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20. 멸망의 시작(3)
분명 내귓가에 들려온 건 총성이었다.
일상에서 절대 들을 수 없는, 마지막 기억이 예비군 훈련이 끝인 저 소음.
하지만 그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단발이 아닌 팝콘 튀기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는 연발 사격의 소리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누나의 비명소리.
나는 그 소리에 곧바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녀가 나를 막아섰다.
“위험해!”
“지금! 지금 소리가 안 들려? 그리고 방금 전에 비명을 못 들었어? 분명히 누나의 비명소리 였다고!”
“알아. 나도 들었어. 지금 안쪽에서 계속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런데 대체 왜 날....!”
“정신 안 차릴래? 지금 저 안쪽 상황이 어떤지 파악도안 되는데 너가 함부로 집안에 들어가서 다치기라도 하면? 아니 죽기라도 하면? 나도 그렇게 개병신같이 죽으라고? 너가 가는 게 지금 도움이 될것 같아? 상황을 더 악화시키려고 하지 마. 내가 혼자서 다녀올테니 여기 있어.”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을 한번 휘저어 내 주위로 핏빛 구를 만들었다.
“쯧. 쟤를 구하는 게 맘에 들지는 않지만 너가 그렇게 지랄을 하니.”
그녀가 불평을 내뱉더니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얼마 후에 집안에서 미친 듯이 들려오던 총성이 멈췄고 그녀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누나가 내가 누나의 옆에 놓아둔 검에 몸을 기대어 힘겹게 서 있었다.
아니, 서 있었다기보단 완전히 검에 기댄 누나는 온 몸이 피투성이였다.
"누나! 어떻게 된 거야?"
가쁜 숨만 내쉬는 누나 대신에 그녀가 답했다.
"여기 기계문명은 무기 한 개씩은 들어 있나 봐. 온갖 기계들 속에서 탄환들이 쏟아져 나오던데?"
"뭐?"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지금 기계들이 총을 쏜다는 건가.....? 아까 전 핸드폰처럼?'
그녀의 말에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영화 따위가 떠올랐을 때누나가 피를 토해내며 입을 열었다.
"다운……. 쿨럭……. 도망…….“
"젠장! 누나 말하지 마!"
그러나 내 말을 듣기도 전에 힘겹게 말을 끝내자마자 기절해버린 누나를 눕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 정도는 치료할 수 있는거지? 죽기 일보 직전인 나도 치료할 수 있었잖아. 이 정도는 가뿐한거지?"
누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그녀를 다급하게 쳐다봤지만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설마…."
"얘 몸 안엔 신성력이 있어. 지금 내부의 신성력이 스스로 몸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상극인 내 힘으로 치료를 시킨다면 상태가 지금보다 더 악화될 거야."
”뭐....? 신성력...?“
”그래.“
”그게 말이 돼...? 누나가 무슨 신성력을 가지고 있어...?“
”내가 너한테 그딴걸로 거짓말을 왜 하겠어? 지금 내 마기로 치료해서 상태가 악화되는 걸 눈으로 봐야 믿을래?“
너무나 당황스러운 그녀의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을 곱씹던 나는 일말의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신성력! 누나의 몸에 신성력이 있는 거라면 지금 저 검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녀는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나마 저 검이 쟤 옆에 있었기에 쟤가 살아 있을 수 있는거야.검이 보호를 하거나 저 검에 막대한 신성력이 쟤를 돕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조심해야 해. 쟤 몸 안에 있는 신성력과 검 자체의 신성력의 차이가 커서 오히려 역으로 신성력이 잡아먹힐 수 있으니까."
"그런.... ! 아! 그럼 신성력이 없어졌을 때 너가 치료한다면…!"
"불가능해. 신성력이 몸 속에 담겨 있다는 것 자체가 나랑 상극이라는 소리야. 이동할 때도 쟤는 느낄 수 없었겠지만 내 주문을 거부하는 약한 반탄력이 있었어. 내 마법은 근원이 마족의 기술이라 악의 기운이 필연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신성력이 담겨 있던 저런 육체에 신성력이 빠져나갔다고 내 마법을 써봤자야. 어떤 상태이건간에 내 힘을 치료 목적으로 쓴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몸 상태가 되어버려."
"그럼... 방법이 없는 거라고?"
"지금은 스스로 버티고 저 검에게 신성력이 흡수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 밖에."
또다시 분노가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내 눈앞의 그녀와 나를 향해 살라고 말하던 누나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젠장.....“
부우욱!
그 때, 내 말을 끊으며 이상한 소리가 집 안에서 다시 들려왔다.
총소리가 멈춰서 고요했던 집안에서 아까 들려온 총소리와는 무언가 다른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가 들린 순간 그녀가 빠르게 내 앞에 서서 말했다.
"이런……. 이번 공격은 한번이 끝이 아닌가 본데?"
집안에서는 다시 끊임없는 그 총소리가 울려퍼지며 집안의 모든 것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여기 기계들은 스스로 걸어 다니는 기능도 있는 거니?"
"뭐라고?"
"흐응~ 아니다. 좀 있으면 볼 수 있을 거야."
쿵! 쿵!
그녀의 말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우리의 눈 앞에 문이 부서지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는 기계들도 살아있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그래? 그럼 신 새끼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란 거지. 하! 재미있네?"
턱.턱.턱.턱.
인간의 발걸음 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발걸음 소리가 앞에서 들렸고 나는 부서진 문 뒤에 있는 발걸음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계들이었다.
마치 인간형 로봇처럼 변한 기계들은 몸의 색깔들과 원래 자신이 가졌던 형태들을 갑옷처럼 입고 있는 것으로 그들이 전에 어떤 형태였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티비,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토스트기등....
집 안에 있던 모든 기계가 인간형으로 변한 채 붉은 눈을 점등시키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한 손에는 개틀링건이,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팔과 연결되어 있었다.
"온다."
그녀의 짧은 읊조림 이후 개틀링건을 우리에게 겨눈 로봇들의 손에서 순식간에 포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우욱!
공기를 찢는듯한 소음과 함께 쏟아지는 수많은 탄환들.
셀 수 없을만큼 무수한 탄환들이 우리에게 퍼부어졌지만 앞에 펼쳐진 핏빛 방어막에 막혀 전부 무효화 되었다.
하지만 나는 놀라는걸 감출 수 없었다.
'미친! 저런게 대체 왜 달려 있어!'
우리 앞에 서서 탄환을 쏴대는 로봇들은 탄환의 제한도 없는 것처럼 미친 듯이 방어막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미친 광경 속에서도 그녀는.
"와! 저렇게 공격할 수도 있구나. 전기를 이용한건가?"
"확실히 생명체는 아니네. 진짜 신기한걸?"
태연하게 팔짱을 낀 채살인 로봇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래, 저 여자도 미친 여자였지.'
그녀의 본모습을 떠올리며 그녀를 어이없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자.
그녀가 나를 뒤돌아보며 싱긋 미소지었다.
"몇 개 정도는 내가 가져가서 좀 실험해봐도 되는거지?"
”.... 그래. 너 마음대로 해라. 그런데 너도 처음 상대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겠어?“
내가 되묻자 그녀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져 싸늘한 표정으로 변했다.
"내가? 저딴 것들 상대로 제압 하날 못할 것 같아?"
"음...."
"아무리 저것들을 처음 보고 내 마법이 생명력이 있는 것들을 상대로 더 강한 게 맞긴 한 데...”
말을 잇던 그녀가 살포시 웃었지만 더 없이 차갑게 말했다.
"다른 것들도 절대 떨어지진 않거든."
그녀가 손을 지휘자가 지휘하듯 휘두르자 그녀의 옆에 불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로 합쳐졌다 떨어지며 화려하게 형체를 이뤄가던 불꽃들은 이내 기계들의 손에 달린 개틀링건의 모양으로 변했다.
"그럼~ 나도 한번 저것들처럼해볼까?"
가볍게 그녀가 손을 내리자.
화아악!
강렬한 불꽃이 공기를 태우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 떠 있던 불의 총이 맹렬하게 회전하며불꽃의 탄환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총구가 한번 움직였다.
거친 화마가 순식간에 휩쓸고 지나간 그곳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앞에 우리를 죽이려고 하던 모든 기계는 전부 녹아 없어져 버렸고 집마저 전부 불태워버린 그 파멸적인 불씨만이 땅을 불태우며 타오르고 있었다.
"이런.... 힘 조절을 살짝 못 했나? 흐음..... 재들이 하는 방식대로 하니까 힘에 비해서 출력이 훨씬 강하게 나오네? 아! 꼭 뜯어봤어야 했는데."
그녀는 아쉽다는 듯 말했지만 새로운 방식의 마법의 결과에 만족한 듯 입가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단 몇 초 만에 이런 광경을 만들어낸 그녀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없었다.
'진짜 미친....'
어이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그녀가 손을 하늘로 뻗었고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던 무언가가 그녀의 방어막에 막힌 채 폭발하기 시작했다.
"호오, 이건 뭘까~? 뭔지 알겠어?"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마법으로 공유시켜준 그녀의 시야에서는 이 마을에 있던 다른 기계들의 손에서 RPG가 이쪽으로 발사되고 있는 광경이었다.
"와, 이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천진하게 웃던 그녀는 떨어지는 포격을 막으면서 불꽃의 형태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
그녀와 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하며 기계들의 공격 방식을 하나씩 따라 하던 그녀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멀리 있던 기계들마저 전부 몰려와 공격을 시작했고 현대전에서 사용되는 온갖 파괴적인 무기들이 몇 시간째 그녀의 방어막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번 건 대체 뭘까? 방어막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네?"
"......네이팜탄?!"
점점 진화해가는 기계들의 공격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점점 무기들이 진화하면서 시간이 흐르다 핵이라도 떨어진다면..... 아니 핵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가 만들어진다면 그녀가 막을 수 있을까?'
하염없이 시간은 흘러갔지만, 기계들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사실은, 여전히 미약한 숨소리만을 내쉬는 누나의 상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젠장, 기계들이 저렇게 변한 거라면 한국에서 안전한 곳이 있기는 한 건가?'
무지막지한 화마가 연이어 떨어지는 이곳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디로 가야 안전할지 알 수 없는 지금 상황과 누나의 상태가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상태를 눈치챈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알림이라도다시 뜬 거 없어?"
"내가 말해줬던 마지막 알림이 끝이야."
또한, 그녀가 무수히 많은 기계를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고블린들을 죽였을 때와는 달리 어떠한 알림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알림.
그렇게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운…. 아……."
힘겹게 나를 부르는 누나.
나는 누워있는 누나에게 얼른 달려가서 누나를 품에 안았다.
"누나! 괜찮아? 힘들면 말 안 해도 돼! 최대한 누나 낫는 데만 집중해!"
누나는 떨리는 팔을 들어 내 얼굴을 매만졌고 나는 그런 그녀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다운…. 아…. 나는 끝이야…."
"뭐? 뭔 소릴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정아름! 조부모님이 말씀하신 거 잊었어?"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난 한계야.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라도 너가 꼭 살아 남아줘. 부탁할게 다운아."
"무슨!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개소리하지 마. 정아름!!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내가 살려낼거라고!"
슬픈 눈빛으로 나를 한참을 바라보던 누나가 힘겹게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았다.
그리고 나를 끌어당기며 내게 입을 맞췄다.
우리가, 결코 넘지 않았던 그 선.
머리가 새하얗게 되며 아무 생각도 못 했던 그녀와의 입맞춤이 끝나고 그녀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다운아…진짜 미안해…. 정말..... 정말 정말 누나가 많이 미안해....... 정말 미안하고.....고마워. 너는 꼭 살아야 해 다운아......."
"정아름! 안 돼! 하지마! 야! 얘 좀 기절시ㅋ....."
"......사랑해, 다운아."
한동안 사라져 우리사이의 선이 되어 버렸던 그 말을 입에 담으며.
그런데.
스르륵.
누나의 결의가 가득 차 있던 눈이 잠에 빠져들 듯 감겨버렸다.
"하! 이제 와서 이딴 식으로끝내려고 하다니 어이가 없네. 그딴 식으로 영원히 마음 속에 남아 있으려 했던건가? 자신이 벌인 일은 이대로 끝내고?"
"어, 어?"
화난듯한 표정의 그녀가 이쪽을 바라보는 것을 보아 아마도 그녀가 누나를 기절시킨 것 같았다.
"지금 누나한테 문제 없는거지?"
"그래. 너가 말한대로 멋대로 뭘 하려고 하길래 기절시킨 것 뿐이야. 아직은 신성력이 멀쩡히 회복시키고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그리고 일단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더 낫겠어."
그렇게 말한 그녀는 순식간에 마법을 발현시켜 우리를 이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