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2화 (2/200)

# 2

2화 우리 영주 맞아?

듣자 하니, 이곳 드래프트 영지는 남작령치고 굉장히 넓은 편이었다. 어지간한 공작령에 가져다 대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영토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대부분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그 이유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었다.

첫째, 영지를 다스리는 루크 남작의 횡포.

둘째, 영지의 5할은 산이고, 나머지 5할의 평야에는 오크 부족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

셋째, 평야에 자리 잡은 오크 부족들이 시도 때도 없이 영지를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

이전의 루크 남작은 호기를 부리며 소수의 병력으로 오크 토벌에 나섰다가, 중상을 입고 병사들의 손에 의해 겨우 저택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모두가 루크 남작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숨이 돌아오며 일어났다. 아마 그때 이전의 루크 남작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가 숨이 끊어진 직후에 카인의 영혼이 육체에 깃들며 환생을 이룬 것이고 말이다.

덕분에 카인은 루크 남작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영지 상황이 엉망이군. 지금까지 계속 재정 관리를 이딴 식으로 해 왔나?”

카인, 아니 루크가 집무실에서 서류를 뒤적이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루크가 원정을 떠난 사이, 영주의 업무를 대신 수행하던 집사 드골은 어깨를 움츠렸다. 근 몇 년 동안 루크를 받들어 왔기에 무슨 말이 나올지 대강 예상이 갔다. 맞을 땐 뺨을 먼저 내밀어야 덜 아픈 법.

드골은 고개를 숙이며 일단 사과부터 하고 봤다.

“죄송합니다. 금년에는 워낙에 흉작이라 어쩔 수 없이 세금 연체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예년에도 흉작이라 같은 일이 있어서 잘 안다. 그때도 백성들이 세금을 제때 내지 못하여 납기일을 미뤄 달라고 청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루크는 개소리하지 말라며 찾아온 백성들에게 곤장형을 내렸었다.

올해는 루크가 장기간 원정을 떠난 데다,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업무에서 손을 뗄 것 같아 몰래몰래 백성들의 사정을 봐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게으르고 탐욕스러운 영주가 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업무를 맡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드골의 입장에선 차라리 더 쉬길 바랐으나 기어이 집무실에 들러 서류를 확인해 버렸다. 모두가 문책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세금을 왜 이리 높게 잡았냐 이거야. 세율 30퍼센트? 무슨 부유세야? 여기 영지민들 다 잘살아? 세금이 왜 이리 높아?”

세금이 높다고? 예전엔 30퍼센트도 낮다고 하던 사람이었건만!

메리에게 루크가 예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긴 했다. 근데 사람이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잖은가!

드골은 180도로 바뀐 루크의 태도에 적응이 안 되어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노, 높다고 하셨습니까?”

“마을마다 사람 파견해서 세무 조사 다시 실시해. 재산 유무에 따라 0퍼센트부터 15퍼센트까지 차등 적용하도록.”

“저… 남작님? 혹시 찬장에 손대셨습니까? 부상 입은 몸으로 술을 드시면, 부상이 악화될지도 모릅니다.”

“뭐야, 지금 술김에 낮춘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전의 남작이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그만…….”

“예전 일이라면 기억나지 않아. 지금의 나는 세금 조정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걸로 충분한 거 아냐?”

“네, 물론이지요. 하지만 갑자기 세율을 낮추시면 저택이 유지될지 모르겠군요.”

이전의 루크가 괜히 세금을 많이 걷은 것이 아니다. 모두 사치를 부리기 위한 횡포였다. 저택 복도만 둘러보더라도 괴상망측한 그림과 조각 등의 장식품으로 가득하고, 개인 옷장에는 괴팍한 센스의 옷과 장신구가 그득했다. 방 안에는 실용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기 컬렉션이 장식되어 있다.

효율과 실용성을 우선으로 삼는 지금의 루크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취미였다.

루크는 이전 몸 주인의 행적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양, 모조리 돈으로 바꾸자는 판단을 내렸다.

“저택 유지비도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있군.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전부 정리해. 지금 저택에 있는 수집품들 중에서도 돈 되는 건 다 팔아 버려. 복도의 그 괴상한 그림하고 장식품은 가치가 얼마나 하지?”

“전부 다 말입니까?”

“전부 다.”

“정말로 파실 겁니까? 그거 구한다고 북부까지 직접 마차 타고 가셨었는데요?”

“흑역사 한번 거하게 써내려 놨군. 두 번 묻게 하지 말고 값어치나 말해.”

“흠, 대도시까지 가서 경매에 걸면 10억 루소는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쓰레기들치곤 제법 값이 나가는군. 중개인 불러서 실어 가라고 해. 낙찰금은 어음으로 보내라고 하고.”

“네.”

“그리고 옷장에 있는 옷이랑 무기 컬렉션도 팔아 치워서 영지 운영 자금에 포함시켜.”

“허… 네.”

일사천리로 저택 안의 잡동사니를 정리하는 루크의 모습에 드골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인생의 전환점이랄 만한 사건을 겪으면 인격의 뿌리부터 바뀐다지만, 이건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무능력한데, 목소리만 커다란 좀생이 같은 인상이었다. 지금은 마치 행동력과 리더십으로 무장한 카리스마가 흐르는 리더처럼 보인다. 말하는 어투나 분위기에서 귀족, 아니 귀족 이상의 품격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예전의 행적을 지우려는 듯 단호하기 짝이 없는 루크의 행동 앞에서 드골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 망나니 남작님이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어?’

* * *

병상에서 일어난 루크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은 비단 집사 드골만이 아니었다.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들도 루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요즘 남작님이 엄청 멋있어지신 것 같지 않아? 예전에 없던 귀족다운 품격이 느껴지더라고.”

“게다가 원래 외모는 잘나셨잖아. 성격이 그 모양인 게 흠이었는데, 성격까지 바뀌시니까 완전히 달라 보이는 거 있지?”

“예전에는 툭하면 손찌검부터 하셨는데 정말 많이 변하셨어.”

“어제는 나보고 일하느라 수고한다고 하시더라. 나 그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예전 일은 기억나지 않으신다는데, 그냥 쭉 기억 안 나셨으면 좋겠어.”

* * *

안팎으로 평가가 달라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루크 본인은 타인의 평가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타인의 평가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결국 사람은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없어 이용당하는 설움을 이미 한번 겪어 보지 않았는가.

저택 내의 사치품을 정리하고, 세율을 조정하면 당장 다가올 겨울까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드래프트 영지를 기반으로 세를 키우기 위해서, 일단 예전의 루크 때문에 곯은 부분부터 도려내고 새 살을 틔워야만 한다. 사치품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 세를 키우기 위해서는 자급자족하고도 남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루크 본인의 무력이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부하들만 부려서는 아레나 공국, 나아가 겐크 왕국을 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앞장서서 부하들을 이끄는 지도자를 지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무력을 키워야 하고 말이다.

‘당장 몸 안에 쌓여 있는 마나는 없어. 그래도 마나 없이 오크와 싸우겠다고 나설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을 거고. 중상을 입으면서 마나 회로가 손상을 입은 건가. 그렇다면 당장 마나가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예전의 루크가 전투에 나가 입은 상처는 거의 아물었다. 격한 훈련은 무리일지라도 마나 수련 정도는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카인일 때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나유저 상급의 경지에 올랐었다. 하지만 마나유저 상급 정도로는 한참 모자라다. 최소한 마나마스터 이상은 되어야 놈들과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물론 마나마스터의 경지란 게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이 아니긴 하다. 한 나라에 10명 안팎밖에 없는 것이 마나마스터란 존재다. 마나유저만 하더라도 재능을 타고나야 하는데, 마나유저 중에서도 불세출의 재능을 지녀야지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나마스터의 경지였다.

‘마나 회로의 상태부터 확인해 보자. 확인해 보면 알겠지.’

마나를 다루려면 마나 회로가 몸에 깔려 있어야 한다.

마나 회로는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되는 거라서, 마나 회로의 존재 여부에 따라 마나 능력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게다가 사람마다 깔려 있는 마나 회로의 범위가 다르다.

마나 회로가 많이 뻗어 있을수록 올라갈 수 있는 경지의 수준이 높아졌다.

이전의 몸에선 몸의 절반에 마나 회로가 뻗어 있었다. 즉, 마나 회로가 몸의 절반에 걸쳐 뻗어 있으면 최대 마나유저 상급 수준까지 노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루크는 침대 위에 편한 자세로 누우며 눈을 감았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공기 중의 마나를 감지하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후우.”

잠시 후,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증유의 힘이 알알이 느껴졌다. 호흡을 통해 마나를 들이마셔, 몸 안으로 들여보내니 마나가 몸 안에 깔린 회로를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배로, 배에서 다리로, 발끝에 한 바퀴 돌아 등으로.

중간중간 내상을 입어 가닥가닥 끊어진 회로들을, 들이마신 마나를 틈새에 채워 넣어 보강했다.

등을 타고 이동하던 마나가 어느 순간 갑자기 막혔다. 원래 마나 회로가 끝난 것이면 막히지 않고 다시 목을 통해 호흡으로 빠져나가야 정상이다. 빠져나오지 않고 막혀서 역류하고 있다는 것은 마나 회로가 이어져 있긴 한데, 계속 방치하여 회로 자체가 굳어 버렸음을 의미했다.

‘왜지? 더 이어져 있는데 이전 몸 주인은 왜 여기까지만 뚫어 놓은 거지?’

아무래도 마나를 처음 익힐 때 누군가가 몸을 건드려서 크게 화를 입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머지 마나 회로가 전부 굳어 버린 것일 테고 말이다. 예전 몸 주인은 단련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고 하니, 활성화시킨 부분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서 마나 회로가 더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듯하다.

제아무리 명검이라도 오랫동안 방치하면 녹슬기 마련이다. 녹슨 검을 두고 누가 명검이라는 것을 알아보겠는가. 한 번 녹슬면 검의 주인조차 명검인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같은 맥락에서 마나 회로가 길다 하더라도 평소에 거의 쓰지 않았다면 마나 회로의 한계를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왜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는 것도 실제로 기둥 너머로 걸어가는 수고를 들여야 알 수 있는 것이잖은가.

본래 몸의 주인이 뚫어 둔 길이만 따지면 마나유저 중급에 해당한다.

루크는 혹시 몰라 억지로 굳은 마나 회로에 계속 마나를 보내어 활성화 작업을 해 보았다.

“크윽!”

막힌 길을 억지로 뚫으려니 바늘이 몸 안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 번져 나왔다. 조금씩, 조금씩 뚫리고 있긴 한데 그때마다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혼자서 돌을 하나씩 옮겨 도로를 닦듯,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겨우 굳어 있는 마나 회로를 다 뚫어 냈다.

분명 작업을 시작할 때는 저녁이었는데, 눈을 뜨니 해가 뜨고 있었다.

장장 12시간 넘도록 통증과 싸웠던 것이다.

루크는 자리끼로 가져다 놓은 물 주전자를 입에 대고 목을 축였다. 그 후 갈무리하듯 다시 마나를 흡입하여 마나 회로의 총 길이를 합산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몸 전체에 마나 회로가 깔려 있다고?’

보통 마나 회로가 몸 전체의 3분의 2에만 깔려 있어도 마나마스터의 재능이 있다고들 한다. 한데 이 몸은 몸 전체에 마나 회로가 복잡하게 깔려 있었다.

즉, 이 몸으로 단련했을 시 최대 기대치는 마나마스터 이상이라는 것이다.

이전의 몸 주인이 처음에 마나 회로를 뚫을 때 사고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관리를 아주 조금이라도 했다면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을 터.

이전의 몸 주인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다만 하나쯤은 감사해야겠다. 역대급이라 해도 좋을 재능을 고스란히 남긴 채로 떠나 준 것을 말이다.

세를 키우기 좋은 환경과 역대급 재능.

이 두 가지를 손에 넣은 순간 루크는 확신했다.

“하늘이 내게 녀석들을 베라고 모든 걸 다 주었군.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실패할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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