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22. 벌 (22/69)



〈 22화 〉22. 벌

악몽을 꾸었다.

조부모님이 내 눈앞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하시는 꿈을.
외조부모님들의 참혹한 시체를 보는 꿈을.
우리 가족이 전부 죽는, 그런 꿈을.


그리고...

누군가를.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듯한.....

끔찍한 악몽 속에서 나는 한참을 버둥대다 비명을 내지르려 했지만, 목 끝에서 막혀 버린 비명에 숨이 막혀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순간.

잠에서 튕기듯 깨어났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자 고풍스러운 무늬가 조각된 천장이 눈에 띄었다.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볼  없었던 고급스러우면서도 화려한 무늬.


“일어났어?”

그 무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아름다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화려한 캐노피가 처져 있어 그 너머에 있을 목소리의 주인을 볼 수 없었다.


“아직 꿈인 건가?”


구름위에 누워 있는 것 같은 푹신한 감촉의 고급스런 침대와 화려한 천장, 캐노피.
현실에서 이런 것들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아직도 꿈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당황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일단 나와보지 그래?”


그러나 다시 내게 말을 거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만약 지금도 꿈이라면,  목소리의 주인이 끔찍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질 정도로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결국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 몸을 일으켰다.

캐노피를 열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그녀가 나른한 듯 턱을 괴고 얼굴에 홍조를 띤 채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은발을 길게 늘어트린, 상상 속에 만존재하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현실로 옮긴듯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루비를 닮은 핏빛 눈동자가 나를 담고 있었다.

 순간.


물밀 듯이 밀려오는 기억.

순식간에 꿈이라고 생각했었던 모든 기억이 머릿속으로 돌아왔다.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부 떠올라 상황판단을 전부 마친 나는 가장 먼저 소환능력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소환능력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소환능력은 그대로 있네.”


그녀가 내 말에 살짝 놀라며 말했다.


“그래? 정말  생각대로 된거네? 정말 계산기가 뭔가를 한 건가?”

소환능력이 남아 있을거란 직감이 강하게 들었던 이유가 뭘까.
'굴레의 계산기'가 정말 무언가를 해준 것일수도 있지만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생각을 아무리 해보아도 떠오르는 게 없었고 지금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생각을 미뤄 두었다.


다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내게 눈짓했고  눈짓을 따라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할 이야기가 좀 많을 것 같은데, 누가 먼저 이야기 할까?”


“내가 먼저 할게. 물어보고 싶은게 많아서.”


“하아- 그래. 들어줄게.”

 앞에서 갑자기 야릇한 한숨을 내쉰 그녀는 마치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처럼.
아니, 그보다도 훨씬 매혹적으로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반대편으로 다시 꼬았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그런 행동에 일순 욕망이 들끓어 올랐지만, 아직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 일단 우리는 성공한건가?”

“글쎄에~  아직은 모르겠는걸?”


“뭐? 그렇다면!”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자고.  왜 이렇게 조급해? 일단 하나씩, 하나씩.”


그녀의 여유로운 태도에 순간 화가 났지만 싱긋 웃음을 짓는 그녀를 보자 왠지 모르게 너무나 섹시한 그녀의 미소에 분노와 침을 함께 삼켰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그녀의 웃음이 한층 짙어졌지만 그녀의 그런 모습을 애써 무시하고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그 때 분명 마법이 발동하기 전에 목소리의 존재가 마법을 눈치채고 우리를 공격하려 했어. 그런데 무언가에 공격이 가로막혀서 엄청나게 당황했었고. 그 후에 분노하며 고함을 내지르고 무언가를 한  같은데....?”

이번에는 그녀도 꽤 놀란 듯 웃음을 풀며 대답했다.

“뭐? 잠깐. 나는 마법에 집중하느라 그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 했어. 그래서 뭘 하려 했는데?”

"모르겠어. 분명.... 분명히 뭔가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흐음..."

그녀는 살짝 침음을 흘렸다가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내게 말했다.

"아마 공격은  계산기가 막은 것 같고. 강렬한 신격이 부딪히는 과정에다가 내가 시전한 마법의 영향을 받아서 그 뒤에 기억이   나는  같은데?"


"....그래. 그런가. 근데 왜.... 꺼림칙하고 슬픈 거지?"

"그건....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네. 다른 질문도 있어?"


“여긴 대체 어디야?”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방금까지 누워 있었던 침대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과 방 곳곳에 보이는 가구들이 범상치 않았다.
또한, 이렇게 넓은 공간에 이런 가구들이 놓여 있는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생각할 수 없었....


‘음... 거기랑 비슷한 것 같기도....?’

머릿속에 내가 잠깐 경험했던 어딘가가 떠올랐지만 그녀의 막힘 없는 대답은 내 생각을 훨씬 뛰어넘었다.


“여기?  침실인데?”

“뭐????????????”


“뭐야?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너가 한번 경험했던 곳과  비슷하지 않아? 같은 궁전 안이라서 그래. 그리고 내 옷 보고도 눈치 못 챘어?”


“왜 갑자기 옷차림이 바뀌었는지 궁금하긴 했는데…….”

지금 내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힘들어했던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그녀의 복장 때문이었다.

입고 있던 검은색 드레스가 아닌 속이 비치는 얇은 핏빛 네글리제를 입고 있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드레스만을 입고 있을 때도 느껴졌던 그녀의 완벽한 몸매는 얇은  한 장만으로는 전혀 가려지지 않았고, 그런 파괴적인 모습에서 나오는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내 욕망을 버티기 너무 힘들었다.


“후후…. 나를 눕히고 싶어서 안달난 것 같은데~?”

그녀가 실실 웃으며 나를 놀리기 시작하자 나는 겨우 정신을 붙잡고 그녀에게 소리쳤다.


“젠장. 그것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너의 차원으로 왔다는 거야?”

“음... 아니 그건 아닐거야.”


“그럼 지금 도대체 무슨 상황인거야? 제대로 시간을 역행한건 맞아? 조부모님들은 전부 살아 계신거지?”


“.... 잠깐. 조부모님들……? 그게 끝이야……?”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내 질문을 듣고 웃음을 완전히 지우며 자세를 똑바로 한 채 나에게 되물었다.

갑작스럽게 너무나 진지하게 변한 그녀의 태도.

“왜? 무슨 문제라도 생긴거야?”

“너…. 마법이 발동하기 전까지 기억나는 일들 한번 말해봐.”

그녀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기억을 다시 한 번 되살리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만남 이후 지구로의 복귀.
친가, 외가쪽 조부모님들의 죽음을 확인한 후 아이템을 소환하던 중 기계들의 공격에 휘말려 대피했다가 마법진을 실행하기까지.


그녀와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다시 천천히 말해 나갔고 기억나는걸 하나씩 말했다.


그녀에게 내가 기억하는 모든 걸 이야기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너……. 네가 지금 말한 내용이 끝이야?”

“.....? 그래. 그러고보니 소환능력이 사라진  아니라면 도대체 뭘 잃어버린 거지?”


그녀의 강렬한 눈빛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도저히 어떤 건지 감을 잡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그녀의 눈빛에 조금씩 안타까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참……. 불쌍하네.”


“뭐가?”

나의 물음에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 이름이 뭐야?”


“정다운.”

“가족 구성은?”


“조부모님과 나.”

“다른 형제나 자매는 없고?”


“그래.  외동이야.”

그녀는 나의 대답을 듣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해가 안되는데 아까 질문들은 무슨 의미야? 내가 뭐 잃어버린 게 있나?“


그녀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다 내게 말했다.

"아냐. 혹시나 기억이라도 잃었을까봐 물어본거야. 나도 너가 뭘 잃어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건 천천히 알아보자. 그것보다 지금 우리가 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온 상태라면 그때는 어떻게  거야? 만약 조부모님이 전부 살아 계시더라도 목표가 그 목소리의 존재를 죽이는 거 맞아?“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고민한  대답했다.


"일단 지금 살아 계신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막아야겠지. 그리고...... 너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이상 우리의 목표는 똑같이 너가 신격을 얻고 신들을 죽이는 걸 노려야겠지. 시간을 거슬러 왔다고 해도 똑같이 목소리가 우리를 죽이려하고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

내 말을 듣고 나를 한참을 바라보던 그녀의 손에는 어느샌가 시가 한 개비가 들려 있었다.
손을 튕겨 시가에 불을 붙인 그녀가 다시 다리를 꼬며 맛있게  모금을 피운  나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할게."

"뭘?"

"사실  힘을 얻게 되고 시간을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너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에게도 다시  번 기회가 생긴거니 너와 만나기 전으로 시간을 설정했어. 그런데 마법이 발동하는 순간. 내 몸속에 각인된 굴레가 미친 듯이 날뛰면서 절대 그곳으로는 갈  없게 하더라. 그래서 가능한 시간대를 다시 봤더니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더라."

어느샌가 시가는 짧아져 일반적인 담배 향이 아닌 달콤한 향의 연기가 방을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내 침실이더라고? 내 옆에는 너가 누워 있고. 일어나보니 침실 밖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고. 너는 깨워봐도 깨어나질 않고. 그래서 여기 앉아서 너가 깨어나는 걸 기다릴 수 밖에 없었지."

마지막으로 연기를 뱉은 그녀의 손에서 어느덧 시가는 사라져 있었고 우리 주변은 달콤한 연기로 가득찼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자극받았던 내 마음이 조금씩 격렬하게 요동치는  느껴졌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순간.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참을 수가 없었어. 큰 힘을 써서 안 그래도 힘든데 몸속에서 미친 듯이 굴레가 나를 흥분시켰거든.  사실 내 옆에 너가 누워 있는 걸 본 순간에 바로 이성을 잃을 뻔어. 그래도 어떻게든 참고 있었는데 너가 일어나니까 그게 점점 힘들어지네?“

말을 마친 그녀의 머리 위로 휘어진 뿔이, 날개와 꼬리가 흐릿하게 일렁였다.

날카롭게 자란 송곳니를 혀로 핥은 그녀가 얼굴을 붙이며 내 귓가에 천천히 속삭였다.

"굴레를 함부로 끊으려 한 벌.... 나한테 줘야 하지 않겠어?"


“.....뭐? 지금 무...”

“감히 굴레를 끊으려 한 파트너한테  안 줄거야~?”

내 말을 끊은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내 손을 그녀의 두 손으로 감싼  다시 내 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하아- 나는 너가 함부로 굴레를 끊으려고 하면 좀 화날  같은데... 넌 아닌가보네?”


요염하게 귓가에 신음을 흘린 그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 손을.

그녀의 머리로 가져가 그녀의 부드러운 은발을 천천히 위에서부터 끝까지 쓸어내렸다.

단지 손을 잡힌 채 그녀의 긴 머리를 한번 쓸었을 뿐임에도 나의 쓰다듬을 즐기는 듯한 색기 넘치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아찔한 쾌감이 나를 찾아왔다.

“크으읏!”

신음을 억누르고 그녀에게서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녀는 내 손에 힘을 꽉 주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뒤.
자신의 얼굴 가까이에 들어 올렸다.


그녀의 이마, 눈, 코를 만지게 한 하고  손을 그녀의 볼에 붙인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내 눈을 보며 그녀가 물었다.

“어디를 벌 줘야 할건지  것 같아?”

“일단 이것부터 놓.....고...!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흐응~ 이런 상황에서도 참는거야?”


야릇한 신음을 내뱉은 그녀는 내 손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잡으며 말했다.


“너가 지금 생각이 없으면…? 내가 뭘로 벌을 받아야 좋을지 내가 직접 찾아볼까?”


하읍.

따뜻한 혀가 내 손가락을 감쌌다.

“하음. 하름. 추릅.”

눈을 감은 채 천천히 내 손가락을 휘감는 그녀의 혀에서 느껴지는 감촉.

혀를 천천히 돌리기도.

손가락을 할짝대기도 하며 손가락을 음미하던 그녀의 혀에 지금 당장 손가락이 아닌 터질 듯이 발기한 내 성기를 대고 싶었다.

“하-아-”

침 범벅이 된 내 손가락이 그녀의 입에서 떨어지면서 보이는 얇은 끈.


하지만 나는 이렇게 그녀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기에 아플 정도로 발기한  물건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고개를 돌려 색기가 넘쳐 흐르는 그녀를 외면하려 했다.

“미안~ 찾는 데 좀 오래 걸리네~? 다른 곳도  알아볼게~? 하으음~”


"잠ㄲ...!"


그녀는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내 모든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녹여 가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쾌감에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할 때.

“하으음~”

모든 손가락을 하나하나 전부 공들여 애무하면서 마침내 마지막 남은 새끼손가락까지 맛있다는 듯이 빨아낸 그녀는 내 눈을 보며 이쁜 눈웃음을 지었다.


“이런. 손가락에는 없나 보네에~? 그럼…. 이번에 나는 못 찾았으니까 너가 어디를 혼내야 할지 알아볼래?”


“일단 앉아. 그러고 나서 대화부터 마무리 하고 해.”


내가 그녀를 애써 무시하며 말하자.

“후후. 아직도 벌을 줄 생각이  들어? 그럼 내가 조금 더 도와줄게.”

그녀의 침으로 범벅이 돼 끈적거리는 내 손을 그녀가 다시 그녀의 볼에서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냘픈  목에  손이 닿았을 때.
끈적한 내 손에 부드러운 그녀의 살결이 닿는 느낌.


그녀는 마치 자신의 몸을 전부 기억하라는 듯 내  전체를 천천히 끈적하게 그녀의 목을 휘감듯 만지게 했다.


사람을 미친 듯이 유혹하는 그 행동에 나는 도저히 더 이상 볼 수 없어 눈을 감았지만 그 순간 느껴지는 촉각의 자극이 너무 커서 결국 다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가 핏빛으로 비치는 그녀의 가슴으로 내 손을 이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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