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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3화 (13/200)

# 13

13화 능글맞은 아저씨(1)

탁!

체스판 위에서 검은색 킹이 한 칸 옆으로 이동했다.

흰색 나이트의 위협으로부터 킹을 피신시킨 제랄드가 입을 열었다.

“요즘 신병들 때문에 고민입니다.”

탁!

흰색 나이트로 검은색 비숍을 쳐 낸 루크가 비숍을 체스판 바깥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비숍을 방치하는 버릇은 여전하군.”

탁!

“방치하는 게 아니라 방치할 수밖에 없도록 남작님께서 유도하시는 겁니다. 수읽기를 워낙 잘하시니 말이죠.”

탁!

“체크메이트군.”

이걸로 123승 0패.

수읽기를 기반으로 한 게임에서 제랄드는 한 번도 루크를 이긴 적이 없었다. 수읽기를 잘한다는 말도 아첨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 말한 것이었다.

루크는 제랄드의 킹을 손가락으로 밀어 넘어뜨리며 잠시 소외되었던 주제를 언급했다.

“신병들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었나?”

“네. 신병들 중에 마나 회로를 지닌 이들이 있더군요. 그들을 키우면 강력한 전력이 될 겁니다.”

“고민의 편린조차 안 보이는군. 말이 많이 생략된 것 같다만?”

“문제는 마나유저에겐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해 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신병인데 갑자기 승진시킬 순 없잖습니까.”

“기사 양성소를 설립해야겠군.”

“수도에 있는 국립 기사 양성소로 유학을 보내는 게 비용이나 효율 면에서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루크 남작가의 기사이지 겐크 왕국의 기사가 아냐.”

체스판을 정리하던 제랄드가 손을 멈추고 입술을 우물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데 난감한 주제인가 보다. 그는 몇 차례 입술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한 후에야 말을 꺼냈다.

“남작님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계십니까?”

제 딴엔 어마어마한 결심을 하고 던진 질문이리라.

다른 이도 아닌 가장 존경하는 이의 속마음을 물은 것이니 말이다.

루크는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며 제랄드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만약에 나와 국왕 전하, 둘 중 하나만 살릴 수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할 거지?”

대화의 흐름상 질문의 의도는 명백했다. 일개 남작의 발언치고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드래프트 영지에서 살고 있는 자라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제랄드는 일절 고민하지 않고, 대답을 꺼냈다.

“설사 그 이상의 존재라 할지라도 남작님을 택하겠지요.”

대답을 꺼냄에 있어 흔들림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제랄드였다. 루크를 따라 모든 불의에 적의로 답하겠다는 신념을 세운 이후로, 제랄드에게 있어 불의는 루크의 앞길을 방해하는 모든 적을 의미하게 되었다. 비단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는 제랄드만이 아니다.

드래프트 영지에 있는 모든 이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

이 나라는 드래프트 영지를 없는 곳으로 취급해 왔다. 북방 토벌을 핑계로 변두리의 약소한 영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아니, 북방 토벌뿐만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항상 외면하기 일쑤였다.

자신들을 외면한 나라에 애국심을 품을 자가 있을까?

자신들을 외면한 국왕과 자신들을 밑바닥 가난뱅이에서 중산층으로 끌어올려 준 영주.

어느 쪽에 충성을 다할지는 묻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루크는 정점에 오른 자만이 취할 수 있는, 턱을 괴고 다리를 꼰 자세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그 생각이 영원히 변치 않길 바라지.”

“제가 변하게 놔두실 분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자네의 그런 점은 아주 마음에 들어. 러스트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군.”

“좋은 분이시죠. 화끈하고 매사에 전력을 다하는 게 보기 좋지 않습니까. 만약에 기사 양성소를 설립하면 러스트 족장님께 교관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교관은 너와 내가 교대로 맡도록 하지. 교양 쪽은 네가, 기초 훈련은 내가 맡는 게 가장 이상적이야. 전투 기술 강의 땐 너도 참가해서 배워 둬. 여전히 기본기가 약해.”

“저야 남작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 이상 영광스러운 일도 없을 테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바쁘시잖습니까.”

“개인 훈련 시간을 줄이면 돼. 최근엔 단련에 비해서 성과가 안 나오더군. 시간을 낭비할 바엔 좀 더 유용하게 쓰는 게 낫지.”

“정점에 오르셨으니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는 것이지요.”

“글쎄.”

루크가 마지막에 말한 ‘글쎄’라는 말의 의미를 제랄드로서는 알 리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마나유저의 정점은 마나마스터라는 것이 세간의 상식이다. 이론상으로는 마나마스터보다 위 단계인 그랜드마스터란 명칭도 존재하긴 하나 역사상 실제로 해당 경지에 오른 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루크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 육체가 지닌 재능이라면 이론상으로만 가능했던 경지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단지 마나만 많이 모은다고 올라갈 수 있는 경지는 아닌 것인지, 마나 호흡을 해도 더 이상 마나 회로가 강화되지 않았다. 때문에 마나 호흡의 수련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신 남는 시간에 명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명상과 복기.

당장은 이 두 가지 외의 다른 수행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사 양성소의 설립을 두고 한창 제랄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 드골이 찾아왔다. 드골은 예전보다 살이 조금 찐 편이었다. 예전에는 혼자서 서류 보조부터 영지 관리, 촌장들의 회담 참석 등등 많은 일을 떠맡고 있었기에 일에 치여 늘 해쓱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저택을 이전하면서 행정부, 기획부, 재무부를 신설하고, 그에 따른 집무관들을 고용하면서 드골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평소에는 행정부의 관리자로 일하고 있으며, 간간이 루크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영주 대리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 살이 쪘다는 거지, 지금 모습이 딱 보기 좋았다. 예전에는 정말 넘어지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말랐으니 말이다.

드골은 밀랍 봉인이 찍혀 있는 서신을 루크에게 건넸다.

“그란데 백작가에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그란데 백작가라면 겐크 왕국의 남부, 정확히는 겐크 왕국의 남서부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명문가였다. 개국공신의 가문 중 하나이자, 겐크 왕국의 서열 20위 안에 드는 가문이고, 다수의 마나유저 상급 기사들을 수중에 품고 있다.

평소에는 그란데 백작가는커녕 이너프 산맥 너머에 있는 남작가, 자작가들조차 연락해 본 적이 없다. 한데 갑자기 그란데 백작가쯤 되는 곳에서 연락이 온 것이, 루크는 미심쩍을 따름이다.

루크는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기에 앞서 누가 편지를 가져왔는지부터 물었다.

“편지는 누가 가지고 왔지?”

“그란데 백작가 사람이 직접 가져왔습니다.”

“영지 사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가겠군.”

“네, 안 그래도 편지를 인계하면서 영지가 변해도 너무 변해서 놀랐다는 말을 하더군요.”

서신을 전해 준 이는 그란데 백작가에 복귀하여 드래프트 영지에 대한 소식을 알릴 것이다. 언제까지고 계속 감추고만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드러낼 생각이었으니 그 시기가 약간 앞당겨진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슬슬 국내에서 활동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기도 하니 잘된 셈이다. 그간 프라임 왕국과의 거래로 힘을 쌓아올렸으니 이제는 중앙 정계에서 간섭해오더라도 튕겨 낼 수 있었다.

편지 안에는 간략한 내용의 공지문이 들어 있었다.

“그란데 백작가에서 남서부 귀족 간담회가 있을 예정이니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는군.”

“어지간한 안건으론 서신을 안 보낼 텐데 그만한 안건이 있나 보군요.”

“서신에는 동부 지방의 프랑크 마탑이 남서부로 이전할 예정이라 적혀 있군. 마탑 수장까지 참여하는 걸로 봐선 어느 지역에 마탑을 유치할지 결정하는 간담회라 보면 되겠지.”

겐크 왕국에는 총 20개의 마탑이 있다. 그중에서도 프랑크 마탑은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유서 깊은 마탑이다. 현재는 20개의 마탑 중 중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지만, 마탑의 수장인 오즈만큼은 6서클 마법사이자 수많은 마법사에게 존경 받는 이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단체였다.

“그렇다고 해도 별일이군요. 그란데 백작가에서 직접 남작님께 서신을 보낼 줄이야.”

“그란데 백작도 예전부터 날 싫어했나 보지?”

“아, 남작님은 예전 기억이 없으시니 그란데 백작님과의 인연도 모두 잊으셨겠군요. 뭐… 굳이 따지자면 남작님을 호보다는 불호에 가까운 시선으로 보고 계시는 분입니다.”

“내 눈치 안 봐도 되니까, 솔직하게 말해.”

“사실 엄청 싫어하십니다. 예전에 그란데 백작가의 영애님께 그…….”

“집적거렸다는 말이 그렇게 하기 힘든가?”

“제 입장상 시원스레 말씀드리기 힘든 단어들이라서 말이죠.”

“대충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있는지 알겠군.”

“가도 온통 적밖에 없을 겁니다. 불편한 자리가 될 게 뻔하니 거절하는 게 어떠신지?”

그란데 백작의 딸에게 집적거렸다든지, 망나니 인식이 여전하다든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제2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후부터 남의 눈치를 봐 가면서 행동한 적 따위 없다.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말이다.

루크는 서신을 도로 봉투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란데 백작가엔 참석한다고 전해 둬.”

“괜찮으시겠습니까?”

“가식이 생활인 머저리 녀석들에겐 관심 없어. 그보다 마탑을 유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마탑은 말 그대로 마법사들의 탑을 의미한다. 판테아 대륙에 처음 설립된 마법사들의 시설이 탑의 형태였던지라 그 뒤로 모든 마법사의 연구 시설을 마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선 굳이 마법사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분야에 걸쳐 고급 교육을 실시하는 상급 아카데미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마탑을 영지 내에 유치할 수 있다면 영지의 교육 수준이 상승하고, 마탑을 중심으로 마법과 관련된 관광 시설과 상업 지구가 형성되며, 영지 출신의 마법사가 급증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경제, 군사, 교육 모든 면에서 실적의 향상을 이뤘으면 이뤘지, 절대 손해는 보지 않는 장사였다. 물론 다른 귀족들도 같은 생각을 할 테니 수많은 로비가 난무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크는 마탑을 유치할 자신이 있었다.

현존하는 시설 중 가장 고급진 시설의 유치를 획책하고 있다는 말에 제랄드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성공을 기원했다.

“마탑이 유치된다면 영지가 한층 더 발전을 이루겠지요. 부디 몸조심해서 다녀오시길.”

“무슨 소리지? 너도 같이 가는 거야.”

“네? 저도 갑니까?”

“귀족들 얼굴이 하나도 기억 안 나니까, 누군가는 옆에서 알려 줘야지.”

“제가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군요. 그럼 저도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루크는 제랄드와 약간의 호위 병력을 대동한 채 그란데 백작령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 * *

다른 영지로 넘어가려면 험난한 이너프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이너프 산맥이 험난하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산맥을 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군사적 요충지가 될 산맥이니, 이참에 면밀히 살피며 지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핵심은 마탑의 유치이기 때문에 마탑의 수장을 설득할 방법을 생각해 두는 것이 급선무였다.

떠나기에 앞서 루크는 드골에게 오래전 마나 영약을 발견하여 마나마스터에 등극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어떤 청년을 부를 것을 명했다.

“드골, 예전에 푸른 버섯을 따 왔던 약초꾼을 불러와.”

“테드 말입니까?”

“그래, 걔. 떠나기 전에 구해 둬야 할 물건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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