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A.E. 2 (40/69)



〈 40화 〉A.E. 2

열심히 도망쳤다.

절대 잡히면 안 된다.

누구한테 들켜서도 안 된다.

나는 오늘 운명이 바뀔 것이다.

*

나는 평범하다.


평범한 부모에게 태어나 평범하게 일을 배웠고 평범하게 사냥을 배웠다.

부족원끼리 싸우는 자리에서도 평범하게 중간이어서 전사가 되지도 못한 채 일반 고블린이 되었다.


가끔 사냥을  해서 배가 고플 때를 빼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큰일이 벌어졌다.

다른 고블린 부락이 우리 부락을 기습한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싸웠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에 수를 많이 잃은 우리에게 희망은 없었다.


결국, 족장이 죽으며 항복을 했고 수많은 고블린들이 죽었다.


그 고블린들 중엔 나의 아빠와 엄마도 있었다.

패배한 우리 부락의 고블린들은 모든것을 가지고 다른 부락으로 끌려갔고 뛰어난 고블린들이 아닌 이상 그 부락의 고블린들에게 노예처럼 부려졌다.


 또한 그곳에서도 평범했기에 그 부락에서 노예처럼 굴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늘어난 고블린들이기에 한동안은 우리 마을에서 약탈해온 음식들로 돌아가던 마을이 점차 음식들이 떨어지고 주변에서 얻어오는 먹을 것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수많은 우리 마을의 고블린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 죽었고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 지금까지 살아남을  있었지만, 나에게도 식량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아 다음 죽을 차례는 내가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 필사적으로 생각하던 어느 날.


먹이를 채집하러 가는 날이 되었다.


너무나 배가 고팠기에 먹이를 찾더라도 내가 몰래 먹기 위해서 평소 먹이를 찾는 곳보다 좀 더 나왔을 때.

너무나 아름다운 빛을  수 있었다.

저절로  빛을 따라 걸음을 옮긴 나는 빛을 발하고 있는 아름다운 흰색의 알을 볼 수 있었다.


눈 부신 빛에 홀린 듯 다가가 빛을 뿜고 있는 알을 들어 올리니 알은 나처럼 초록색으로 색깔이 변했고 그 순간 나를 계속 괴롭히던 배고픔이 놀랍게도 사라졌다.

그리고 온몸에 들끓어 오르는 힘.


 번도 느껴보지 못한 힘에 이 정도면 족장과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힘은 잠시만 머물러 있다가 사라졌고 느낄 수 있었던 힘의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히 예전의 나와는 달라진  느낄  있었다.

어느덧 빛이 사라지고 나와 비슷한. 하지만 나보다는 훨씬 더 대단한 기운이 드는 것 같은 알을 품에 꼭 안고 나는 달렸다.

열심히 도망쳤다.

절대 잡히면 안 된다.

누구한테 들켜서도 안 된다.

나는 오늘 운명이 바뀔 것이다.



*

혼자서 숲에서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알과 함께하고 있으면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느끼지 않았고 예전에는 엄두도  냈을 곰 같은 것들도 알과 함께 있으면 내가 죽일 수 있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를 느낄 때 맨들맨들한 옷을 입은 다른 고블린을 만났다.

흠칫 놀라며 그 고블린을 바로 죽이려 했던 나지만.


그 고블린이 나를 향해 바로 엎드리며 말했다.

"저는 고블린 신을 모시는 사제인데 고블린 신의 예언이 있어서 당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예언은 바로 이곳으로 가면 미래의 고블린 왕을 만날 수 있다는 예언이었습니다. 왕이시여 부디 저를 받아 주시옵소서."

나는 도저히 믿을  없는 사제의 말을 듣고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내 손에 들려 있는 알을 바라보았다.

그래. 분명히 이 알이 나를 고블린 왕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사제는 나를 따라다니며 많은 일을 하였다. 내 밑에 들어올 수많은 고블린들을 찾아다녔고 혼자서 떠돌아다니는 강한 전사 고블린을 내가 힘으로 쓰러트려 나를 따르게 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락을 잃어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고블린들을 받아들여 내 부락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알이 깨지고 그 안에서 한 고블린이 태어났다.

나는 알에서 고블린이 태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그 고블린은 나를 보며 웃어주었고 여자아이인  고블린을 보며 내가 고블린의 왕이 되게 해줄 존재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라 부족민들 앞에서 내 딸이라고 말했다.


딸에게 내 부모가 알려준 것처럼 이것저것을 가르치며 사랑을 주며 키웠다.

아니.


그렇게 키우고 싶었다.


 고블린은 나랑 달랐다 평범했던 나와 달리 순식간에 내가 가르치는 걸 모조리 할  있었고 조금씩 커갈수록 나와 모습이 달라져 갔다.

아무리 사랑을 주고 싶어도 본능적으로 그 고블린 앞에 가면 위축이 되는 나의 모습에 화가나 다른 고블린들과 교미를 하며 다른 자식들을 만들었고 나를 쏙 닮은 자식들은 내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져 가는  고블린의 모습에 나는 가장 똑똑한 사제와 이야기를 했고 사제는 알에서 태어난 고블린이 하이 고블린일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하이 고블린.

어렸을  이야기로만 듣던 고블린들로 우리랑 같은 고블린이지만 훨씬  세고 훨씬 더 뛰어난 고블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뛰어난 그들이었기에 공격을 받아 이제 다시는 못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 고블린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하이 고블린이라니.


나는 걱정이 들어 사제에게 말을 했고 사제는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이 하이 고블린의 힘을 나한테 넘겨주는 주술이 있다고 나를 안심시켰고 그 주술을 하면서 점점 강해지는 나의 힘과 일반 고블린들처럼 모습이 변해가는 그 고블린을 보며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강해져 갔고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겼던 우리 부락의 최고의 전사 또한 가볍게 이길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알에서 태어난 하이 고블린도 힘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다른 고블린들보다는 뛰어나 부락의 전사가 되었다.

그러나 하이 고블린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고블린을 최대한 감시하며 견제하였고 내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에 다른 자식들에게 신경을 쓰며 단단히 저 고블린과는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말해 두었다.


어느 날.

그 고블린의 주술이 있었던 밤이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밖에서 여자 고블린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들어오라고 허락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하이 고블린이었고 그 고블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맨 처음은 자신이 사냥을 나가서 누구를 잡았다. 무슨 일이 있었다 하는 이야기를 하길래 건성으로 대답해 주었고 어느 순간 이야기를 멈춘 고블린이 나를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 저를 생각해서 병을 치료하시느라 많이 힘드신  알아요. 하지만 저한테도 다른 동생들처럼 사랑해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울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 아름다운 고블린의 모습에 순간 미칠듯한 성욕이 들끓어 올랐다. 당장 달려들어 교미하고 싶었지만, 그 고블린은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고블린이었고  부락에서 딸이라고 알려져 있었기에 '조용히 하고 얼른 나가!'라고 화내며 눈앞에서 그 고블린을 치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난   고블린을 만날 때마다 성욕이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하이 고블린을 상대로  성기를 넣어서 울부짖게 하고 자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결국, 이 욕망 또한 사제에게 털어놓자 사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족장님. 족장님이 하이 고블린이 되시기 위해서는 하이 고블린과 교미를 하셔야  겁니다. 그것도 제가 전부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든든하게 말해주어 나는 모든 고블린의 경배를 받을 내 미래의 모습과  무릎 위에 앉아 있을 하이 고블린을 생각하며 어깨를 두드리며 껄껄 웃고 사제의 집을 나왔다.



*


요즘 사제가 이상하다.

그 고블린의 성인식이 가까워질수록 나를 조금씩 피하고 주술 때 나를 만나도 금방 자리를 비웠다.

의도적으로 내게 무언가를 숨기거나 속이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점점 아파져  때 내 집으로 한 고블린이 와서 말했다.


"족장님, 채집하러  고블린들이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질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적이 공격해 왔거나 무서운 천적이 주변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사들이랑 고블린을 묶어서 정찰을 보내."

"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고블린이 집을 나갔고 한참을 고민하던 나였지만 결국 결론이 나질 않아 사재를 내 집안에 불러드렸다.

"너,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냐?"

내 질문에 흠칫 놀라는 사제.


"숨기다니요. 저는 왕을 위해서 충성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를 피하지?"

잠시 대답이 없던 사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인식 이후 하이 고블린이 되시면 처음으로 정벌하실 다른 고블린 부락들을 생각하느라 걱정이 많아져서 모습을 보이기 곤란했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사제의 말이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꺼림칙했다.


"그래? 그럼 계획을 한번 들어봐야겠네. 말해봐."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사제가 입을 열려는 순간 핏빛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으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팔 다리가 뜯어져 내 주변을 굴러다니고 사제도 마찬가지 꼴이 되어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아아아악! 이게 대체 무슨! 무슨 일이야!"


집 주변에서도 수많은 고블린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참을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아픔에 몸부림치며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자 무언가 불길한 감각이 온몸을 뒤덮었다.


집 밖에서 들려오는 고블린들의 비명소리가 한명씩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밖은 조용해졌고 집 앞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포감에 질려 있을 때.

열리는 문.


그곳에는.

그 고블린이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칼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여기 있었군요. 아버지. 그리고 사제님."


고블린이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너!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동족을 죽이다니!"

그러자 나에게 다가오던 고블린이 칼을 쥔 채 우뚝 멈춰섰다.


"...동족?"

고블린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나를 무서워하고 무시하고 괴롭히면서 동족? 이런 게 동족이라면  사라져 버리는  나아!"


그녀의 괴물과도 같은 비명을 들은 순간 무언가 이상해진 나도 소리쳤다.


"그래!  괴물아! 너는 내 딸이 아니다!"


그녀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나는 분노에  소리쳤다.

"이제  내가 하이 고블린이 될  있었는데! 내가 고블린의 왕이었는데! 너같은 괴물 때문에!"

그러자  고블린은 얼굴에 표정을 없애고 나에게 다가와 내 몸의 모든 곳을 찌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끊임없이  몸을 찌르면서도 나를 죽이지 않고 놔두는 괴물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그 고블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나를 칼로 찔렀다.


한참을 나를 찌르던 고블린은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사제에게로 다가갔고 나는  순간 사제가 말을 하는 걸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아아, 우리의 진정한 왕이시여. 제 목숨으로 제 죄를 다하나이다."


고블린은 사제를 무심하게 내찔러서 죽였고 나는 사제의 말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사제가…. 괴물한테…. 왕이라고…?"


그러나 다시금 나를 향해 내려꽂히는 칼날을 보며 나는  이상 아무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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