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6화 (6/200)

# 6

6화 작은 아이의 용기가 가슴에 불을 지핀다(1)

봉화가 피어오르자마자 루크는 장비를 챙겨 말에 올랐다. 밤중에 급하게 말을 몰고 먼저 저택에 도착한 제랄드가 루크를 발견하고, 신속하게 상황 보고를 올렸다.

“지금으로부터 15분 전에 남서쪽에서 봉화가 올라왔습니다! 데이먼 마을의 자경대 초소에서 피워 올린 모양입니다!”

“자경대 초소에서 데이먼 마을까지의 거리, 그리고 우리가 데이먼 마을까지 가는 데 걸리는 거리는?”

“오크들이라면 20분 안에 도착할 테고, 저희는 30분이 걸립니다!”

“늦어. 말을 탈 줄 아는 자들만 모아서 선발대로 이동한다 치면 얼마나 걸리지?”

“기마대만 먼저 출발한다면 1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마대 숫자는 겨우 10명입니다!”

“나까지 포함하면 11명이겠군.”

“너무 위험합니다! 기마대는 제가 이끌 테니, 남작님은 보병을 이끌고 와 주십시오!”

“제랄드, 예전의 내가 아니란 것을 알 텐데?”

말리려던 제랄드가 입을 다물었다. 예전의 루크라면 무리였겠지만 지금의 루크는 다르다. 제랄드마저도 압도하던 실력을 떠올리면, 감히 안전을 도모하란 말 따위는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조차 아까운 촉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제랄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루크를 필두로 기마대만 먼저 출발하여, 전속력으로 데이먼 마을로 향했다.

* * *

말을 모는 루크의 솜씨는 국왕 시절 때도 내로라하는 기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거친 길이라 할지라도 루크가 탄 말의 속도가 느려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매일같이 훈련을 하는 제랄드와 기마대가 루크를 따라잡지 못해 조금씩 뒤처졌다. 제랄드와 병사들은 루크의 승마 실력에 감탄할 틈도 없었다. 루크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루크가 페이스메이커를 맡으면서, 제랄드가 언급한 도착 시간보다 훨씬 앞당겨 데이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통상 속도라면 15분 안에 도착할 것을 10분 안에 도착했을 정도면 말 다 했다.

그래서 적어도 오크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도착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한 루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염에 뒤덮인 데이먼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대다수가 죽었다. 시체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모든 집의 곳간은 털어 갔다는 것을 증명하듯 문짝이 부서져 있었다.

탄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오크라고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곧 놈들이 이미 습격을 끝내고 떠났음을 의미했다.

루크가 제랄드를 쳐다보았다. 그를 쳐다보는 눈동자에 사방의 화염이 담겨 일렁였다. 마치 그의 감정을 대변하듯.

제랄드도 이와 같은 상황은 처음인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 이럴 리가 없습니다. 자경대 초소에서 봉화를 피우자마자 확인했는데 어째서……. 설마?”

무언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제랄드가 대열을 이탈하여, 화염에 휩싸인 마을을 가로질러 마을의 바깥으로 말을 몰았다.

그사이 마을 하나가 몰살당한 것을 애도하듯 저녁 내내 하늘에 머무르던 먹구름이 비를 쏟아 냈다.

쏴아아아!

차가운 가을비가 마을에 쏟아져 내리며 타오르던 화염을 꺼뜨렸다. 잿더미가 된 기둥이 뒤늦게 꺾이고, 그을린 벽이 힘이 다한 양 무너져 내렸다.

불길이 모두 잦아들 때 즈음, 마을 바깥으로 나갔던 제랄드가 돌아왔다. 그는 대열에 합류하자마자 말에서 내리며 분함을 머금은 듯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초소의 자경대가 봉화를 피운 게 아니라 오크 놈들이 피운 것 같습니다. 약탈을 끝내고 나서 일부러 봉화에 불을 지르고 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확실한가?”

“그게…….”

“네가 보고 온 것을 그대로 말하도록.”

“놈들이 초소 외벽에 자경단의 피로… 크윽, ‘일개미는 식량 창고만 채우면 된다’라는 말을…….”

‘오크가 인간의 언어를 알고 있나……?’ 같은 촌스러운 질문 따윈 날리지 않았다. 알고 있으니 그따위 말을 적어 둔 것이겠지.

일개미는 식량 창고만 채우면 된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오크 토벌 같은 주제 넘는 짓은 꿈도 꾸지 말고, 언제든 앗아 갈 수 있게 식량이나 채워 두란 뜻이다.

일련의 단서를 통해 루크는 어찌 된 상황인지 대번에 파악했다.

“초소는 기습당해 예전에 기능을 잃었고, 놈들은 마을을 약탈한 뒤에 일부러 봉화를 피웠다는 거군. 뒤늦게 도착할 우리의 반응을 상상하면서 말이지.”

“놈들은 식량은 약탈할지언정 마을을 몰살시키진 않았었습니다. 아무래도 두 달 전 원정에 대한 보복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래 보이는군, 제랄드.”

“네, 남작님.”

“지금 기분이 어떻지?”

“이렇게까지 분한 적이 없습니다.”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그 희망 자체가 오크들의 농락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시신의 얼굴에 남아 있는 눈물 자국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 건물의 폐허가, 코끝에 남은 역한 탄내가 분노로 치환되며 가슴 언저리에 장작처럼 차곡차곡 쌓였다.

분에 찬 제랄드의 대답에 루크가 검자루를 꽉 쥐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 루크는 말 머리를 돌렸다. 그러고는 일동 일렬로 늘어서 있는 기마대를 한 명씩 훑으며 말했다.

“지금 오고 있는 보병들과 함께 그대로 큰 바위 부족 토벌에 나선다. 놈들에게 내일 아침 해를 맞이하는 걸 허락하지 마라.”

“남작님, 그 말씀은 저번의…….”

저번 원정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꺼내려던 제랄드였다. 그때도 호기를 부기며 영지민들에게 소집령을 내리지 않고 상비군만 데리고 갔었다. 그래서 100명에 달하던 상비군이 50명까지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제랄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쯤 불탄 집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때문에 제랄드가 말을 끊고 걸어 나온 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제랄드뿐만 아니라 모두가 폐허 속에서 걸어 나온 이를 주목했다.

걸어 나온 이는 이제 막 열 살쯤 된 어린아이였다.

오크들의 습격을 받는 가운데, 부모가 아이를 헛간에 숨겨 두었었는지 아이는 홀로 살아남아 이제야 걸어 나온 것이었다.

아이의 손에는 제 몸집보다 큰 괭이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양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로 루크에게 다가왔다. 이어서 아이의 입에서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또박또박 말하는 것에서 아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불길 속에서 벌어진 나무 벽의 틈으로 모든 것을 목격한 것이겠지. 자신의 부모님, 이웃, 가족이 죽는 모습들을 말이다.

루크는 말에서 내려 아이를 끌어안아 주며 그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고맙구나. 너의 그 한마디가 전장에서 우릴 다시 일으켜 줄 거다.”

루크가 그 말을 했을 때, 이미 보병까지 도착하여 모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크들이 마을을 태우고, 영지민들을 도륙했을지라도 마을이 품고 있던 가장 큰 미래는 꺾지 못했다.

루크는 기마병 한 명을 지목하여 아이를 인근 마을까지 데려다주고 오라고 시켰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마쳤을 때, 제랄드를 비롯하여 모든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아이의 한마디가 가슴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울분이란 이름의 장작에 불을 지핀 것이다.

모두의 눈빛이 달라진 후에 루크는 재차 물어보았다.

“누가 나와 함께 오늘을 큰 바위 부족의 마지막 밤으로 만들 것이냐?”

저번과 다르다. 저번 원정이 철부지 남작의 오기에서 시작된 장난질이었다면, 이번에는 진짜 전쟁이다.

제랄드는 투구 안에서 흐르는 한 줄기의 물방울을 손등으로 훑으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이어서 병사 전원이 일제히 창대로 바닥을 찍으며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함성이 하늘까지 닿은 듯 소나기가 그치고 구름이 갈라진다.

갈라진 구름 아래로 루크를 필두로 한 토벌대가 오크 평야로 향했다.

* * *

약탈을 마치고 부락으로 돌아온 렉서스는 식량과 술을 풀어 승전을 자축했다.

“하하하하! 그러게 내가 뭐랬나? 점술 같은 건 전부 미신이라 했지 않나.”

일부러 천막 바깥의 아르투먼보고 들으라는 양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렉서스였다.

각별한 주의?

그럴 것도 없이 한껏 인간들을 농락해 주고 온 참이다. 놈들의 방어 체계 같은 건 애초에 파악한 지 오래다. 봉화의 위치나 봉화를 지피는 자들이 대기하는 곳 따위를 훤히 꿰뚫고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초소를 박살내고, 약탈 후에 가짜 봉화를 피워 올리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렉서스의 추종자들도 분위기에 한껏 취하여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입에 술을 퍼부었다.

“살려 달라고 비는 꼴이 가관이던데요? 다음에도 똑같이 전멸시키죠, 족장.”

“새순을 모두 뜯어 버리면 다음에 열매가 안 맺히잖아. 놀이는 가끔씩만 하니까 재밌는 거지. 안 그래?”

“하하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렉서스 족장님을 위하여!”

“위하여!”

술을 마시는 내내 누구는 인간을 어떻게 죽였는지 떠들고, 누구는 죽어 가는 인간이 얼마나 꼴사나운지를 과장되게 표현했으며, 누구는 아예 인간이라 부르지 않고 일개미들이라 부르며 비하를 일삼았다.

마을 사람들을 죽인 경험담을 안주 삼아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오크 특유의 걸걸한 비명이 흥을 깨뜨렸다.

“끄어어억!”

렉서스의 천막에 모인 이들은 이때만 하더라도 누군가가 너무 과음을 하여 속이라도 게우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첫 비명이 들린 직후 비명은 다발이 되어 천막으로 날아들었다.

“크허억!”

“끄억!”

“크어어억!”

이 많은 오크가 속을 게우고 있을 리 없다. 바깥에 이변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깥에서 오크 전사 한 명이 부리나케 달려와 상황을 알렸다.

“조, 족장님! 인간들의 야습입니다! 얼른 대응해야 합니다!”

“꺼억! 쳇, 기껏 경고해 주었거늘 기어코 제 명을 재촉하는구나.”

“심지어 저번에 왔던 그놈이 또 군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약하면서 입만 험한 인간쓰레기 말이냐? 학습 능력이 없는 놈이군. 이번에야말로 놈의 목 떨어뜨려 주마.”

렉서스는 두 달 전의 전투를 떠올리며 창을 들고, 천막 바깥으로 나갔다. 자기가 나설 것도 없이 부하들 선에서도 정리되겠지만, 학습 능력이 없는 어리석음을 직접 일깨워 주고자 이번에는 손수 인간들의 우두머리를 찌를 작정이었다.

한데 렉서스는 호기를 부리며 천막 바깥으로 나온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과 조우했다.

부락 전체에 토막 난 시체들이 가득한 게 아닌가!

더군다나 널브러진 시체는 모두 오크들의 시체였다.

인간들의 숫자는 저번보다 월등히 적었는데 싸움에 임하는 기백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오크에겐!”

“죽음을!”

평범한 병사들마저 상처를 입어도, 오크들에게 둘러싸여도 누구 하나 물러나지 않고 같이 죽을 작정으로 덤벼 오고 있다. 기세가 어찌나 드센지, 격전지에서 떨어진 장소에서도 피부에 쩌릿함이 타고 흐를 지경이다.

인간들 모두가 오늘만 살고 죽을 것처럼 제 몸을 던져 가며 싸우고 있었다. 약탈 직후라 술을 마시고 늘어져 있던 오크들에게 사생결단의 마음가짐으로 무장한 인간들의 공격을 버틸 기력이 있을 리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눈에 띄는 자가 있었으니.

사내는 실오라기 같은 오라를 내뿜는 검을 휘두르며 부락을 누비고 있었다. 놈을 모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저번에 힘도 없는 주제에 악을 쓰며 덤벼 오던 그 애송이였기에.

그때의 그 애송이가 저리도 달라졌다고?

두 눈으로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사내도 렉서스를 발견했는지 몰던 말을 멈추고 오시하듯 냉랭한 눈빛으로 렉서스를 내려다보았다.

“이름 따윈 말하지 않아도 좋다. 기억할 가치도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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