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5화 마나 영약(2)
영약은 어지간해서 구하기 힘들다.
영약 자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품목이기도 하고, 보통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국왕 시절에도 가끔씩 영약이 헌상되긴 했다. 그마저도 5년 이하의 마나를 품은 영약이 대다수였다. 한데 영지민이 격려 차원에서 보내 준 선물에 10년짜리 영약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창공 버섯을 챙겨 준 영지민은 창공 버섯인 줄도 모르고 그냥 넣었을 것이다. 드래프트 영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타 영지와의 교류가 거의 전무했다. 당연히 약초꾼들의 지식도 다른 곳에 비해 뒤떨어질 수밖에 없고, 영지민들 중에서도 창공 버섯에 대해 아는 자가 없으니, 그저 보양식 정도로만 여기고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험난한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이라면 영약이 더 있을지도 모를 터.
창공 버섯이 하나만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 버섯을 캐낸 약초꾼을 불러다가 진위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튿날, 드골이 창공 버섯을 캐 온 약초꾼을 데리고 돌아왔다.
“명령하신 대로 푸른 버섯을 따 온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약초꾼은 천생 산에서만 살아온 사람처럼 순박한 인상을 지닌 청년이었다. 산에만 틀어박혀 살았는지 루크를 앞두고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엉거주춤 절을 올렸다.
“미, 미천한 아무개를 찾으신다 하시길래 부름에 달려왔습니다. 혹시 제가 보낸 물건에 문제가 있어 부르신 것이라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런 게 아니니 일어나도록.”
“아, 아닙니다, 저 같은 바보가 어찌 귀하신 분을 똑바로 쳐다보겠습니까. 저 같은 건 바닥만 보고 있어도 됩니다.”
억척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청년의 태도에 드골이 루크에게 넌지시 귀띔을 해 주었다.
“이름은 테드라고 하고, 마을에서도 약간 모자란 사람인 걸로 유명하다더군요. 평소에는 산에서 나무와 약초를 캐다가 팔며 홀어미를 부양하고 있다 합니다.”
사정을 듣고 나니 테드가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이해가 갔다. 아마 떠나기 전에 어머니로부터 높으신 분께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부모라 하니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가 떠오른다. 왕이 될 자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 안 된다며 앞에서는 엄한 왕의 모습을, 뒤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셨던 아바마마. 나날이 왕의 자태를 갖춰 가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언제 어느 때나 온화한 미소를 지어 주셨던 어마마마.
떳떳하게 자식 된 도리도 한번 해 드리지 못했건만, 두 분 모두 병으로 세상을 뜨셨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 효도를 다하고 있는 이를 보고 있자면 대견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누군가는 이제 하고 싶어도 못하기 때문에.
루크는 자세를 낮추며 테드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괜찮으니 일어나도록.”
“어이쿠! 귀한 손 더러워지십니다. 이런 지저분한 손을 잡으시면…….”
“매일매일 어머니를 생각하며 약초를 캐던 손이 지저분할 리가 없지. 이 손이야말로 이 영지에서 가장 귀한 손이라고 생각한다만.”
“끄윽!”
“다 큰 사내가 울면 쓰나.”
“하, 하지만… 귀한 분께서 이 미천한 아무개를 높이 사 주실 줄은 몰라서… 크흥!”
덩치에 걸맞지 않은 순수함에, 보는 이의 마음이 짠해질 지경이었다. 테드는 세간의 풍파와 떨어진 산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욕심 없이 자라 온 사람이 얼마나 순수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산증인이나 다름없었다.
루크는 테드가 진정하길 기다렸다가 챙겨 두었던 창공 버섯을 꺼내 들었다.
“널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이 버섯을 어디서 캤는지 묻고 싶어서 말이야.”
“크흥! 그거라면 늘 가는 산골짜기에 널려 있습니다.”
“널려 있다? 몇 개나?”
“그, 그게 제가 셈이 약해서 몇 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감기 걸렸을 때 달여서 먹으면 금방 나으니까, 감기에 걸렸을 때 꼭 챙겨 드십시오. 저희 어머니께서 감기에 걸리시면 늘 캐옵니다. 저는 바보라서 그런지 감기에 걸리지 않지만요. 헤헤헤.”
일반인이 영약을 먹으면 마나가 몸 안의 불순물을 걸러 내어 배출시켜 주니, 감기 같은 별것 아닌 병에는 즉효이긴 하다.
그나저나 영약을 감기약으로 먹고 있었다니.
돌돔을 매운탕으로 끓여 먹은 격이다.
현재 루크의 경지는 마나유저 상급이고, 여기에 대량의 영약을 섭취하면 그 이상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루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테드에게 안내역을 맡겼다.
“그 버섯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수 있겠어?”
“남작님이 직접 가시렵니까? 그러지 말고 여기 계시면 제가 냉큼 캐다가 바치겠습니다.”
“아니,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야. 이왕이면 바로 안내해 줬으면 좋겠다만.”
“아무렴요. 제가 바보 소리 듣긴 해도 산길은 안 까먹습니다. 제일 빠른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 * *
루크는 호위병을 대동하라는 드골의 말을 가볍게 흘려 넘기며, 테드와 둘이서 창공 버섯의 군생지로 떠났다.
창공 버섯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은 생각 이상으로 험난했다.
영약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더니, 직접 이동해 보니까 허언이 아님을 실감했다.
‘이게 정말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는 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길은 끊길 만하면 이어지고, 끊길 만하면 이어지길 반복했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 나 있는 좁은 절벽 길을 지나, 급류 위에 걸쳐져 있는 신발 한 짝 정도 폭의 가느다란 나무 위를 건너, 횃불을 들고 미로처럼 펼쳐진 동굴을 통과하고 나서야 목적지에 이르렀다.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축축한 습지에 버섯 군생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개중에 창공 버섯이 여럿 섞여 있었다.
눈대중으로 세어도 그 숫자가 10개에 달했다.
10개!
창공 버섯 10개면 어지간한 저택을 한두 채쯤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영지의 예산으로 따지면 1년 치 예산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루크는 과감하게 모두 섭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1년 치 예산이 있으니 돈에 욕심을 낼 단계는 아니다. 돈 같은 건 다른 루트로도 얼마든지 벌 수 있다. 하지만 영약은 돈 주고 사려고 해도 못 구하는 귀중품이다.
전신에 마나 회로가 깔린 역대급 재능에 마나의 양을 단번에 늘릴 수 있는 재료가 주변에 그득하지 않은가. 단번에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어찌 놓칠쏘냐.
루크는 직접 창공 버섯 10개를 모두 채집하였다. 그러고는 돌아갈 때도 테드의 안내를 따라 한껏 복잡한 길을 굽이굽이 건너 저택으로 복귀했다.
* * *
“10개면 100년 치. 내 수준으로 따지면 실제론 10~20년 치 마나가 들어온다고 봐야겠군.”
사람마다 한 호흡에 흡수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은 제각각이다.
보통 마나 회로가 길수록 한 호흡에 많은 양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다.
창공 버섯 1개당 10년의 마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나유저 초급이 평범하게 마나를 모았을 때 10년이 걸리는 양’을 의미한다.
마나유저 초급보다 마나 회로의 길이가 10배 이상 긴 루크는 한 호흡에 10배 이상의 마나를 모을 수 있다. 즉, ‘창공 버섯 10개 분량의 마나=마나유저 초급이 100년 동안 수련해야 모을 수 있는 양=루크가 10년 동안 수련해야 모을 수 있는 양’이라고 보면 된다.
연수로 따지자면 그렇다는 거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인 것만은 변함이 없다.
저택에 돌아온 루크는 침실에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리고서,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럼 하나씩 차근차근 섭취해 볼까?”
대량의 마나를 갑자기 마나 회로에 저장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작업을 요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마나가 폭주하여 마나 회로가 소멸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루크는 첫 번째 창공 버섯을 한입에 집어넣고서 차근차근 씹어 삼켰다.
꿀꺽!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는가 싶더니 별안간 몸의 안쪽에서 청량한 기운이 마구 솟아났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나를 갈무리하여 마나 회로에 합류시켜야 한다. 국왕 시절에 경지를 끌어올리려고 영약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마나를 갈무리하는 데 애를 먹어 약간의 내상을 입은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창공 버섯에서 발생한 마나를 서서히 길들였다.
한데 생각보다 마나를 흡수하는 과정이 굉장히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대량의 비가 쏟아져도 배수구가 넓고 길면 물이 역류하지 않고 잘 흘러가는 것처럼, 마나 회로가 워낙에 길다 보니 대량의 마나를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괜히 마나는 재능이 9할, 노력 1할이라고 하는 게 아니군.’
마나 회로가 길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은 굉장히 집중해서 해야 할 작업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그 1할의 노력조차 하지 않아서 역대급 재능을 시궁창에 버린 인물도 있지만 말이다.
1개를 먹으니 마나가 대폭 증가한 것이 느껴졌고, 5개쯤 먹으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온몸에 마나가 가득 찼으며, 이윽고 10개를 먹으니 마나 회로에 저장된 마나가 저희들끼리 밀어내며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순환을 이루었다.
무의식중에도 마나가 순환하는 단계에 이르자 마나 회로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저 마나가 흐르는 길에 불과했던 마나 회로가 마치 실제 혈관처럼 약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 회로가 스스로 마나 호흡을 시작하면서 몸 안의 마나가 혈액처럼 농밀한 밀도를 띠었다.
기체인 수증기가 밀도가 높아져서 액체인 물방울로 바뀌는 것처럼, 기존의 마나와 본질은 같으나 특징이 다른 형태가 되었다.
지금이라면 남다른 위력을 발할 수 있을 것 같다.
마나를 갈무리한 루크는 눈을 뜨고 벽에 걸어 둔 검을 쥐었다. 검을 뽑자 검날이 검집 안을 긁으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었다.
스릉!
검을 뽑고 마나를 부여하니 이전과 다른 형태의 마나 오라가 맺혔다.
이전에는 검날의 테두리를 따라 푸른빛이 맺히는 것에 그쳤다면, 지금은 마나 오라에서 실오라기 같은 오라가 일렁였다.
가닥 하나하나가 명검의 예리함에 맞먹는다는 마나마스터만의 고유 기술, 마나블레이드가 생성된 것이다. 이는 곧 루크가 마나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음을 의미했다.
루크는 뇌쇄적인 곡선을 그리며 나풀거리는 마나블레이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렇게 쉽게 마나마스터가 될 수 있을 줄이야.”
쉽다고 말하긴 좀 그렇다.
왕이 되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하고, 그 기반이 될 영지를 키워야 한다. 영지를 키우기 위해선 세금을 낼 영지민이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두 달간 4시간만 자며 노력했기에 영지민이 스스로 선물을 가져다 바칠 마음이 들게 된 것이고, 그 덕에 창공 버섯에 이르게 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나니.
스스로 쉽게 이루었다고 생각해 버리면 자기가 자신의 노력을 부정하는 꼴이다.
노력이 쌓이고 쌓여 지금에 이르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나마스터에서 만족할 순 없다. 이 육체가 지닌 재능은 마나마스터 너머의 경지까지 뻗어 있다.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쉽게 이루었다는 무른 생각 따위는 독이나 다름없다. 자만이란 이름의 독 말이다.
마나를 거두며 검을 검집에 도로 꽂고 쉬려던 찰나, 복도에서 뜀박질 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두드리는 강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쾅쾅쾅쾅!
“남작님! 남작님! 큰일입니다! 남서쪽으로부터 봉화가 피어올랐습니다!”
드래프트 영지에는 각 마을의 높은 지대마다 봉화가 설치되어 있다. 오크가 평야를 넘어오는 것을 발견한 즉시 영주의 저택에 이를 알리기 위한 장치였다.
그 봉화가 피어올랐다는 것은 곧 오크가 침입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루크는 들고 있던 검집을 그대로 허리춤에 걸치며 문을 벌컥 열었다.
“제랄드와 상비군을 소집해라. 곧바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