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47. 사마희 (49/69)



〈 49화 〉47. 사마희

눈 앞에 떠오른 어이없는 알림들을 보며 욕을 내뱉은 내가 황당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주인님. 여인의 안은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아니랍니다?"

그녀와 나의 태도를 보고 상황을 파악하고 분노한 월하가 화를 내며 카렌에게 말했다.

"씨발. 안 그래도 복잡한 상황에 저런 변수를 안고 가야 좋을 거 없어. '격'도 낮은데다 소환수니까 쟤는 세뇌해서 지금 끝내 버리자. 뭐하는 년인지 알 수 있겠지."

월하가카렌에게 눈짓하자 카렌이 조용히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는 세뇌를 당하면 한낱 계집일 뿐인데... 부디 저에게 지금 상황을 말씀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월하는 그녀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았고 카렌이 주문을  끝낸 순간.

"잠깐만, 카렌,"

내가 카렌을 불러 세웠다.

"네, 주인님."

"뭐? 너 왜 멈추는 거야?"

"자기 입으로 세뇌당하면 쓸모가 없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하기 전에 무슨 쓸모가 있는지는 들어봐야지."

"야! 안 그래도 지금 복잡... "

"이 상황인 이상 어떤 일이든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

"뭐? 하..... 알겠어.그래. 내가 좀 민감해졌나봐. 무슨 일이든지 다 일단은 해 봐야지. 그래. 너가 원하는 대로 해봐."

월하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욱하는 듯 했지만 이내 지금 상황과  말을 이해한 듯 한걸음 물러나 주었다.

우리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나는 그녀의 이명과 옷차림을 보고 몇가지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기대를 담아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를 해주지. 대신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를 도와야 해. 만일 반발하려 한다면 그냥 세뇌를 하겠어."

"저는 이미 제 꿈을 이루고 오로지  유희를 위해서 살아온 몸. 주인님이 저를 소환하신 이유가  귀찮음을 누르고 저를 만족시키신다면 최선을 다해 주인님을 보필하겠어요."

"좋아. 하지만 그 전에 내 질문 한가지에 대답해  수 있겠어?"

"듣고 답해드릴 수 있는 질문이라면 답해 드릴게요. 말씀해 보셔요."

나는 눈앞의 여인에게서 보이는 모습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지금까지 믿을  없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을 생각해서 그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최선의 질문을 던졌다.

"너는... 공명(孔明)인가?"

그녀가 나직이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후훗. 공명 아저씨는 저에게 지셨지요."

"그래. 역시 그럼 너는...... 잠깐. 아저씨?"

나는 이 질문으로 확실히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하지도 못한 답변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뭐? 그럼 사마의....."

"어머. 그분은 저의 아버지세요."

"뭐? 아니 대체. 무슨?"

"한가지나 더 대답해 드렸네요. 이제 말씀해 주시겠어요?"

내가 생각했던것과는 완전히 다른 그녀의 대답에 당황했다.
그녀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담담하게 말하자 당황하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정체를 나 혼자 짐작하면서 생긴 기대도 있어 말을 해주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짐작과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말해준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눈을 처음 보았을  느낄 수 있었던 마치 아까 전 신의 눈을 보았을 때처럼 느껴지는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것에서 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다.

나는 시간을 되돌린 것을 제외하고 지금 상황에 대해서 전부 그녀에게 설명해주었고 말을 할 때마다 눈을 빛내며 집중하던 그녀가 내가 말을 끝내자 진지하게 나에게 말했다.

"지금 소환한 물건이 어떤 게 있는지 한번  더 말씀해주실래요?"

"어?"

"자격을 얻으시고 난 후에 소환한 물건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나는 그녀에게 차분히 염주와 사탕, 그리고 마지막으로 월하가 가지고 있는 돌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 그녀가 돌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이더니 월하를 보며 말했다.

"고귀하신 분. 혹시 그 돌을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갑작스럽게 월하에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월하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지만 순순히 돌을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돌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그녀.

"우와! 진짜 재밌겠다!"

갑자기 그녀가 양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며 말을 속사포처럼 하기 시작했다.

"1800년이나 소환 안 당하길래 완벽한 위치 선정이었다고 좋아하다가 결국 소환당하는걸 보고 조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미친 상황이라니! 아아아악! 너무 좋아! 그때보다도 훨씬 재밌는 상황이잖아?! 진짜! 진짜 재밌겠다!!"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버린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모두가 그녀를 향해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아랑곳 않고 신나게 말을 이었다.

"신을! 신을 죽여버린다니!! 꺄아아악! 어떻게 한낱 인간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아아! 행복해! 너무 행복해! 너무 너무 재밌을 것 같아서 너무 너무 행복해! 아흐흐! 흐흐흐흨!"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그녀를 보니 아까  내 판단에 대해서 심각하게 의구심이 들기 시작할 때 갑자기 그녀가 나를 향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주인님! 소환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녀였다.

"주인님! 주군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주인님은 좀 어색해서요."

"어...어.. 그래."

갑작스러운 그녀의 기세에 눌려 대답을 하자.

"감사합니다! 주군! 어후. 오랜만에 다 차려 입으니까 불편해 죽겠네."

입고 있던 옷을 빠르게 벗어던진 그녀는 순식간에 속옷차림으로 변했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을 순식간에 찢고 묶더니 비단으로 된 간편한 티셔츠와 미니스커트를 만들고 묶어올린  머리를 풀어 포니테일을 만든 그녀가 말했다.

"역시 현대 복장이 최고야!  그래요, 주군?"

비단으로 옷을 만든것만 빼면 완벽히 대학에서 볼 것 같은 예쁜 여대생처럼 변한 그녀가 나에게 묻자 나는 이번에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줄  밖에 없었다.

그녀가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흠흠! 잠시 너무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는데 다시 인사드릴게요. 저는 사마희. 주군께서 말씀하신 사마의의 첫째 딸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주군을 보필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볼까요?"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네는 그녀를 보니 선택에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마의의 첫째 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녀의 미친 사람 같은 태도가 마음을 조금씩 흔든 것이다.

"그.. 음.. 시작하겠다는게 내가 생각하는 그 시작이 맞나?"

"어, 저를 여기에서 머리 쓰는 사람으로 두시려고 하시는 거 아니셨나요? 대충 제가 어떤 사람인지 눈치채신 것 같았는데?"

"그렇긴 한데..."

"막상 저를 쓰시려니까 불안한가 보네요?"

그녀가 생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흠... 제가 살던 시대를 아시는  같은데.. 아버지가 공명 아저씨를 막을 때부터 사, 소 오라버니와 염이가 황제에 오를 때까지 그 많은 계획들을 누가 세웠다고 생각하세요?"

"그걸... 전부 당신이 했다고?"

"고평릉에서의 일이 아버지의 계책이셨을까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손에 들고있는 학우선으로 입을 가린 그녀가 나를 바라봤고 눈이 마주치자 아까 전 느껴졌던 압도적인 그 감각이 다시 느껴졌다.

그녀의 눈빛에 다시금 압도당할 때 조용히 월하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얘가 살던 차원의 유명한 인물인  같은데 나는 너가 누군지 몰라. 너가 얼마나 머리를 잘 굴리는지도 모르고. 지금 너를 판단할 수 있는건 내가 볼 수 있는 너의 기운 뿐이지. 그런데 주군으로 사람을 부르기로 했으면 그런 장난은 안하는 게 참모의 도리 아니야?"

"실례했어요. 왠만하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안을 선택하는 편이라서 예의를 무시했어요. 예의를 중시하신다면 다음부턴 그렇게 행동할게요."

월하가 사마희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사마희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학우선을 살랑이면서 그녀를 마주 보았다.

"너가 그런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 너를 신뢰하지?"

"맹세할게요.  소복을 입으신 분께서 맹세의 주문을 해주시면 되겠군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주군을 배신하지 않는다? 아, 제가 작전을 세울  필요에 의해서 몇명이 죽는건 아무 상관이 없는거겠죠?"

"한가지 물어볼게."

"말씀하세요."

"너는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어?"

월하가 묻자 쿡쿡대며 작게 웃음소리를 내던 사마희가 이내 점점 커지는 웃음을 찾지 못하고 광소를 터트렸다.

"꺄하하하하하! 고귀하신 분께서도 그렇게 물어보실 줄은 생각을 못했는데. 아하하하하하!"

"내 질문이 웃기니?"

"아뇨. 웃긴 게 아니라."

미친듯이 웃던 그녀가 순식간에 정색을 하더니 눈을 희번덕거리며 광기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진정한 뇌는 상황을 해결할  있어야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해결하는  뇌에요. '해결할  있어?' 가 아니라 '해결해.' 라고 명을 해주셔야죠. 장기는 명령을 따라야 하는 부품일 뿐이에요. 부품에게 여지 따위는 없어요."

"무슨 그런 궤변을... 불가능한 일을 시켜도 부하들이 해내야 된다고 말하는  같네?"

"해내야죠. 만약 자신이 못한다면 자기 몸을 불살라서라도 그걸 가능하게 할 실마리를 찾아내야죠. 실패를 하더라도 다른 자에게 실마리를 넘겨주는 걸 무한히 반복해서라도 어떻게든 해내야 제대로 된 부품인 거에요. 나머지는 불량품이죠."

"미쳤네."

"신을 죽이려면 미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너는 너가 말한대로 부품들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는 이야기야?"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제가 의도한대로 행동을 유도시키죠."

"후..... 너무 위험해. 너가 가는 길의 끝에는 파멸만이 남아 있을거야."

"목표를 달성했는데 그 이후까지 생각해야 하나요?"

".... 뭐?"

"그 이후까지 생각해야 한다면 그에 맞춰서 계획을 세울게요."

아무렇지 않게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사마희의 이야기에 실제 역사에서 그녀의 계획이 끝난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하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 맹세해. 주인과 아군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너가 세운 계획을 하기 전에 반드시 내 허락을 받고 나서 실행하겠다고. 그리고 지금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너의 모든  걸어서라도 해결하겠다고. 너의 '존재'의 가치는 그 정도는 되는것 같은데?"

"음... 초월자님이 모르셔야 실현될 수 있는 계획 같은 경우는요?"

"그런 계획은 없게 만들어."

"하... 너무 어려운데요."

"해."

그녀의 말을 돌려주듯 단호하게 말한 월하.

잠시 고민을 하던 사마희가 월하에게 물었다.

"그럼  계획을 유출시키는 경우라도 생긴다면 당신은 그 즉시 죽어주실 수 있으신거죠?"

"좋아. 그에 대해서 나도 맹세할게."

"뭐?"

내가 깜짝 놀라며 말렸지만 월하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의 주군과 나는운명이 이어진 사이라는건 알고 있어야 할거야."

월하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한 사마희였지만 이윽고 작게 무언갈 읊조리기 시작했다.

"...재밌네요. 정말 재밌어요."

싱긋 웃은 사마희였지만 그 미소는 인간이 지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섬뜩함이 담겨져 있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재밌죠. 그럼  하실 말씀이라도?"

"... 없어. 이제 맹세할까? 카렌, 도와줄래?"

"잠깐!"

내가 맹세를 하려는 그들을 말렸다.

"너가 보기에는 쟤가 괜찮은 것 같아? 내가 말하긴 했지만 난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재를 받아 들이는게 옳은건지 모르겠어서. 그리고 쟤가 세운 계획을 나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도구는  쓰면 되는거야. 저 정도의 도구는 흔하지 않고. 내가 지금 봤을 때 저건 인간의 탈을  지략의 괴물이야. 저런 도구를 놓칠 수는 없지. 그리고 어쩌면.... 너는 모르는 상태로 진행되는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내가 잘 걸러낼게."

"... 믿을게."

"지략의 괴물이라... 아버지께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어깨를 으쓱인 월하가 카렌에게 눈짓했고 월하가 나와 맺었던 것과 비슷한 맹세를  명에게 맺게 했다.

맹세가 끝나자마자 나는 사마희에게 말했다.

"우리의 가장 큰목표는 차원을 멸망시키려는 '목소리'를 내는 신격을 죽이는거야. 그리고 신을 죽이고 난 다음에도 최대한 내 주변의 많은 이를 살릴  있어야 해. 그리고 지금 최우선 목표는 이 던전을 공략하고 귀환한 후에도 '목소리'가 우리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게 하는 것."

"좋아요. 그럼 방금까지 제가 생각한걸 고귀하신 분께 말씀드리죠. 저희 둘만 들리도록 막을 쳐주시겠어요?"

월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렌이 막을 쳐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막이 해제되었다.

월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사마희를 바라보고 있었고 사마희는 싱글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정말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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