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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3화 (3/200)

# 3

3화 수준 차이

몸 전체에 마나 회로가 깔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루크는 그날부터 마나 수련에 매진했다. 마나 수련은 기본적으로 꾸준히 마나 호흡을 하는 수밖에 없다. 마나 회로란 것은 마나가 많이 닿을수록 두꺼워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나 회로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마나의 양과 마나의 출력이 높아진다.

루크는 낮에는 영주의 업무를, 밤에는 마나 수련을 하며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기존에 이미 몸이 한번 마나유저 중급 수준까지 이르렀기도 하고, 카인일 적에 마나유저 상급까지 단련하면서 노하우를 갖추고 있었기에 마나유저 상급까지는 손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루크로서 살기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루크는 영지의 군사력을 확인하기 위해 당장 가능한 병력의 숫자를 확인했다.

“드골, 우리 영지는 징병제였나 보지?”

루크의 명에 따라 소집 명부를 가져다준 드골이 고개를 조아렸다.

“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들은 분기별로 일주일 동안 훈련장에서 먹고 지내며, 훈련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분기별로 일주일이면 1년 동안 4주 훈련을 받는 셈이군.”

“네, 현재 징병 가능한 대상이 700명이고, 그 외의 영주 직속 상비군이 50명 있습니다.”

“기사의 숫자는?”

“제랄드 경이라고 하여 1명 있습니다. 남작님께서 오크와의 전투 때 중상을 입으셨을 때도 제랄드 경이 목숨 걸고 남작님을 구출했었지요.”

“그랬었군. 그리고 영지 서부의 오크들은 얼마나 있지?”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으로는 3만에 달합니다. 그래도 대부분은 부족끼리 싸움을 하느라 바쁘고, 영지민들을 약탈하러 오는 녀석들은 큰 바위 부족과 검은 노을 부족뿐이지요.”

영지 서부에 서식하는 오크 부족의 숫자는 대략 10개. 그중에서 두 부족의 영역이 영지민의 마을과 인접해 있어서, 항상 약탈을 자행한다고 한다. 두 부족에 속한 오크의 숫자는 각각 3천 마리. 그중에서도 오크 전사의 수는 각각 500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오크들은 인간보다 신체적인 조건이 뛰어나다고 들었다만. 오크 전사 500마리를 평범한 인간 병사에 비교하면 몇 명급 전력이지?”

“오크 전사 혼자 평범한 병사 셋을 대적할 수 있으니 실제론 1,500명급의 전력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영지가 정복당하지 않은 게 용할 정도군.”

“녀석들은 마을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매년 식량을 생산해 주는데, 일부러 자기네들 밥줄을 끊을 이유가 없지요.”

“내 영지가 식량 창고로 취급 받는 건 그리 달갑진 않군. 제랄드와 상비군을 저택으로 부르도록. 영지 상비군의 전력을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치품 처리는 어떻게 됐지?”

“중개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모두 고액으로 낙찰 받았다고 합니다. 수수료를 제외해도 25억 루소는 된다고 하더군요.”

“영지 1년 운영비가 20억 루소이니 1년은 버티겠군. 그 안에 오크랑 식량 문제는 모두 해결해야겠어.”

“묘안이라도 있으신지?”

드골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루크를 보았다. 드골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언제 망나니 시절로 되돌아갈지 몰라 눈치를 봤다. 그때와 루크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그만큼 지난 한 달간 루크가 보여 준 수완은 남달랐다. 고작 한 달 만에 기존의 부조리 가득한 영지의 법안을 모두 손보고,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여 아랫사람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가하는 데다, 영지민들이 문제를 가지고 올 때마다 명쾌하게 해결해 버리니, 이젠 더 이상 예전의 망나니처럼 보려야 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라면 열과 성을 다할 가치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묘수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과 달리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호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부터 생각해야지.”

막무가내 같은데도 이상하게도 믿음이 간다.

예전의 기대치가 너무 낮아서 그런가?

적어도 지금은 루크가 무슨 판단을 내린다 한들 믿음부터 갔다.

* * *

한 달간 병석에 누워 있던 제랄드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영주의 저택으로부터 호출 명령을 받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저택에 가고 싶지 않았다. 큰 바위 부족을 토벌하기 위한 원정을 떠나기 전에 그토록 결사반대했던 제랄드다.

‘지금 병력으론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하다못해 장비라도 새 걸로 갖추고 떠나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장비는 너무 낡았습니다!’

제랄드가 그리 미친 듯이 결사반대했건만, 루크는 억지로 원정을 강행했다. 그리고 병사는 병사대로 잃고, 루크 본인도 죽을 뻔했다. 제랄드가 신들린 투지를 내비치며 오크들의 포위망의 뚫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제랄드고, 루크고 모두 오크 평야에서 백골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겠나. 선대 남작 때부터 충성을 바쳤으니 기사 된 도리를 다해야지. 선대 남작 때는 그나마 사람다운 면은 있었는데, 루크 남작은 그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송이나 다름없다.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키워져서 성격이 급하고,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철부지다. 본인만 자신이 철부인 걸 모를 뿐.

이전의 원정도 영지민을 위해 큰 바위 부족을 토벌하러 나선 것이 아니라, 어딘가의 귀족 파티에 갔다가 ‘영주가 돼서 오크 하나 토벌 못 해?’란 소리를 들어서 홧김에 원정대를 꾸린 것이었다.

선대 남작이 돌아가실 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남작 가를 지키겠노라고 맹세하긴 했다만, 요즘 들어 명예고 나발이고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이 일긴 한다.

제랄드는 병사들을 소집하여 막사에서 저택으로 이동했다. 영주의 소집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병사들도 마찬가지인지 슬그머니 걱정을 내비쳤다.

“이번에 무슨 일로 소집하는 걸까요? 좀 걱정됩니다만.”

“모르지. 몸이 회복됐으니까 슬슬 저번 패전의 책임을 남한테 돌리려는 걸지도.”

“근데 듣기로는 남작님이 병석에서 일어난 뒤부터 사람이 많이 바뀌셨다 합니다. 갑자기 세금을 낮추고, 사치품들 다 팔아 치우셨다는데요?”

“바뀌어 봤자 사람 본질이 어디 가겠어? 10년 동안 참고 또 참았지만, 나도 슬슬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갈까 싶어.”

“에휴, 저희라고 그 생각 안 했겠습니까. 만약에 패전 책임을 물으려고 소집한 거면 저도 그냥 사표 쓰고 나가렵니다.”

이전 원정에서 큰 바위 부족에게 대패한 것도 사실상 루크가 제랄드의 조언을 무시하고 멋대로 튀어나간 탓이 컸다. 루크의 막무가내에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루크가 바뀌었다느니, 영지민을 위한 정책을 편다느니, 하는 소문 정도로 꿈쩍도 않은 만큼, 루크에 대한 제랄드의 불신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다.

* * *

“이전의 원정에선 자네가 날 살렸다지? 고맙다고 말하는 게 늦었군. 부상당하기 전의 일은 전혀 기억이 안 나서 말이지.”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루크로부터 감사 인사를 전해들은 탓에 제랄드와 병사들은 곧바로 벙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지?

감사를 느끼는 감각이 결여되어 있는 똥고집 망나니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제랄드와 병사들이 아는 선에선 말이다.

제랄드는 눈을 끔뻑거리며 루크의 뒤에 서 있는 드골을 쳐다보았다.

‘이거 정말 남작님 맞습니까?’

이미 같은 과정을 겪어 본 드골은 대번에 제랄드의 심정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지만, 현실이라네. 정 못 믿겠다면 내 나중에 자네의 뺨을 꼬집어 주겠네.’

짧은 눈 맞춤으로 현실임을 알게 된 제랄드가 이전의 드골과 하녀들처럼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닙니다. 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지난 일에 대한 포상은 나중에 논하도록 하지. 이번에 소집한 건 상비군의 수준을 확인하기 위함이야. 병사들의 수준은 어떠하지? 이왕이면 알기 쉽게 오크들을 상대할 때를 기준으로 말해 줬으면 좋겠군.”

“상비군 소속 병사라면 둘이서 일반 오크 전사 한 마리는 대적할 수 있습니다.”

“징병된 병사들보단 수준이 높다는 거군.”

“아무래도 매일 훈련하는 자와 분기별로 일주일만 훈련하는 자는 다르니까요.”

“경의 수준은?”

“저야 마나유저 중급이니, 열 마리가 덤벼 와도 혼자서 끄떡없지요.”

“말로만 해선 잘 모르니 실제로 대련해 보도록 하지.”

대련이란 말에 제랄드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누가 누구랑 대련?

루크의 경지가 마나유저 중급인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단순히 마나를 검에 두를 줄 아는 것과 마나를 두른 검을 제대로 활용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아무리 마나를 쓸 줄 안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검술을 갈고닦은 자와 검술을 등한시한 자의 차이는 크다. 루크가 마나를 믿고 검술을 등한시한 것을 아는 제랄드로서 대련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하아, 이거 미치겠군. 아무리 기억이 없다지만, 남작인데 마구 두들겨 팰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 실력을 알고 싶다는데 접대용 대련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쩐다.’

적당히 격차를 보여 주고 끝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제랄드는 난처하지 않을 정도로만 때리겠노라고 다짐하며 대련을 받아들였다.

“대련은 어디까지나 대련으로 끝내 주십시오. 뒤끝이 남으면 저도 실력을 선보이기 어렵습니다.”

“얼마든지. 대신 내 쪽에서 한 가지 충고하지. 죽을 각오로 덤비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으니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제랄드는 코웃음을 치고 싶은 걸 참느라 애썼다.

그러나 현실은…….

* * *

“허억허억, 하, 항복입니다. 이쯤에서 그만두시지요.”

제랄드 본인은 물론이고 대련을 지켜보던 병사들마저 입을 떠억 벌렸다.

압도적! 악마적!

그야말로 봐주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제랄드가 두들겨 맞았다. 심지어 루크는 마나유저 상급의 힘을 발한 것이 아닌, 제랄드에 맞춰 마나유저 중급의 마나 오라만 검에 둘렀는데도 말이다.

한 방이라도 맞췄으면… 아니, 한 방이라도 스쳤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마저도 못했으니 문제지.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성격의 변화가 찾아온 것까진 납득한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엄청나게 강해지는 건 이상지 않은가!

마치 검술의 기본을 완벽하게 익힌 자처럼 완벽한 자세를 선보이며 제랄드를 압도하는 루크였다.

루크는 찐빵처럼 얼굴이 부풀어 오른 채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제랄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연계 동작에 허점이 많군. 기본기 단련에 소홀했다는 증거지.”

“부끄럽지만, 남작님과 겨뤄 보니 부족함을 알겠군요. 언제 이렇게 실력을 키우셨습니까?”

“부상을 털고 한 달쯤 열심히 하니 금방 이 수준은 되더군.”

“그, 금방 될 경지가 아니신데…….”

“자신의 부족함을 남의 뛰어남으로 변명하려는 건가?”

“아, 아닙니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병사들에게 무기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건 네 업무일 텐데? 가르치는 자의 솜씨가 영 미덥지 않군. 저택을 정리하면서 여윳돈이 생겼지. 군 장비를 보강하는 데 쓰려던 돈인데, 장교의 질과 숫자를 늘리는 데 써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토록 장비를 바꿔야 한다고 부르짖었었다. 한데 막상 영주에게 장비를 바꿀 의향이 생기자마자 자신 때문에 못 바꾸게 생겼다.

제랄드는 분하기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리 남작님이 드디어 존경할 만한 품성을 지니게 되셨구나! 게다가 병석에서 털고 일어나자마자 정신을 차리고 단련했더니 이렇게까지 강하다고? 원래 재능은 있으셨는데, 거기에 노력까지 더해지니 드디어 묻혀 있던 원석이 빛을 발하는구나!

계기 따윈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드디어 충성을 바칠 보람이 있는 주군을 모시게 되었다는 거다.

그런데 자신의 실력부족으로 군대의 장비를 교체할 자금이 다른 기사 섭외에 투자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제랄드는 냉큼 한쪽 무릎을 꿇으며 필사의 각오를 내비쳤다.

“남작님께서 일부러 헛돈을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더 발전할 테니 믿고 봐 주십시오! 부디 병사들에게 좋은 장비! 좋은 식사를 하는 데 예산을 할당해 주십시오!”

제 몸을 깎아 영지의 미래를 바라는 제랄드의 모습에 루크 또한 충만함을 느꼈다.

처음 루크가 되었을 때, 이전의 몸 주인이 그토록 망나니였다는 것을 알고 생각한 것이 있다. 망나니임에도 끝까지 따르던 이들은 정말 제대로 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이득을 바라는 자가 아니라 신념으로 남아 있는 자들이 필요했다.

거기에 드골과 제랄드는 두말할 것도 없는 인재였다.

이제야 보인다.

이득으로 꼬이는 자들과 자신만의 신념으로 따르는 이들의 차이가.

루크는 국왕 시절에 받아보지 못한 부하의 충성을 만끽하며 명령을 내렸다.

“조만간 큰 바위 부족부터 치겠어. 그때까지 병력의 질을 끌어올려 놓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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