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9. 멸망의 시작(2)
눈을 감는 정다운을 보며 정아름은 온갖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한 생각이 거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지만.
'대체 저 년이 누구지?'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이전과는 너무나 달라진 지금 상황이었다.
물론 달라진 대부분은 그녀가 의도한 것이었지만.
자신이 세워둔 계획하에 있는 일들은 모두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가장 힘들거라고 생각했던 조부모님의 죽음까지도.
'가장 큰 장애물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것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년은.
빠득.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어떤 여자보다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정아름이었지만 지금 정다운 옆에 있는 저 여자는 아니었다.
'저 외모에 저런 능력이라고....? 대체, 대체 뭐야 저 년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여성에 대한 강렬한 질투심과 너무나 압도적인 그녀에 대한 열등감이 겹친 증오가 넘쳐나 잠깐 연기가 흐트러져 죽여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정아름의 시선을 느낀 듯 그녀가 정아름을 바라봤다.
그리고.
싸늘한 비웃음을 정아름에게 돌려 주었다.
'저 씨발년이.....!'
그 너무나 차갑고 모욕적인 웃음에 감정이 폭발했지만 어느새 그녀의 마법은 정아름의 몸을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
콰앙!
다시 또 무언가가 부서지는 굉음에 눈을 떠보자 그곳에는 내 쪽으로 뻗어 나와 있는 칼날과 부서진 핸드폰이 먼저 눈에 보였다.
그리고 발에 불쾌한 촉감이 닿는 것과 동시에 나는 볼 수 있었다. ----- 그 참상을.
“아... 아...... 아......”
누나가 신음을 흘리며 털썩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믿을 수 없는 눈 앞의 광경을 보며 천천히 눈을 깜박였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내 눈 앞에는....
조부모님이 부서진 핸드폰에서 튀어나온 칼날에 그대로 목이 꿰뚫려 눈을 부릅뜬 채로 죽어 계셨다.
내 발에 닿은 질척한 감촉은 그분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였던 것이다.
할머니의 비명 소리를 핸드폰 너머로 들으며 이런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이 광경을 눈으로 보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소중한 것을 잃은 분노.
그 분노와 충격이 나를 강타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정다운!”
누나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 잘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계셨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시간이 다 되었을 때 먼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만일 그렇게 되면 꼭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말씀해주셨어. 너가 지금 이렇게 무너지면 조부모님 말씀..... 못 지키는 거야.”
누나는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누나의 말을 다 듣고 천천히 뒤에 서 있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분명 아까 전에도 치료를 할 수 있었지. 두 분. 치료할 수 있을까?”
“아마 칼에 찔리자마자 즉사한 것 같은데.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난데다 난 죽은 사람을 멀쩡하게 살리는 능력은 갖고 있지 않아.”
“하, 하하.....”
뭔지 모를 온갖 감정에 허탈한 웃음을 흘리자 누나가 다시 내게 말했다.
"너가 돌아 오지 않을 때……. 조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신 줄 알아? 그렇게 너를 걱정하시던 두 분이 시간이 다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자신들이 죽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어떻게든 살아서 너가 돌아오면 꼭 지켜 주라고 나한테 부탁하신 두 분이야. 너 지금 정신 차려야 해."
'할아버지.... 할머니.....!'
마지막까지 나를 걱정하고 사랑해주시던 두 분이 이렇게 한순간에 돌아가셨다는 것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고 뜨겁게 끓어오른 분노는 오히려 마음속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리고 누나의 말과 아까 전 들었던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짐했다.
"분명….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법도 있겠지?"
"물론. 나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언데드 밖에 못 만들어. 생전이랑은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그렇게라도 해줄까?"
"아니. 분명 완벽히 두 분을 되살릴 방법이 있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두 분 앞에서 맹세했다.
"제가 어떻게든 두 분 다시 살려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한 나는 누나에게 말했다.
"미안해, 누나."
"아니야.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어떻게든 살아 남자 우리.“
”당연하지. 반드시 살아 남아서 복수해야지.“
그녀에게 대답하며 다시 한번 다짐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두 분의 시체를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잠깐."
그녀에게 묻자 누나가 나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저 사람이 대체 누군데 우리 가족을 맡겨?”
누나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그녀는 누나의 말을 신경도 쓰지 않고 손을 한번 휘저어 두 분의 사체를 어딘가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완전히 누나를 무시하는 그녀의 행동을 본 누나는 그녀에게 크게 소리쳤다.
“당신! 지금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이긴? 내 운명의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중이지.”
“.....뭐?”
그녀의 갑작스러운 말에 누나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 걱정하지 마. 난 괜히 내 파트너가 가지고 있는 우.애. 깊은 남매 사이 '관계' 를 파괴할 생각 없어. 너는 너 할 일 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하자고. 알겠어? 물론 너가 선을 넘으면 방금 전의 말은 없었던 게 되겠지만 말이야.”
누나는 그녀의 말에 엄청나게 분노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한동안 그녀를 노려보던 누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내게 말했다.
"운명의 상대라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야?"
누나의 말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몰라 잠깐 당황했지만 이번에도 그녀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가족이 조부모님이 끝이야? 더 있으면 그 사람들한테도 얼른 가는게 나을텐데?"
"아!"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외조부모님을 떠올렸고 아까처럼 그녀에게 부탁해 다시 한 번 이동했다.
*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가 소리치는 모습에 눈을 떠보니 피가 흥건한 곳에 똑같이 목이 꿰뚫린 채 목숨을 잃으신 두 분이 눈에 들어왔다.
누나는 두 분을 보자 결국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그녀에게 부탁했다.
“두 분도…. 부탁할게…….”
“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살릴 사람이 많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거 알지?”
“그래. 하지만 포기하진 않을거야.”
“그래.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중에 내 일도 협력해주길 바랄게.”
울고 있는 누나를 달래 거리가 좀 더 떨어져 있는 외조부모님 댁으로 이동했지만, 그곳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나머지 두 분의 시체도 수습해 드린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시체를 수습할 가까운 가족이 떠오르지 않았고 시체를 수습하고 조금이나마 진정이 된 누나가 바로 다시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말해 봐. 저 사람이랑 도대체 무슨 사이야? 어떻게 알게 된 건데?”
나도 이제는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대답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안에서 알게 된 사이야.”
“뭐? 안?”
“그래. 자격을 증명하라고 우리가 끌려갔던 그 공간.”
“그런데 같이 나올 수 있었다고? 그리고 대체 거기서 만났는데 왜 저 사람이 널 운명의 상대라고부르는 건데?”
나는 누나에게 내가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내가 그녀에게 고문을 당했던 일이나 계산기로 인해 굴레가 엮였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내가 그녀를 소환했다고만 누나에게 설명했다.
“소환사라니...”
누나는 내가 얻게 된 직업에 놀란 듯 했다.
“누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어? 그리고 나보다 거기서 먼저 나온거지? 뭔가 알고 있는 건 없어?”
"나는 이랬어."
누나가 말해준 자격의 증명은 나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누나는 흰 공간에서 거의 바로 능력 '검사'를 받았으며 검 한 자루와 스킬로 검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그 공간에서 나오자 숲이 펼쳐졌고 누나의 앞에서 나타난 다른 두 명의 사람들과 합류했으며 그들은 각각 마법을 쓰는 사람과 회복을 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세 명은 숲에 있는 고블린을 잡으며 레벨을 올렸고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고블린을 다 잡은 후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누나도 마지막에 주는 성과를 받았어?"
"받았지. 50 포인트."
"50? 그건 어떻게 사용했는데?"
"'정보'에서 능력치나 스킬을 올릴 수 있던데?"
"능력치도 있어?"
"레벨이 10 찍으면 열리더라. 너 설마 레벨 10도 아니야?"
"어... 일단 다른 거 있으면 먼저 말해봐.”
누나는 잠깐 나를 노려보다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증명에서 돌아온 후 조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정보를 찾았고 인터넷과 TV와 할아버지가 파악해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해본 결과 전 세계 곳곳에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포탈이 열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빠져나와 정부에 알린 사람들만을 가지고 추산해봤을 때 자격을 갖춘 사람들의 수는 확실하진 않지만 인구수 대비 10000:1 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었을 거야. 갑자기 핸드폰에서 저런 게 튀어나올 줄 아무도 상상 못 했을 테니까. 나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지 않았으면 죽었을 테고.”
“그럼……. 한국에 지금 살아있는 사람은 핸드폰이 없는 사람들까지 생각해 봤을 때 십만 명도 안 되려나?”
“모르지. 꼭 핸드폰만 저렇게 변했을 거라곤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그녀는 잠시 시체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너무나 힘들고 지쳐보이는 그녀의 표정.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글쎄... 아마 그런 일은 없지 않을까?”
“그렇겠지....?”
그렇게 말한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것보다. 저 여자 도대체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단지 그것만으론 설명이 안 돼. 나한테 숨기고 있는 거 있지? 얼른 다시 말해봐.”
"어? 아니야. 그럴 리가."
"정다운. 너 누나한테 거짓말 할래? 지금 의지할 사람이 너 밖에 없는 나한ㅌ...... 아.... 안 ㄷ... 왜 이렇게 피곤...."
갑자기 누나의 눈에 피로가 가득 차더니 눈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누나. 오늘 많이 힘들었나봐 좀 쉬어 누나.”
"아....냐.... 안 피곤....ㅎ..... 아....."
누나가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것 같았지만 결국 몰려드는 피곤을 참지 못하고 누나가 내게 기대며 잠들었다.
나는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이에게 눈을 돌렸다.
"위험한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너가 곤란해 보여서 잠시 재운 것 뿐이야."
".....그래. 고마워."
"흐응..... 그런데.... 아니다."
그녀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을 끝맺지 않고 주제를 돌렸다.
“신비한 세계네. 마법이 없고 기계공학이 극도로 발달한 세계라니. 역시 새로운 차원은 항상 신선하단 말이야.”
그녀는 새로운 차원에 온 것에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지구에 대해서 그렇게 평가하는 걸 보면 그녀가 있었던 세계는 분명 많이 달랐던 곳이었으리라.
“이 다음엔 어떻게 할 거야?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일단은...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다는 곳부터 들어가 봐야 하지 않을까?”
“흐음... 너는 아까 그곳에서 나오면서 얻었던 게 없어?”
“아!”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보상을 떠올렸고 얼른 스킬창을 열어 확인했다.
[아이템 소환: 아이템을 소환합니다] - 소환 2회
“아이템 소환을 두 번 할 수 있는데. 지금 하는 게 나으려나?”
“여기서 그 망할 ‘굴레의 계산기’가 나왔다고 했나? 이번에도 그렇게 대단한 걸 소환할 수만 있다면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어?”
“아…. 근데…. 이게 소환이라서 꼭 그렇게 좋은 것만 뜨진 않을 거야. 소환은 완전 무작위에 운빨이라서.”
“넌 일단 그딴 말도 안되는 걸 뽑은 순간부터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도 돼. 내가 개입했다지만 처음 소환한 소환수가 나였으면서?”
그녀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도 소환에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음……. 일단 해 볼 텐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소환은 항상 모르는거니까.”
[아이템 소환이 시작됩니다.]
알림창이 떠오른 후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수많은 아이템.
하늘로 뻗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보다 더 많이 하늘과 땅을 수놓는 수많은 아이템들의 향연에 나는 또다시 넋을 잃고 말았다.
“와……. 말도 안 돼......”
그녀조차도 충격을 받은 듯 떠오른 아이템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내가 대충 보기만해도 내가 가진 것들보다 더 좋은 것들이 보이는데 이런 걸 소환하는 능력이라고? 이런 능력을 가진 걸 벌레라고 하기엔....”
마지막에 이르러 기분이 더러워지게 만드는 그녀의 영 탐탁지 않은 감상을 들으면서 저번처럼 아이템들이 한 곳으로 모여 합쳐진 뒤 룰렛으로 변해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힘차게 돌아가던 룰렛이 멈추자.
눈앞에서 터져나오는 빛.
[S급 ‘성전을 이끄는 대천사의 3번째 검’이 소환되었습니다.]
“와……. 미친…….”
날카로운 예기에 보기만 해도 경건함을 느낄 수 있는 롱소드가 나타났다.
천사의 날개 모양이 조각된 그립을 가진 검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며 그 안에 있는 엄청난 힘이 나한테도 느껴졌다.
물론.
[아이템과 소환사의 ’격‘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템 정보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검을 손에 쥐자마자 어김없이 알림이 떠올랐지만.
“으윽.”
그러나 옆에서 들리는 신음.
“음…. 난 저 검이랑 상성이 많이 안 맞는데. 어디 치워 놓을 순 없어?”
“뭐? 이 좋은 검을?”
“검은 되게 좋은 거가 맞긴 한데 저건 나랑 상성이 완전히 최악이야. 다른 곳에다 놓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아. ”
“음…. 일단 집 안에 갖다 놓을게. 누나 옆에다 두고 오면 되려나? 저 검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
"그래. 그렇게 해."
검을 들어 집 안으로 가서 자고있는 누나의 옆에 갖다 놓은 뒤 나는 두 번째 소환을 시작했다.
룰렛이 멈췄을 때 나온 건.
[SSS급 ‘대마왕의 농축된 심장’이 소환되었습니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눈에 보일 정도로 검은 빛을 내뿜으며 엄청나게 불길함을 흘리는 작은 알약이었다.
그런데 그 알약을 본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
[아이템과 소환사의 ’격‘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템 정보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무슨 알약이 SSS급이야……. 아니 그런데 이 느낌은 대체?‘
“자아아아암까아아아안!”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소리친 그녀가 어느 순간 내 앞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있지? 그거 나 주면 안 될까? 응?”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그녀가 재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거~ 너가 먹으면 큰일 나~ 딱 봐도 불길해 보이지 않아? 응? 아까 거랑 완전 비교되지? 근데 이게 나한텐 어~엄청 나게 좋은 거란 말이야? 응? 제발. 나한테 이거 주면 안 되니? 응? 응?”
안 부리던 애교까지 부리면서 알약에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은 언뜻 광기까지 엿보였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러냐?”
“이게 뭐라고? 너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엄청난 물건이지! 너 정말 엄청난 거라니까? 너가 정말 이런 걸 소환할 수 있다면 내 일에 단순한 협력만이 아니라 엄청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
그녀가 다시 한번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제에바알~ 이거 나 주면 안 될까~?”
그런데 그 때.
콰아앙!
[절망하고 절망하라.]
굉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고.
타다다다당!
“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