 소환합니다.] - 무료 소환 1회

스킬명이 랜덤 소환이었기에 어떤 것이 소환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계산기가 한번이라도나오면 5마리를 사역할 수 있으니 어떻게든 훗날을 도모할 수 있겠지만 다른 아이템이 소환되서 계산기처럼 아무런 정보를 확인  수 없다면 똑같이 곤란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템 소환 밑에 따로 랜덤이라고 되어 있어 아이템이 소환될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극악한 승률의 도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뭐든지......!  개 같은 상황을 벗어나  수 있는 거라면!’

차르르르르

이를 악물며 랜덤 소환을 실행한 순간  앞에 룰렛이 떠올라 힘차게돌아가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놈들이 나를 향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피 말리는 발자국 소리에 맞춰 룰렛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내 심장 소리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들려올 때.

서서히 속도를 줄이던 룰렛이 마침내  지점에서 멈췄고 눈 앞에 알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랜덤 소환의 대상 지정이 끝났습니다. 대상: 소환수]
[소환수 소환이 시작됩니다.]

“소환수......?”

멍하니 알림의 내용을 중얼거린 그 순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복잡한 문양들이 내 앞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기괴하고 복잡한 문양들은 가에서부터 새겨지다 점차 크기를 키우며 서로 합쳐졌다.
마치 게임 속에 나오는 마법진 같은 모양처럼.

점점 완성되어가는 마법진은 인간이 그린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정교했으며 지금  상황을 잠깐 잊게 만드는 신비한 아름다움이 맴돌고 있었다.

멍하니완성되는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끼엑!”

부웅!

기합과 같은 울음소리에 뒤이어 파공성이 들려왔고, 나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앞으로 몸을 굴렀다.

퍼억!

방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곳에 쳐 박히는 조잡한 돌도끼.

“이런 미친......!”

반응이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나는 저런 무식한 것에 맞아 생사를 헤매고 있었으리라.

뒤늦게 찾아오는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비명을 참자 그런 나를 향한 괴물들의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끼끼끽! 키킥!”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자 그들의 눈에 담겨 있는 진득한 악의가보였다.

사냥이 완료되기 전 사냥감을 조롱하며 악랄한 쾌감을 느끼는 듯, 그들의 입에는 쾌감에 찬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 사냥감을 대하는 듯한 태도에 마음속에서 분노가 다시 솟아오르려는 순간.

귀를 찢는 듯한 맹렬한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귀를 찢는 듯한 맹렬한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삐이이이이!

"크윽!"

귓가에 엄청난 이명이 울려퍼졌고.

지금까지 보던 알림과 비교할  없는 크기의 알림창이 크게 떠올랐다.

{주의! 소환 중 마법진을 침범하였습니다!}
{주의! 마법진이 어그러지며 술식이 방해 받았습니다!}
{주의! 술식의 심각한 오류 발생!}


위이이이잉!

이윽고 알림창 옆에서 붉은 사이렌마저 떠올라 사이렌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경고! 소환이 비틀어지며 소환 체계의 문제 발생!!!}
{경고! 체계 정상화 불가!!!}
{경고! 소환 중지........ 비정상적인 개입으로 소환이 재개됩니다!}

처음에는 점점 지워지며 사라져 가던 마법진이 빠른 속도로 다시 완성되었다.

새롭게 완성된 마법진은 언뜻 봤을 때는 처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마법진에서는 처음 느낄 수 있었던 신비한 아름다움이 아닌 어딘가 불길한, 그러나 사람을 매혹하는 요사스러운 아름다움이 마법진에 맴돌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에 홀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자 마법진에서 순식간에 검은빛이 작열하듯 높게 치솟아 올랐다.

“끼에에엑! 끼에엑!”

그 빛을보며 나를 비웃던 괴물들도 놀라서 비명을 지르머 도망치기 시작했다.

눈 앞에서 터진 강렬한 빛에 나도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려 했지만.

그 검은빛은 나를 매혹하듯 강렬하게 타오르며 한순간도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환이 완료되었습니다.]
[소환수와 소환사의 ‘격’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의! 비정상적인 소환입니다!}
{경고! 정식적으로 계약된 소환수가 아닙니다! 신변에 주의하십시오!}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알림창들이 밀려들어 왔지만 마법진에서 발하는 빛에매혹된 나는 알림을 제대로 살필 겨를 조차 없었다.

강렬하게타오르던 빛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사라져 갔고 어느새 마법진 중앙에 서 있는 한 형체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위에 차츰 퍼지기 시작하는 꽃향기.

“후훗.”

그리고 향기와 함께 들려오는 여성의 가볍게 웃는 소리.

눈 앞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더욱 맹렬하게  형체로 시선을 고정해야만 했다.

단지 가벼운 웃음소리만을 들었을 뿐이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욕망이 서서히 나에게 찾아오고 있었기에.

이윽고 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한 여자가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은발을 길게 늘어트린 그녀는 루비 같은 핏빛 눈동자 속에 나를 담고 있었다.
노출이 적은 랩 드레스임에도 불구하고 확연한 굴곡이 느껴지는 옷에서 그녀의 환상적인 몸매도 알 수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단언컨대 지금까지 살면서 봤던  어떤 사람도 그녀보다 아름답다  수 없을 것이라 맹세할 수 있었다.

아니,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저 여성외에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초월적인아름다움.

그리고 그녀를 확실하게 볼 수 있게 된 순간.

더 강렬하게 차오르는 욕망.

아니 정확히는 육욕.

내 아랫도리가 점점 뻐근해져 오고 있었다.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나의 모습을 미소를 띤  지켜보던 그녀가 우아하게 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를 시작했다.

“거룩한 소환 의식에 따라 소환된 자. 주인을 뵙습니다.”

[EX급 ‘세상 끝에 핀 월하향’  소환되었습니다!]
[소환사와 소환수의 ‘격’의 차이로 소환수의 정보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

고혹적으로 인사를 마친 그녀는 나를 향해 다시 그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고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주저앉아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작게 눈웃음을  그녀가 나를 향해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는  순간이 미치도록 길게 느껴졌다.

미친 듯이 느리게 지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부 영혼에 새겨지듯 느껴졌다.

모든 움직임에 아찔한 색기가 배어 있어 미친 듯이 남성을 유혹하는 그녀에게서 정신을 도저히 차릴 수 없었다.

어느덧 주변을 맴돌던 꽃향기는 더더욱 진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다친 다리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머릿속을 꽉 채우는 성욕만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을 잃어버릴  같은흥분의 도가니 속에 이제는 그 흥분으로 인해 고통마저 느껴질  쯤 마침내 그녀가 내 앞에 다다랐다.

“하아……”

그녀는 나를 바라본 채 야릇한 숨을 내쉬며 나를 불렀다.

“주인…… 님……”

그리고 앞에 서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끝이 내 몸에 닿는 순간 그곳에서 아까와는 비교할  없는 미칠듯한 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리를 천천히 굽혀 쓰다듬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내 턱으로 가져갔다.

“후후. 귀여우셔라. 굳이 참지 않으셔도 되는데 말이죠?”

나의 고개를 들어 자신의 눈과 내 눈을 맞춘 그녀는 보석 같은 그 눈을 빛내며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녀의 손이 닿아 있는 내 볼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과 초월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에 정신이 점점 몽롱해져 갔다.

그녀가 조금씩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할수록 점점 내 눈의 초점이 흐려졌다.


원래대로 돌아갔던 시간의 흐름은 다시 그녀가 걸어올 때처럼느리게 흘러갔다.

어떻게든 이 뇌가 타버릴  같은 인지를 초월한 듯한 그녀의 매력에서 눈을 돌리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래선 안 된다는 듯이 그녀가 부드럽게 손에 힘을 쥐었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만큼 얼굴이 가까워졌을  그녀의 보석 같은 눈 속에 담긴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터질 것처럼 붉어진얼굴을 하고 완전히 눈이 풀린 꼴 사나운 내 모습.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그녀의 눈속에서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나를 관통했다.

갑작스럽게느껴지는 강렬한 위화감에 당황하고 있을  그녀가 섹시한 비음을 흘렸다.

“흐응…….”

내 혼란스러운 심정을 모르는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그녀가  귓가에 매혹적인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주인님, 저를 위해서 뭐든지  해주실 거죠……?”

그녀의 말이 완전히 끝난 순간.

아찔한 통증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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