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7 4. 그물과 물고기 =========================
'꽃물 든 하늘'의 아이린 세이잔, 아니 이제는 아이린 에네아스인가. 아무튼 여주인공 되는 그 여자는 악녀 라니아가 자기 언니인 이리스 세이잔에게 앙심을 품고 저택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을 에네아스 백작가와의 수사 끝에 알아내고 충격과 복수심에 빠진다. 그녀는 마침내 몇 달 간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자연스럽게 친해진 양오빠 이나르 에네아스에게 자신의 수도 사교계 데뷔를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아이린은 끝없는 절망을 끊어내고 대신해서 복수를 붙잡았다.
확신에 가까운 심증은 차고 넘쳤지만 그에 반해 물증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도 아니라고 발뺌하면 뭐라 할 수가 없는 정도였기에, 아이린은 제 손으로 직접 라니아를 제가 겪었던 절망 속으로 끌어내리기로 결심한다.
라니아 에빌 루 할레시온은 비록 황자위를 내려놓고 뒷구석으로 물러난 대공의 장녀였지만 황태손과의 약혼으로 인해 위세가 대단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 위세를 노리는 것이 효과적일 터였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일수록 내려오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법이니까. 아이린은 우선 그녀의 막강한 권력을 한풀 꺾어놓기 위해 수도 사교계에 입성해 황태손에게 접근할 셈이었다. 황태손이 자신에게 마음을 주면 약혼을 깨려 할 테고, 라니아가 쫓겨난 자리에 자신이 앉기라도 하면 복수는 순탄해지다 못해 속전속결이 될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황태손이 자신에게 빠져드는 만큼 자신 역시 그를 사랑하게 될 것임을, 당시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상황을 봐선 이대로 얼추 비슷하게 진행될 것 같은데......"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분홍색 표지의 공책을 꺼내들고 한참 살피다 내린 결론이었다.
앞으로의 일을 가늠하면 할수록 이상했다. 난 분명 불을 지르지 않음으로써 소설의 발단 부분부터 비틀어 버렸는데, 어째선지 이야기는 끄떡없이 진행된다. 여기서 하나 추측할 수 있다.
아직 한 번밖에 비틀지 않아서 영향이 미미한 거라면?
만약 이게 맞는 추측이면 내 인생은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성가셔질 것이다. 중요한 거점마다 나서서 비틀고 또 비틀어야 할 테니까. 문제는 이게 현재 정답에 대한 근삿값이라는 것이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 같으니. 다시 태어났으니 이번에는 편하게 좀 살아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아, 빌어먹을, 진짜......"
아직 접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 답장과 그가 보내온 편지에 번갈아 시선을 던졌다. 이것도 성가시고, 저것도 성가시고.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지. 울화가 치밀어서 머리카락을 두 손에 움켜쥐고 팔꿈치를 괴어 엎드리듯 앉았다.
라인하르트는 두 번 연속으로 황궁에 침입해 노린 주목적이 군사와 재정 관련 기밀 문서들인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중요한 정보인지라 누구 손에 들어가냐에 따라 일이 심각하게 꼬일 염려가 컸기 때문이다. 만일 타국의 권력자에게 전달되기라도 한다면 전쟁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지도 모른다. 간담이 서늘할 만도 해. 그나마 하나 안도할 점이 있다면, 범인의 목적이 이제 완전히 문서 쪽으로 결론났다는 것. 처음에 라인하르트를 노린 것은 그냥 연막 작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축하해, 황태손. 네 목숨은 안전하겠어.
그래서 나는 놀림 반 사실 전달 반으로 편지 한 부분에 이런 문구를 써넣었다. 받으면 화내려나. 그럼 나야 좋지.
편지가 라인하르트인 것처럼 노려보는데 마리가 들어왔다.
"아가씨, 손님께서 조금 일찍 찾아오셨습니다. 차는 응접실에 들여야 할 것 같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벌써 왔다고? 알았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전해 드려라."
"네, 아가씨."
마리가 총총 나가고, 나는 빗을 꺼내들었다. 프리드리히 이 인간, 쓸데없이 약속 시간은 잘 맞추네. 채비야 나도 일찍 해두었지만 방금 머리를 쥐어뜯어서 빗고 가야 했다.
머리를 다 빗고 나서 실내에서 입는 평상복 위에 얇은 숄 하나만 걸치고 1층 응접실로 내려갔다. 프리드리히는 저번에 말했던 대로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아이린 관련 사항을 전해주겠다며 직접 방문의 의사를 밝혀왔다. 연애와 친교가 매우 자유로운 제국 특성상 성적이거나 극단적인 일탈만 아니면 사석에서 나와 그가 무슨 이유로 어디서 만나든 간에 안 될 것은 없었기에 아예 저택으로 오라 했다.
프리드리히는 그 날 내가 구태여 그의 속을 읽고 미리 앞서서 결백까지 주장한 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멋대로 해석을 한 눈치였다. 내가 비상한 머리를 순발력있게 굴려서 스스로가 억울함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예상했고 변론했다, 뭐 이런 식으로. 영 틀린 말은 아니니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응접실은 둥글게 휘어진 벽의 반 이상이 통유리 창문으로 메워져 빛이 아주 잘 들어오는 구조였다. 문을 열면 순간 눈이 부셔서 찡그리게 될 정도로. 그 찬란하고도 메마른 겨울 아래에서, 나는 단정히 앉아 차나 홀짝이고 있던 프리드리히와 예정에 없던 불청객들을 발견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찍 오실 거란 예측을 하지 못한 제 불찰이에요. 그런데......영식께선 혼자가 아니셨네요."
부드럽게 말하며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에서 마주보는 두 면에 자리한 프리드리히와 로엔세르 외사촌들을 피해 빈 옆면에 앉았다.
"예, 중간에 초대받지 않은 분들이 들러붙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데리고는 왔습니다만,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지요."
"아니요, 그렇지 않은 걸요. 음. 안녕하셨어요, 로엔세르 영식들. 요즈음 자주 뵙네요."
나와 프리드리히는 애매하게 웃으며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사이좋게 옥신각신하던 쌍둥이 형제에게 눈길을 주었다. 레테일은 뭐라 칭얼대며 그의 어깨에 기대려는 세크네트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손으로 주욱 밀어내고는 양해를 구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그리고 죄송합니다. 지나가는 길에 스카일러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다 어찌어찌 여기까지 와서는......입구에서 루 할레시온 대공비께 허락은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다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어억, 레트! 나 넘어질 뻔했잖아! 난 애기도 안고 있는데 너무 험하게 다루는 거 아냐?"
"닥치고 너도 사과나 드려, 모자란 새끼야."
"쳇. 매정한 형제! 나쁜 형제! 이 형이 널 그렇게 키웠니? 엉?"
"내가 형인데. 그건 기억하지 그래, 세트?"
"아차, 그랬지. 미안. 큼, 예정에 없던 방문 죄송합니다. 음, 그리고 저번에 에리카 초상화를 달라 하시길래 제 딸을 보고 싶어하실까 해서 함께 데리고 와 봤습니다. 하하!"
세크네트는 순간 기우뚱했으나 넘어가진 않고 제 형제에게 땍땍거리다 금세 또 화제를 전환했다. 이리저리 튀는 게 못 쫓아갈 정도로 빨랐다. 겨우겨우 대꾸했다.
"괜찮아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이 아이가 에리카인가요?"
세크네트의 딸, 에리카 로엔세르는 해가 바뀌어 이제 두 살이 되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해도 이제 재작년이 되었다는 뜻이군. 측은했다. 나이를 통해 태어난 시점을 계산해 보는 것만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잔재를 느끼기에 충분한 인물은 이 아이 말곤 없거든.
자기 아버지가 상당히 부산스레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아이는 새근새근 잘만 잤다. 통통한 볼은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한데다 옅은 홍조까지 져서 사랑스러웠다. 세크네트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랑 닮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부인 되시는 분을 더 닮은 것 같네요."
셰카이나 멘데로프. 28세에 산욕열로 사망한, 샤카르의 누나이자 세크네트의 부인.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는데 바로 후회했다. 죽은지 이제야 1년 겨우 넘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건 남편된 이에게 못할 짓인데. 내가 미쳤지. 아차 싶어서 입술을 잘근 물었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어요."
세크네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정략혼으로 맺어진 인연으로 아는데, 저 어둑한 낯빛을 보아하니 두 사람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씩 웃는 세크네트는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처럼 서글픈 눈을 미처 숨기지 못했다.
"에이, 아닙니다. 그거 엄청 기쁜 칭찬인데요? 솔직히 나보다야 부인이 더 예뻤어, 그치 레트?"
셰카이나의 이야기가 화두로 떠오르자, 나는 문득 그가 저번에 나와 닮았다고 한 사람의 정체를 눈치챘다. 하기사 세크네트처럼 사교계 활동이 잦지 않은 사람이 잘 아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나. 기껏해야 부인이나 여자 친척, 주요 인사들 뿐이겠지.
나와 셰카이나가 닮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오묘한 기분이었다. 그녀를 직접 만난 적이 있어서 더 그런가.
옆에서 할 말 많은 못마땅함을 고요히 표출하고 있던 레테일은 찻잔을 부서져라 잡고 뭐라 단정짓기 어려운 감정을 담은 눈으로 세크네트를 째려보며 씹어 뱉었다.
"이 답도 없는 멍청이가 뭐라는 건지."
"에엑? 이번엔 또 왜!"
눈치채고 나서 다시 보니 세크네트는 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맞았다. 별 시답잖은 주제로 투닥대는 게 일상이라고 해도, 같은 날에 태어나 지금껏 얼굴 맞대고 살아온 쌍둥이의 처지를 향해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 리 없잖은가. 레테일은 화난 척 하지만 실상 속으로는 못마땅한 거였다. 자신의 하나뿐인 형제가 겪어야만 했던 불행이. 아무것도 모르는 세크네트는 오늘도 그저 당황하며 허둥지둥 의미 없는 말을 내뱉을 뿐이지만.
"너무해. 나 상처받았어. 상처받았다고!"
"꺼져."
"엥. 뭐야, 혹시 화났어? 그런 거야, 형제여?"
"......"
레테일은 이제 정말로 화가 치밀어오르는지 분노의 차 원샷을 시전했다. 식긴 했어도 아직 좀 뜨거울 텐데 목은 괜찮나 모르겠다. 결국 세크네트는 평소와는 다른 반응에 쩔쩔매다가 애꿎은 애를 깨워서 한바탕 아이 울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지게 하고야 말았다. 에리카가 안 그래도 서투른 아버지 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했던 건지 온몸을 비틀며 우는데, 우는 아이보다 아버지가 더 새파랗게 질려서는 자기는 울음 그치게 하는 법따윈 모른다고 징징대더라. 결국 내가 나이 많은 하녀장을 불러서 겨우 사태를 진정시켰다. 레테일은 그때까지도 꽁해서는 형제와 도통 말을 섞으려 들지 않았다.
졸지에 중간에 애매하게 끼어버린 나와 프리드리히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다른 주제를 꺼내야만 했다.
"신문기사는 보셨습니까?"
바로 우리의 본론이었다.
"네. 영식께서 이렇게 오셨으니 그 외에 뭔가 더 있나 보군요."
여전히 레테일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세크네트의 말소리를 배경처럼 깔고, 나와 그는 조용히 말을 나눴다.
"예. 보고에 따르면, 의도적인 방화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 합니다. 대공녀님께서는 그 날 결백을 말씀하셨으니 우선은 범인이 아니라 믿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 '악녀'의 역할을 대신했다는 뜻이다. 그를 이런 식으로 써먹게 될 줄이야. 샤카르가 없는 상황에서 그는 꽤 유용한 정보 전달원이었다.
"저 또한 이리 말하는 영식을 우선은 믿기로 하죠."
"상호간에 참으로 바람직한 신뢰 형성이군요."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을 찡긋했다. 나도 살살 웃으며 뻔뻔스레 대꾸했다.
"상황이 꽤 괜찮게 돌아가 다행이에요."
"허나 이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정확한 판단이라 제 입장이 이러함을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그는 차를 우아하게 홀짝이곤 잔을 소리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안이 비었길래 손짓으로 저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에게 손을 까딱여 차를 새로 채워줬다. 유들한 음성으로 작게 감사를 표한 그는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대공녀께선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인물이 아니심을 압니다. 제대로 겪어본 바는 아니나 짧은 만남만으로도 대공녀께선 여타 영애들과는 많이 다르십니다. 하지만 시기가 적절치 않아 이번 사건이 의도적 방화로 인해 벌어졌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순간 대공녀께 화살이 돌아갈 게 분명하지요. 황태손 저하께서도 이를 저어하셨기에 먼저 내부 수사를 진행하시다가 시일이 조금 흐른 후에야 언론에 일부만 공개하라 하셨습니다."
"황태손께서요? 얼마 전에 온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일절 없었는데요."
이건 또 의외다. 왠지 화재는 1월 1일에 났는데 공식 발표는 1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한 것이 수상하다 싶었다. 사건을 덮었군. 가타부타 나를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이 웬일로 보호를 자처했지? 역시 그때 그 도움이니 뭐니 하는 약속 때문인가? 내 의문이 한눈에 보이는지 그가 덧붙였다.
"저하께서는 대공녀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계십니다. 그녀는 절대 이리 허술하고 쓸모없는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라 못박으시는 터라 감히 그 연유를 물을 수도 없었지요. 그래서 받으셨다는 편지에도 적히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 대공녀께 화재 사건 관련으로는 아예 입을 열지 말라고도 명하셨는데 저는 그걸 어기고 말았군요. 저와 저하의 판단이 달랐던 탓이고, 대공녀께서는 제 행동을 더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으니 불충에 대한 죄책감은 덜어두어도 괜찮겠지요."
라인하르트 말이 맞다. 이득 되는 것이라곤 화풀이 정도밖에 없는 무가치하고 위험한 일을 내가 왜 벌이겠는가. 새삼 그와 내가 오래도 교류했구나 싶었다. 이제 웬만한 심리쯤이야 서로 눈 감고도 맞추겠어. 평온한 낯을 하고 찻잔을 기울였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차향이 그윽하다.
"마음대로 하시길. 그저, 입궁하시면 저하의 대단한 안배에 감동했다고 전해 주세요."
"그러지요.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영혼 없이 감탄하는 내게 마찬가지로 대답한 프리드리히가 품 속에서 불에 그을린 무언가가 들어 있는 봉지를 꺼냈다. 입구를 열고 내용물을 손바닥에 올려놓아 내게 보여주었는데, 어디 새나가기라도 할까 걱정되는지 금세 다시 안 보이게 집어넣더라. 심상찮은 아우라에 불안해져서는 절로 날카로운 어조가 튀어나왔다.
"뭐죠?"
"화재 현장에서 나왔다며 그저께 정보국으로 전달된 증거물 중 하나입니다."
"제 눈에는 특별할 것 없는 장신구로 보였는데요."
"장신구인 것은 맞습니다. 문제는 이것의 출처이지요."
"설마."
"생각하시는 그대로일 겁니다. 이것은 루 할레시온 가문 문장이 양각된 장신구입니다. 제가 알기로 루 할레시온과 동맹 관계나 고용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신체나 소지품에 매달고 다닌다던데. 맞습니까?"
이름 높은 귀족가는 종종 특수한 물품을 제작해 우호 관계를 맺은 자들에게 지니도록 한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인 동시에 일종의 계약서 역할을 한다. 물론 해당자들이 그 귀족가들보다 신분이 낮아야 그런 요구가 가능하지. 그런데 우리 가문과 아무 연관이 없는 세이잔 자작가에서 왜 이런 게 나왔지? 수상하다. 진범은 우리 가문이 왈패 같은 것들과 고용 관계라도 맺고 세이잔 저택에 불을 지르라 명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네. 소수의 당사자들만 아는 기밀 사항인데 잘 알고 계시네요."
"적어도 이 증거물을 알아보시고 감추라 명하신 황태손 저하와 그 분의 수석 보좌관인 저는 모를 수가 없지요."
"아, 그런가요."
증거물까지 은폐했군. 그래도 이왕 덮을 거 제대로 하려고 신경쓴 티가 난다. 대강 수긍하는 사이 쌍둥이 형제의 설전이 좀 유하게 잦아들고, 프리드리히가 말을 이었다.
"사실 이 장식 때문에 저는 대공녀님께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명석하고 철저하신 분께서 증거가 남았을 여지가 없을 거라 섣불리 확신하고 결백을 주장하실 리는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 동시에......"
"저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꾸며진 가짜 증거물일 거라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셨겠죠."
나는 그의 말을 대신 이어주며, 주먹을 세게 말아쥐었다. 그래, 이쯤이면 결론을 내도 되겠다.
누가 불을 지르고 내게 덮어씌우려 한다고.
============================ 작품 후기 ============================
이번 편부터 새로운 챕터입니다. 허억 그나저나 벌써 17화 업뎃이군요 세상에 제 비축분은 며칠째 제자리걸음인데 업뎃속도가 너무 빠르네요......그렇다고 연재 쉬기는 싫고... (이 인간은 옛날부터 연재하고싶어병 말기 환자였다) (그러나 글쓰는 속도는 거북이다) (으윽 딜레마!) 그냥 일단은 뒷일 생각 안하고 달리는 걸로ㅎㅎㅎ (미래의 룬 : 야.........너....이잌...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브금추천 : 악살다에서 좀 평온하거나 일상적인 분위기의 편에는 '크림슨왈츠'라는 곡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아탈로 님 / 정답과 '가장 가까운' 추측이라는 의미가 들어가야 해서 근삿값이라는 단어를 써 보았습니다! 음...추정치는 가장 가까운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지 않아서...우선은 더 잘 맞는 단어를 찾기 전까지는 그대로 두려 합니다 ㅎㅎ 코멘트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