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QnA 모음 =========================

QnA에 대하여

-후기 편(101화)에서 받은 질문 중 대답 가능한 것을 선정했습니다. 거의 다 원래는 안 풀고 그냥 넘어갈 예정이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이어서, 아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심층적인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이 QnA가 질문해주신 여러분께 악살다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Q : 샤카르의 황금 링 팔찌의 의미와, 그 개수가 변하는 이유는?

A : 악살다에 숨어있는 상징 중 하나입니다. 샤카르가 원래는 팔찌 한 개, 1061년부터 두 개, 1062년부터 세 개의 얇은 황금 링 모양 팔찌를 손목에 착용한다는 서술이 본문에서 뜨문뜨문 나왔지요. 이 팔찌들은 샤카르가 진심으로 연민하는 존재 네 명을 의미합니다. 시기상 첫 번째 팔찌는 그의 누나 셰카이나, 두 번째 팔찌는 라니아+자신, 그리고 세 번째 팔찌는 시안입니다.

첫째로 태어났지만 남동생의 존재로 인해 그토록 바라던 후계 자리에서 밀려나 고군분투해야 했던 셰카이나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샤카르는 평생 누나에게 죄책감과 연민을 가졌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방황의 원인 7할이 셰카이나, 나머지 3할이 타고난 자유에의 갈망 때문이니 말이에요.

샤카르 자신과 비슷한 상실을 겪고 망가졌던 라니아 역시 그에게 연민의 대상이었습니다. 1057년에 라니아를 처음 만났으면서 팔찌는 재회 시점인 61년도에야 추가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라니아 몫의 감정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던 연민이 한 조각도 남김없이 애정으로 전부 바뀐 시점, 그리고 라니아의 공책에 적힌 자신의 죽음과 비극의 암시를 확인한 시점이 바로 1061년이었기 때문입니다. 라니아가 동정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을 알고 있으므로 그간은 팔찌를 차지 않다가, 61년을 기점으로 연민의 대상이 라니아에서 샤카르 자신으로 옮겨가며 비로소 착용하게 됩니다. 그 때 그는 이미 자신이 벗어나지 못할 감정에 묶였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으며, 그의 특성인 자유 때문에 억지로 저항해보려 수도를 떠나는 선택을 했으나 결국 라니아의 생일날 다시 돌아오며 실패를 인정합니다.

그런데 시안을 염두에 두고 추가한 세 번째 팔찌는, 처음엔 반만 연민이고 나머지 반은 조롱이었습니다. 본문에 가끔 나오다시피, 두 사람의 사이는 시안이 줄기차게 샤카르의 심기를 건드린 것 때문에 그다지 좋지 않아서요. 네놈 하는 짓이 짜증나지만 불쌍하니까 봐준다, 이런 느낌이죠. 참 샤카르다운 돌려까기 방식입니다. 시안 역시 기억을 되살려 본 끝에 그의 의도를 얼핏 눈치채지요. (시안은 샤카르 외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샤카르와 일찍이 1061년 11월 소집령 일자에 황궁에서 간접적으로 마주한 적이 있고, 그 때만 해도 분명 팔찌가 두 개였다는 것을 보아서 압니다.) 본문에서는 이에 대한 시안의 감정이 직접 서술되기도 합니다.

'샤카르는 비교적 대적할 만한 상대였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난 후 샤카르의 손목에 링 팔찌 하나가 더 생긴 것을 내색 않고 주시하며, 시안은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다. -84화, 시안 외전 중에서'

이렇게요.

이것 말고도 41화 식사 장면부터 두 남자는 이미 자기들끼리 팽팽하고 고요한 심리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렇게나 손발이 잘 맞았지요. 상술했듯이 샤카르의 두 번째 팔찌의 의도가 반 정도는 진짜로 연민이었고, 시안이 그것 또한 알고 있었던 탓입니다.

둘의 감정선이 안타깝게도 소설의 진행 속개를 위해 서로의 외전에서가 아니면 제대로 암시조차 되지 않았지만, 둘은 세크네트/레테일 콤비와 비슷한 콤비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허구헌 날 투닥거리고 사이 안 좋아 보이는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그런 관계요.

두 사람이 의외로 비슷한 면이 많았기에 (서로의 외전 소제목과 키워드가 겹치거나 공통된 서술을 일부 가지는 식으로 상징 표현된 바 있습니다. ex : 샤카르 외전 1 푸른 새벽/파란색이라는 뜻의 영어 시안cyan, 영원이라는 뜻의 샤카르 외전 2/영겁이라는 뜻의 시안의 라스트네임 에온Eon, 샤카르와 시안이 나오는 장면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적 있는 단어 '비밀' 등등) 정치적인 상황이 없었다면, 하다 못해 부딪치거나 말을 나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두 사람은 꽤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라는 여담을 덧붙이며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종료하겠습니다.

Q : 라인하르트의 기억은 어떻게 된 건지?

A : 이건 트위터에서도 대략 언급했으므로 여기에도 간단하게 힌트만 던지겠습니다. 96화의 라인하르트와 라니아 재회 장면에서, 라인하르트는 초면인 라니아에게 자연스레 하대를 합니다. 하지만 외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보통의 경우 귀족 영식과 영애에게 그런 식의 말투는 쓰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다짜고짜 울었지만, 곧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뭐가 됐든 '완전하지는 않다'는 의도를 담았습니다.

Q : 세크네트가 내린 판단의 발단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각이 전개된 것인지?

A : 스토리 진행상 대강 뭉뚱그려 서술하고 끝났던 부분입니다. 악살다 최강의 두뇌캐라는 설정을 가진 세크네트는 그 세계의 인물들 중 유일하게 라니아의 비밀을 거의 전부 알아챕니다. 샤카르, 라인하르트, 르쉬네, 에단, 일레인 등등 라니아의 주변인물에게서 얻어낸 정보 조각과 라니아를 직접 관찰해 세운 가설을 토대로요.

세크네트의 사고 과정은 이렇습니다.

라니아의 주변인에게 얻은 정보를 조합해 보면, 원래 다른 세계에서 살던 라니아가 우연한 기회로 세크네트 자신이 사는 세계의 이야기를 결말까지 모조리 알고서 난입했다. 이 말인 즉슨 세계에는 애초부터 정해진 줄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줄거리를 아는 그녀는 세계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변수, 즉 세계의 '열쇠'인 라니아를 잘만 조종하면 세크네트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레비욘이 말한 '과정은 다르되 결과는 같다'라는 공식은 고려되지 않았지만 세크네트에게는 딱히 상관이 없습니다. 세크네트는 아이린이 살던 처음의 그 세계에서 아이린 쪽에 딱히 연관이 없었고, 그렇기에 아이린이 정해놓고 떠난 운명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고로 그는 원래부터 비극에서 먼 사람이었으므로 라니아를 조종해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이끌어낸다 해도 그저 그의 원래 삶을 그대로 사는 셈이 됩니다. 만약 조종을 안 했다면 그때야말로 그의 결말이 바뀌었겠죠. 그리고 그의 결말이 바뀐다면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결말도 바뀔 테고요.

결국, 그는 라니아가 열쇠라고 결론지었지만 사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열쇠는 세크네트였습니다. 이는 세크네트 외전에서 열쇠를 지칭하는 대상을 나타내지 않고 그냥 '열쇠였구나.'라고 발화자조차 불명확한 감탄문만 쓰는 것으로 실마리를 던져 두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세크네트는 라니아를 세상으로 끌어내기로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정립한 시기는 조력자가 된 이후에 라니아와 비교적 가까이 지내면서 관찰을 해 정보를 더 얻어낸 뒤이므로, 악살다 초중반만 해도 그는 진짜로 조력자였습니다. 물론 '이미 많이 파악된 황태자 쪽보다는 내가 잘 모르는 라니아 쪽에 먼저 붙어서 승률 파악 좀 해보자+듣자하니 라니아란 사람이 좀 수상한데 알아보러 가자->아 진짜 대박이네? 얘 열쇠인듯. 활동하게 만들자!'의 의도를 품었긴 하지만요.

배신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 시안의 존재를 알고 나서 결심합니다. 무려 반란이라는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는 시안과, 상황상 이에 협력하게 될 라니아에게 가담하는 것은 세크네트로서는 위험 수위를 한참 넘어선 도박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름의 끝물에 시안의 존재를 눈치채고, 세크네트는 그의 세계에 가장 해로운 사람이 일찍이 산정한 바와 달리 라니아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장 두려운 자가 라니아였다. 그걸 깨달은 즉시 세크네트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 99화 중에서'

그가 일찍이 산정한 최대 위협 인물은 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황태손 라인하르트였으나, 이때 단순히 열쇠인 줄만 알았는데 세계를 뒤집어 엎을 정도의 변수를 일으키게 생긴 라니아로 바뀝니다.

위협을 느낀 그는 다른 세계에 기원을 둔 그녀를 다시 다른 세계로 쫓아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가장 쉽고도 정확한 방법은 그녀를 죽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배신한 겁니다.

참고로 본문에서는 언급할 곳이 없어 그냥 넘어갔지만 사실 새 황제 루인 1세에게 94화의 일(라인하르트에게 라니아의 죽음을 맡기는 것)이 일어나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도 세크네트였습니다. 그는 그저 그녀가 죽기 전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과 옛 친구 라인하르트와 대화할 시간을 더 줘서 부디 그냥 끝나지 말고 새로운 시작으로 가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세크네트는 변수를 자신의 세계에서 추방해버리며 안위를 지킵니다. 99화 댓글에 쉭샥 님께서(언급 부담스러우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세크네트가 3개의 세계 모두에서 승자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그의 키워드가 전쟁, 보호, 그리고 승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아이린의 세계에서도, 라니아 에빌 루 할레시온의 세계에서도, 라니아 이셀로의 세계에서도 그는 안전합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셰카이나만은 지켜내지 못한 것이 그의 행복에서 매번 완전함을 빼앗아갑니다. (셰카이나는 3개의 세계에서 똑같이 1060년에 죽습니다. 98화 샤카르 토막 외전에서 언뜻 언급됩니다.)

어렵나요...?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이 서사가 몇달 전에 생각해둔 거라 다시 되짚는데 머리가 어질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제 두뇌능력을 상회할 만큼 똑똑한 캐릭터를 창조하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Q : 세크네트가 딸에게 라니아의 드레스를 입힌 이유는?

A : 라니아는 세크네트의 딸 에리카에게 무사히 자라 입어 달라는 뜻으로 자신의 드레스를 선물했지요. 세크네트는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가 그대로 한 겁니다. 레테일이 화를 낸 이유는 그게 라인하르트나 에단 같은 라니아의 지인들에 대한 기만과 조롱의 뜻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라인하르트의 장녀 리디아가 에리카에게 그 드레스를 다시 선물받으며 정말로 라인하르트에게 큰 상처를 준 셈이 되었지요. 세크네트가 이성적인 면에선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최강자지만, 감성적인 헤아림에는 꽤나 어리숙한 탓입니다. 셰카이나 덕에 많이 배우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죠.

Q : 엔딩 이후의 윤하린은 어떻게 된 건지?

A : 순환구조입니다. 14챕터에 이미 나와있는 사실이지만, 큐엔에이니까 깔끔하게 쭉 정리해보겠습니다. 아이린 위주 설명으로요.

세계 1에 아이린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아이린은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죽는다. - 아이린이 세계 2에서 윤하린으로 환생한다. 윤하린은 자기 마음대로 전생 이야기를 각색하여 소설을 쓴다. - 윤하린이 죽은 뒤 그녀의 딸 윤이설이 그 소설을 본다. - 윤이설은 죽은 윤하린에게 가고 싶다고 소망하며 자살한다. - 윤이설은 아이린이 거쳐간 바 있는 바로 그 세계 1에서 라니아로 환생한다. 하지만 그곳이 소설 속 세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 최초의 아이린이 이미 완성한 세계 1이기에 라니아의 개입에도 과정만 바뀔 뿐 결과는 같다. 세계 1의 아이린은 죽는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고 소망한다. - 아이린이 세계 2에서 윤하린으로 환생한다.

이렇게 순환합니다. 그래서 외전에 표류한다는 표현을 쓴 거예요.

(그리고 이건 왠지 다들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슬쩍 추가해봅니다ㅋㅋ)

Q : 대체 24화 마지막에 세크네트가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1도 모르겠음 설명좀 <<몇 주 전에 들은 친구(독자)의 푸념

A : 간단하게 밝히겠습니다.

보통 가장 불행한 자는 잃을 게 많은 사람이지. =샤카르

보통 가장 두려운 자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고. =라인하르트

때로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자일 수도 있고. =시안

때로는 잃을 게 많은 사람이 가장 두려운 자일 수도 있다. =라니아

그리하여 4명의 주연이 이끌어갈 4장 스토리에 대한 떡밥이었습니다. 사실 100화까지 다 보셨고 위의 QnA도 보셨으면 굳이 알려드리지 않아도 답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제가 그냥 쓰고 싶었습니다.

우선은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놓치고 질문 못하셨는데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이번 편 댓글로 질문 주셔도 됩니다. 바로바로 이 글에 답변 추가해 놓겠습니다.

그럼, 곧 다른 외전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

+후기 편에 남겨주신 총 감상 댓글 하루에 한 번씩 정독하고 있어요ㅎㅎ 악살다를 인상 깊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으악 수정 전 버전 올려서 고쳐 올립니다! (00시 1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