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1화 (11/200)

# 11

11화 비약적인 발전(4)

루크는 몸을 아끼지 않고 거침없이 첫 일격을 먹이면서 싸움을 주도해 나갔다. 그러나 이후에 뒤따르는 러스트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퍽! 투퍽! 투콱!

루크의 체중은 80킬로그램, 러스트의 체중은 110킬로그램.

둘 다 실전으로 다진 근육질임을 감안하면, 신체적으로 루크가 월등히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타고난 신체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민첩함을 활용하는 것은 편법이 아닌 정석이었다. 여기서 루크가 공격을 피하면서 치고 빠지길 반복한다 하더라도 그를 두고 비겁하다고 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데도 루크는 피하지 않았다. 러스트의 굵직한 주먹이 다가와도 피하지 않았으며, 주먹이 몸에 꽂혀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로지 공격뿐.

머리에 주먹이 적중하여 크게 휘청거려도, 복부를 맞아 자세가 흐트러진 와중에도 루크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결투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은 인간, 오크 가릴 것 없이 손에 땀을 쥐었다.

남자들의 주먹다짐이 이렇게 숭고하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저 주먹을 휘두를 뿐인 행위도 한 편의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퍽! 퍼억! 퍼억!

주먹을 나누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루크와 러스트의 몸에 타박상도 늘어났다. 맞은 부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주먹의 마디에 긁혀 찢어진 선혈이 눈가를 타고 번지며, 눈동자를 붉게 물들여 싸움에 처절함을 더했다.

넋을 잃고 대족장 결투를 바라보던 오크들은 하나둘씩 루크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이 남자는 이 싸움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물러서지 않는 행위 자체가 오크들에게 보내는 루크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나는 불리해도 물러나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승리 이외에는 바라지 않는다.

루크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그간 오크들이 잊고 있던 오크의 정신 그 자체 아니던가!

오크들에게 오크보다 더 오크다운 인간의 존재는 놀랍기 짝이 없었다.

장장 30분이나 쉼 없이 이어지던 난타전은, 루크의 주먹이 러스트의 턱에 정통으로 꽂히면서 끝을 맞이했다.

빠각!

턱뼈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러스트의 눈동자에 흰자위가 드러났고, 거대한 몸뚱이가 뒤로 기울어지며 승부가 결정 났다.

혹자는 이 상황을 두고 너무 애 같지 않느냐, 너무 야만적인 결정 방식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방관자의 시선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일련의 행위에 메시지가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여부이다. 루크는 이 의식으로 오크 부족에게 자신이 어떤 자인지 똑똑히 알릴 필요가 있었고, 오크 부족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전달했을 따름이다.

“하아, 하아.”

루크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을 때.

루크보다 머리를 높이 든 자는 없었다.

긍지 높은 모습을 보여 준 자신들의 새로운 우두머리를 감히 내려다볼 수는 없었기에 스스로 몸을 낮춤으로써 예를 갖췄다. 이전부터 루크를 따르던 토벌대의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새삼 존경심을 다지며 주군의 승리를 높이 받들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가 눈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받들어 모시고 있다.

이게 위에 선 자가 보는 경치인가?

나쁘진 않다.

왜 로메우 공작이 기를 쓰고 속국의 왕이나마 왕의 자리에 오르려 했는지 알 것 같다. 남작 위에 불과한 지금도 이런데 왕이 되었을 때 보는 경치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국왕 시절에는 한 번도 겪지 못했다. 아랫놈들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진짜 왕이 보는 경치 따위 구경도 못 했으니까.

잠시 후, 쓰러졌던 러스트가 정신을 차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루크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드래프트 영지의 영지민이 된 소감은 어떻지?”

부러진 왼쪽 아래의 어금니 사이로 피식 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러스트는 루크의 손을 잡고 일어난 후에 다시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스스로를 낮추었다.

“하얀 이빨 부족 외 4개의 부족은 전사의 긍지를 걸고 대족장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대는 공존을 언급했지. 우리에게 녹아들려면 많이 노력해야 할 거야. 대족장이 아닌 남작님이라 부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군.”

“네, 남작님.”

그리하여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하며 시작한 오크 평야 토벌은 의외의 형태로 마무리되었다. 전리품은 드넓은 평야, 그리고 1만 5천에 달하는 오크들이었다.

* * *

루크는 봄이 되기 전에 평야를 평정하겠다던 선언을 이루었다.

두 달 반에 걸친 원정을 마치고 복귀하자 모든 마을의 사람들이 브리람에 모여 종이꽃을 흩뿌렸다.

물론 공적에 따른 포상을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루크의 보좌역으로서 수없이 많은 오크를 베어 낸 제랄드에게 호봉의 2단계 승급과 추후 군부대의 규모가 커질 시 직급의 상승을 약속하고, 평야에 속한 300평의 땅을 하사했다. 그 외의 십인장들과 병사들도 활약에 걸맞은 포상을 내렸다.

드래프트 영지의 오랜 숙원을 푼 것은 좋으나 영주의 업무는 평정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영지민들이 가지고 있는 오크에 대한 인식이었다. 평야 외곽의 큰 바위, 검은 노을 부족과 평야 안쪽의 부족들의 성향은 180도 다르다. 전자는 오크들에게도 쓰레기로 취급 받는 자들만 모인 악질적인 오크들이었고, 후자는 전사의 긍지를 품고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자들이었다.

하나 한번 박힌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평범하게 두 부족만 보고 너무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기에는 그동안 오크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경우가 너무 많았다. 오크라면 치를 떠는 영주민들에게 이제 와서 오크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루크는 영지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비책을 꺼내 들었다.

“평야의 일부를 농업 특구로 지정하겠다. 농업 특구로 이주한 자에겐 넓은 농토를 할당할 것이다. 대신 농토를 할당받은 자는 일정 비율 이상의 땅을 오크에게 소작지로 지급하도록.”

‘농업 특구 개발’과 ‘의무 소작제’는 인간이 오크에게 농업 기술을 전수해 주고, 오크들의 수렵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비책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오크가 서로 교류하며 인식이 바뀔 테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이었다.

이 과정에서 농업 기술을 익힌 오크들에게 후에 제2의 농업 특구를 선정하면 우선적으로 토지를 지급하겠다는 약조를 걸었다.

처음에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땅 주인이 된 인간이 소작농이 된 오크들을 깔보며 가혹 행위를 행하고, 참다못한 오크들이 반발하며, 갖은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때 마을의 촌장들이 좋은 중재자의 역할을 도맡았다. 촌장들은 루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법전을 펼쳐 지식을 갖추고, 그간의 중재 경험을 살려 오크와 인간 사이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다.

그 외에도 루크는 유랑시인들을 불러, 오크와 인간 사이에 오간 미담들을 노래로 만들어 퍼뜨렸다. 일종의 언론 조작(?)까지 더해지면서 오크와 인간 사이의 골이 조금씩 메워졌다.

더불어 군대의 형태가 크게 격변했다.

각 부족에 있던 오크 전사들을 수용하면서 군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합류한 오크 전사의 숫자는 1,500명에 달한다. 작금의 남작 가에는 1,500명이 넘는 병사를 수용할 자금력이 없었다.

때문에 당장은 1,500명의 오크 전사들을 징집병으로 편성하고, 평소에는 밥벌이를 하다가 훈련 기간이 되면 상비군과 함께 훈련하는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더하여 제랄드가 이끄는 기존의 상비군에도 변화를 주었다. 평야의 한복판에 위치한 초원에 많은 야생마가 서식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야생마들을 길들여 기존의 상비군 전원을 기마대로 편성할 계획을 짰다.

1명의 기마병을 키우기 위해서 3년이 걸린다고들 하는데, 제랄드는 1년 만에 해 보이겠다며 병사들과 함께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 * *

처음에는 다소 삐걱거리는 것 같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각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영지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1년 사이에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역시 영지민들의 인식이었다. 아무래도 아직은 땅덩이만 넓지, 인간관계는 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알 정도의 좁은 마을이라 인간은 금세 오크들이 호쾌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오크들은 인간들이 정이 많다는 걸 알게 되어, 한식구처럼 어울려 지내게 되었다. 오크와 인간이 결혼하는 일까지 있을 정도였다.

더하여 시험적으로 시작한 제1 농업 특구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제2 농업 특구, 제3 농업 특구를 선정했다. 영주민들이 차츰차츰 평야로 이주하면서 플램 강을 중심으로 수많은 소규모 마을이 생겨났다. 그에 따른 현상으로 강을 터전으로 삼은 마을에서 어업이 활성화되며, 삶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노는 땅이 워낙 많으니, 농업도 같은 땅에서 이모작, 삼모작을 하던 예전과 달라졌다. 여러 땅을 번갈아 휴작하며 1년 내내 계절 작물을 기르게 되면서, 작물의 수확량 또한 수직으로 상승했다.

영지민들이 자급자족하고, 세금을 내고, 가축들을 배불리 먹여도 ‘곳간이 미어터져서 곡식이 썩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였다.

영지민들의 터전이 산에서 평야로 옮겨 가며, 저택의 위치도 평야로 옮겼다.

이전 저택과 같은 규모면 된다고 했으나 제랄드와 러스트가 ‘저택의 크기가 곧 영지의 얼굴’이라고 난리를 치며 극구 반대했다. 게다가 병사들까지 자진하여 저택 공사에 가담하면서, 3층짜리 건물이 3면으로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대규모 호화 저택을 뚝딱 만들어 버렸다.

넓은 저택은 거추장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넓으니까 좋긴하더라.

각종 새로운 정책을 제정하고, 영지를 운영하고, 저택을 이전하고, 개인 훈련까지 더해지자 루크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1년을 보냈다.

* * *

신축 저택의 넓은 집무실 안.

머리카락과 수염을 깔끔히 정리하여 예전의 말끔한 미청년의 인상으로 돌아간 루크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루크의 부름을 받고 집무실로 찾아온 바다 모래 부족의 족장 아바르가 해맑게 웃으며 들뜬 목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남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야, 하도 안 불러 주셔서 저 같은 약소한 부족의 족장은 잊어버린 줄 알았다니까요. 건강히 잘 계시는 모습 보니까, 기분이 좋네요.”

성인 장정 정도의 몸집을 가진 아바르는 오크치고 덩치가 작은 편이었다. 성격이 매우 쾌활하고, 구김살이 없어서 족장 특유의 무게감은 없는 대신, 다가가기 쉬운 족장으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최근에는 인간 여자와 결혼하여 신혼살림을 차리기까지 했다.

아바르의 격이 없는 태도에 같이 불려 온 제랄드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주었다.

“흠흠! 아바르, 남작님 앞이다. 좀 더 예를 갖추도록.”

“아차, 이거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제랄드 경도 딱딱한 건 여전하네요. 웃고 살아야 복이 오죠. 늘 딱딱한 표정만 지으면 오던 복도 달아난답니다.”

“이 사람이……. 죄송합니다, 남작님. 나중에 따로 주의를 주겠습니다.”

“난 아바르에게 한 표 던지지.”

“거 보십쇼. 남작님도 공감하시잖습니까. 제랄드 경은 어깨에 힘을 좀 빼야 한다니까요.”

“허, 남작님까지…….”

한바탕 제랄드를 난감하게 만든 루크는 가볍게 한번 웃어 보이고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먼 길 오게 한 건, 다른 게 아니라 바다 모래 부족이 선박 제조에 일가견이 있다고 들어서 말이지.”

“옛날부터 고기잡이배 같은 건 자주 만들어 왔으니까요. 고기잡이배가 필요하십니까?”

“아니, 대형 선박을 만들 수 있을까 싶어서.”

“다들 손재주는 있으니까, 설계도만 있으면 못할 건 없지요.”

제랄드는 루크가 선박 제조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듣는지라 곧바로 의문을 표했다.

“군함 제조입니까? 수군 편성이라도 하실 예정이신지요?”

그에 루크가 고개를 저으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을 선언했다.

“제작해야 할 건 상업용 대형 선박이야. 잉여 작물을 팔아 볼까 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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