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8. 사역(2)
"뭐야? 갑자기 왜?"
내가 갑자기 그녀를 불러 멈춰 세우자 그녀가 칼을 치켜든 채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분명 저기 상처투성이의 고블린이 특이하다고 했지?"
“여기 있는 다른 애들에 비해서 특이하긴 하지. 그런데 왜?”
"왜 특이하다고 한건지 말해줄 수 있을까?"
"너도 돌아오기전에 쟤가 행동하는거 보지 않았어? 지금 저길 봐봐."
그녀가 손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우리와 고블린 사이의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들바들 떨면서납작 엎드려 있는 고블린의 모습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 전고블린이 그녀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고블린을 따라하듯, 다른 고블린들도 똑같이 그녀에게 절을 올리고 있었다.
"와……."
"조금 전 멈췄던 내 공격을 본능적으로 눈치를 챘다는 거지. 왠만한 놈들도 내 공격을 알아차리기 힘든데 저런 저급한 생물이 ,비록 내가 공격 도중에 멈춰 세웠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눈치 챘다는 거야.“
"그럼 눈치가 빠르다는 건가? 그래서 사역된 고블린의 공격도 쉽게 막아낼 수 있었던 거고?"
"아냐. 눈치만 빠른 것뿐만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다른 벌레들보다 모든 재능이 다 뛰어나. 어쩌면……. 종이 다른 돌연변이일지도.”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을 결정했다.
"그럼 우리가 사역하는 건 어떨까?"
"뭐?"
"너의 눈에 들 정도로 재능이 있는 거라면 우리가 사역해서 데리고 다녀도 나쁘지 않을것 같은데?"
내 말에 그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답했다.
"저번에 그렇게 열심히 찔러 죽여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음..... 일단 너가 지금 마법을 못 쓰는 이상 부족한 부분들이 생길 테고, 그런 부분들을 재한테 맡기면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재능이 뛰어나다면 너가 가르쳐준다면 빠르게 성장할 테니까 여러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녀가 나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스러운데 우리는 신격을 상대해야 하는거 알고 있는거 맞지? 그런데 신격을 저런 벌레로 상대하겠다는거야?"
"물론 신격을 상대해야 하는 건 맞지만 ,'목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신격인 이상 부하들도 분명히 존재하겠지. 그런 존재들을 저런 고블린이나 내가 새로 소환하게 될 소환수들에게 맡겨서 상대하게 하고 우리는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만일 부하들까지 전부 상대해야 된다면 버거울테니.”
그녀가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좋아. 너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새로 소환하게 될 다른 소환수들한테 맡기면 되는거 아냐? 굳이 저런 하찬을 벌레를? 심지어 우리를 죽이려 했던 저런 벌레를 용서하겠다는거야?"
"일단 우리가 다시 돌아온 이상 그 일은 없던 일이고, 나를 죽이려 했던 것 맞지만 그 정도는 아량을 베풀어 줄 수 있어. 그리고 그런상황에서 너를 노리겠다는 판단을 한 것 자체가 엄청난거 아니야?"
"그 판단은 저 벌레한테나 대단한거고 우리한텐 아니지. 우리가 위험할 때 언제든 우리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배신할까봐 걱정 되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녀가 나를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너가? 재를? 무슨 수로? 아니. 지금 너랑 재랑 싸우게 해도 너가 질 것 같은데?"
"내가 쟤랑 싸워서 이기겠다는 게 아니야. 한 번 고블린을 사역해본 적이 있기 때문인지 왠지 재도 내가 사역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이 와서. 그리고.... 쟤를 사역하는게 훨씬 우리한테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뭐? 감? 느낌? 무슨 그런 불확실한……."
"부탁할게.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될까?"
그녀는 그런 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좋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시간을 돌리기 전에도 그 감이 통했으니까. 대신 이번엔 네 부탁을 들어줄 테니 다음엔 너도 나랑 의견이 엇갈리게 되면 그때는 내 의견을 들어줘.”
"알겠어. 정말 고마워.“
”도저히 이해는 안 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앞으로 칼을 찔러 넣어 나머지 두 마리 고블린의 팔다리를 찢어버렸고 순식간에 그들의 끔찍한 비명소리로 주변이 채워졌다.
"저 두 마리까지 살려둘 생각은 아니지? 이제 너가 알아서 해봐."
자신의 할일은 전부 끝난다는 듯 월하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녀의 눈길을 받으며 공포에 전신을 떨어대는 고블린의 앞으로 걸어갔다.
한번 이 고블린을 쳐죽인적이 있어서인지 고블린과 가까워져도 이제는 더 이상 이 고블린에게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너를 살리려고 나머지 애들을 죽이는 거야. 기억해둬."
고블린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이 고블린을 사역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상 눈치 빠른 이 고블린에게 지금부터라도 말을 걸어서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려 했다.
그 후 비명을 내지르던 두 마리의 고블린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준 나는 엎드린 채 몸을 떨고 있는 고블린에게 말을 걸었다.
"내 말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말해볼게. 살려줄 테니까 내 밑으로 들어와서 복종할래?"
고블린에게 말을 건네자 고블린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살짝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랑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웃음을 지어주었고 고블린은 무언가 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바로 고개를 내리고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지금 나 웃기려고 그러는 거지? 말도 하나도 못 알아먹는 것 같은데 무슨 수로 사역하겠다고?"
순식간에 내 옆으로 와서 말을 걸던 그녀에게 눈을 흘기며 내가 말했다.
"너가 가까이 오니까 얘가 뭐 하려다가도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하잖아. 조금만 떨어져 있어 봐."
"뭐, 뭐? 하! 그래.너가 시간이 없는거지, 내가 급한 것도 아니고. 원하는 대로 다 해보던가."
내 옆으로 다가왔던 그녀가 다시 멀리 사라지자 나는 고블린에게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다가가 다시 말했다.
"너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지금 너가 따르는 족장 대신에 나를 따르지 않을래?"
최대한 부드럽게 다시 말을 건네자 고블린은 다시 살짝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내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걸 보고 흠칫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고블린.
"그 무서운 존재는 지금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내 말을 듣더니 주변을 살피던 고블린은 다시 나를 쳐다 보았다.
"끼엑. 끼에엑?"
"음……. 내 말 이해하겠니?“
"끼에에엑?"
아무래도 말을 이해하는 건 아닌 듯 했다.
'말은 하나도 안 통하는 것 같은데,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는 이해를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블린은 고개를 살며시 든 채 내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던 순간.
나는 고민을 끝마치고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칼을 들고 있던 손을 들어 올린 나는.
"끼에엑!"
내 모습을 지켜보던 고블린이 소스라치게놀라는 모습을 보고 칼을 뒤로 멀리 던져버렸다.
"끼에?"
"야! 미쳤어!?"
고블린이 놀라 소리치는 소리와 월하가 소리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지만.
"오지마!"
그녀가 오는 걸 소리쳐 막은 나는 놀라고 있는 고블린에게 무릎을 굽힌 채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끼에엑?"
"봤지? 나는 너를 해칠 마음이 없어. 칼도 멀리 던져 버렸잖아? 너가 이 손을 잡아주면 해치지도 않고 잘 대해줄게. 우리랑 같이 가지 않을래?"
"끼에에엑?"
갑작스럽게 눈 앞에 내밀어진 손을 보고 고블린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당황했다.
하지만 내가 시간이 지나도 손을 거두지 않자 머뭇거리다 눈을 질끈 감고 내 손을 붙잡았다.
[소환사의 운명 속에 '사역'의 기록이 있습니다.]
['사역'이 기록된 종과 유사한 종족입니다.]
[운명에 새겨진 '사역'의 기록으로 인해 사역이 가능합니다.]
[대상을 사역하시겠습니까? Y/N]
눈앞의 알림창이 떠올랐다.
'역시! 월하한테도통하는 '굴레의 계산기'를 한번 사용했는데 겨우 고블린을사역한 걸로 끝났을 리가!‘
나는 내 생각이 통했다는 것에 마음속으로 쾌재를 지르며 사역을 선택했다.
[사역을 시도합니다.]
[대상이 사역을 받아들인 상황입니다.]
몸속에 있는 무언가가 고블린의 손에 잡혀 있는 내 손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무언가가 다 빠져 나가고 난 후에도 손을 통해서 계속 빨아들이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
탐욕스럽게 무언가를 찾던 그 느낌은 이내 점점 강해져 내 안의 다른 것을 강제로 잡아 뜯기 시작했다.
몸 속의 장기들이 강제로 잡아 뜯어지는 듯한 강렬한 고통.
"크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주의! 대상의 사역을 시도하기에 마력이 부족합니다!}
{경고! 운명에 기록되어 발동된 사역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합니다!}
[운명력이 발동된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부족한 마력 대신에 시전자의 생명력을 사용합니다!}
"크으으으윽!"
몸 속이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에 괴로워하던 나는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월하의 목소리를 듣고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으으윽! 이 씨발새끼가 진짜...!"
어느샌가 내 옆에 다가와 있던 그녀는.
"빨리 무슨 상황인지 말해!"
"마력이…. 부족해서…. 억…. 생명력으로…."
그녀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해 발을 동동 구르는 고블린과 연결된 내 손을 보고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듯 고통을 참으며 나에게 말했다.
"무슨! 저딴 미친 마법 술식이…! 너는 대체 진짜…! 꺄으윽!"
고통에 몸부림치는나와 그녀.
내 몸속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점점 더 힘을 줘가며 강제로 떨어트리려는힘에 그것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든 순간.
"아아아악! 진짜 이 개새끼!!"
월하가 순식간에 내 고개를 붙잡아 내게 키스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이뤄진 그녀의 입맞춤.
그러나 월하의 입맞춤은 고통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줄 정도로 황홀했다.
“흐응~”
나의 흥분을 알아차린 그녀도 작게 비음을 흘리면서 연결된 서로의 입으로 혀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내게 불어 넣기 시작했다.
그녀가 불어넣은 것이 내 몸속으로 들어온 순간.
처음은 살짝 피 맛이 감도는듯해 역한 느낌을 주었지만 곧 그녀와 있을 때 나는 꽃향기가 느껴졌다.
역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 부터는 그것이 목 안으로 들어가 몸 속에서 손으로 향할 때까지 온 몸에 달콤한 꿀이 도는 것 같았다.
[부족한 마력이 공급되었습니다.]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생명력 사용을 중단합니다.]
이윽고 고통이 사라지면서 강제로 뜯겨 나가던 무언가가 다시 빠르게 붙어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고 그녀가 나에게 넣어준 마력이 내 손을 통해서 대신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력이 닿자마자 맛있다는 듯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마법 술식에 월하가 나와 입을 맞춘 채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마력을 넣어 주었다.
나에게 수십 분처럼 느껴졌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짧다고 느꼈던 황홀했던 수십 초의 입맞춤이 끝나고 그녀가 내게서 입을 뗐다.
“하-아-”
그리고 내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들.
[‘(변질된)하이 고블린’이 사역되었습니다.]
[사역 과정이 ‘격’의 차이가 있는 마력으로 완성되어 사역마가 ‘(변질된)로열 고블린’으로 진화 했습니다.]
[현재 사역마는 본인의 힘으로 인해본질이 변질된 상태입니다.]
[사역마가 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