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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재능으로 환생-14화 (14/200)

# 14

14화 능글맞은 아저씨(2)

며칠 후, 저택에 특별 제작한 마차가 도착했다. 마차는 겉보기에는 밋밋한 검은색의 일반 마차에 불과했으나 내부는 매우 고급스러웠다. 내부는 겉보기 이상으로 넓고, 오리 깃털을 채워 넣은 쿠션을 설치하여 장시간 운행에도 피로를 느끼지 않도록 설계됐다.

거기다 순방향 좌석과 역방향 좌석을 이어붙일 수 있어서, 마차 안에서도 침대에 누운 듯 편히 잘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처음에는 왜 마차 안에서 누워서 잘 수 있도록 의자를 만들어 둔 것인지 의아했다. 예로부터 마차 안에서 눕는 것은 천박한 행위라 하여, 어린아이 외에는 눕지 않는 것이 정석이었다. 잘 거면 여관을 잡아서 자면 될 일이었다.

그리 말했더니 제랄드가 대답했다.

“이너프 산맥을 넘는 데 사흘이 걸립니다. 남작님께 노숙을 시킬 순 없으니 안에서 잘 수 있는 마차를 제작해 달라고 의뢰를 넣어 뒀지요.”

다른 영지로 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흘씩이나 걸릴 줄은 몰랐다. 그쯤 되면 내륙 쪽에서 사람이 넘어오려 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마차가 떠나기 직전, 약초꾼 테드가 부탁한 물건을 전해 주러 찾아왔다.

“미! 미천한 아무개가 남작님을 뵙습니다!”

“기껏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이니 떳떳하게 밝히지 그래?”

“그, 그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미! 미천한 테드가 남작님을 뵙습니다!”

“뭐, 미천하다는 단어도 빼면 좋겠지만 네가 만족하는 것 같으니 그걸로 된 셈 치지. 부탁한 물건은 구해왔나?”

“여, 여기 있습니다! 나, 남작님께 드리려고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수고했어. 드골에게 가서 포상을 받아 가도록.”

“아, 아닙니다! 남작님께 도움이 된 것만으로도 자자손손 자랑거리입니다!”

“받아서 어머니께 진수성찬이라도 차려 드리도록 해.”

“아,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동 수단과 협상 재료를 모두 갖춘 루크는 제랄드와 약간의 호위 병력만 대동하고서 저택을 떠났다.

* * *

이너프 산맥을 넘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길이 거친 나머지 충격을 완화시키는 내장재로 설비한 마차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마차가 흔들렸다.

때로는 마차 하나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통과했고, 때로는 조금만 긴장을 놓으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 십상인 위험한 절벽 길을 통과했다. 협곡을 지날 때는 바람이 제 몸에 들어오는 이물질을 털어 내는 양 거세게 밀어냈으며, 굽이굽이 이어진 고개의 경사는 감히 자신의 머리에 누군가 올라서는 것을 거부하는 듯 가팔랐고, 날씨는 어찌나 변덕이 심한지 수차례 비가 내렸다가 그치길 반복했다.

가장 곤란한 것은 빈번한 낙석으로 인해 바위가 길을 막고 있는 경우였다.

“으랏차! 힘 줘! 더! 더더더! 더더!”

“아침밥 든든히 먹고 그것밖에 힘을 못 쓰더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밀어라!”

제랄드와 병사들이 달라붙어, 바위 밑에 나무 기둥을 끼우고 힘껏 밀어젖혔으나 바위는 꿈쩍할 생각을 안 했다. 애꿎은 나무 기둥만 수차례 부러지길 반복하는 가운데 시간은 점점 지체되어 갔다.

보다 못한 루크가 직접 나섰다.

“비켜. 내가 해결하지.”

“괜찮습니다, 남작님. 이런 일에 남작님께서 직접 나서게 해서야 저희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맡겨 주십시오!”

“두 번 말하게 할 셈인가?”

오랜만에 루크의 위압감을 맛본 제랄드는 몸서리를 치며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집채보다 큰 바위이긴 해도 마나블레이드로는 커다란 수박 덩어리를 자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가볍게 검을 몇 번 휘둘러 주니, 바위가 잘게 쪼개어지며 비탈길 아래로 우르르 굴러떨어졌다.

그란데 백작가의 사람이 왔다 갈 때만 하더라도 이 길에 바위는 없었을 것이다. 바위가 있었다면 아예 서신을 가져다주러 도착하질 못했을 테니까. 이는 곧 이너프 산맥의 도로가 날마다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는 환경임을 의미한다.

이번 여행으로 루크는 기존에 뚫어 놓은 육로는 썩 좋은 이동로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루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검을 검집에 도로 꽂아 넣으며 무심히 제랄드에게 추가 업무를 얹어 주었다.

“이번 일을 마치고 저택에 복귀하면 산맥에 다른 길은 없는지 수색해 둬. 필요하다면 굴을 파내서라도 길을 따로 만들어야겠어.”

* * *

사흘 후, 루크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이너프 산맥을 넘어, 이웃 영지에 다다랐다. 산맥을 넘은 후부터는 평온한 여행길이 이어졌다. 길이 넓고 평평하니 속도를 한껏 낼 수 있었고, 마을을 지나쳤다 싶으면 곧바로 다음 마을이 나와서 노숙할 일도 없었다. 덕분에 산맥에서 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새운 기사들도 한시름 푹 놓고 단잠을 청했다.

남작가를 떠난 지 정확히 일주일째 되는 날.

루크가 탄 마차는 그란데 백작가의 저택에 도착했다. 백작가의 저택 안은 먼저 도착한 귀족들과 그들이 데리고 온 호위 병력으로 북적거렸다. 경비병의 안내를 따라 백작가 저택의 본채 앞에 있는 분수대에서 마차를 멈추니, 귀족들의 시선이 쏠렸다.

“또 누가 도착했나 보구먼. 대충 도착할 사람은 다 도착한 것 같은데, 누구지?”

“저기, 마차 옆에 있는 기사, 언제 한번 인사 나눴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오랫동안 타지 귀족들과의 교류가 없던 탓에 누구 하나 루크를 거론하는 이가 없었다.

마차에서 내리자 그제야 귀족들이 루크 남작가에서 온 루크 남작임을 깨닫고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달갑지 않은 기색이 농후하게 묻어 나왔다. 마치 파티 때마다 늘 흥을 깨는 눈치 없는 자를 보는 듯 냉랭한 시선이 쏟아졌다.

“뭐야, 루크 남작이었나. 요 몇 년 동안 코빼기도 안 내비치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담. 그냥 계속 쭉 영지에 박혀 있을 것이지.”

“꼴에 영지에 마탑을 유치시키고 싶은가 보죠. 흥, 주제를 알아야지.”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들어갑시다. 백작님께 인사드리러 가시죠.”

귀족들은 루크에게 인사조차 않고 쉬쉬하며 저희끼리 대화를 나누더니 하나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은 겉치레에 불과할지라도 인사 정도는 건네기 마련이다. 한데 그마저도 없다. 대놓고 따돌릴 정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체 이전에 얼마나 진상 짓을 하고 다녔기에 사람들이 저리 반응할까?

사람들의 반응 따윈 아무래도 좋다.

이 독하디 독한 사내는 사람들의 깔보는 시선 속에서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뽑아냈다.

‘여전히 예전 인식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선 아직 내 영지의 상황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나 본데… 그란데 백작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건가.’

그란데 백작은 평소에 속내를 알 수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완 하나는 대단하여, 그란데 백작령을 훌륭하게 다스리고 있는 데다 왕궁으로부터 여러 차례 부름을 받은 전적까지 있다.

일부러 떠들고 다닐 만한 일이 아니라 여겨 굳이 입을 떼지 않은 걸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그 부분은 그란데 백작과 대면하면 명확해질 터.

루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그란데 백작가 저택의 본채 안으로 들어갔다.

* * *

간담회 행사는 총 3일간 이어진다.

첫날은 먼 길을 달려온 귀족들을 위한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소고기로 유명한 그란데 백작령답게 최고 등급의 소고기 요리와 그에 어울리는 레드 와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연회장은 입식과 좌식 둘 다 가능한 형태로 준비되어 있었다. 뒤이어 그란데 백작이 들어오면서 귀족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그란데 백작은 드문드문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나이가 든 게 아니라 멋이 들었다는 말이 어울리는 노련한 분위기, 굵은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매가 특징인, 강인한 인상의 사내였다.

식사하기에 앞서 귀족들 모두가 차례차례 그란데 백작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란데 백작님. 못 보던 사이에 오히려 젊어지신 것 같군요. 요즘 웃을 일이 많으셨나 봅니다.”

“그란데 백작님, 이렇게 또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언제 봐도 멋진 영지로군요. 본받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하하, 최근에 또 왕궁으로부터 부름을 받으셨다죠? 백작가의 명성이 날로 높아지는 것 같아 저까지 뿌듯해지는군요.”

남서부 지방에서 가장 높은 작위를 지닌 사람인 만큼, 너도나도 잘 보이려고 입에 발린 말을 쏟아 냈다. 제 나름대로 재치 있는 말이랍시고 시시덕거리면서 아부를 떨었으나 정작 아부를 듣는 그란데 백작은 형식적인 대답과 무늬뿐인 웃음으로 화답할 뿐이었다. 마치 인기 없는 남자와 인기 많은 여자의 조합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귀족들이 인사를 마치고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그란데 백작 곁이 한산해졌을 무렵, 루크는 그제야 그란데 백작에게 다가가 늦은 인사를 건넸다.

“드래프트 영지의 루크입니다. 3일 동안 신세 좀 지겠습니다.”

진짜 형식적인 말투란 게 무엇인지 보여 주듯 무미건조한 인사였다. 간담회 내내 백작가로부터 손님 대접을 받을 테니 그 부분에 대한 인사 정도를 건네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그란데 백작의 명성이 높든 말든, 남들에게 존경을 받든 말든, 루크의 신경은 오로지 마탑 유치에만 쏠려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몸을 돌리려는데 그란데 백작이 루크를 불렀다.

“루크 남작, 이렇게 얼굴 마주치는 것도 오랜만인데, 같이 식사나 하세나.”

딸에게 집적거린 것 때문에 안 좋게 보던 사내에게 먼저 식사를 권유한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식사하자는 것은 핑계에 불과할 뿐, 필시 드래프트 영지가 급속도로 발전한 것을 두고 이것저것 캐물으려는 의도인 게 틀림없다.

사정을 모르는 다른 귀족들로선 루크가 그란데 백작에게 식사를 권유 받은 것을 두고 부러움 반, 시기 반의 눈빛을 보냈다.

‘왜지? 나는 선물까지 바리바리 싸서 왔는데, 왜 내가 아니고 저 녀석에게 관심을 보이시지?’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루크 남작이잖아. 저 망나니에게 관심 줘서 좋을 것 하나도 없건만.’

그란데 백작의 식사 권유 따위 가지고 싶으면 가져가라고 하고 싶다. 다들 머릿속으로 친목을 다질 기회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나 본데, 이쪽으로서는 성가실 따름이다.

그란데 백작이 드래프트 영지의 근황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고 있든지, 다른 꿍꿍이가 있든지 루크는 둘 중 전자이길 바랐다. 그러나 일부러 식사를 권유하는 것으로 봐서 후자 쪽인 듯하다.

고작(?) 그란데 백작 정도의 인물이 꿍꿍이가 있다고 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냐만, 겉보기에는 백작이 남작에게 권유한 셈이니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빙 둘러 거절해 주었다.

“먼 길을 와서 그런지 바로 쉬고 싶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또 권해 주시길.”

내일도 권유하려면 할 수야 있겠으나 자칫 잘못하면 그란데 백작이 루크 남작에게 밥을 한번 먹어 달라고 매달리는 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남서부의 모든 귀족들이 모인 마당에 체면을 버리고 또 한 번 권할 수 있을까?

체면의 손상까지 감수한다면야 불쌍해서라도 대화에 응해 주겠다.

그런 메시지를 담은 대답이었다.

거절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그란데 백작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다른 귀족들도 자신의 귀를 의심하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루크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 연회장 속에서 루크는 뭇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며 유유히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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